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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4

       

       

       

       

       

       184화. 마수의 산, 그 정상으로 ( 8 )

       

       

       

       

       

       유니콘이 마구간을 부수고 마수의 산으로 날아간 이후, 공작가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연한 것이다.

       평소 행실이 가볍고 성희롱을 일삼는 유니콘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신이 직접 창조한 신수라는 명백한 사실.

       

       졸지에 신수를 마구간에 모셨던 마구간지기는 얼굴이 시커멓게 죽은 채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유니콘이 왜 마구간에서 탈출했냐고 책임을 따진다면, 아무래도 마구간지기인 그의 관리 소홀이 가장 크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난 망했네 망했어.”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가장 좋은 여물로 주고, 제일 따뜻한 자리를 주었거늘. 결국 유니콘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가 폭발한 모양이다.

       

       애초에 신수를 왜 마구간에 지내도록 했단 말인가. 신수라면 응당 따뜻한 실내에서 머물러야 할 텐데.

       

       집사장도 사색이 되어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마구간지기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성기사들과 전사들도 한바탕 바쁘게 오가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지금까지 얌전히 잘 지내던 유니콘이 갑자기 왜 가출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또 어디로 향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신수님! 신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곳이 어디냐?!”

       

       “저잣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문에는 마수의 산 쪽으로ㅡ…”

       

       “가출인가? 아니면 단순히 산책? 아무튼 유니콘은 신께서 만드신 신수이니 다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모두ㅡ…”

       

       “전사들을 모아! 당장 마수의 산으로 향한다! 빨리 움직여!”

       

       그야말로 공작가의 모든 인원이 불붙은 토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병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참 내. 그 변태 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아하하… 유니콘의 평소 행동이 좀 그런 것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수인데…”

       

       “길거리에서 대뜸 처녀냐고 묻는 망아지가?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딴 게 신수?”

       

       “하하…”

       

       프리가의 투덜거림에 케니스는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프리가의 말에 틀린 구석은 없었다.

       

       “천박한 말 때문에 이 많은 인원이 고생하다니. 인간들도 참 이상하네.”

       

       뾰족한 귀를 드러낸 에스텔이 중얼거렸다.

       

       고대 다섯 종족의 일원, 엘프인 에스텔의 입장은 원정대에서도 참 특이한 위치였다. 손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특별했고, 원정대의 일원이라고 하기에는 붕 뜨는 감이 있었으니까.

       

       하여 유니콘의 소동과 관련하여 그녀에게 별다른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 에스텔의 자발적인 요청으로 이 자리에 위치했다.

       추위 때문에 방 안에만 박혀있으려니까 좀이 쑤셨던 걸까.

       

       급하게 소집된 전사와 성기사들이 얼추 모여갈 때쯤. 루샨 공작의 배려로 앞에 나선 케니스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흠, 크흠! 여러분! 저희들의 목표는 마수의 산으로 날아간 유니콘의 행방에 대한 탐색입니다! 우선 구역을 나누어서ㅡ”

       

       콰아아앙ㅡ!

       

       거대한 폭음이 지천에 울려 퍼진다.

       

       마수의 산꼭대기 방향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여럿 일어나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있다면 저렇지 않을까?

       

       “저건…!”

       

       “악마, 악마다!”

       

       물론 저 불기둥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악마의 것이었기에, 성기사와 케니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곧장 무기를 꺼내 들고 높게 솟아오른 불기둥을 향해 적의를 불태웠다.

       

       저것이다.

       

       마수의 산 정상에 부근에 악마가 숨어있다.

       

       “당장 출정하겠습니다!!”

       

       케니스가 불기둥을 노려보며 크게 외쳤다.

       

       악마 토벌의 시간이었다.

       

       

       

       *****

       

       

       

       원정대는 빠르게 토벌 준비를 갖춰 나갔다.

       

       제일 중요한 과제는 마수의 산에 올라간 전사들의 무사 귀환, 그리고 악마 토벌. 가장 나중으로 밀린 것이 유니콘의 귀환.

       

       애초에 유니콘 그 자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벼락도 여러 차례나 견디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원정대는 유니콘을 다소 뒷순위로 배치했다.

       

       ‘한스 님…’

       

       신검을 쓰다듬으며 케니스가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마수의 산에 악마가 나타났다. 느껴지는 기운은 최소 대악마 급의 존재.

       

       계시를 받아 산의 정상으로 향한 전사들의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에게 마지막까지 냉랭하게 굴었던 것이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찔렀다. 만약 살아 있다면… 아니, 분명 살아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고개를 털어 밀어냈다.

       

       한스도 어디 가서 쉽게 당할 인물은 아니다. 분명 살아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난다면… 쌀쌀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것이다.

       

       찔끔 흘러나온 눈물 한 방울을 찍어 닦은 케니스가 모든 무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성기사와 제국의 기사, 북부의 전사들은 이미 한곳으로 모여 출정 준비를 끝냈다. 시퍼렇게 날이 솟은 무기는 적의 피를 갈망하였고, 전사들의 눈에는 한치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선포된 원정이다. 악마를 토벌하기 위하여 정예 중의 정예들이 모인 것이니, 감히 두려움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 출정하겠습니다.”

       

       긴말은 필요 없다. 그 어떤 화려한 연설도, 사기를 북돋는 문장도 없었다.

       

       그들이 선두에 용사가 있고, 저 앞에 악마가 있었으니. 그들에게 약속된 것은 오직 승리뿐이라.

       

       다그닥! 다그닥!

       

       표정을 굳힌 원정대가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하늘에서.

       

       “음? 이건… 말발굽?”

       

       청각이 남다르게 예민한 에스텔이 가장 먼서 말발굽 소리를 들었고, 뒤이어 케니스와 프리가, 이스칼이 고개를 들었다.

       

       푸히히힝ㅡ!

       

       하늘을 가로지르며 혜성처럼 달리는 유니콘이 보였다. 그런데 유니콘의 등에는 사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여덟 명이었다.

       

       《푸르륵! 푸륵ㅡ! 아! 처녀여! 처녀여!》

       

       원정대를 발견한 유니콘이 방향을 틀어 원정대를 향해 다가왔다. 가까워질수록 등에 매달린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는데, 앞서 계시를 받고 마수의 산에 오르던 전사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한스의 모습도 보였다.

       

       “꺄아악! 한스!”

       

       새된 비명을 지른 케니스가 부리나케 달려들어서 한스의 안색을 살폈다.

       

       축 늘어진 모양새가 누가 봐도 기절한 이의 것이었는데, 몸 곳곳에 그을음과 탄내가 나는 것을 빼면 큰 외상은 없어 보였다.

       

       “한스 님! 한스 님! 정신 차려요! 한스!”

       

       “우음… 으…”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ㅡ 아니지. 악마와 만났군요? 맞죠!”

       

       “…”

       

       힘없는 신음을 흘리는 한스. 케니스의 애탄 부름에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유니콘이 다소 섭섭한 말투로 웅얼거렸다.

       

       《아니, 그 처녀여… 누가봐도 주인보다 내가 더 많이 다쳤는데…》

       

       “아. 무사하셨네요 유니콘 님. 다행이에요.”

       

       《그걸로 끝이오?!》

       

       시무룩해진 유니콘을 뒤로하고, 성기사와 기사들이 달려들어 유니콘의 몸에 늘어져 있는 전사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다들 큰 외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정신이 극한까지 내몰렸는지 똑바로 말을 못 하고 횡설수설했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상대는 성기사와 사냥꾼, 단 둘뿐.

       

       “도망, 도망쳐! 당장 여기서 도망쳐야 해!”

       

       사냥꾼이 벌벌 떨며 크게 외쳤다. 도망치라니? 설마 악마를 말하는 걸까?

       

       “어르신, 그게 무슨 말이세요. 도망치라뇨? 악마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ㅡ”

       

       “악마, 악마! 그 씹어먹을 똥 버러지 같은 새끼가 미친 짓을 저질렀단 말이야! 여기 있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다고!”

       

       종말을 본 예언자처럼 외치는 사냥꾼. 손발을 벌벌 떨며 중얼거렸다.

       

       “악마… 그 새끼가 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을 무너뜨렸어! 눈사태가! 눈사태가 이곳을 덮칠 거야! 당장 도망쳐야 해!”

       

       “그게 무슨…?”

       

       케니스와 프리가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눈사태? 만년설을 무너뜨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잠시 멍하니 눈을 마주치다가, 케니스가 휙- 고개를 틀어 산의 정상을 바라봤다.

       

       ‘설마 아까의 불기둥이!’

       

       만년설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작이었단 말인가.

       

       의식하고 바라보니 이전보다 만년설이 확연하게 낮아진 것이 보였다. 거리에 따라서 작게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안 되는 양의 눈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케니스가 찢어지게 외쳤다.

       

       “성으로! 성으로 돌아갑니다! 당장 도망쳐요!”

       

       “안 돼 케니스. 성으로는 안 돼. 저 만년설이 무너져서 눈사태가 일어났다면, 성벽도 버티지 못해.”

       

       프리가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북부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눈사태의 위험과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악마가 만년설을 통째로 무너뜨렸다면, 몬테그라스의 튼튼한 성벽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런…”

       

       그렇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몬테그라스를 버리고 더 멀리 도망쳐야 해. 그것 말고는 없어.”

       

       프리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는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고 자란 고향을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심정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공녀님.”

       

       이스칼이 조심스럽게 프리가의 어깨를 감쌌다. 유독 프리가의 어깨가 왜소하게 보였던 까닭이다.

       

       프리가도 이스칼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 시간이 없어. 눈사태는 너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거야. 당장 돌아가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최대한 뒤로 물러나야 해.”

       

       몬테그라스의 하나뿐인 공녀에게서 고해지는 선언.

       

       “몬테그라스는ㅡ”

       

       눈사태를 막지 못한다면.

       아니, 눈사태의 범위에서 도망치지 못한다면.

       

       “전부 끝이야.”

       

       

       

       

       

       *****

       

       

       

       

       

       쏴아아ㅡ

       

       잠잠하던 영혼의 바다가 파도친다. 제 주인이 돌아왔음을 아는 것이다.

       

       케넬름은 조심스럽게 위대하신 분의 머리를 허벅지에 올렸다. 허벅지 위로 느껴지는 약간의 묵직함이 그녀에게도 기분 좋은 눌림을 전해줬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일어나세요.”

       

       “우음…”

       

       감히 흔들어서 깨울 수는 없으니, 조심스럽게 귓가에 속삭였다. 뜨거운 입김이 귓가에 닿자 간지러운지 조금 몸을 뒤틀었지만,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말캉.

       

       “조금만 더…”

       

       “곤란하네요.”

       

       아예 허벅지를 끌어안고 볼을 부비기 시작한다. 케넬름의 미간에 난처함이 가득 찼다.

       

       위대하신 분께서 어떤 기적을 일으켰는지 그녀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지상에는 위대하신 분이 필요했다.

       

       ‘설마 새로운 차원을 만드실 줄은.’

       

       크기는 조금 작지만, 엄연히 다른 법칙으로 지배되는 차원을 만든 것이다. 무리하게 힘을 끌어낸 반동으로 이렇게 앓는 선에서 그친 것이 다행인 수준.

       

       케넬름이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허공에 떠오른 거울은 각각 다른 장면을 비췄다.

       

       산을 뒤엎으며 나아가는 눈사태와 한창 피난길에 오른 몬테그라스의 백성들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꾸물거리는 까만색의 무언가.

       

       “후우ㅡ”

       

       해결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였다.

       

       케넬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은 눈사태부터.

       

       “스읍… 커어ㅡ”

       

       텁!

       

       “흐잇!”

       

       깊은 잠에 빠진 위대하신 분이 몸을 뒤척이다가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당황하여 이리저리 허공을 헤매던 케넬름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사내의 손이다. 여인인 그녀의 손과는 다른, 크고 튼튼한 손.

       

       꿀꺽.

       

       괜히 마른침을 삼킨다. 주변에 다른 이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굳이 주변을 둘러보고 확인한다.

       

       ‘… 시간이 없지만 아주 조금이라면.’

       

       조심조심 손을 뻗어 위대하신 분의 손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핏줄, 거친 감촉, 굳은살…

       

       사내의 손이다.

       위대하신 분도 남성인 것이다.

       

       ‘이게, 남자의 손…’

       

       곱고 여린 자신의 손과는 다르다. 손가락 끝으로 살살 쓰다듬고, 간지럽히다가 용기내어 손가락을 살짝 쥐어본다.

       

       “우음?”

       

       위대하신 분이 살짝 신음을 흘렸다. 화들짝 놀란 케넬름은 재빨리 손을 놓고는 괜히 옷자락에 손을 슥슥 문질렀다.

       

       “어, 으…”

       

       다행히 잠꼬대인 모양.

       

       몰래 안도의 숨을 몰아쉰 케넬름. 찔끔 식은땀마저 흘렸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케넬름이 허리를 숙여 위대하신 분을 향해 속삭였다. 푹신한 가슴이 무언가에 맞닿았다.

       

       “위대하신 분이여.”

       

       “읍, 으읍ㅡ”

       

       낮게 속삭이는 그녀의 숨결이 귓바퀴를 따라 간지럽히며 오싹한 무언가를 선사한다. 알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잠을 깨우고자 하는 것일까.

       

       케넬름은 그저 깊은 잠에 빠진 신을 향해 속삭였다.

       

       “깨어나세요, 위대하신 분이여. 아직 세계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진실로 세계는 신을 필요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언제나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감사합니다!!! Sacred Strike!! 그야말로 신성한 일격! 한스와 유니콘의 합동 공격이라니!!!

    ??? : 쳇, 어쩔 수 없군. 이번만 임시동맹이다.

    ??? : 그런 자잘한건 나중에 얘기하고… 온다!

    ??? : 이거 어쩌면… 꽤나 위험한 조합이 탄생해버린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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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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