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83

       

       

       

       

       

       183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7 )

       

       

       

       

       

       또각또각 먼지를 헤치고 걸어 나온 유니콘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수의 자태였다.

       

       고고하게 갈기를 휘날리던 유니콘은 한스를 발견하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찌나 급했는지 치이익ㅡ하고 연기를 뿜는 악마의 피를 그대로 밟았다.

       

       《주인이여!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으아악! 맙소사, 발에 더러운 게 묻었잖아!》

       

       “음…”

       

       한스의 주변을 동동 뛰어다니다가, 까만 피가 묻었다고 기겁하면서 눈에 박박 문지르는 꼴이라니. 잠깐이지만 유니콘의 자태에 감탄했던 한스와 성기사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분명 눈앞에서 혜성처럼 내려와 악마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을 봤는데… 어쩌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깨방정이다.

       

       화륵!

       

       《크륵ㅡ… 너는 또 뭐 하는 녀석이냐.》

       

       바닥에 쓰러졌던 악마가 몸을 일으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유니콘과 부딪힌 부분은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서 텅 빈 모습이었는데, 상처 부위에서 검붉은 불꽃이 일렁이며 점차 머리의 형상을 갖춰갔다.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것에 화가 잔뜩 났는지, 거친 숨결 사이로 불길이 뿜어져 나온다.

       

       앞발에 묻은 까만 피를 닦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던 유니콘은 곧장 한스와 성기사의 앞에 서서 악마를 막아섰다.

       

       《하! 더러운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이 더러운 악의 종자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진흙 발로 돌아다니는가! 당장 네가 있던 벌레 소굴로 돌아가라!》

       

       《… 말? 아니지, 말이 아니군. 뭐지?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의 종자가 맞는데, 처음 보는 녀석이구나.》

       

       《위대하신 분은 감히 너 따위가 가볍게 입에 담아도 될 분이 아니시다!》

       

       히히힝ㅡ!

       

       한 차례 앞다리를 높이 들어 올린 유니콘이 한 자루의 창처럼 뿔을 앞세워 달렸다. 걸음마다 놀라울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더니, 이윽고 바람처럼 내달렸다.

       

       콰ㅡ앙!

       

       《크으읍!》

       

       폭풍 속의 벼락처럼 달려간 유니콘이 악마의 몸통에 뿔을 깊숙이 찔러 박았다. 묵직한 소음이 순간 충격파를 그리며 퍼졌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악마가 신음을 토했지만, 유니콘은 혀를 차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아예 관통해버릴 생각으로 달려들었는데 아까보다 몸이 조금 더 튼튼했다. 꼴에 대악마라고, 한 번 당한 공격에 또 당하지는 않을 모양.

       

       《주인과 거기 남자! 어서 피하게! 도망치란 말이야!》

       

       유니콘의 랜스 차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한스와 성기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런데 산의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왜 이쪽으로 오는 건가! 도망치라 하였는데!》

       

       다름 아닌 유니콘의 곁에 딱 붙어서 검을 겨누는 한스와 성기사.

       

       유니콘이 산의 정상까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초의 일격으로 악마에게 충분히 유의미한 피해를 줬다.

       

       그렇다면 이 싸움, 해볼 만하지 않을까?

       

       “가긴 어딜 가! 여기서 저 새끼 죽이고 내려가야지!”

       

       “맞습니다. 저희 둘이었다면 역부족이지만… 신수께서 함께 하신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군요!”

       

       《이히힝!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러다 주인이 죽기라도 하면ㅡ》

       

       뿌득ㅡ! 뿌드득!

       

       유니콘의 뒷말은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에 삼켜졌다. 부들거리며 몸을 떠는 악마의 몸이 울룩불룩 부풀어 올랐다.

       

       이내 촤악ㅡ! 하고 가죽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잘린 발이 다시 자라났다. 한스가 잘라내기 전보다 더욱 튼튼하고 예리한 발톱이 돋보였다.

       

       《크아아ㅡ!! 바보 같은 촌극은 여기까지다! 너희 모두 갈가리 찢어서 죽여주마!》

       

       콰앙!

       

       악마의 포효와 함께 만년설의 방향에서 커다란 불기둥이 올라왔다. 끊임없이 얼음을 갉아먹던 불꽃들이 일제히 몸을 부풀리며 기둥의 형상이 된 것이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에서 더욱 높이 올라간 불기둥은 구름의 끝을 불사르며 드높게 타올랐다. 커진 불기둥은 더욱 맹렬하게 만년설을 녹였다.

       

       쩍ㅡ! 쩌저적! 쿠웅!

       

       성벽처럼 굳건하던 만년설에 커다란 금이 그어졌다. 삐뚤빼뚤하게 그어진 선이 이리저리 퍼져나가며 만년설을 덮어간다.

       

       땅거미 지듯 퍼져나간 균열은, 만년설을 일제히 아래로 내몰았다. 

       

       쿠구구구ㅡ

       

       눈이 쏟아진다. 산의 일부가 무너지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런 미친!”

       

       만년설에서 시작된 눈사태는 빠르게 몸을 부풀리며 쏟아졌다.

       저기에 휩쓸리면 시체조차 온건하게 찾지 못할 게 분명하다.

       

       《크르르ㅡ!》

       

       짧게 으르렁거리던 악마가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유니콘이 등을 내밀며 다급하게 외쳤다. 저걸 달려서 피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늘로 피해야 했다.

       

       《어서 타게! 어서!》

       

       평소 남자라면 절대로 만지지 못하게 했을 유니콘이지만, 그도 상황 파악이라는 것을 할 줄 알았다.

       당장 전부 죽게 생겼는데 그딴 거 따지게 생겼는가!

       

       따각ㅡ 따그닥!

       

       성인 남성 두 명이 올라탔음에도 끄떡 없이 걸음을 옮긴 유니콘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유니콘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새하얀 눈의 파도가 바로 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휴, 후우…”

       

       “저 미친 새끼가 진짜!”

       

       성기사는 아슬아슬했다며 식은땀을 흘렸고, 한스는 기어코 미친 짓거리를 벌인 악마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한스의 욕설에 악마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크르르ㅡ. 그대들이 무사히 눈사태를 피했다고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건가? 응? 동료들이 아직 산을 전부 내려가지 못했을 텐데?》

       

       “이, 이런!”

       

       여섯 명의 전사들이 아직 산에서 내려가는 중이다. 그리고 눈사태는 전사들의 발보다 훨씬 빠르게 달리며 산의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한스가 한쪽을 가리키며 유니콘에게 지시했다.

       

       

       “유니콘! 저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사람 여섯 명이 있어! 그 사람들을 구해야 돼!”

       

       《히힝ㅡ! 맡겨주시게!》

       

       힘차게 울부짖은 유니콘이 한 자루의 섬광이 되어 하늘을 내달리려 할 때, 악마가 날개를 펄럭이며 끼어들었다.

       

       《이런이런! 설마 내가 순순히 보내줄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하하하! 참 순진한 생각이군.》

       

       화륵! 화르르륵!

       

       허공에 커다란 불덩이가 여럿 피어오른다. 지옥의 불길이다. 동시에 공기가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폐부를 찌르며 익혀간다.

       

       “이런…! 여기서는 피하기도 마땅치 않은데!”

       

       낭패였다. 하늘로 날아오른 이상 한스와 성기사는 유니콘의 등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땅에서는 아직도 눈사태가 몰아치고 있다.

       

       화륵! 콰앙ㅡ!

       

       하늘을 가득 채운 불덩이가 일제히 유니콘을 향해 날아온다. 하나하나가 태양처럼 뜨거운 구체다. 유니콘이 신들린 움직임으로 피해내고 있지만, 불덩이의 열기는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익어가는 고통을 선사했다.

       

       《푸히힝! 더러운 악마 새끼가 생긴 것처럼 싸우는구나!》

       

       《하하. 적한테 그런 칭찬을 듣는 건 만큼 보람찬 일이 없지!》

       

       열기에 폐와 안구가 익어간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 할 수 있을까?’

       

       입술을 깨문 한스가 유니콘에게 속삭였다.

       

       “시간을 조금만 끌어봐. 나한테 수가 있어.”

       

       《푸륵ㅡ! 얼마나 필요한 것이오?!》

       

       꽁무니를 따라오는 불덩이를 피해 달리는 유니콘이 외쳤다. 유니콘의 꼬리에는 불이 붙어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감각을 헤아렸다. 방금 악마의 팔을 자르면서 이름 모를 바다의 감각이 많이 옅어졌다.

       

       수련과 명상을 통한다면 다시금 뚜렷해질 수도 있지만, 당장 이 감각을 붙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 조금 오래 걸릴 거야.”

       

       《당장 시작하시오! 당장! 푸히힝!》

       

       불붙은 망아지가 되어 재촉하는 유니콘. 촐싹 맞은 외침과는 달리, 유니콘은 불덩이를 피하며 계속해서 산의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악마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동시에, 여섯 명의 전사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후우ㅡ”

       

       한스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의식이 깊게 가라앉는다. 몸은 유니콘의 등에 있되, 정신은 상승한다. 동시에 가라앉는다.

       

       모순적이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벌레처럼 이리저리 잘도 피하는구나! 크르르르! 그만 좀 죽어라!》

       

       촤하악!

       

       슬슬 짜증이 몰려오는지 악마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팔을 휘둘렀다. 이글거리는 불이 길게 늘어지며 채찍처럼 허공을 때렸다.

       

       그런 것이 하나가 아니었다.

       

       검, 창, 채찍, 화살, 구체, 뱀, 해골…

       

       콰앙ㅡ!

       

       눈사태를 뚫고 곳곳에서 거대한 불의 기둥이 솟구친다. 하늘을 달리는 유니콘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불로 이루어진 온갖 것들이 유니콘의 숨통을 노리며 달려든다. 모든 공간을 점유하며 쏟아지는 악마의 공격.

       

       유니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전부 피할 수 없다면ㅡ!》

       

       몸으로 때우면 그만이다. 

       

       유니콘은 자신의 튼튼한 몸을 믿었다. 이래 봬도 위대하신 분의 벼락을 수 차례나 견뎠던 몸이다. 겨우 악마의 불꽃에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자신감이 있었다.

       

       “으어어아, 으아악!!”

       

       등 뒤에 올라탄 성기사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유니콘은 제 몸통을 들이밀며 최대한 성기사와 한스를 보호했다.

       

       콰앙ㅡ!

       

       요란한 폭음. 불꽃에 얻어맞은 유니콘이 가볍게 비틀거렸지만, 큰 상처는 없었다.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그의 육체가 견뎌낸 것이다.

       

       

       쾅! 콰앙! 콰콰쾅!

       

       점점 피할 수 없는 공격들이 늘어난다. 몸으로 버티는 공격들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새하얀 유니콘의 몸에 타들어 간 흔적이 늘어갔다.

       

       《푸륵! 주인! 도대체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 거요!》

       

       점점 지독해지는 악마의 공격에 유니콘이 울상을 지었다. 한참이나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멀었단 말인가?

       

       “거의 다 됐어.”

       

       감각을 날카롭게 벼린다. 숫돌로 검의 날을 세우듯, 정신과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다. 

       

       그럴수록 바다의 감각이 뚜렷해졌다. 쏴아ㅡ하고 밀려오는 바다의 소리가 들려온다. 머릿속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지금이에요.”

       

       여인의 속삭임이 한스의 귓가에 들려왔다. 번쩍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바로 지금이다.

       

       “… 달려!”

       

       《이히히힝ㅡ!》

       

       목을 길게 빼고 크게 운 유니콘이 방향을 꺾어 악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주 오는 불꽃들은 모조리 몸으로 버틴다.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쏘아진 화살처럼 날다가, 바람이 되어 달렸고 이윽고 한 줄기의 섬광이 되어 하늘을 내달렸다.

       

       파아앗!

       

       롱소드에서 두 개의 룬이 빛을 내뿜었다. 

       

       용기의 룬이 맥박치며 힘을 북돋았고, 속도의 룬이 맹렬하게 공기를 내뿜으며 속도를 더했다. 

       쾅ㅡ! 하는 소리와 함께 유니콘의 몸이 떠밀리듯 가속됐다. 쭈욱 당기는 것처럼 악마와 거리가 좁혀졌고ㅡ

       

       “하아압ㅡ!”

       

       거칠게 떨리는 검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저 느낌이 이끄는 대로 휘둘렀다.

       

       한 번의 휘두름에 담은 것은, 희생양의 온기.

       

       촤악ㅡ!

       

       벴다. 

       

       손끝에 걸리는 느낌으로 확신한 한스가 그제야 몸에 힘을 쭉 풀었다. 한계를 넘어선 정신과 감각의 집중에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크하아아악!!》

       

       악마의 짧은 단말마가 들린다. 

       

       … 해치운 걸까?

       

       점점 정신이 가라앉는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비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챙ㅡ하고 누군가의 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ㅡ

       

       《…인! 주ㅡ…! 정신ㅡ…!》

       

       “저쪽에ㅡ…!! … 전사들이ㅡ!! ㅡ … 성으로ㅡ…!!”

        

       쿠구구구구ㅡ

       

       아득하게 들려오는 외침과 눈사태의 발소리를 들으며, 한스는 무의식의 저편으로 추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Thank you 하다.

    And I Also, 댓글과 추천은 굉장히 Daisuki.

    – ‘신선우’님!!! 당신의 후원, 진심으로 appreciate를 표하다. I love 당신, 굉장히. Virgin 애호가 unicorn의 활약, deep 인상을 남기다. Reader들의 관심과 응원, always 맛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