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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8

       

       

       

       

       

       188화. 이번만이다. ( 1 )

       

       

       

       

       

       임시 동맹.

       

       이베르의 제안을 들은 프리가의 표정이 괴상하게 구겨졌다. 지금 저 시퍼런 도마뱀이 뭐라고 하는 것인가?

       서로 힘을 합치자고? 용 사냥꾼인 자신이 용과 임시로나마 동맹을 맺어서?

       

       “하! 어이가 없어서.”

       

       어불성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

       

       프리가의 코웃음을 들은 이베르가 다가오는 눈사태를 바라보았다. 땅을 뒤엎으며 몰려오는 눈사태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았다.

       하얗게 일어나며 땅 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력의 현장.

       

       제아무리 공작령이라 해도, 저런 것에 휩쓸리면 얼마나 멀쩡할 수 있을까.

       

       《악우여. 이건 그대에게도 썩 나쁜 일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군. 그리고 그대와 나는 일단 저 눈사태를 막아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은가?》

       “그건ㅡ”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 어서 선택해라.》

       

       이베르가 설원에 내려앉아 등을 보였다. 완벽한 무방비의 자세.

       프리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대로 도끼를 휘둘러 이베르의 목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젠장.”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프리가는 그냥 용이라는 족속이 싫었다. 본능과도 같은 이유다.

       

       보고 있자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주먹이 근질거렸다. 어쩌며 이것이 신이 프리가에게 용 사냥꾼의 도끼를 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저 빌어먹을 도마뱀의 말이 맞았다.

       

       “… 칫. 이번만이야.”

       《현명한 선택이다, 악우여.》

       

       일단 눈사태로부터 도시를 지켜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도마뱀도 본래의 크기에서 한참이나 작아진 모습이었다.

       아마 그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

       

       본래의 크기였다면 프리가의 도움 없이도 그저 숨결 한 번에 눈사태를 통째로 얼려 버렸을 것이다.

       

       프리가가 머뭇거리는 걸음을 옮겨 이베르에게 올라탔다.

       

       비늘의 차가운 감촉이 허벅지에 닿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탄탄하게 자리 잡은 용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처, 처녀여! 정말 괜찮은 것이오?!》

       “공녀님! 위험할지도 몰라요!”

       

       유니콘과 케니스의 눈에는 우려스러운 걱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눈사태를 막겠다는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무모하게 보였다.

       

       “야, 도마뱀.”

       《말하게 악우여.》

       “누가 네 악우야, 씨. 뒤질라고. 네가 먼저 말 꺼낸 거니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 맞지?”

       《걱정하지 말게. 내가 비록 이런 모습일지라도, 썩 괜찮은 방법이 하나 있으니.》

       “뭐… 그럼 됐어. 작고 초라한 도마뱀이라도 도움은 되겠지.”

       《작고 초라한… 됐네. 말을 말지.》

       “성공 확률은?”

       《… 아마도 절반. 나쁘면 그것보다 더 낮을 수도 있고.》

       “뭐야. 나쁘지 않네.”

       

       이베르의 말을 들은 프리가는 씩 웃으며 케니스와 유니콘, 5호를 돌아봤다.

       이대로 넋 놓고 당하는 것은 그녀의 성질에 어울리지 않았다.

       

       추하게 발버둥이라 쳐봐야 속이 후련할 테지.

       

       “나 잠깐 갔다 올게! 먼저 가 있어! 아빠한테는 금방 돌아간다고 전해주고ㅡ!”

       

       화아아악ㅡ!

       

       이베르가 강하게 날갯짓하며 땅을 밀어내자, 거체가 허공을 날더니 이윽고 하늘로 솟구쳤다.

       용은 그 어떤 새보다 가볍고 빠르게 하늘을 날았다.

       

       떠나간 자리에는 프리가가 남긴 인사만이 작게 맴돌았다.

       

       “…어…”

       《이, 일단 우리라도 돌아가야 하네! 어서 돌아가세!》

       “… 맞습니다. 용사님! 어서 돌아가시죠!”

        

       유니콘과 5호가 케니스를 잡아끌며 도시에서 도망쳤다. 

       5호는 그림자 속으로, 유니콘은 하늘을 박차서 몬테그라스에서 멀어진다.

       

       바삐 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등 뒤로는.

       

       쿠구구구구구ㅡ!!

       

       도시의 성벽을 향해 몰려오는.

       거대하고 또 거대한, 새하얀 눈사태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앞에 맞서는 것은 푸른 빛의 용과 그에 올라탄 한 명의 소녀.

       손에 든 것이라고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도끼 한 자루가 전부였다.

       

       꿀꺽.

       

       눈사태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피부에 와닿는 위용이 쩌릿할 정도였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모두 새하얀 눈이었고, 거대하기로는 하늘을 뒤덮으며 몰려오는 장벽처럼 느껴졌다.

       

       파도를 마주한 개미의 심정이다.

       

       “야. 도마뱀… 정말 방법이 있는 거 맞아?”

       《날 믿게 악우여. 그대가 나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믿어야 하네.》

       “젠장. 인제 와서 안 믿으면 뭐 어쩌라는 건데. 씨발 진짜…”

       《후후. 설마 천하의 용 사냥꾼이 겁이라도 먹었나?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저 멀리 내려주도록 하지.》

       

       프리가의 자존심을 살살 긁는 이베르. 

       얕은 수였지만, 프리가는 상대가 용이라서 단순하게 걸려들었다.

       

       “누가! 겁먹었다는 거야! 하! 다 뒤졌어. 야, 뭘 하면 되는데! 말만 해!”

       《하하!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군.》

       

       순식간에 기세가 살아난 프리가가 다가오는 눈사태를 향해 투지를 불태웠다.

       

       “퉷. 좋아.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씨발, 다 뒤졌어.”

       

       두려움이 사라진 프리가의 눈동자 깊은 곳에는 뜨거운 빛이 일렁였다.

       용기보다는 더 뜨겁고, 무모함보다는 조금 더 냉정한 무엇인가 타오르고 있다.

       

       이베르는 그런 프리가를 보며 깊은 추억에 빠졌다.

       

       ‘그리운 눈빛이군…’

       

       먼 옛날,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용 사냥꾼의 눈동자에서 보이던 것이다.

       

       자신보다 거대한 적을 향해 달려드는 인간의 그 덧없는 모습이란, 마치 모닥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것이다.

       

       이베르는 인간이란 족속을 썩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이하게도 용 사냥꾼이라는 녀석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나아가는 그 눈부심.

       때로는 무모하고 멍청하게 뛰어들면서도, 용맹하고 물러섬 없이 싸운다.

       

       이베르는 그것을 좋아했다.

       긴 수명에 매몰되어 가는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를.

       

       쿠구구구구ㅡ

       

       코 앞까지 눈사태가 몰려왔다.

       

       아주 조금 흥이 올라온 이베르가 강하게 날갯짓하며 몰려오는 눈사태의 구름을 향해 돌진했다. 

       

       “어, 어어ㅡ!! 미친 도마뱀 새끼야! 지금 뭐 하는 거야!”

       《하하ㅡ!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라!》

       

       

       

       *****

       

       

       

       “크으읏!”

       

       프리가는 이베르의 목을 강하게 움켜잡고 바짝 몸을 낮췄다. 차가운 비늘이 온몸에 와닿는다.

       평소 비늘이라면 질색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야ㅡ! 이게 갑자기! 우으읏! 뭐 하는 짓이야!”

       

       이베르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눈보라를 향해 돌진하더니, 곧장 방향을 꺾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벼락같은 움직임이다. 덕분에 이베르의 목에 매달린 프리가만 죽을 노릇이었다.

       

       바람은 거인의 손바닥처럼 연신 얼굴과 몸을 때려댔고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수직으로 솟구치는 중이어서 팔과 다리에 힘을 잔뜩 줬더니 빳빳하게 굳을 지경이다.

       

       그렇게 태양을 향해 날아가던 이베르가 어느 순간 펄럭ㅡ하고 날개를 펼치며 멈춰 섰다.

       

       얼마나 높게 올라왔는지 구름이 그들의 발 밑에 떠 있었다.

       

       《악우여, 이제 눈을 감아라.》

       “뭐?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용을 탄다는 것의 무게를 느껴라. 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 또한 느껴야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

       

       이베르의 뚱딴지 같은 소리에 프리가가 인상을 찌푸렸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끙…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잠시 고민하던 이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렇게 말하면 되겠군. 눈을 감고 도끼에 집중해라. 도끼는 우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믿어라. 잠겨 있는 빗장쇠를 풀고 서로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

       “아니,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악우여! 어서!》

       “젠장. 말 같지도 않은 걸 시키고 있어.”

       

       프리가는 작게 투덜거렸지만, 순순히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달리 방법도 없었던 까닭이다.

       

       이베르가 날카로운 손톱을 조심스레 움직여 도끼를 붙잡았다. 

       

       《시작한다.》

       

       어둠이 찾아온다.

       

       ‘도끼에 집중한다, 집중…’

       

       속으로 되뇌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를 향해 정신을 집중한다. 점차 자신으로부터 흐릿해졌다. 

       

       우웅! 우우웅ㅡ!

       

       황금빛의 도끼가 강하게 진동하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두근ㅡ

       

       차가운 비늘 아래의 근육이 느껴진다. 그 아래로 힘차게 흐르는 굵은 혈관과 뜨거운 피가 느껴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감각이 영혼을 강타한다.

       

       바람의 속삭임, 소리 없이 흐르는 구름의 움직임, 태양의 찬란한 빛, 그녀 스스로의 박동 소리와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

       

       심지어 뼈가 자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모든 것들이 점점 커지며 오감이 미쳐 날뛴다.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지나칠 정도로 감각이 거대해진다.

       

       “으읏…”

       《거의 다 됐다! 조금만 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베르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정신을 활짝 열어둔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공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분 좋은 오산이다.

       

       “시, 시발… 도대체 이게 뭔…!”

       《으음…》

       

       이베르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차가운 심장에 작은 불씨가 흘러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용인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불씨다.

       

       그것의 온기가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희열감과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이 영혼을 고양시킨다.

       

       느리게 박동하던 심장이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무디게 녹슨 정신이 불타오른다.

       

       《흐하하ㅡ!! 하하하! 성공, 성공이다! 악우여!》

       

        이베르가 황홀함에 젖어 소리쳤다. 

       

       용에게는 인간의 정신을, 인간에게는 용의 감각을.

       

       이것이 이베르가 의도한 한 수였다.

       동시에 그도 확신할 수 없었던 도박이었다.

       

       서로의 정신을 연결하는 정신 나간 기행이라니. 신의 무기를 매개체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행위다. 

       

       “윽, 으읏! 시이, 발! 작…게 말해!”

       《흐하ㅡ… 아, 미안하군.》

       

       용이 느끼는 세상을 경험하는 중인 프리가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랗고 민감한 것들이었다.

       

       ‘시발. 눈을 감았는데도 주변이 보이는 수준이잖아?’

       

       눈을 감아도 주변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촉각이 세상을 더듬고, 청각이 그 위에 생동감을 더했다. 마치 박쥐가 된 기분이다.

       

       용은 항상 이런 감각으로 살고 있단 말인가?

       

       ‘미치지 않은 게 용하네.’

       

       《흐하하하하ㅡ!! 악우여, 간다! 꽉 잡아라!!》

       

       고양감에 흥이 잔뜩 오른 이베르가 광소를 터뜨리며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이미 알고 있던 프리가는 이베르의 목을 꽉 붙잡으며 단단히 자세를 잡았다.

       

       쿠구구구구ㅡ!!!

       

       둘의 정신을 연결하고 있는 도끼가 빛을 뿜으며 궤적을 따라 긴 꼬리를 남겼다.

       눈사태를 향해 한 줄기 혜성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베르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외쳤다.

       

       《흐하하하! 나한테 맞춰라, 악우여!》

       

       급박한 와중에도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은 존재했다.

       

       “헛소리! 네가 나한테 맞추는 거야!”

       《하하하하하ㅡ!!》

       

       이베르의 커다란 웃음과 함께.

       

       콰아아앙!!

       

       푸른 불꽃이 세상을 불태울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드래곤 라이더… 라고 하니까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가 생각나네요. 제 인생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마지막 이야기인 3편을 보고 찔끔 눈물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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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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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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