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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6

       

       

       

       

       

       186화. 태양을 피한 자들 ( 2 )

       

       

       

       

       

       여린 나뭇가지로 등 언저리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다. 설마 드워프 중에서 누가 장난을 치는 걸까?

       누군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 이베르는 즉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삐이익! … 삑?”

       

       온천을 박차고 날아올랐지만, 주변에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등을 찔렀단 말인가?

       

       쿡- 쿡쿡!

       

       “삐익! 삑, 삐익!”

       

       또 등을 찔렀다!

       

       화들짝 놀란 이베르가 안절부절 못하며 주변을 살폈다. 

       

       위대하신 분은 아니다. 특유의 거대한 존재감과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드워프와 엘프도 아니다. 온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등을 찔렀다는 거지?

       

       “삐이익…”

       

       등골이 오싹하게 시려온 이베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언젠가 드워프들의 맏형, 오푸스 팔락이 먼지 쌓인 책방에서 동화책을 읽어준 것이 떠올랐다.

       

       등에 메고 다니는 커다란 짐 꾸러미에 못된 아이들을 넣어서 잡아간다는, 무시무시한 짐꾼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삐이이이익!”

       

       이베르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짐꾼 할아버지? 설마 짐꾼 할아버지가 이베르를 잡으러 온 것일까?

       

       그래, 짐꾼 할아버지다!

       이베르는 오늘 온천에 들어가기 전, 몸을 깨끗하게 씻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짐꾼 할아버지가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퍼덕퍼덕퍼덕!

       

       “삐익! 삐이익! 삐이이이!”

       

       푸른빛의 비늘이 더욱 파랗게 질린 이베르가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열심히 날아올랐다.

       

       오푸스 팔락이 읽어준 동화의 내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짐꾼 할아버지는 짐 꾸러미에 넣은 아이들을 자신만 아는 동굴 속에 영원히 가둔다고 했다!

       

       여기서 짐꾼 할아버지에게 잡히면, 깊은 어둠 속에 있는 동굴에 갇히고 말 것이다!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쿡- 쿡!

       

       “삐이이익?! 삑, 삐익!”

       

       무작정 날개 향하는 방향으로!

       

       이베르의 등을 찔러오는 짐꾼 할아버지는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등을 쿡쿡 찔렀다.

       어느 순간에는 왼쪽 옆구리를 찔렀고, 갑자기 꼬리 쪽을, 그러다가 오른쪽 뒷다리를 찌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짐꾼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 무시무시함이란!

       

       “삐히이익!! 삐히이이-!!”

       

       등에서 느껴지는 짐꾼 할아버지의 손가락은 매우 가늘었다.

       나뭇가지라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빼빼 말라서 가죽과 뼈만 남은 짐꾼 할아버지일 것이 분명했다.

       

       이베르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부리나케 날개를 움직였다.

       

       오른쪽 다리를 찔리면 본능적으로 왼쪽을 향해 날았고, 꼬리 쪽을 찔리면 행여나 짐꾼 할아버지에게 잡힐까 더욱 열심히 날개를 움직였다.

       

       퍼덕- 퍼덕!

       

       그렇게 이베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한 쪽 방향으로 유도당하고 있었다.

       이베르가 짐꾼 할아버지라고 믿는 존재에 의해, 아주 천천히.

       

       초원 너머, 저 멀리에 위치한 거대한 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끄응-”

       

       케넬름은 허공에 떠오른 거울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거울에 비치는 풍경은 초원을 날고 있는 이베르의 모습.

       이베르는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연신 뒤를 돌아보며 새된 배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있는 케넬름의 행동이 굉장히 특이했다.

       

       “여기, 이쪽. 옳지 이쪽으로.”

       

       슉. 슈슉.

       

       바삐 날아가는 이베르의 꽁무니를 쿡쿡-찌르는 케넬름의 손가락. 

       마구잡이로 찌르는 것처럼 보이는 그 동작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이베르의 방향을 특정한 곳으로 유도하고 있던 것이다.

       행여나 방향이 틀어지면 찌르는 각도를 섬세하게 변경하여 이베르의 방향을 잡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열심히 손을 놀리는 케넬름의 왼손에는 작은 빛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저 하늘에 빛나는 별을 따서 손에 쥐면 이런 형태가 아닐까ㅡ 싶게 생긴 빛 덩어리다.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였고, 가끔은 점멸하기도 했다.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별빛 조각이지만, 지금은 케넬름의 에너지원에 불과했다.

       

       케넬름이 거울 너머로 간섭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의 근원.

       

       ‘원래였으면 바다가 도와줘서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됐는데…’

       

       영혼의 바다는 케넬름을 모르는 체하며 고고하게 파도치고 있다. 

       제 주인이 돌아왔으니 그녀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간 함께 지낸 시간이 무색할 지경.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아주 오래전. 

       위대하신 분이 처음 영혼의 바다에 왔을 때 떨어진 별의 조각 중 일부가 묻혀 있었다.

       

       그분의 첫 번째… 정확히 말하자면 첫 번째는 아니지만.

       하여튼 케니스에게 별의 축복을 내릴 때 사용되었던 별의 일부분.

       

       본래의 크기에 비하면 일부분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티끌에 가까운 크기였지만.

       지금의 케넬름에게는 이조차 감지덕지였다.

       

       “옳지, 옳지… 좋아. 조금만 더-”

       

       케넬름이 거울에 한껏 몰두하여 오른손을 바삐 움직였다.

       공기를 가르며 이베르의 엉덩이를 찌르는 그녀의 손가락. 

       

       – “삐, 삐이익ㅡ?! 삐이이ㅡ!!”

       

       잔혹한 손놀림에 내몰린 이베르가 떠밀리듯 ‘차원 관문’의 바로 앞에 위치하자ㅡ

       

       “흡!”

       

       케넬름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별 조각을 부쉈다.

       잘게 흩날린 별의 파편이 짧게 허공을 부유하다가, 이끌리듯 케넬름의 왼손으로 향했다.

       

       자유와 통제, 그리고 상상.

       

       케넬름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껏 정신을 집중했다.

       

       오랜만에 별빛을 다루려고 하였더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하늘을 지배하는 신화의 지배자.

       푸른 비늘로 빛나며 모든 날개 달린 것들을 다스리는 폭력의 제왕.

       

       “쓰으ㅡ”

       

       옅게 숨을 내뿜는다. 

       

       은은하게 별빛이 서린 왼손을 단단히 말아 쥐고.

       

       거울 속 이베르를 향해 때려 박았다!

       

       콰앙ㅡ!

       

       무자비한 일권이 거울 표면을 덮친 직후, 위태롭게 서 있던 이베르가 ‘차원 관문’의 틈으로 굴러떨어졌다.

       

       공포에 절은 이베르의 새된 비명이 애처롭게 들려왔다.

       

       – “삐히이이이이이이ㅡ!!”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듯, 점차 작게 들려오는 이베르의 단말마.

       이윽고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케넬름은 속으로 용서를 구했다.

       

       ‘정말 미안해요. 당장은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서.’

       

       어린 용에게 나쁜 기억을 심어 준 것은 아닌지, 케넬름은 그것이 못내 신경 쓰였다.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한 죄책감과는 별개로 별빛이 온전하게 전해졌을지… 그것 또한 무척 걱정됐다.

       거의 반 정도는 도박으로 행한 방법이고, 별빛을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 

       

       어떤 식으로 별빛이 표출될지 그녀도 자신할 수 없다.

       

       ‘부디 잘 돼야 할 텐데…’ 

       

       케넬름의 시름은 깊어져 갔다.

       

       

       

       

       

       *****

       

       

       

       

       

       슥! 스윽!

       

       피난민들이 대피하는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하얀 머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피난민들을 그림자 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는데, 눈 한 번 깜빡이면 아득히 먼 곳에 와있었다.

       

       실로 기묘한 경험.

       

       피난민들은 저들끼리 모여 하얀 머리의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렸다.

       하얀 머리카락에 피처럼 붉은 눈동자, 창백한 피부.

       

       외형은 영락없는 사람의 것이지만, 행동이나 능력은 인외의 것이 명백했다. 

       감정 표현이나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도 사람들의 오해에 한몫했다. 

       

       “정말로 공작님이 악마와 손을 잡은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루샨 공작님이 얼마나 대쪽 같은 분이신데, 그런 분이 악마와 손을 잡을 리가 없잖아!”

       “그러면 저 사람들은 뭔데? 온기도 없고 표정도 없어. 사람이나 물건을 그림자에서 쑥쑥 꺼내는 저건 도대체 뭔데?”

       “그, 그건… 잊힌 다섯 종족, 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확실한 거야? 저 녀석들 몰골이 시체랑 친구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꼴이야.”

       “… 그래도 악마는 아니겠지. 용사님이 가만히 계시는데.”

       

       피난민들은 저들끼리 모이면 쑥덕거리며 하얀 머리의 사람들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정체 모를 녀석들, 음침한 시체 같은 놈들, 수상하고 꺼림칙한 무리. 대체로 평은 좋지 않았다.

       

       물론 루샨 공작은 이들이 악마 같은 것이 아니라 잊힌 고대의 다섯 종족 중 하나라고 미리 설명해두었다.

       

       수인, 엘프와 같이 먼 신화시대부터 존재해온 이들이라고.

       

       하지만 수인족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이웃의 머리나 허리춤에 짐승의 귀와 꼬리가 자라는 것에서 그쳤기에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엘프는 에스텔 하나뿐이라 관심도 없었고.

       

       갑자기 나타난 이들을 고대의 다섯 종족이라고 말해도, 이질적인 것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휴우.”

       

       이단 심문관 5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경계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피난민들의 시선에 5호는 조금 움츠러들며 가면을 고쳐썼다.

       

       까마귀가 그려진 이단 심문관의 가면이 얼굴에 착 달라붙는다. 그제야 주변의 시선에서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 조금 더 빨리 왔더라면.”

       

       지금만큼은 그녀의 일족이 밉다.

       

       시간이 급하다고 그렇게나 재촉했는데, 결국 늦지 않았는가.

       

       일족이 받아들이는 시간 감각은 인간의 것과 너무나 다른 까닭이 컸다.

       

       슥ㅡ 스윽!

       

       5호의 옅은 한숨과는 별개로 피난민들은 그림자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쑥쑥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저건…”

       

       저 멀리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케니스의 것이다.

       사람을 찾고 있는지 애타게 주변을 살피며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ㅡ공녀님! 공녀님! 어디 계세요! 공녀님ㅡ!”

       

       ‘프리가 공녀?’

       

       가장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을 왜 찾고 있단 말인가. 뭔가 일이 생겼다고 판단한 5호가 그림자를 통해 케니스에게 다가갔다.

       

       “용사님.”

       

       “공녀ㅡ 흐잇! 누, 누구?!”

       

       “접니다. 이단 심문관, 5호.”

       

       “5, 5호? 아, 아아! 그 제국에 같이 다녀 왔던!”

       

       잠시 놀라던 케니스가 이내 5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드워프와 수인, 엘프를 만나본 케니스는 5호가 다섯 종족이라는 것도 빠르게 받아들였다. 애당초 케니스는 5호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제국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5호! 당신, 다섯 종족의 일원이라고 했죠!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몬테그라스에서 여기까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고!”

       

       “…마, 맞습니다.”

       

       갑작스레 붙잡힌 손에 5호가 말을 더듬었다. 자신의 차가운 손과는 다르게 따뜻한 체온.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그러면 한 가지 부탁 좀 할게요!”

       

       “…어떤 부탁 말씀이신지.”

       

       케니스가 5호의 가면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5호가 가면 속에서 슬쩍 눈을 옆으로 굴렸다. 

       

       벌꿀색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가면을 똑바로 보기 힘들었다.

       

       “프리가 공녀님이 안 보여요! 아무래도 몬테그라스로 돌아간 것 같은데, 저를 그쪽으로 보내줘요!”

       

       “예?”

       

       5호는 저도 모르게 멍청하게 되물었다.

       

       곧 있으면 눈사태가 덮쳐오는 곳에 왜 돌아갔단 말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집에서 온천욕 즐기던 백수 이베르가 쫓기듯 출동했군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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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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