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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4

       

       

       

       

       

       214화. 공주와 오크 ( 3 )

       

       

       

       

       

       대지 위로 무수한 초록색 언덕들이 웅크렸다. 그 머리가 향하는 곳은 네 발 달린 요정마와 두 발 달린 한스.

       대뜸 오크들의 수장이 되어버린 한스의 얼굴에는 멍한 기색이 가득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오크의 우두머리라고? 내가? 이렇게 갑자기? 왜?

       애초에 인간이 오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거였나?

       

       한스는 이런 사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떄애자아앙!!! 워어어어어어!!!”

       “깡햔!! 떄애애장!! 크워어어어!!”

       

       주변을 둘러싼 오크들은 목이 찢어져라 괴성을 질렀다. 

       어찌나 힘차게 외치는지 남다르게 예민한 청각의 한스에게는 귓가에서 벼락이 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윽! 아으…! 시끄러워! 야, 야! 조용! 조용히 좀 해봐!”

       《주인이여, 아무리 저들이 그대를 대장이라고 부르지만. 이 무식한 녀석들이 주인의 말을 들을리가ㅡ》

       

       “…”

       “…”

       “…”

       《…이게 되네?》

       

       한스의 조용히 하라는 말 한마디에 고래고래 함성을 지르던 오크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제 그렇게 시끄럽게 외쳤냐는 듯,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헛웃음마저 나올 지경.

       

       한스는 그제야 이 말도 안 되는 사태가 현실로 일어났음을 인정했다.

       

       “하하, 하…”

       

       도대체 왜? 어째서? 

       한스가 푹 쭈그려 앉아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닥쳐온 현실을 마냥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 아냐… 이건,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내, 내가 오크들의 대장이라니?”

       

       도대체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대륙 단위 메뚜기 떼의 대장이라고? 우두머리를 때려잡았더니 갑자기 나를 대장이라고 부른다고?

       

       다른 이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믿어 줄지도 의문이다.

       겨우 대장을 때려눕혔다고 우두머리가 된다면, 제국의 기사들은 벌써 오크 우두머리를 수십 명은 배출했어야 했다.

       

       길고 긴 세월 속에서 제국은 얼마나 많은 오크를 썰어왔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우두머리의 목을 효수하였을 것인가.

       

       이건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굉장히 특이한 일이다.

       오로지 한스, 그의 특이성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분명했다.

       

       “…도대체 뭐지?”

       

       그 사실을 깨달은 한스가 쪼그려 앉은 채로 자신의 특이성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우선 성지에 다녀왔고, 신도 만나봤고, 신의 무기에 룬도 두 개 새겨졌고, 대악마는 둘 정도 썰었고, 유니콘의 주인이고… 거기에 뭔지 모를 사탕?”

       

       음.

       모르겠다.

       

       하나하나 헤아리던 한스는 이내 원인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크워어어어!! 꺙한!! 떄애쟝이댜!! 워어어어어ㅡ!!”

       “꺙햐다!!! 우리 떄쟝!!!”

       

       주변에서 계속 강하다, 대장, 크워어ㅡ 이 세 단어를 반복하는 머저리들의 대장이 되어버렸다는 이 상황을.

       

       《푸륵… 그, 주인이여. 오히려 잘 된 것 아닌가?》

       “…뭐가 잘 됐는데. 아, 내가 메뚜기 떼의 대장이 된 거? 하하, 하…”

       《아니. 그대가 진정 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면, 이들이 더 이상 약탈을 못 하도록 그대가 잘 이끌면 되는 것 아니겠나?》

       “어?”

       

       그게 그렇게 되나?

       

       한스가 벌떡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봤다.

       당장 눈에 보이는 오크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백에 달한다. 마을 안의 오크 중에서 극히 일부만 모였음에도 적지 않은 수다.

       

       ‘이 오크들이 전부 내 말을 듣는다고?’

       

       머릿수는 곧 힘이다.

       

       그렇다면,

       초원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오크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가능할 것인가?

       준비된 전사인 오크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농사다! 

       이 오크들을 잘 지도하여 평화롭게 농사를 짓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한스의 눈앞에 드넓은 개활지가 펼쳐지는 듯했다.

       

       광활한 초원! 파릇한 생명을 머금은 농작물과 열심히 일하는 오크들!

       그들을 부리며 안락한 일생을 누리는 자신!

       막대한 부가 손에 잡히는 듯 아른거린다!

       

       수많은 오크 대군으로 가능한 모든 일들을 상상하자, 한스는 경이로움에 몸이 점차 떠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벼운 천처럼, 그의 영혼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희뿌연 안개가 그의 주변을, 아니 머릿속을 감싸 안는다.

       화사한 색채의 환상이 한스의 눈을 가리며 온갖 아름답고 화려한 것들을 보인다.

       

       온갖 귀한 것들을 두른 한스의 발밑에는 구름이 있고, 산처럼 높게 쌓인 금은보화, 눈앞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그 옆에는 아리따운 여인이… 여인이…

       

       “헤, 헤헤…”

       《히힝? 주인이여? 주인? 음?》

       

       한스가 멍하니 허공을 보며 실실 웃기 시작하자, 불안함을 느낀 유니콘이 한스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누가 봐도 한스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동공이 탁 풀린 채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저 모습을 보라.

       

       굉장히 실례였지만, 유니콘은 저도 모르게 ‘마치 오크 같은 모습이군.’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렇게 멍청한 웃음을 흘리던 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농사!! 짓는다!!”

       《뭐, 뭐? 주인이여?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주인이여?!》

       

       한스 대장의 외침에 오크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뇨옹싸아!! 쮯는다!!!”

       “떄애장!! 농싸아!! 크워어어어!!”

       “농사!! 짓는다! 부하들아!! 가자!!”

       

       한스가 씩씩하게 걸음을 옮기며 오크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명백히 이상한 모습이다. 평소의 한스답지 않은 모습이지 않은가.

       

       유니콘이 제 주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지능이 오크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모습은 도대체 무엇인가?

       

       과하게 씩씩한 걸음걸이 하며, 말마다 강세가 들어가는 저 특유의 버릇이며.

       마치 오크와도 같은 수준이지 않은가.

       

       오크의 수장이 되더니 머리까지 오크 수준이 되어버린 건가?

       

       “가자!! 농싸아!! 부하들아!! 가자아!!”

       《…히힝?》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한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니콘이 멍청하게 울음을 흘렸다.

       설마? 진짜로?

       

       …진짜 오크 대가리가 되어 버렸다고?

       

       《푸르륵ㅡ 저 무식하게 힘센 인간이?》

       

       유니콘은 문득 상상했다.

       

       오크 수준으로 멍청해진 한스가 롱소드를 휘두르며 날뛰는 모습을.

       암석이며 나무를 모조리 박살 내면서, 강대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부르르!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다.

       

       《오. 여섯 신 맙소사…》

       

       유니콘이 나지막하게 탄식을 흘렸다.

       도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단 말인가?

       

       저주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무도 몰랐던 오크들의 특수한 무언가?

       알 수 없다.

       

       이면을 들춰보는 유니콘의 눈은 안 보이는 것들을 보는 것이지,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혜란 조금 더 자세히 보고, 더 세밀하게 듣게 되는 것이었지, 전지(全知)가 아니었다.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겠다고 판단한 유니콘이 방향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멍청해진 주인을 누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저 무식하게 힘 샌 주인의 돌발 행동에 대응할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가?

       

       ‘성도로 가야 한다.’

       

       가서 도와줄 이를 찾고, 이 참사를 해결할 방법도 알아내야 한다.

       

       여기까지 판단한 유니콘이 하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인과 함께 온 소녀를 데리고, 성도로 돌아갈 시간이다.

       

       

       

       

       

       *****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 : 착용자의 품위가 상승합니다.》

       

       버리기도 애매하고, 누군가에게 주기도 애매한 이 장신구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 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여관에 찾아오는 모험가한테 줘버리는 거다.

       물론 시커먼 남정네가 티아라를 쓰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봐야 하는 이세계 주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제일 편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내가 ‘세계 탐험 모드’로 돌아다니면서 아무 녀석한테 적당히 주는 거다.

       이것도 그렇게 어려운 방법은 아니다. 그냥 무지성으로 투하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 주민한테나 주기도 애매한 것이…

       

       “이거 무조건 뭐가 있을 것 같은데…”

       

       ‘이름 없는’, ‘공주’.

       

       나 사연 있어요ㅡ 라고 어필하는 키워드가 두 개나 들어갔다.

       이게 정말 한낱 잡동사니에 불과할지라도 굉장히 찝찝하단 말이다.

       

       ‘음… 그러면 이거를…’

       

       별다른 힌트도 없고, 단서도 없으니 결국 주어진 건 이름뿐.

       우선 이름부터 차근차근 분석해 보자.

       

       공주, 공주라.

       공주라고 하면 떠오른 것이 뭐가 있을까.

       

       드레스, 성, 왕자님, 요정, 납치, 개구리 왕자, 호박마차, 구원, 그리고…

       소녀?

       

       ‘결국 공주라는 말이 왕족의 여자애를 말하는 거긴 하지.’

       

       이름이 없다는 건… 뭐 잊혀었다거나, 버려졌다는 걸 수도 있겠다.

       

       잊힌 혹은 버림받은 공주님, 혹은 여자아이.

       이걸 토대로 정리하면ㅡ.

       

       ‘모르겠다.’

       

       진짜로. 아니 고작 이름 가지고 뭘 어떻게 알아내.

       내가 무슨 셜록 홈즈도 아니고, 설령 셜록 홈즈라고 해도 키워드 두 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녹슨 짱구를 열심히 굴리다가 결국 포기했다.

       내가 언제는 뭐 이런 거 생각하고 게임했나. 그냥 끌리는 대로 하는 거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세계 탐험 모드’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녀석에게 티아라를 던져 버렸다.

       퀘스트 아이템이면 뭐라도 나올 거고, 아니라면 그냥 그걸로 끝인 거지.

       

       – 팅. 티팅팅… 데구르르ㅡ

       – “어머, 도대체 이게 뭐지?”

       

       이름 모를 도시에서 야채 팔던 아줌마에게 떨어진 티아라.

       야채 팔던 아줌마가 잽싸게 뛰어가서 데구르르 구르던 티아라를 주웠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물건이기는 하지. 

       

       그리고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퀘스트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줌마가 입김을 불며 티아라의 곳곳을 닦을 때도, 그것을 어린 제 딸에게 선물할 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티아라는 잡동사니였던 걸까.

       그럴싸한 이름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었던 것이 빠르게 식어갔다.

       

       “밤의 일족이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수수께끼라도 나오는 건가 싶었는데 그냥 잡템이라니. 조금 김빠진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

       

       

       

       

       

       “악마 살해자 한스가 뭔지 모를 것에 당해 오크 대장이 되어버렸다.”

       

       한 줄기 빛처럼 날아온 유니콘이 전한 비보.

       이 끔찍하리만큼 비극적인 사실은 만신전에서도 극소수에게만 허락되었다.

       

       사도가 이유 모를 것에 당해 오크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신도들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두머리가 된 한스가 사람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대형 사고였다.

       

       하여 성기사와 신의 무기를 받은 사도들, 케니스, 데모닉 팔라딘이 은밀하게 한스의 고향으로 파견됐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는 실제 상황이었고 전투가 일어나는 것을 염두에 둔 작전이었다.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데이지 같은 어린아이를 데려가려는 어른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데이지는 얌전히 만신전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이 데이지를 두고 출발한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을까.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식을 엿들어 보면, 한스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작업은 매우 지지부진한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한스의 주도로 오크들이 초원에서 땅을 갈고 있다고 하던가.

       

       “…하아ㅡ”

       

       걱정과 근심을 품은 한숨이 깊게 새어 나온다.

       

       툭. 데구르르ㅡ

       

       데이지가 한숨 한 번에 자갈돌 하나를 발로 찼다. 저만치 굴러간 자갈돌이 멈춘 곳에는 작은 동산을 이룬 돌이 가득하다.

       

       한스가 오크 대장이 되었다니… 데이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울적함과 우울함, 무력감이 공기를 짓누르며 데이지의 어깨를 옥죄여 오는 듯했다.

       

       “…주변이라도 좀 돌아야겠어.”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자괴감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발걸음 닿는 대로 걸으며 바람이라도 쐬어야 좀 나아질 것이다.

       

       사박사박.

       

       이제는 한없이 친숙해진 성도의 곳곳을 누빈다.

       

       길거리에서 음식 파는 것도 사서 먹고, 평소 눈여겨보던 인형도 하나 샀다. 우울해진 스스로를 달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에 난 공허함은 바람이 통할 정도로 커다랬다.

       

       무력함과 우울함, 자괴감 따위의 것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슬픔과 자괴감이 가득하다.

       

       “하아ㅡ.”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린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케니스 용사처럼 검을 들고 싸울 수도 없고, 프리가 공녀처럼 용을 타고 다닐 수도 없다.

       

       유니콘은… 자신이 부탁하면 태워주기야 하겠지만, 결국 전장에 데려가지는 않을 것이고.

       

       “…어.”

       

       발끝을 질질 끌며 걸어가던 데이지는, 문득 시야 구석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멈췄다.

       쭉 고개를 돌려 시야가 향한 곳에 있는 것은.

       

       “예, 예쁘다아…”

       

       꽃과 새가 장식된 흰색 바탕에 검은색의 보석이 박힌, 그리고 상처와 먼지가 가득한 티아라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 종족의 우두머리가 되어버린 한스…!! 과연 한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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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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