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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89

       

       

       

       

       

       189화. 이번만이다. ( 2 )

       

       

       

       

       새파란 귀화가 넘실거리며 눈사태를 덮쳤다.

       차가운 얼음을 장작 삼아 불을 피운다면 이렇게 새파란 색이 일어나지 않을까?

       

       치이이익!

       

       눈과 불이 맞닿는 사이에서 한순간 끓어오른 눈이 수증기가 되어 자욱하게 일어났다. 두꺼운 안개가 주변을 가리며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이베르와 프리가에게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이베르는 애초에 수증기 따위에 시야가 가려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프리가 또한 자신의 감각을 주체하지 못해서 눈을 감고 있었기에 달라질 건 없었다.

       

       콰아아앙!

       

       이베르가 크게 벌린 아가리에서 부채꼴로 불꽃이 뿜어진다. 눈사태가 잠시 주춤하는가 싶었지만, 겨우 여기서 멈추기에는 눈사태의 몸집이 너무나 거대했다.

       눈사태가 천천히 불꽃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크으으ㅡ!》

       

       조금씩 뒤로 밀리는 불꽃.

       이베르가 안간힘을 쓰며 더 강하게 불꽃을 내뿜었지만 계속해서 뒤로 밀린다.

       

       “후우ㅡ”

       

       프리가는 자신이 나설 차례임을 알았다.

       

       이베르의 등 위에 올라서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여전히 두 눈은 감고 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눈을 뜨면 방해가 될 것이다.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더욱 예민해진 감각이 전해주는 작은 신호들.

       그것들 하나하나가 작은 전류처럼 피부를 타고 흐르며 느껴졌고, 머릿속에서 빠짐없이 주변의 환경으로 그려진다.

       

       불꽃과 눈사태에서 일어난 수증기, 불어오는 열풍, 눈사태의 터져 나오는 굉음과 이베르의 미세한 떨림.

       

       모두 느껴졌다.

       

        두 손으로 용 사냥꾼의 도끼를 단단히 붙잡았다.

       프리가와 이베르의 정신을 연결하고 있는 도끼는 밝게 빛나며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프리가가 도끼를 휘두르려고 한다는 걸 눈치챈 이베르가 외쳤다.

       

       《악우여! 아직 아니다! 내가 신호할 때까지 기다려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명령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프리가는 잠자코 기다렸다.

       꼴 보기 싫을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도마뱀이다.

       

       분명 뭔가 노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꾸욱.

       

       기다린다.

       

       이베르의 불꽃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눈사태가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해도.

       프리가는 도끼를 단단하게 말아쥐고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

       

       ‘…! 시작한다.’

       

       이베르의 가슴팍이 커다랗게 부푸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의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기세로 숨을 마시더니, 이베르가 거세게 포효했다.

       

       《——— ———!!》

       

       이전의 부채꼴의 모양과는 다르게 커다란 구의 형태로 불꽃이 뭉친다. 막대한 열기가 이글거리며 피부를 찌른다.

       

       이베르는 한참 동안 집중하며 불꽃을 압축했다. 커다랗던 구체가 점점 작아진다. 

       

       작아지고 작아지더니, 이윽고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졌다. 압축된 만큼 내부에 갇힌 푸른 불꽃이 맹렬하게 발버둥 치고 있다.

       

       구체가 뿜어내는 밝은 빛은, 마치 지상에 내려온 작은 태양을 보는 듯 하다.

       

       “좋았어! 야, 도마뱀! 그거 얼른 던져!”

       《아니! 잘 봐라! 이건 겨우 그런 용도가 아니다!》

       

       이베르는 열심히 압축시킨 화염구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커다란 공의 형태를 한 불꽃이 높게 솟아오르며 또 하나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당연히 눈보라를 향해 던질 줄 알았던 프리가는 높게 올라가는 화염구를 얼빠지게 쳐다봤다.

       

       “… 허? 아니, 이 미친 도마뱀아! 지금 뭐 하는 거야!”

       《흐하하하ㅡ! 꽉 잡아라! 좀 뜨거울 거다!!》

       

       이베르가 날개를 펄럭이며 높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지상에서 멀어진다.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르는 그 끝에는, 이베르가 던진 화염구가 있었다. 

       

       그걸 눈치챈 프리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야ㅡ! 이, 미친 새끼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대가리 돌려!!”

       《하하하ㅡ! 그동안 구상만 하던 기술을 이렇게 써먹을 날이 올 줄이야!》

       “뭔 헛소리야! 당장 방향 돌려, 이 미친놈아!”

       《그럴 수는 없지! 내가 오랜 세월 준비한 비기를 보여주겠다, 악우여!!》

       “비기는 지랄 니미!!”

       

       이제 프리가는 거의 발작하듯 외치고 있었다.

       잘하고 있던 녀석이 왜 갑자기 헛짓거리를 시작한단 말인가! 이래서 용을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뒤늦은 후회였다. 빠르게 돌진하는 이베르는 자신이 던진 화염구를 향해 화살처럼 몸을 던졌다.

       만약 누군가 봤다면, 태양을 향해 쏘아진 화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친ㅡ 도마뱀 새끼야!!”

       《흐하하하하하ㅡ!!》

       

       콰앙ㅡ!

       

       “꺄아앗!”

       

       이베르가 구체에 몸을 박으며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프리가는 본능적으로 도끼의 옆면으로 얼굴과 몸통을 가리고, 곧 덮쳐올 열기에 대비해 이를 물었다.

       

       살아남는다면 이 도마뱀의 모가지를 썰어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러나ㅡ

       

       그녀가 예상했던 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 무슨…?”

       

       조심스레 눈을 떠서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불타고 있다.

       심지어 그녀와 이베르의 몸에서도 푸른 빛의 귀화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꽃이…? 아니. 불이 맞나? 이건ㅡ 씹. 뭐야 이게?”

       

       넘실거리는 푸른빛의 불꽃이 이베르와 프리가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갑주처럼.

       

       그럼에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잔뜩 움츠렸던 프리가의 몸이 서서히 펴지며 주변을 둘러볼 때, 이베르가 몸을 헐떡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바닥에 있었다면 떼굴떼굴 굴렀다녔을 게 분명하다.

       

       《흐하ㅡ! 하하하하하하!! 겁먹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좀 여인 같군! 겁먹었나? 응? 순간이지만, 분명 겁먹었지?》

       “이, 이이! 이 개 같은 도마뱀 새끼!! 너 일부러 그랬냐?! 죽여버린다 진짜!!”

       《흐하하하ㅡ!! 그렇게 여리여리한 비명이라니! 아, 정말이지 눈물 나도록 즐겁군! 역시 그대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광대의 재롱일까.

       

       프리가는 시뻘개진 얼굴로 파들파들 떨었다. 수치심과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는 자괴감이 뒤섞여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용 사냥꾼의 도끼를 휘둘러 이베르의 목을 토막 내고 싶었지만, 실낱같은 마지막 이성이 그녀를 말렸다.

       이베르가 없다면 눈사태를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후우.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아직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진정한 프리가.

       

       이내 주먹을 말아쥐며 몸을 살폈다. 푸른 불꽃은 그녀의 몸을 뒤덮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꾸욱.

       

       “힘이…”

       

       힘이 넘친다. 

       

       주먹을 쥐면 온 세상을 부술 것 같은 힘이 느껴졌다. 힘의 근원은 타오르는 불꽃. 

       

       《후후. 어떤가. 나의 비기가! 첫 보이는 상대가 그대라네. 애초에 인간과 함께해야 가능한 기술이거든.》

       “…”

       

       확실히 온몸에 힘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도끼를 휘두르면 하늘을 쪼갤 수 있을 것 같다. 프리가는 순순히 인정했다.

       대단한 기술이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런데ㅡ

       

       “… 그냥 아까 그 화염구를 눈사태에 던지면 안 되는 거였냐?”

       

       화염구는 마치 작은 화산처럼 이글거렸다. 그냥 그걸 눈사태에 던졌다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씨발 진짜.”

       《악우여, 그대는 모르겠지만 용에게 재미란 추구해야 할 하나의 가치라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것은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정신은 기나긴 시간에 마모되어가고, 추억은 불어오는 모래에 묻히는 돌멩이처럼 서서히 잊힌다.

       

       무한하게 긴 시간 속에서 기억은 하나둘 잊히고, 종래에는 자신마저 잊는다.

       

       그저 숨만 쉬며 존재하는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재미를 추구한다.

       

       《영생에 가까운 삶에 지표를 세우는 것이지. 어두운 바다에 커다랗게 솟은 등불처럼 말이야.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추억하며 잊지 않기 위해. 》

       “…”

       

       뭔가 말은 굉장히 그럴듯했지만.

       

       “그냥 너 재밌으려고 그랬다는 거 아냐.”

       《… 크흠! 잡다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뭘 네 마음대로 여기까지ㅡ 우와악!”

       

       이베르가 날개를 접으며 수직으로 낙하했다. 

       몸을 뒤덮은 푸른 불꽃이 맹렬하게 이글거리며 불씨를 휘날린다.

       

       똑바로 향하는 곳은 눈사태의 중심.

       

       프리가는 이를 빠득ㅡ소리 나게 물으며 도낏자루를 움켜쥐었다. 타오르는 투지에 반응해 푸른 불꽃이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

       

       타오르는 귀화가 힘을 주고, 넘치는 힘은 도끼로 향한다.

       

       눈사태가 둘을 잡아먹을 듯 거대하게 아가리를 벌렸다. 괴수의 뱃속으로 뛰어드는 듯, 주변이 눈사태의 그림자에 가려 어두워졌다.

       

       “흐읍!!”

       《가라, 용 사냥꾼!》

       

       콰앙!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프리가가 이베르의 몸을 박차고 하늘 높이 뛰어오른다. 몸에서 넘실거리는 불씨가 길게 흩날리며 궤적을 그리고, 높게 치솟는다.

       

       눈사태가 발아래로 보일 때까지.

       

       《흐하하하하ㅡ!!》

       

       이베르가 광소를 터뜨리며 눈사태를 향해 불을 내뿜었다. 푸르게 빛나며 곧게 날아가는 불덩이는 빛줄기와도 같았다.

       

       눈사태와 불덩이가 부딪히자ㅡ

       

       콰아아앙ㅡ!!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순간 눈사태의 중심이 텅 비었다. 그냥 두었다면 그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에 불과했지만, 이베르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콰앙! 콰아앙ㅡ!!

       

       두 번, 세 번.

       

       무른 나무를 부수는 도끼처럼 이베르가 불을 뿜으며 눈사태를 부숴갔다. 거대한 성벽 같던 눈사태에 큼직한 구멍이 여럿 생기며 기세가 줄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지금이다!》

       “말하지 않아도…”

       

       까드득.

       

       프리가의 입에서 이빨이 갈리며 부서졌다.

       

       있는 힘껏 허리를 뒤틀고 도끼에 무게를 싣는다. 주체할 수 없는 힘과 더없이 생생한 감각이 그녀에게 길을 보여줬다.

       

       이제 그만 마무리 할 시간이다.

       

       “알고 있어!!”

       

       콰가가가각ㅡ!

       

       수평으로 도끼를 휘두른다.

       

       눈사태를 가로로 길게 토막 내듯 허공을 쪼갰다. 도끼의 궤적을 따라 푸른 불꽃이 길게 뻗어 나간다.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며 도끼의 궤적을 따라 쏘아졌다.

       

       길게 늘어진 불꽃은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땅을 횡단하며 눈사태의 몸을 수평으로 그었다.

       

       거대한 불꽃이 눈사태를 가른다.

       

       

       

       ——— ——— ———!!

       

       차마 말도 못 할 굉음이 세상을 울렸다. 땅이 무너지는 소리와도 같았고, 하늘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수평선의 끝과 끝을 연결한 불꽃은 눈사태를 파고들며 부수고 태우며 쪼개면서 불타올랐다.

       

       푸른 불꽃이 눈사태를 잡아먹으며 타오른다. 증기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지천을 뒤덮었다.

       

       미친 황소처럼 전진하던 눈사태가 서서히 멈추더니ㅡ

       

       “하, 하하…”

       

       사람으로 치면 머리에 위치했을 부분이 깊게 파인 모습으로 멈췄다.

       

       말 그대로 모든 힘을 쥐어짠 프리가는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날개 꺾인 새처럼 추락한다. 

       

       몸을 뒤덮은 푸른 불꽃도, 끝 모르게 생생하던 감각도 사라졌다. 탈진감이 온몸에 가득하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부유감이 느껴졌지만, 프리가는 그저 가만히 받아들였다. 녀석이 자신을 받으러 올 것이다.

       

       《잘했다, 용 사냥꾼이여.》

       

       흐릿한 시야에 푸른 빛이 가득했다. 부유감은 사라지고, 부드럽게 자신을 받아 드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흐…”

       

       프리가는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천근만근 무거운 팔을 들어 올렸다. 가벼운 동작에도 팔이 찢어지는 격통이 몰려왔지만, 꿋꿋하게 팔을 움직였다.

       

       처억.

       

       프리가의 손가락 욕이 이베르에게 작렬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봄이 사라졌어요 여러분. 옷 입기 참 힘든 계절입니다. 다들 일교차에 유의하시면서, 건강 챙기세요.

    – ‘신선우’님!!! 후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 예??? 감각 증폭을 활용한 농밀끈적순애착정애기방가득채우는자궁큥큥진심임신야스라니…. 너무나 두렵군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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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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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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