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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0

       

       

       

       

       

       190화. 신뢰의 방식 ( 1 )

       

       

       

       

       

       콰아아앙!

       

       높게 치솟은 불꽃은 먼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관측되었다. 이베르가 내뿜은 불이었다.

       

       “꺄아아악!”

       “저건?”

       “모, 몬테그라스 방향이다!”

       

       눈사태가 닿지 않는 곳까지 벗어난 피난민들의 무리에서도 보일 정도여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난데없이 솟아오른 불꽃에 피난민들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마치 땅이 갈라져서 용암이 솟구치는 듯한 풍경이었으니, 고향이 아주 망했다고 주저앉아서 우는 이도 생겼다.

       

       모두가 혼란한 와중.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른 이들을 지휘하는 이도 있었다.

       

       “다들 정신 차려라!”

       

       루샨 공작이었다.

       그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다른 이들의 혼란을 잠재웠다.

       

       “전사들은 백성들을 보살피고, 혼란에 빠진 자의 돌발 행동이 없도록 해라! 백성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저 불꽃은 내가 직접 알아볼 것이니,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에게는 내가 엄벌을 가하겠다!”

       

       지엄한 공작의 명령.

       전사들은 공작의 명을 받들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백성들의 혼란을 가라앉혔다.

       

       루샨 공작의 서릿발 같은 눈동자와는 달리, 속은 썩어 곪아 가고 있었다.

       아까 전, 케니스로부터 비밀스럽게 전해 들은 사실이 귓가에 가시지 않았다.

       

       그의 하나뿐인 딸이 아직 몬테그라스에 남아있다.

       

       ‘프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거냐.’

       

       콰아아아앙ㅡ!!

       

       또 한 번의 폭발.

       

       이번에는 앞선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

       

       “엄청난 불꽃이군요.”

       

       루샨 공작의 옆에 있던 호위 기사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꾸욱.

       

       루샨 공작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건인지… 

       

       “공작님. 프리가 공녀님이 걱정되신다면, 제가 한 번 보고 와 드릴 수 있습니다만…”

       

       곁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하얀 머리의 사내가 속삭였다. 변함없이 음침하고 기척을 느낄 수 없다.

       

       프리가 소식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칫- 호위 기사가 작게 혀를 찼다. 영 사내가 미덥지 않은지, 눈에는 경계가 가득했다.

       

       루샨 공작이 대꾸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내가 딸을 그렇게 허약하게 키우지 않았어. 제 살길은 잘 찾아낼 아이야. 그리고-”

       아직 자네들은 백성들에게서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뒷말을 삼킨 루샨 공작은 힐끔 호위 기사를 곁눈질했다.

       미처 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사내는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의 걱정이 지나쳤나 봅니다.”

       

       사내도 루샨 공작이 삼킨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호위 기사의 눈빛은 하얀 머리의 사내에게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의 외형을 보며 의심하고, 배척하고, 경계하는 저 눈동자.

       

       하얀 머리카락, 피처럼 붉은 눈동자, 핏기 없는 피부와 태양 아래에서 타들어 가는 피부.

       경계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누군가 그랬던가.

       고통에는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에 익숙해질 뿐이라고.

       

       사내는 묵묵히 허리를 숙이며 의심의 눈빛을 견뎌냈다.

       그림자에서 숨어 살던 그들이 감히 태양으로 나오길 결심한 순간부터 각오한 것이다.

       

       “허억…! 허억ㅡ! 공작님! 공작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허둥거리지 말고 침착하게 말해라!”

       

       각기 다른 상념에 빠진 두 사람 앞에, 전사 한 명이 헉헉거리며 뛰어왔다. 

       살짝 눈가를 찌푸린 공작이 전사에게 일갈했다. 북부의 전사가 저렇게나 허둥거려서야 되겠는가?

       

       ‘쯧. 내가 젊었을 적의 전사들은 아무리 뛰어도 숨 차는 소리 한 번을 안 냈는데.’

       

       잠시 숨을 고른 전사가 덜덜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저, 전방에…! 웨어울프와 악마가 다수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슨ㅡ!”

       

       공작의 곁에 있던 호위 기사가 번개처럼 고개를 돌리며 하얀 머리의 사내를 노려봤다.

       

       피난민들을 이곳으로 옮긴 것은 하얀 머리의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엄폐물 하나 없는 드넓은 설원. 

       백성들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그들이 매우 불리한 곳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몰려오는 웨어울프와 악마들이라?

       

       의심하지 말라고 해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얀 머리의 사내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미미하게 눈을 찌푸렸다.

       

       탁- 탁- 옷가에 묻은 눈을 가볍게 털어낸 사내가 루샨 공작을 똑바로 바라봤다.

       

       “… 정말 자네들의 수작이 아닌가?”

       

       뻔한 질문이다.

       

       “제가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그전에 공작님은 저를 믿으십니까?”

       “난 자네를 믿네. 용사님이 자네들을 보증했고, 셀리나 양이 확인했으니.”

       “그렇다면ㅡ”

       “그럼에도 백성들은 쉬이 믿기 어려울 거야. 정황상 자네들이 계획한 것처럼 보이니까.”

       

       말로 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공작님, 저희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무엇을 말이지?”

       “저희는 악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무슨 수로 말인가.”

       

       사내의 발끝부터 천천히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매우 쉬운 일이다.

       

       “전사들을 물려 주십시오. 저희 일족만으로 웨어울프와 악마들을 모조리 죽여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조금은 저희를 믿겠습니까?”

       

       입맛이 쓰다.

       

       저주로 전락한 은총.

       그로 인해 그림자 속에 숨어 살던 자신들은 그저 한 줌의 빛을 갈망했다.

       언제나 의심과 모멸을 피해 어둠 속으로 숨어야 했지만.

       

       ‘이번에도 다를 바가 없구나.’

       

       루샨 공작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려는 사내를 붙잡았다.

       

       “자네, 그거 아는가? 북부의 전사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네.”

       “?”

       

       뜬금없는 루샨 공작의 말에 하얀 머리의 사내가 뒤돌아봤다.

       

       “하나는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면서 밤새도록 웃고 떠드는 거야. 북부에서는 술이 제일 발 넓고 좋은 친구거든.”

       “술이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함께 등을 맞대고 적과 싸우는 거지. 북부에서는 절대 가족과 친구를 버리지 않거든. 특히 생사를 나눈 전우라면 더더욱.”

       “전우라…”

       

       사내가 공작의 말을 중얼거렸다. 

       

       “최대한 많은 전사들을 붙여주겠네. 그뿐만 아니라 성기사들과 제국의 기사들도 함께할 거야.”

       “함께 싸우면서 유대감을 키워라… 뭐, 그런 뜻입니까?”

       

       지나치게 정론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었지만.

       

       전사들과 친해지는 데에는, 더 나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에는 괜찮은 방법일 듯싶었다.

       

       “우리는 앞에서 싸우는 전사들을 비웃지 않네. 하물며 전우라면 더더욱.”

       “… 감사합니다.”

       

       사내가 소리 없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저 앞.

       피난민들 무리의 가장 바깥에 있는 천막 안에서 솟아올랐다.

       

       천막의 두꺼운 천은 조금의 빛도 통과시키지 않았고, 덕분에 천막의 내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서른 쌍의 붉은 눈동자가 가득했다.

       피가 흘러내리는 듯 새빨간 눈동자들이 그림자에 녹아들어 천막 안에 가득했다.

       

       심신이 미약한 자라면 아마 천막의 내부를 보는 순간 경기하며 기절할 것이다.

       

       루샨 공작과 이야기하던 사내가 눈동자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전투를 준비하라.”

       

       긴말은 필요 없었다.

       

       “상대는 늑대와 악마. 전사와 성기사, 기사들이 우리와 함께 싸울 것이다. 단 한 명도 다치는 이 없도록 살펴라.”

       

       붉은 눈동자들이 눈을 감으며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각자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

       어둠 속이라면, 어디라도 그들의 손 안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눈동자가 사라지자 하얀 머리의 사내도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렇게 천막 안에는.

       고요한 어둠만이 남았다.

       

       

       

       *****

       

       

       

       “뭐여. 애꾸눈! 우리는 이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

       

       도끼를 만지작거리던 북부 전사 중 한 명이 불평을 내뱉었다. 시야가 향하는 끝에는 하얀 머리를 휘날리는 여인이 서 있었다.

       

       햇빛에 닿으면 죽는 병이라도 있는 것인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는데.

       빨간 눈동자와 생기 없는 피부가 어우러지니 굉장히 음침해 보였다.

       

       “히익…”

       

       눈이 마주친 여인은 죽는소리를 내며 구석으로 움츠렸다.

       적을 피해 숨는 고슴도치 같은 모양새다.

       

       애꾸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조용히 하고 무기나 정비해. 저래 보여도 너 정도는 한 손가락으로 죽일 수 있을 거다.”

       “뭐요? 끄윽ㅡ! 내가 술을 조금 마셨다고 해도! 으이? 저런 여인 한 명 정도는 껌도 아니다 이거야!”

       

       그사이를 못 참고 술을 마셨는지, 북부 전사의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지독하게 올라왔다.

       애꾸눈은 눈을 찌푸렸다. 

       

       술 냄새가 지독하고, 전사의 모양새가 보기 안 좋았다는 이유가 아니다.

       

       품속에 넣어둔 술병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을 참기 위함이었다.

       

       프리가 공녀를 대신해서 부대장으로 지켜야 할 위엄을 알고 있는 애꾸눈은 필사적으로 술의 유혹을 견뎌냈다.

       북부 전사들만 있었다면, 위엄이고 나발이고 그냥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을 테지만.

       

       이 자리에는 북부 전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투를 준비해라! 여섯 신의 이름으로! 사악한 마귀들을 재로 만들어 버려라!”

       “”여섯 신의 이름으로!!””

       

       한쪽에는 광기 어린 신앙을 불태우는 성기사들이 보였고.

       

       쿵ㅡ 쿵ㅡ!

       

       “황제 폐하를 위하여! 제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하여!”

       “”방패를 들어라!””

       

       강철 군화로 땅을 구르고 방패를 두들기며 사기를 끌어 올리는 기사들이 보였다.

       

       “끄어어ㅡ! 전투를 앞두고 마시는 술이 제일 달콤하다니까!”

       “크! 죽이는구만! 으잉? 애꾸눈! 술 안 먹어?”

       

       마시고 싶어도 못 먹는 그 서러움이란.

       

       필사적으로 술의 유혹을 견디는 애꾸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부 전사들은 한 쪽에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리면서 품속의 술병으로 향하기를 몇 번이나 참았는지.

       

       애꾸눈은 피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술의 유혹을 견뎌냈다.

       

       투두두두두ㅡ

       

       지평선 너머에서 자욱하게 눈보라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자연적으로 일어난 바람 따위는 아니었다.

       

       “키르르륵!”

       “아우우! 크르르르ㅡ!”

       “인- 간! 꾸륿! 먹는- 다! 쿠르륿!! 먹- 는다!”

       

       무수한 수의 웨어울프와 악마들이 떼를 지어 달려온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이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웨어울프는 입가에서 침을 뚝뚝 흘리며 네 발로 질주했고, 악마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땅을 박차며 달려왔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 뒤에는 붉은 타원이 허공에 떠 있었다.

       

       대악마가 피로 만들어낸 관문이다.

       눈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에 관문을 통해 이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광기 어린 악마들의 질주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설원을 까맣게 물들이는 잉크처럼, 질척한 발자국을 남기며 인간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한다.

       인간들은 단단하게 뭉쳐있는 성벽과도 같았고, 악마들은 달려드는 창의 기세였다.

       

       “방패를 올려라ㅡ! 신께서 지켜 보신다!”

       “신과 황제 폐하께서 함께하신다! 황제 폐하를 위하여! 무궁한 제국을 위하여!”

       “딸꾹! 에이씨, 어지러워. 술 좀 적당히 마실걸.”

       

       저마다의 방식으로 악마들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키히에에엑!

       

       가장 선두에 위치한 악마가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보라색 침을 흘리는 악마가 송곳니를 빛내며 굳건한 방패의 벽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

       

       푸슈슉! 촤하악!

       

       곳곳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서른 개의 송곳이 악마들의 주둥이를 꿰뚫었다.

       

       “우리가 함께 하겠다…”

       

       악마의 그림자에서 서른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촤아아악!

       

       다시 한번 그림자 속에서 송곳이 솟아올랐다.

       

       하얀 설원에 보라색 핏방울이 흩날렸고, 뒤이어 악마들의 무리 곳곳에서 그림자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놈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스의 민감한 감각은… 인자강으로 변해가는 과정…!! 비유하자면 깡스텟이 높아지는 중…!! 밤일도 초월?적일지는…!! 작가도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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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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