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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98

       

       

       

       

       

       198화. 쉽지 않은 일 ( 1 )

       

       

       

       

       

       타다닥. 타다다닥.

       

       한창 바쁜 시즌을 맞이해서 눈코 뜰 새 없는 기간. 사무실에서는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한동안 모니터를 봤더니 뻐근한 어깨가 비명을 지른다.

       눈동자는 말라붙어서 눈물도 흐르지 못할 지경.

       

       이렇게나 열심히 일했으면 조금은 쉬어도 되겠지.

       

       ‘… 게임 조금만 해야지.’

       

       파티션 너머로 슬쩍 눈치를 보면서 게임을 켰다. 무선 이어폰 한 쪽을 귀에 꽂아주는 건 필수.

       

       잠시 로딩 화면이 지나가고, 커다란 신전이 화면에 나타났다.

       

       올망졸망 짧은 다리로 열심히 움직이는 드워프와 나무 사이를 누비는 엘프들의 모습이 보인다.

       

       ‘뭐 별다른 일은 없었네.’

       

       언제인지 모르게 가출한 이베르가 북부의 몬테그라스에서 발견된 것 말고는 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나날.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머리 한구석을 괴롭혔다.

       마치 장을 보러 갔는데, 장바구니에 하나 빼먹은 것 같은 찝찝함.

       

       ‘뭐지? 뭘 까먹었지?’

       

       슬쩍 머리를 긁었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러면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떠오르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세계 탐험 모드’로 향했다. 

       

       언젠가는 기억나겠지. 

       아니면 ‘왜 그때 안 했지!’ 하면서 후회하던가.

       

       ‘뭐야, 얘 왜 이래.’

       

       ‘세계 탐험 모드’를 켜자 보이는 것은 얼굴이 퍼렇게 올라와서 부들거리는 한스.

       

       어젯밤에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것이 한스였다.

       그래서 자동으로 한스에게 화면이 온 것 같은데, 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흔히 게임에서 나오는 독에 중독된 것 같은 모습이다.

       인제보니 옆에 유니콘도 얼굴이 파랗게 된 채 쓰러져 있다.

       

       띠링ㅡ!

       

       《’모험가 한스’가 미약한 식중독에 걸렸습니다.》

       《’요정마 유니콘’이 미약한 복통에 시달립니다.》

       

       ‘아니, 둘이 쌍으로 난리네.’

       

       식중독에 복통?

       길가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주워 먹은 걸까.

       

       식중독이면 설사 몇 번 하고 물 잘 마시면 나을 거다. 내가 그렇게 해봐서 안다.

       복통은 시간 좀 지나면 알아서 사그라들 거고.

       

       그러게 누가 이상한 음식 주워 먹으라고 했나?

       아무리 판타지여도 그렇지, 이렇게나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없어서야.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케니스가 보인다.

       착하고 마음씨도 예쁜 케니스답게 두 못난이가 걱정되는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다.

       

       ‘쯧쯧. 저렇게 고생 좀 해봐야 아무거나 안 주워 먹지.’

       

       못난 둘에게서 관심을 끊고 다른 곳으로 화면을 돌렸다.

       

       즐겨찾기 목록에서 슥슥 돌려가면서 화면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어두운 방 안이 보였다.

       

       거의 암실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론 화면에서는 적당히 보이는 수준으로 어두웠다.

       

       《스으… 스으으…》

       

       숨소리가 들린다. 찜질방 수면실에서 들을 법한 깊이 있는 코골이.

       누가 자고 있는 걸까?

       

       ‘도대체 누구지 이건?’

       

       즐겨찾기 목록에 저장된 이름은… ‘밤의 일족’이라고 저장해 놨다.

       

       “아, 아아!”

       

       이제야 기억났다.

       까먹은 게 뭔가 했는데, 밤의 일족한테 걸린 반영구적 저주를 해주 하는 거였다.

       

       세상에 이렇게나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요즘 아무리 현생이 바빴다고 하지만 이건 치명적인 실수다.

       

       반성해야지. 반성.

       

       ‘… 그래도 뭔가 하나 더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뭐였지.

       파티 딜러 관련해서 뭐 하나 있었는데. 

       

       ‘에이, 몰라. 이것도 나중에 기억나겠지.’

       

       잊어버린 걸 보면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겠지.

       일단 밤의 일족 저주를 풀어주는 것부터 해야겠다.

       

       《’순수한 안개’ 발동! 일정 지역에 안개를 생성하여, 안개에 닿은 아군들의 상태 이상을 해제합니다.》

       

       푸시이익.

       

       약간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안개가 퍼져나간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안개는 금세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이내 자고 있던 밤의 일족에게도 안개가 닿았다.

       

       잠깐 멍때리면서 저주가 해주 됐다는 메시지를 기다렸다.

       

       원래라면 금방 메시지가 올라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반영구적 저주가 해주 됐다는 문구는 나오지 않았다.

       

       … 왜 안 나오지?

       

       뭔가 잘못됐다.

       엘프들이랑 다를 거 없이, 해주 스킬만 써주면 풀리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문제였을까. 

       

       얘네들은 일반적인 스킬로는 해주가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사용한 스킬의 문제?

       

       띠링!

       

       《’밤의 일족’의 반영구적 저주의 해주에 실패하였습니다!》

       《원인 : 현재 밤의 일족은 성지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저주를 해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제시됩니다.》

       

       ‘성지에 없어서 안 된다고?’

       

       엘프들은 스킬 한 방에 잘 풀렸는데, 일이 조금 귀찮게 돌아간다.

       우선 케넬름이 제시하는 두 가지 방법을 천천히 읽어봤다.

       

       《하나, 밤의 일족을 성지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정석적이지만, 이들의 천성적인 게으름과 은둔성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으름과 은둔성…? 이런게 밤의 일족한테 왜 있어. 저번에는 밤의 귀족이니, 뭐 위엄이 있다고 했는데?’

       

       말하는 것만 들어보며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힌 은둔형 외톨이 아닌가.

       

       일단 두 번째 방법.

       

       《둘, 이들의 저주는 특수한 절차를 통해 해주가 가능합니다. 다소 번거롭고 손이 가는 방법이지만, 성공할 시 짧은 시간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해결 가능한데 귀찮은 방법이랑, 오래 걸리는데 편하고 정석적인 방법이네. 장점이랑 단점이 뚜렷하네.’

       

       각기 나름대로 장단점이 명확하다.

       험한 지름길과 편하게 돌아가는 길.

       

       애초에 내가 고를 건 정해졌다.

       

       게임에 접속해서 ‘세계 탐험 모드’에서 주민들 관음하다가 벼락 떨구고, 무기 만들어 파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스스로 일거리라도 만들어야 뭐라도 하지.

       

       띠링!

       

       《두 번째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미니 이벤트 발동! 밤의 일족 The 저주!》

       

       이벤트의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종류의 것이다.

       요즘 챙겨 보는 애니메이션 이름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 이걸 케넬름이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나를 훔쳐보는 건 아니겠지?”

       

       아직도 가끔 정체 모를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아니겠지?

       

       … 아니지?

       

       

       

       

       

       *****

       

       

       

       

       

       한 차례 파란이 가라앉은 몬테그라스는 나름 조용한 일상을 되찾았다. 제국의 병사들은 신성 로마니안 제국으로 돌아갔고, 성기사들도 약간의 병력과 사도들을 남기고 성도로 내려갔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니 거리에서는 썰렁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그런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사삭! 사악!

       

       까만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녹빛 눈동자의 여인.

       셀리나.

       

       그녀도 북부에 남은 인원 중 하나였다.

       다섯 종족을 통솔하라는 사명을 받은 만큼 밤의 일족을 직접 만나봐야 했기에, 북부에서 대기하기로 한 것.

       

       그런 중대한 사명을 띤 셀리나는 벌써 몇 시간째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책상에 쌓여있는 무수한 서류의 산더미. 앉아 있는 셀리나가 서류의 산에 묻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바쁘게 손을 움직여서 서류를 처리하고 또 처리해도, 처리하는 속도 이상의 것으로 서류가 밀려든다.

       그나마 이것도 프리우스 후작이 한 차례 걸러준 것임을 감안하면, 절망적인 양의 일거리다.

       

       일이 끝나지 않는다.

       

       뽀각.

       

       만년필이 두 동강으로 부러졌다. 인내심의 한계에 달한 셀리나가 마침내 책상을 엎을 기세로 난동을 부렸다.

       

       “아아아아아악!”

       

       루샨 공작이 내준 방에 서류가 팔락이며 흩날렸다.

       

       팔랑이는 서류 중 한 장에는 《밤의 일족과 유일한 엘프의 거주 구역 및 행동 특성 보고서 : 소속 및 차후 대응 방안 논의》라는 제목이 길게 적혀 있었다.

       

       작고 빼곡한 글씨로 수놓아진 서류의 내용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올라오는 수준이다.

       

       “꺄아아아악! 못해! 나 더는 못해! 아니, 안 해! 안 한다고! 뭔 일이 이렇게 많아!”

       

       수인들만 있을 때는 그럭저럭 할 만한 수준이었다.

       프리우스 후작이 정력적으로 나서기도 했고, 수인들의 거주지와 소속 문제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자잘한 문제였으니까.

       

       애초에 문제 되는 것은 주제도 모르는 노예 상인들이었는데, 대대적인 토벌로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성도에 에스텔이라는 엘프가 나타나고, 밤의 일족까지 세상에 나오면서 점점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귀족들이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

       신화시대의 다섯 종족이라는 엘프와 밤의 일족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보겠다며 무작정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은 프리우스 후작의 선에서 정리됐지만, 셀리나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가 맡은 직책과 사명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무게의 것인지.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이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소매치기 좀도둑이 맡기에는 터무니 없이 거대한 자리였다.

       

       “으. 배 아퍼.”

       

       매일매일 어려운 서류를 보며 공부했더니 없던 복통까지 생겼다. 그나마 이스칼이 북부에 남아서 가끔 얼굴을 본다는 것이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툭 툭.

       

       힘없이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셀리나가 애꿎은 만년필을 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의자 아래로 뻗어 나온 까만 고양이 꼬리가 축 늘어져서 힘없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제 주인의 기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머리 위의 고양이 귀도 납작하게 누웠다.

       

       “에휴…”

       

       자신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니지, 부귀영화를 누려야 할 이유가 있기는 했다.

       

       ‘이 커다란 성, 방대한 공작령… ‘

       

       모두 프리가 공녀의 것이다.

       루샨 공작은 슬하에 프리가 하나밖에 없으니 아마 데릴사위를 들이겠지.

       

       누구를?

       이스칼을.

       

       꾸욱.

       

       “후우ㅡ 힘내야지.”

       

       쥐뿔도 없는 자신이 공녀와 비등하게 경쟁하려면 지금의 자리를 최대한 살리는 수밖에 없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것이 아니다. 출발선에 서기 위한 발악이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셀리나는 흩날린 서류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정리했다.

       

       “… 후후.”

       

       문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프리우스 후작이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고양이 꼬리털이 굉장히 복스럽게 올라왔다.

       

       ‘고양이 꼬리는 언제나 최고군.’

       

       똑똑.

       

       가볍게 문을 두들겼다. 

       

       “히약! 누, 누구세요!”

       “큿, 흠흠. 접니다, 프리우스 후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자자자잠시만요!”

       

       쪼그려 앉아서 서류를 줍던 셀리나의 꼬리가 삐쭉 솟아올랐다. 동시에 서류를 줍는 손이 미친 듯이 빨라진다.

       

       이런 포상이라니.

       

       “휴,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프리우스 후작은 한결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손에는 성도에서 급보로 날아온 편지를 한 통 들고 있는 채였다.

       

       “셀리나 님, 성도에서 급보로 도착한 편지입니다. 셀리나 님이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서.”

       “아, 네. 이것 때문에 직접 오신 거예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요.”

       

       프리우스 후작의 진심이었다.

       

       편지를 받아 든 셀리나가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냈다. 유려한 필기체로 적힌 종이 서너 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음…”

       

       셀리나의 녹빛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며 편지를 훑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서류로 단련된 독해력이 빛을 발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셀리나의 고양이 귀가 살짝 파닥거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프리우스 후작이 슬쩍 셀리나에게 다가갔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시는지?”

       “… 음. 한번 봐주실래요?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저는 잘…”

       

       편지를 받은 프리우스 후작이 빠르게 편지를 훑었다. 여러 미사여구와 신에 대한 찬양이 길게 늘어선 내용을 모두 쳐내고,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면 별거 없었다.

       

       “으음? 밤의 일족에게… 뭘 먹이라고요?”

       “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니죠?”

       

       안토니오 대사제의 손등에 새겨진 세 개의 표식. 그중 마지막 표식이 빛을 발하며 안토니오에게 계시를 보여줬다.

       

       밤의 일족과 관련된 계시를. 

       편지에는 그와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프리우스 후작이 드물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허어. 당장 찾기도 힘든 이들에게 사람의 피를 먹이라니…?”

       

       굉장히 뜬금없는 요구였다.

       

       어떻게 이들을 찾아서, 무슨 수로 피를 먹인단 말인가?

       애초에 왜 피를 먹이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사슬이랑 족쇄? 저주 때문이라고 말하면 알아서 협조할 거라니. 허어.”

       

       도통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

       

       프리우스 후작과 셀리나가 난처한 기색으로 편지를 바라봤다. 일단 만신전에서 요구했으니 하긴 하겠다만.

       

       “밤의 일족을 어떻게 불러오죠? 작정하고 숨으면 같은 일족인 5호도 찾기 어렵다고 했는데.”

       “음…”

       

       당장 밤의 일족을 데려오는 것부터 문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스의 혓바닥에게 부디 명복을…!!! 안타까운 녀석!!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

    WA!! 테마픽 선정! 와!! 게임 주제!!! 와!!!!!!!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S. 노벨피아 제공 표지 러프가 도착했습니다!! 세상에 너무 이쁘게 나왔어요!! 너무 도키도키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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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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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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