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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1

       

       

       

       

       

       181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5 )

       

       

       

       

       

       “음?”

       

       앞서가던 한스가 의아한 물음과 함께 뒤를 돌아봤다.

       

       하늘이 보우하심인지 다행히 맑게 갠 정상의 날씨. 약간의 구름이 하늘에 보였지만, 그간 몰아치던 눈보라는 말끔하게 가셨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찰대는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한스가 걸음을 멈춘 것이다.

       

       선두가 멈추자 뒤따라오던 이들도 줄줄이 멈췄다. 희박한 공기 때문에 헉헉거리며 따라오던 전사가 한스를 바라봤다.

       

       “후ㅡ 후우… 뭐요? 뒤에 뭐라도 보이나?”

       

       “아, 아뇨. 뭔가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아서요.”

       

       사내의 고함과도 비슷한 것이 들린 것 같았는데, 그저 바람 소리였던 모양. 애초에 이 정도 높이의 산에 그들을 제외한 누군가 있을 리 만무했다.

       

       “거의 다 왔구만. 이제 저 봉우리만 넘어서면 정상이네.”

       

       “정말 코 앞이네요. 봉우리 말고 다른 건 없나요?”

       

       “없네. 이젠 정말 저 봉우리만 넘으면 돼.”

       

       저 멀리 보이던 만년설은 이제 거대한 자태를 뽐내며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당장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거리다.

       

       멈춘 김에 가볍게 숨을 고르며 상황을 정리했다. 이 봉우리만 넘어서면 곧장 산의 정상이다.

       

       악마와 계약한 케이건을 발견한 이상, 산의 정상에는 높은 확률로 악마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한스는 그 점을 강조하며 전사들의 긴장을 일깨웠다.

       

       “다들 마지막까지 정신 바짝 차리고, 항상 경계를 늦추면 안 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악마가 정상에 있을 수도 있는 거예요.”

       

       “맞는 말입니다. 항상 최악을 염두하고 움직여야 하죠. 악마는 항상 자신의 계약자 근처를 맴돌기 마련. 분명 정상에 둥지를 틀었을 겁니다.”

       

       “거, 성기사 양반. 아까 말한 악마의 기운? 구린내? 뭐 그런 건 안 느껴지나?”

       

       “당장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네요. 모종의 방법을 써서 감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기사가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악마가 자신의 기운을 이 정도로 능숙하게 감춘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신호다.

       

       인간으로 치면 자신의 미약한 체취까지 완벽한 무향으로 숨기는 것과 비슷했으니, 여러모로 까다로운 녀석일 것이다.

       

       뽀득ㅡ 뽀드득ㅡ

       

       한 차례 주의를 다진 정찰대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경사진 봉우리를 힘겹게 기어올랐다.

       

       “허억ㅡ! 후으…!”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봉우리 꼭대기 근처의 평평한 바위에 털썩 몸을 눕히는 전사들. 저마다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공기 중에는 산소가 거의 없어 물속에서 숨을 쉬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유일하게 멀쩡한 것은 고산에 익숙한 사냥꾼, 단 하나.

       

       하여 자연스럽게 정찰은 사냥꾼의 몫이 되었다. 애초에 사냥꾼이 척후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니, 달리 선택이 없었다.

       

       “다들 여기서 쉬고 있으시게. 내가 앞을 보고 오겠네.”

       

       “후읍… 허윽ㅡ 호, 혼자서는 위험… 합니다.”

       

       한스가 이마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두통이 가시지 않는지 표정은 잔뜩 찡그린 채였다.

       

       “후우ㅡ 후으ㅡ 맞아요. 여기서는, 아, 악마가 있을지도 모르니… 같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바닥에 몸을 누인 성기사도 한스의 말에 동조했다. 과연 일리 있는 말이다. 정찰을 위해 활을 고쳐 들었던 사냥꾼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구먼. 그럼 다들 편하게 쉬시게. 내가 저 봉우리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겠네.”

       

       사냥꾼의 배려 아래에, 전사들은 눈밭에 몸을 파묻은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콰아앙ㅡ!

       

       갑작스러운 폭음이 설산에 울려 퍼졌다. 우렛소리처럼 퍼져나가는 굉음에 전사들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다들 일어나게! 어서!”

       

       봉우리 위에 위치한 사냥꾼의 다급한 재촉.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노련한 사냥꾼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부,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소리가 들리더니! 저, 저 녀석들이!”

       

       전사들이 재빨리 움직이며 무기를 손에 고쳐 잡았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눈가에 서린 것은 적의와 투쟁심. 특히나 신실한 성기사의 눈에는 은은한 살기마저 흘러내리는 듯했다.

       

       빠른 걸음으로 봉우리를 넘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만년설과 만년설의 아래에서 불길한 핏빛으로 일렁이는 불꽃들.

       

       만년설은 어찌나 거대한지 산과 하늘을 나누는 성벽의 형태였고, 불꽃은 혀를 낼름거리며 쉼 없이 만년설을 갉아먹고 있었다.

       

       쩍! 쩌저적ㅡ!

       

       불꽃들이 요사스럽게 흔들릴 때마다 거대한 돌 울림이 들려온다. 까마득한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다.

       

       녹아내린 만년설이 천천히 쏟아져 내린다.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쓸고 내려가며 산의 아래로 떨어진다.

       

       거대한 눈사태가 산의 아래를 덮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저, 저게 도대체 뭐야?”

       

       “허어…”

       

       설상가상으로 봉우리의 아래로 보이는 것은 설원을 까맣게 메우고 있는 무수한 수의 악마들.

       

       저마다 추악한 형태를 자랑하는 악마들이 저들끼리 싸우고 잡아먹으며 빽빽하게 모여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 수는 최소 천 이상.

       

       성기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대번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한 것이다.

       

       “이건 좋지 않군요.”

       

       사방에 더럽고 지독한 악마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리고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거대하고 사악한 단 하나의 기운.

       

       “저 앞에 강력한 악마가 있습니다. 아마 대악마인 것 같은데…”

       

       이쯤 되면 마수의 산에 지옥문이 열린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전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년설을 녹이는 검붉은 불꽃과 정상에 숨어있는 천 단위의 악마 군단 그리고 대악마.

       

       고작 여덟의 전사들로 어떻게 해보기에는 적이 너무 많았다.

       

       “… 물러나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네.”

       

       사냥꾼이 침통한 표정으로 씹어먹듯 말했다. 여덟의 전사들로 천 단위의 악마 군단에 돌격한다?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짓이다.

       

       어떻게든 악마들을 모두 무찔렀다고 치면, 그 다음에 눈사태는? 대악마도 바보가 아닌 이상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젠장…”

       

       “한스 님, 여기서는 물러나야 할 때입니다.”

       

       한스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의 손으로 숨을 끊었던 희생양의 감촉이 계속해서 아른거렸다. 눈에서 미련이 뚝뚝 떨어진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모든 일의 원흉을 코 앞에 두고 이렇게 허무하게? 정녕 이것이 최선인가? 차라리, 차라리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는 편이ㅡ

       

       나머지 전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봉우리에서 내려갔다. 

       

       오직 한스만이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본 성기사가 빠른 걸음으로 한스에게 다가왔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만이 가득하던 성기사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한스 님.”

       

       “…”

       

       “이 꽉 무십시오.”

       

       “… 예?”

       

       뻐억ㅡ! 

       

       성기사의 주먹이 한스의 얼굴을 강타했다. 순간 붕 떠서 눈밭을 나뒹구는 한스.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름 아닌 성기사가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에 넋이 나간 듯 어벙하게 주저앉은 채였다.

       

       파악ㅡ!

       

       성기사가 주저앉은 한스의 멱살을 잡아끌며 낮게 소리쳤다. 성기사의 눈동자에는 뜨거운 분노가 이글거렸다. 한스를 향한 분노가 아니다.

       

       “우린 여기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신만 여기서 돌아가는 게 분한 것 같아요? 우리가 겁쟁이에 머저리라서 도망치는 겁니까?”

       

       성기사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악마 새끼들이 떼거리로 모여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잖아! 저 빌어먹을 만년설을 녹여서 눈사태를 일으키려고 한다고! 정신 차려!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그다음에는? 누가 이 사실을 알려서 사람들을 대피시킬 건데!”

       

       한스가 멍하니 성기사를 올려다봤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악마를 눈앞에 두고 돌아가야 하는 이 상황에, 그리고 도망치듯 내빼야 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죽으면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죽어! 우리만 죽는다고 끝이 아니란 말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던 성기사가 한참이나 호흡을 고르더니, 씹어먹듯 말을 뱉었다.

       

       “후우… 나라고 당신의 기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용기와 만용은 구분해야 합니다.”

       

       용기와 만용의 차이.

       

       한스가 천천히 성기사의 말을 곱씹었다.

       

       산골 마을에서 홀로 악마와 맞서기로 결심했을 때와 지금 악마 군단의 앞에서 도망치는 것.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용기는 무엇이고, 만용은 무엇일까. 

       

       여섯 번째 신의 사도 한스와 평범한 농부 한스의 차이는 뭐였을까.

       

       ‘나는…’

       

       무언가 가늘게 손가락에 잡힐 듯했다. 얇은 실이 손가락 끝을 희롱하는 느낌.

       

       정신이 조금씩 몽롱해진다. 몸이 붕 뜨면서 어디론가 향하는 감각이다. 마치, 마치 한 차원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이 부유감.

       

       “이, 이런 미친! 이런 때에 갑자ㅡ…!”

       

       당황한 성기사의 음성이 점차 멀어진다. 온몸이 물에 감싸인 듯 먹먹하게 일렁이며 주변의 소음이 들려왔다.

       

       영혼 깊은 곳에서 고양감이 솟아오른다.

       

       용기와 만용의 차이. 적을 앞에 두고 당당하게 맞서는 때와 물러설 줄 아는 것의 차이.

       

       손에 잡히는 실타래가 점점 굵어진다. 머리가 맑게 개며 무언가 뚜렷하지만,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아 간다.

       

       부그르르ㅡ

       

       물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앞으로 한 걸음. 아니, 반걸음만 더 가면 무언가 손에 잡힐 것 같다.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빛, 아니 저건 바다인가? 저것에 자신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한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가물거리며 희미한 이름이 떠오른다. 너무나 여리고 신기루 같아서 당장이라도 흐려질 것 같은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본다.

       

       “…ㅇ”

       

       쿠우웅ㅡ!

       

       바다에게 이름을 붙이기 직전.

       

       묵직한 충격과 함께, 드높은 어딘가를 거닐던 한스의 의식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흐읍ㅡ!”

       

       《이런이런. 집 앞까지 온 손님들을 빈손으로 보낼 수야 없지.》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상실감.

       

       거의 다 왔는데. 반걸음, 아니 반의 반걸음도 남지 않았는데.

       

       희미하게 일렁이던 이름은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무얼 봤는지도 뇌리에서 사라져간다.

       

       “이런 젠장! 한스 님, 일어나세요! 당장!”

       

       거대한 박탈감에 휩싸일 틈도 없이 성기사의 다급한 외침을 따라 몸을 일으킨 한스. 그제야 땅을 울린 충격의 원흉이 눈에 들어왔다.

       

       설원을 밟고 당당히 일어선 네 개의 다리와 검은색의 날카로운 발톱. 검붉은 빛의 비늘이 빼곡하게 햇빛을 따라 빛나고, 파충류 특유의 길게 찢어진 눈에는 탐욕과 살의가 일렁인다.

       

       부웅ㅡ 쾅!

       

       가볍게 휘둘러진 꼬리가 궤적을 그리며 위협적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땅이 쩍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쓰읍ㅡ 하아! 역겨운 냄새가 아주 진동하는군. 너희들, ■의 엉덩이나 핥는 녀석들이구나.》

       

       

       용의 형상이다.

       

       허나 용이 아니다.

       

       저것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 뿐.

       

       “여섯 신 맙소사, 대악마라니. 이런 젠장!”

       

       “… 죄송합니다.”

       

       성기사가 속사포처럼 기도문을 읊으며 중얼거렸다. 전부 미적거린 자신의 탓임을 아는 한스가 나지막하게 사과했다.

       

       “후우ㅡ 아닙니다. 한스 님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어차피 저 녀석은 우리가 온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막대한 기운이 피부를 쩌릿하게 찔러온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이 검붉은 용이, 모든 일의 원흉임을.

       

       《그래. 서로 대화는 끝났나? 그럼 이제 내가 말해도 되겠지?》

       

       용의 형상을 한 악마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잔혹한 웃음이다. 

       

       《어떻게 죽고 싶은가?》

       

       악마가 물었다.

       

       그리고.

       

       파앗ㅡ!

       

       성기사와 한스는 악마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를 엉덩이춤 추게 만듭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악마는 과연 어떻게 될 것 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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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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