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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8

       

       

       

       

       

       178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2 )

       

       

       

       

       

       까놓고 말하자면 한스는 가성비가 좋은 녀석이다.

       

       이것저것 아이템 테스트하는 용도로 쓰기에도 적합하고, 모르겠다 싶으면 대충 던져놔도 그럭저럭 1인분은 해낸다.

       

       전투력도 꽤 준수해서 ‘용기의 룬’ 버프와 이것저것 풀 도핑 받고, 조건만 잘 맞으면 보스로 나온 악마도 혼자 때려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풀 도핑과 여러 조건이 충족된 상태의 이야기. 그마저도 ‘용기의 룬’은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났을 때만 조건부로 버프가 들어온다.

       

       안 켜지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용기의 룬’ 버프가 들어갈 정도면 정말 궁지에 몰렸다는 소리니까.

       도박수의 느낌이 강하다.

       

       “쓰읍.”

       

       한스의 키워드는 강자 멸시. 강한 적과 싸울 때 빛을 발한다. 자신보다 강한 녀석을 만났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무기 자체에 부여된 스킬은 쓰레기 같은 ‘강타α’에 불과하지만, 한스가 가지고 있는 룬은 무려 2개나 된다. 

       용기의 룬과 속도의 룬.

       

       속도의 룬의 발동 조건이 뭔지 자세히 확인은 안 해봤지만, 용기의 룬을 생각하면 분명 난이도 있는 조건이 걸려 있을 것이다.

       

       강한 적이 나와도 한스가 용기의 룬을 발동시키기만 한다면, 거기에 어떻게든 속도의 룬까지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한스가 해결할 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굳이 새로운 스킬을 줄 필요가 있나?’

       

       내 주력 멤버들은 각자 무기에 부여된 스킬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가령 케니스의 경우에는 대검의 끝에서 세이버 빔을 발사하고, 프리가는 연속 공격으로 스택을 쌓아서 강력한 한 방을, 이스칼은 전방의 적들을 도발하고, 황제 카이사르는 모든 방향에 강력한 버프와 힐을 뿌렸다.

       

       물론 양산품인 ‘낡은 롱소드’에도 스킬이 있다.

       

       이름하여 ‘강타α’와 ‘강화β’. 

       일정 확률로 조금 더 강한 공격을 하게 해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확률 자체가 눈물나게 낮아서 별로 큰 의미는 없지만, 자체 스펙이 뻥튀기되는 한스에게는 나름 잘 어울리는 스킬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무기 스킬 괜찮은 거 있나 한 번 찾아볼까? 진짜 몇 개 찾아만 놓자.’

       

       혹시 아는가? 정말 급박한 상황에서 무기 스킬을 바꿔줘야 하는 일이 닥쳐올지. 그때가 되면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지, 절대 쇼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부터 어떤 컨셉의 무기 스킬이 잘 어울릴지 바쁘게 고민을 시작했다.

       

       – 뽀득 뽀득

       

       화면에서는 그사이에 또 다른 웨어울프를 마주한 정찰대가 순조롭게 녀석들을 썰어가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선두에 위치한 한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롱소드에서 작게 이글거리는 2개의 글자가 보인다. 용기와 속도의 룬이다.  

       

       ‘화질이 높아지니까 이런 것도 보이네.’

       

       뽀짝한 SD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디아블로2가 리마스터 됐을 때 느꼈던 감동을 모바일로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뾰롱!

       

       정찰대가 나아가는 만큼, 지도를 뒤덮은 안개가 사라지고 점점 보이는 부분이 넓어진다.

       

       종착지는 산의 정상.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을 정도로 올라왔다.

       

       “…”

       

       어쩐지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번개의 일격’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괜히 자꾸 눈길이 간다고 해야 하나. 언제라도 쓸 수 있게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조만간 쓸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마수의 산의 어딘가, 여섯 명의 전사가 잔뜩 웅크린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뽀득! 뽀드득!

       

       “후욱! 후우욱!”

       

       “다들! 자세 낮추고! 허리에 묶은 줄 계속 확인하세요!”

       

       눈보라가 불어와 세상을 흔든다.

       

       여섯 명의 전사들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밧줄로 연결했다. 방향은 길잡이를 자처한 사냥꾼이 정하지만, 앞장서는 것은 한스였다.

       

       만약 밧줄로 묶인 누군가가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지거나, 누군가 탈진한다면 한스가 도맡아서 그들을 끌고 가야 했다.

       

       그를 제외하면 성인 남성 5명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스는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후우- 후우…”

       

       한스의 입에서 연신 가는 입김이 흘러나왔다. 체력의 한계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강인하게 변한 그의 육체는 이 정도로 지치지 않았다.

       

       문제는 옅은 공기.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는 매우 희박해졌고, 호흡 한번 한번이 고통스러웠다.

       

       희박한 공기는 그의 강인한 육체로도 극복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들숨 자체가 옅다. 부족한 숨을 보충하기 위해 더욱 가쁘게 숨을 내쉬었고, 점차 견디기 힘든 종류의 두통이 몰려온다.

       

       비틀.

       

       “끄윽…”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에 한스가 휘청거렸다. 비단 한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평생 높은 산을 오른 적 없는 이들은 전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사냥꾼 정도. 

       

       “저기! 저쪽에 동굴이 보이는군!”

       

       사냥꾼이 짙은 눈보라 사이로 동굴을 발견했다. 전사들은 더욱 걸음을 빠르게 옮겨 동굴로 향했다. 

       

       물에 떠내려가는 와중에 밧줄을 만나도 이렇게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우- 후우-…”

       

       “허, 흐어어.”

       

       “어휴. 날씨가 아주 그냥…”

       

       동굴에 들어오기 무섭게 널브러지는 전사들. 그나마 두 발로 서 있는 것은 사냥꾼과 한스가 유일하다.

       

       동굴에 들어선 한스가 갑작스러운 악취에 인상을 구겼다. 분뇨와도 같은 악취가 흐릿하게 맡아진다.

       

       “우욱… 무슨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요?”

       

       “후우- 냄새? 킁킁. 난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

       

       “아이고… 한스 공의 후각이 비범한 것은 진작에 경험했으니, 저 동굴 안에 뭔가 마수나 짐승의 오물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한스를 따라 킁킁거리던 사냥꾼이 활과 단검을 고쳐 잡았다.

       

       “안에 뭔가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혼자서 살짝 보고 오겠네. 다들 쉬고 계시게.”

       

       “아, 저도 같이ㅡ”

       

       “대충 흔적만 보고 올 거니까 그냥 쉬고 있게. 머리 아플 텐데 무리하지 마시고. 무슨 일 생기면 신호 주겠네.”

       

       활과 화살, 단검을 챙긴 사냥꾼이 동굴 안쪽으로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분명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사냥꾼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이 동굴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설령 크다고 해도 사냥꾼이 혼자서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고요.”

       

       기운을 차린 전사들은 저들끼리 떠들며 사냥꾼을 걱정했다. 이윽고 기다리다 못한 한스가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지직ㅡ 지지직ㅡ

       

       무거운 가죽을 질질 끄는 소리와 함께 사냥꾼이 돌아왔다. 동굴 안에 숨어있던 멧돼지를 잡아 온 것인지 살집이 두툼한 것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무사했군요! 너무 안 오셔서 무슨 사고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그건… 멧돼지 아녀? 그게 오늘 저녁거리요? 이거, 간만에 고기구만!”

       

       “멧돼지가 아니야.”

       

       고개를 저은 사냥꾼이 끌고 오던 것을 발로 툭 차서 떼구르르 굴렸다. 가까이 굴러온 돼지를 자세히 보자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이었다.

       

       기절했는지 가는 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살집이 얼마나 두툼한지 순간 멧돼지로 착각할 정도다.

       

       품에는 제 몸통만큼 커다란 주머니를 안고 있었는데, 굉장히 소중한 것인지 도통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람? 아니 잠깐… 사람 맞지? 뭐가 이렇게 뚱뚱해?”

       

       “이건 도대체…”

       

       이 돼지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뭐고, 도대체 왜 동굴 안쪽에서 나온단 말인가? 품에 안고 있는 주머니는 또 뭐고?

       

       전사들은 사냥꾼을 향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지 뭔가. 데려오려고 하니까 무작정 발버둥 치는 바람에 손을 좀 썼지.”

       

       설명만 들어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전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숙련된 전사들도 힘겹게 올라오는 고지대에, 이런 물렁살 가득한 돼지가 혼자 동굴에 숨어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킁 킁.

       

       냄새를 맡던 한스가 코를 말아 쥐었다. 코가 썩어 버린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우욱! 으윽! 이, 이 자한테서 악취가! 우웨엑!”

       

       지독하다 못해 썩어버릴 것 같은 악취.

       

       한스는 이 악취를 알고 있다.

       타들어가는 유황의 흔적, 시체가 썩어가며 부패하고 문드러지는 냄새, 온갖 모독적이고 불길한 것들의 악취.

       

       “악마… 이 새끼 악마 계약자입니다.”

       

       악마의 냄새.

       

       한스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악마와 손을 잡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버러지의 종자들. 

       

       한스는 아직 산골 마을의 전투를 잊지 않았다. 악마와 손을 잡은 이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때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악마 계약자…”

       

       전사들 사이에서 침음이 돌았다. 악마 계약자가 있다는 것은 계약의 주체인 악마가 있다는 소리. 

       

       아마 높은 확률로 그들이 향하는 산의 정상에 있을 것이다.

       

       “확실한 거요? 엄한 사람 잡으면 큰일이요, 이런 일에서는.”

       

       “확실합니다. 저도 이 자에게서 악마의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이 질척하고 끈적한 기운… 두통 때문에 미처 몰랐습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성기사가 한스의 말을 뒷받침했다. 이걸로 사내가 악마 계약자라는 것은 확실해진 상황.

       

       “우선 이 녀석을 깨우고, 아는 것을 모조리 말하도록 하는 게 좋겠군.”

       

       전사들이 딱딱한 표정으로 동의했다. 철저한 사전 조사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 하물며 악마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더더욱 철저해야 한다.

       

       “저한테 맡겨주시죠. 제가 비슷한 걸 몇 번 본적이 있거든요.”

       

       잔뜩 인상을 쓴 성기사가 사냥꾼의 화살을 하나 주워들었다. 몇 번인가 휘적휘적 휘두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ㅡ

       

       철썩!

       

       화살을 회초리처럼 휘둘렀다. 낭창낭창하게 휘어진 화살이 돼지의 뱃살을 두들기며 찰진 가죽 소리를 냈다.

       

       “꾸에엑! 꺼흡-!”

       

       번쩍 눈을 뜬 사내.

       눈에는 당황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아는 것인지, 고개가 휙- 돌아가며 동굴의 출구를 찾았다.

       

       “누, 누구야 당신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이런 짓을ㅡ!”

       

       “말해라.”

       

       철썩!

       

       “뭐, 뭐를?! 꾸에엑!”

       

       성기사는 감정 하나 없는 얼굴로 짧게 말하고는 화살을 휘둘렀다. 화살의 표면이 옅게 빛나는 것을 보니 신성력까지 두른 모양.

       

       철썩! 철썩!

       

       “말해.”

       

       “꾸하악! 뭐, 뭐를 말이냐! 끄으읍!!”

       

       신성력으로 강화된 화살은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게 휘어지며 사내의 몸을 두들겼다. 붉은 실과도 같은 자국이 사내의 몸 곳곳에 그어진다.

       

       철썩! 철썩!

       

       “그만! 그마안! 지금, 아으윽!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내가! 꾸하악! 내, 내가ㅡ! 아악! 멈춰!”

       

       철썩! 철썩!

       

       “말해라.”

       

       사내의 비명에도 성기사는 무표정으로 묵묵히 팔을 움직였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으음.”

       

       보는 이들이 질릴 정도의 무자비함.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성기사는 사내가 단말마처럼 외치고서야 멈췄다.

       

       “마, 말하겠다! 아니, 말하겠습니다! 뭐라도 말하겠습니다! 부디, 부디 멈춰주세요…”

       

       사내의 전신에 붉은 선이 가득하다. 살이 터지고 찢어지면서 피가 한가득 흘렀고, 오줌을 지렸는지 지린내가 올라왔다.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품에 안은 주머니는 성기사가 때릴 수 없게 감싸고 있었다.

       

       “좋아.”

       

       그제야 성기사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단 심문관들이 종종 ‘교화’나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따라 해봤는데, 효과가 괜찮았다.

       

       “뭐부터 물어볼까요?”

       

       성기사는 뺨에 묻은 핏방울을 닦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방금까지 사람을 걸레짝으로 만든 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태도.

       

       심지어 상쾌한 웃음까지 지어보인다.

       

       “어…”

       

       다섯 명의 전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웃는 얼굴이 이렇게 무서운 것은 처음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개복치 작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 ‘신선우’님!!! 김밥에 라면같은 완벽한 조합의 후원!!!.ㅣ 감사합니다!!! 한스를 억까…!! 굳세어라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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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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