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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9

       

       

       

       

       

       179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3 )

       

       

       

       

       

       뚱뚱한 사내는 자신을 케이건이라고 말했다.

       직업은 마을과 마을을 오가는 보부상. 들고 있는 이 보따리는 자신의 장사 밑천이고, 목숨과도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악마 계약자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바보였다. 보부상? 저렇게 뚱뚱한 몸으로 어디를 어떻게 걸어 다니겠다는 말인지.

       

       당장 성기사의 눈빛만 봐도, 화살로 케이건을 때려죽일 기세다.

       

       철썩!

       

       “그 보따리를 열어라.”

       

       “끄하악! 아, 안 됩니다! 끄히악! 제, 제발 이것만은ㅡ!”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성기사의 손이 매섭게 움직이며 화살을 휘둘렀다. 낭창하게 휘어지며 허공을 가르는 화살.

       

       훗치!

       

       화살이 공기를 찢으며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순간적으로 진짜 채찍처럼 음속으로 날아들며 공기를 터뜨린 것.

       날아든 화살촉이 케이건의 두툼한 살집을 깊게 할퀴며 지나갔다.

       

       이제 케이건의 몸은 얇고 붉은 선이 생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피부와 근육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강철로 벼려진 화살촉이 음속으로 날아들며 연약한 피부와 무른 근육을 너무나 쉽게 찢어버렸다. 그러한 채찍질이 수십 번.

       

       촤악! 차악!

       

       성기사는 묵묵히 팔을 휘둘렀다. 케이건이 폭력에 굴하며 스스로 보따리를 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계획이었다.

       

       “크히익! 아, 안돼! 나의 것이야!! 끼흐읍! 내, 내 거라고! 전부, 전부 내 거라고!!”

       

       몸을 웅크리고 품에 보따리를 안은 케이건이 광적으로 외쳤다. 붉게 충혈된 눈에는 충동적인 광기만이 가득했고, 뱉어지는 말에는 끝없는 탐욕이 가득하다.

       

       성기사는 그제서야 채찍질을 멈췄다. 케이건의 눈을 바라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이미 광기에 먹혔다. 골수까지 파고들어 이미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이건 도대체…”

       

       “늦었군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기사의 선언.

       

       골수까지 파고든 악마의 기운과 광기. 거기에 먹히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빠져나오고자 하는 본인의 강력한 의지와 주변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어도 확률이 아주 희박한데…

       

       “내 꺼! 이, 이이이이건 전부 내 거야! 후으ㅡ! 으흐흐흐흐… 그래, 내 보물…”

       

       엉금엉금 기어서 보따리를 품에 안는 케이건의 모습은, 스스로 자처해서 광기에 먹힌 자의 것이었다.

       광인의 눈을 빛내며 보따리를 소중하게 끌어안는 케이건. 도대체 저 보따리에 무엇이 있길래 저렇게까지 집착을 한단 말인가?

       

       끄덕.

       

       성기사와 눈이 마주친 한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붙들고 있겠습니다.”

       

       성큼성큼 다가간 한스가 한 손으로 가볍게 케이건을 들어 올렸다. 두툼한 살집이 중력을 따라 축 처지며 보기 흉한 자태를 자아냈다.

       그 사이에 성기사가 잽싸게 보따리를 뺏었다.

       

       눈앞에서 보따리를 빼앗긴 케이건.

       보따리가 손을 떠나기 무섭게 발버둥 치며 발작을 일으켰다.

       

       “으아ㅡ! 아아악!! 내, 내 거야!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오직! 내, 나만의 것! 내 보물이라고! 죽어! 죽어! 죽어 도둑 새끼들아!”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하지만, 한스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사이 성기사는 보따리의 주머니를 열어 조심스럽게 그 내부를 확인했다.

       

       “…허.”

       

       그리고 탄식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인간 언저리의 것들과 온갖 끔찍한 것들을 봐온 성기사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

       

       그의 입술이 떨린다. 차마 입이 안 열리는 모양.

       

       “뭐요? 도대체 뭔데 그런 반응을… 허업!”

       

       “이, 이런 시발! 저 미친 새끼는 이런 걸 왜 들고 다니는 거야!”

       

       “…끔찍하군.”

       

       성기사의 반응에 모여든 전사들이 하나둘 보따리의 내부를 보더니, 저마다 극단적인 반응을 뱉어냈다.

       

       욕설, 탄식, 경악…

       

       한스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찼다.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봤길래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성기사가 한스를 바라보며 침통하게 말했다.

       

       “한스 님… 이걸 봐도 괜찮겠습니까?”

       

       “도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시는지 모르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후우ㅡ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세요.”

       

       성기사는 조심스럽게, 혐오와 고통이 깃든 손짓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바닥에 꺼내 보였다.

       

       “…어?”

       

       커다란 고깃덩어리다.

       

       붉고 질척거리는 고깃덩어리. 핏기가 가득하여 땅에 떨어지면서 철퍽ㅡ하고 물기 가득한 소음을 자아냈다.

       

       고기의 표면에는 얇은 핏줄이 솟아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핏줄이 팔딱거리며 움직였다. 

       

       설마 살아 있는 것일까?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형태도 굉장히 기묘했다. 커다란 부위가 두 개, 길게 뻗은 부위가 네 개. 작게 꿈틀거리는 모양새가 제법 징그럽다.

       

       크기도 제법 커다랬는데, 전체적인 모양새는 마치…

       

       ‘인간이 웅크린 것 같은ㅡ’

       

       “아.”

       

       그제야 온전한 형태가 보인다.

       

       인간의 모양과 비슷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것은 인간이다. 

       

       피부가 벗겨지고, 눈동자는 뽑히고, 이빨은 박살이 나서 그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명백한 인간이었다.

       

       존재 가치를 빼앗기고, 자유와 의지를 박탈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오직 고깃덩어리로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죽지 못해 살아있는 이의 흔적이다.

       

       쿵.

       

       “내 보물! 이 도둑 새끼들! 내 보물에서 떨어져!!”

       

       한스의 손에 힘이 풀리며 케이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미친 듯이 바닥을 기어가며 고깃덩어리를 품에 안은 케이건.

       실성한 듯 웃더니 고깃덩어리에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흐헤헤! 흐하하하! 내, 내 보물! 황금! 내 거야, 내 보물! 후히히히!!”

       

       “미친…”

       

       케이건의 눈동자에는 저 고깃덩어리, 아니 희생양이 황금으로 보이는 것일까?

       

       푸시식ㅡ

       

       케이건의 피부에 닿은 희생양이 녹아드는 소리를 내며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케이건의 두툼한 살집은 점차 늘어갔다. 인간의 형상에서, 짐승의 형상으로. 

       

       인간과 짐승의 사이, 그 무언가로 변해간다.

       

       인간이 인간을 포식하고 있다.

       

       “욱! 우웩! 이, 이 시발ㅡ!”

       

       끔찍한 현장을 보다 못한 누군가 헛구역질하며 밖으로 날려 나갔다. 

       

       사냥꾼이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깊게 파인 눈에서 살기가 흘러내린다. 당장이라도 케이건의 목에 단검을 꽂을 기세였다.

       성기사가 사냥꾼을 제지했다.

       

       “멈추세요. 이 자를 지금 죽여서는 안 됩니다.”

       

       “…설마 자네가 막을 줄을 몰랐는데.”

       

       “마음은 이해합니다. 저도 당장 이 더러운 새끼를 쳐 죽이고 싶지만… 그건 너무 편안하고 자비로운 방법이죠. 이런 사악한 자에게는 죽음도 사치에 불과합니다.”

       

       성기사의 눈에는 차가운 살의가 가득했다. 

       

       “우선 여기에 제압만 해두고, 하산하면서 이 자를 데려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자에게는 단순한 죽음이 아닌, 그보다 더한 고통이 필요합니다.”

       

       “음… 난 자네의 말에 동의하네.”

       

       “저 씹어 먹을 새끼를 곱게 죽일 수는 없지. 나도 좋소!”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어낸 성기사가 메이스를 휙- 휘둘렀다. 적절한 힘이 실린 메이스가 케이건의 머리를 강타했다.

       

       “흐히히히히! 내, 내 보물이야! 내 소중한 보ㅁㅡ 커억!”

       

       짧은 단말마와 함께 쓰러진 케이건. 앞으로 쿵ㅡ하며 쓰러졌다.

       

       성기사가 짐에서 여분의 밧줄을 꺼내더니 케이건의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묶기 시작했다. 

       한데 케이건의 팔과 다리가 상상 이상으로 비대해서 잘 묶이지 않았는지, 조금 고생하는 듯했다.

       

       보다못한 사냥꾼이 나섰다.

       

       “내가 조금 도와주겠네. 거기서는 요 고리를 이렇게 통과시키고 이 사이로 지나가면ㅡ”

       

       “아. 확실히 잘 묶이네요. 신기한 매듭법이군요.”

       

       “멧돼지 묶을 때 쓰는 방법이라네.”

       

       전사들은 꽁꽁 묶은 케이건을 동굴 안쪽 깊숙이 옮기고, 고깃덩어리… 아니, 희생양에게 안식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미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뿐더러,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고통일 터.

       최대한 빨리 고통을 끊어주는 것이 그들의 최선이었다.

       

       희생양을 평평한 곳으로 조심스럽게 옮긴 성기사가 한스를 돌아봤다.

       

       “이건 한스 님께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성기사 님이 하시지 않고…”

       

       “보시다시피 제 무기는 메이스여서, 이런 일에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거든요. 이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 그럼 다른 분들이 하셔도ㅡ”

       

       “거, 대장이 하십쇼. 이런 일에는 우리보다 대장이 어울리니까.”

       

       악마와 케이건에게 붙잡혀 끔찍한 고통을 받아온 이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빠르고 짧게, 순식간에 잠들듯이.

       

       한스가 옅은 숨을 골랐다.

       

       “후우…”

       

       잘게 떨리던 한스의 검이 희생자의 심장을 부드럽게 갈랐다.

       

       조금의 저항도 없이 박혀 들어간 검의 감촉은… 끔찍했다.

       물컹하고 뜨거운 무언가를, 무고한 이를 베는 그 감촉이라니.

       

       짧게 파르르 떨던 희생양은, 이내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다.

       

       꽁꽁 언 땅을 부숴가며 희생양을 묻은 뒤, 전사들은 오래도록 묵념했다. 

       부디 이 가여운 영혼을 신께서 보살피기를. 평화롭고 고요한 곳에서 쉬며, 평온을 되찾기를.

       

       “어서 가지.”

       

       “네…”

       

       쿠구구ㅡ

       

       커다란 바위로 동굴의 입구를 막은 한스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선다.

       

       아직도 손에는 희생양을 가를 때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기분 탓인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향해 작게 속삭이는 실바람의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인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 이에게 고맙다니. 그간 받아왔던 고통을 짐작도 할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올려다본다. 

       

       어쩌면 정상에 악마가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있어야 한다.

       

       꽈악.

       

       롱소드를 강하게 움켜쥔다. 손에는 그 뜨겁고 부드러운 감촉이 뚜렷했다.

       

       한스는 직감했다.

       자신은 오래도록 이 감촉을 기억할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의 의무를 되새기겠지.

       

       역시.

       악마는 모두 죽어야 한다.

       

       

       

       

       

       *****

       

       

       

       

       

       화면에서 어두운 동굴이 보인다. 어둡다고는 하지만 무언가를 보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덕분에 밧줄로 단단히 묶인 케이건의 모습도 선명하게 보였다.

       

       – “내 보■무울!! 아아•악! 보물보€물보물$!!”

       

       살이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저렇게 추악하게 몸부림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인것 같은데.

       

       – “으아아▪︎아악!! 도둑 새£끼들! 내, 내 보물□을 돌려줘!! 아아악ㅡ!”

       

       전기 맞은 돼지 멱따는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온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귀가 쩌릿쩌릿할 지경.

       

       녀석을 보는 나의 시선이 점점 서늘해진다.

       

       애초부터 따뜻한 시선이 아니기는 했지만,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지하를 향해 내려가는 중이다.

       

       동굴 깊숙한 곳에 묶여 발버둥 치는 돼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새끼 이거 안 되겠는데?”

       

       자꾸 벼락 마렵게 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꿍스꿍스~

    – ‘신선우’님!!! 다가오는 주말처럼 반갑고 힘이 되는 후원!! 감사합니다!!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작가인 저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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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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