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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9

       

       

       

       

       

       209. 귀환 ( 5 )

       

       

       

       

       

       성도는 제국과 떼놓을 수 없는 긴밀한 동맹이다.

       제국의 이름부터 신성 로마니안 제국 아닌가.

       

       당장 황제와 황태자도 성도에서 직접 세례명을 받고 올 정도로 신실한 신도였고, 제국 백성들의 대다수가 여섯 신을 믿고 있었다.

       

       신의 사도와 용사에 대한 정보를 긴밀하게 취급하고, 동태를 놓치지 않는 것은 기초 중의 기초.

       

       한스 또한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사락.

       

       “이것들이… 전부 사실인가?”

       “예, 폐하.”

       “쓰읍. 하필이면 건드려도 사도의 고향이라니.”

       

       오크 무리가 한스 사도의 고향 마을을 인질 잡고 식량을 요구하고 있다. 하필이면 한스 사도의 고향을.

       

       머지않아 성도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차릴 테지만, 이번에는 제국이 조금 더 빨랐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제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던 탓이 크다.

       

       오크들에게 또 얼마만큼의 식량을 보내야 할지 골머리를 썩이던 카이사르는 이것이 썩 나쁘지 않은 기회임을 깨달았다.

       

       “…아니지. 가만히 있어 보게. 어차피 성도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될 것 아닌가?”

       “예. 다른 누구도 아닌 사도의 고향에 대한 것이니, 아무리 길어도 이번 주 안에는 알아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말이지, 우리가 성도에 이 정보를 먼저 전달하고 생색을 좀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과연.

       

       재상은 카이사르가 하려는 말을 곧장 알아들었다.

       

       “과연… 성도에 이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사건 해결에 도움도 받고, 성도에 빚도 조금 달아둘 수 있겠군요.”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는 거지. 어떤가?”

       

       오크들에게 매년 식량을 갖다주는 것도 배알 꼴리던 참이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면 전쟁도 불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흐르는 것은 무고한 백성들의 피와 눈물.

       

       전쟁은 항상 최후의 수단이어야 했다.

       

       “괜찮을 듯하옵니다.”

       

       저 난폭한 거지들을 손 안 대고 처리할 수 있는 기회다.

       흠이 조금 있다면 제국의 일에 성도까지 끌어들인다는 것 정도?

       

       허나 재상과 황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성도의 위광이 나날이 높아져 가는 지금, 성도에게 작은 빚을 만들어 둘 수 있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좋아. 곧바로 성도에 파말마를 보내지. 지금부터 빠르게 달리면 성도에서 사태를 알아차리기 전에 도착하겠지. 그동안 오크들이 먹을 식량이나 마을에 조금씩 보내주도록 하게.”

       “예, 폐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해가 높이 떠 있는 중천의 시간.

       

       제국의 깃발을 높이 들어올린 전령 하나가 바삐 말을 재촉하며, 먼지구름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

       

       

       

       “한스 님.”

       “어?”

       “한스 님은 고향에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고향에서? 어… 그냥 평범했던 것 같은데. 매일 밭 갈다가, 밥 먹고, 씻고, 좀 떠들다가 자고. 그냥 농부였지 뭐.”

       

       손을 잡고 걸어가던 데이지의 물음에 한스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농부로서의 삶은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과 똑같은 사람들, 지긋지긋한 농사일.

       

       빙글빙글 매일이 똑같이 돌아가던 고향에서의 일상을 떠올리던 한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일상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진짜 별거 없었어. 갑자기 왜?”

       “아뇨, 그냥…”

       

       꽈악.

       

       한스의 손을 붙잡은 데이지의 손에 갑자기 힘이 꽉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다.

       

       “어, 어어?”

       “그냥…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데요. 아까 팔라딘 님이 기생오라비라고 하니까, 한스 님이… ‘내가 왜 여기서도…’ 라고 하셨죠?”

       “그, 그게 들렸어?”

       

       분명 귓속말로 기생오라비라고 했는데, 그걸 어떻게 들었지? 데이지도 사도인가? 아니 데이지는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인데?

       

       “네, 똑똑히 들렸어요. 분명히… 한스 님은 고향에서 기생오라비라고 불리셨군요?”

       

       사아ㅡ

       

       한스를 올라다보는 데이지의 눈은 빛이 죽어 시커먼 진창과도 같이 보였다. 거무죽죽한 살의가 일렁이는 듯하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치치침착해, 한스! 침착해!’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

       한스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데이지의 눈길을 피했다. 저 심연과도 같은 눈빛은 좀 부담스러웠다.

       

       “어, 으음…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고향에서 기생오라비… 라고 불린 적이 몇 번 있기는 한데 말이야. 그게 조금 오해라도 해야 하나…”

       “교제하시는 여성은.”

       “어?”

       “고향에서 여성이랑 사귄 적이… 있는 건가요?”

       

       훌쩍.

       

       돌연 데이지의 눈에 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더니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군가 말하기를, 여자의 가장 큰 무기는 눈물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한스가 데이지의 눈물에 크게 당황하며 부랴부랴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데, 데이지?! 울지마. 옳지 뚝! 뚝 그치자. 어? 왜, 왜 울고 그래… 응?”

       “그치만… 흐읍ㅡ 하, 하한스 님이 분명…히, 흐읍. 도, 동정이라고 하셨는데!”

       “…아?”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한참 예전에 떠든 이야기 아닌가?

       

       ‘아니, 그보다 데이지 그때는 동정이 뭔지 모른다고 했는데?’

       

       수많은 생각들이 한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일단 나중의 일이다.

       당장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 울기 시작한 데이지부터 달래야 한다.

       

       “그, 그게 말이야 데이지. 내가 별명만 기생오라비였고, 사귀거나 뭐 그런 여자는 없었어. 애초에 내 또래 여자애들도 몇 없었고, 친한 남자애들만 나를 그렇게 부른 거지.”

       “크흐응… 저,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애초에 나는 여자애들이랑 별로 안 친했어.”

       

       정말 그랬다.

       열심히 농사 일 하는 와중에 자꾸 얼씬거리면서 뭐 먹으러 가자고 꼬시기나 하고, 징검다리 한복판을 막고 안 비켜 준 적도 종종 있었다.

       

       농사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뭘 그리 괴롭히는 것인지.

       

       “얄미운 여자애들뿐이었지. 지금 와서는 하나도 안 보고 싶어. 정말로!”

       “후으읍… 저, 정말이죠?”

       “그럼!”

       

       필사적인 한스의 변명을 믿어 주는 것인지, 그제야 데이지가 활짝 웃었다.

       시들어 가던 들꽃이 태양을 향해 꽃봉오리를 맑게 터뜨리는 듯한 청량함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제야 한숨 놓은 한스는 문득 떠올렸다.

       

       ‘그나저나 조만간 편지라도 보내기는 해야겠네.’

       

       고향을 떠나서 꽤 긴 시간 동안 편지 한 통 못 보냈다.

       많은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편지 하나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까먹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으리.

       

       홀로 남은 아버지야 적적하지 않게 잘 지내실 테지만, 그래도 편지 정도는 보내야 도리에 맞는 법.

       

       “헤헤, 헤헤헤.”

       “…그렇게 좋아?”

       “네! 헤헤.”

       

       웃음을 실실 흘리는 데이지가 맞잡은 한스의 팔을 붕붕 흔들며 나아간다.

       한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타타탓ㅡ!

       

       그런 둘을 향해, 다급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스가 살짝 움찔했다가 이내 몸의 긴장을 풀었다. 습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발소리였다.

       

       “헉, 허억! 한스 님, 한스 님!”

       

       만신전에서 오가며 자주 봤던 사제 중 한 명이다.

       

       굉장히 다급하게 뛰어왔는지 사제복이 땀으로 축축한 게 보였다. 

       표정도 굉장히 어두운 것이, 썩 좋은 소식을 전할 것 같은 얼굴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스 님… 허억, 허읍! 한스 님의 고향! 고향이! 오크들에게! 저, 점령당했다고 합니다!”

       “…네?”

       

       툭.

       

       한스가 데이지의 손을 힘없이 떨궜다. 그리고, 데이지가 다시 한스의 손을 꼭 붙잡았다.

       

       “한스 님…”

       “저, 저희 마을이… 오크에게요?”

       

       시야가 멍하니 꽉 당겨지고, 머릿속이 웅웅 울린다.

       소음이 아득하니 멀어지면서 점차 현실에서 붕 뜨는 감각마저 들었다.

       

       이 순간, 한스에게 떠오르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

       

       고향에 홀로 계시는, 그의 아버지.

       아버지가 고향에 계신다.

       

       

       

       

       

       *****

       

       

       

       

       

       툭, 투툭.

       

       밤의 일족이 도착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이것들이 한 일이라고는 만들어 준 임시 저택에서 자고, 자고 또 자는 것뿐.

       

       일하라고 데려왔더니 웬 방구석 백수가 들어와 버렸다.

       

       나도 열심히 일하면서 게임하는데, 감히 일꾼 주제에 먹고 노는 꼴이 심히 아니꼽다.

       

       

       

       뭐라도 해보라고 몇 번 터치도 하고, 하늘 높이 드래그하면서 괴롭혀 봤는데 일 할 곳이 없으니 결국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야, 이건.’

       

       슬슬 아니꼬움이 차오른다. 드워프랑 엘프는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이베르도 꼬박꼬박 엉덩이춤을 추는데.

       

       감히 신입이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자빠졌어? 벼락 함 떨궈?

       

       띠링ㅡ!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는 시원한 알림음이 울렸다. 드디어 뭔가 좀 나오려는 건가?

       

       – 철푸덕.

       

       《진행에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죄, 죄송합니다.》

       

       메시지의 구석에 나타난 케넬름이 시작부터 대뜸 엎드려서 오체투지를 시전한다. 납짝 엎드린 모양새가 굉장히 처절하다.

       

       좀 늦은 게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오체투지까지 할 필요는… 그보다 엎드린 탓에 옆으로 눌린 가슴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어째서인지 차오르던 분노가 씻은 듯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케넬름에게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마법의 주머니가 있는게 분명하다.

       

       ‘…사람이 조금 늦을 수도 있지.’

       

       뭐라도 용서할 수 있게 만드는 마법의 주머니다.

       

       띠링ㅡ!

       

       케넬름이 슬쩍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피다가, 상체만 일으킨 상태에서 새로운 메시지창을 번쩍 꺼내 들었다.

       

       《밤의 일족 전용의 건물이 해금되었습니다!》

       

       “오, 드디어.”

       

       오래도 걸렸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건 언제나 두근거린다.

       

       빈 공간을 내 마음대로 채우고 꾸며나가는 건, 마치 미지의 공간을 물들여 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바삐 손을 움직여 건물 리스트를 열었다. 밤의 일족은 척 보기에도 뱀파이어 컨셉이니까, 아마 건물도 그와 비슷한 종류 아닐까 싶다.

       

       ‘멋들어진 고성이나 폐허 같은 것도 나쁘지 않고, 뱀파이어 하면 또 관짝이나 공동묘지도 빼놓을 수 없는데.’

       

       뱀파이어, 고성, 보름달.

       흔해 빠졌지만 그만큼 먹히는 요소들이다. 

       

       신전을 중심으로 갱도, 황금 나무, 고성이 우뚝 솟아난 혼돈의 꼬라지를 생각하니 웃음을 멈출 수가 없다. 이 맛에 건물 올리는 거지.

       

       띠링ㅡ!

       

       “….어. 음?”

       

       해금된 건물 리스트를 훑어보는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뭐랄까… 생각치도 못한 게 나왔다.

       

       마치 최애 아이돌의 공연장에 갔는데 여중생 교복을 입은 아저씨가 기타리스트로 나온 느낌? 아니면 짜장면을 시켰는데 느닷없이 김치 민트 마라탕수육이 나온 상황?

       

       꿈뻑꿈뻑.

       

       두 눈을 부벼도 현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공?”

       

       《’어두컴컴한 세공소’ 건설이 가능합니다.》

       

       “얘네 밤의 귀족 아니었어…?”

       

       요즘 귀족들은 세공소에서 광물을 깎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린스킨…!! 오크…!! 싸움…!!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말…!!!
    마치 멋진 단어 세 개와도 같군요. 오크, 명예, 싸움…!!
    과연 오크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저도 매우 기대가 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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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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