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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6

       

       

       

       

       

       216화. 공주와 오크 ( 5 )

       

       

       

       

       

       꿈을 꿨다.

       

       부그르르ㅡ.

       

       물소리와 공기 방울 올라가는 소리만이 가득한 곳에서, 작은 고리 같은 무언가를 이리저리 튕기며 노는 꿈.

       

       팅, 팅- 팅그르르.

       

       손가락에 고리가 닿을 때마다 내 손에서 작은 빛이 흩어져 고리에 두어 개 달라붙었다. 

       먼지보다 작은, 실로 티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빛이 고리에 흡수되어간다.

       

       하얀 바탕에 까만 점이 박힌 작은 고리는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대로 움직였고, 마침내 작은 빛에 다다르자 딱 고정되며 움직이지 않았다. 억지로 움직이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구태여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익숙한 꿈…’

       

       매일 꾸는 꿈이다. 

       그래, 조금씩 기억이 난다.

       

       나는 매일 이 깊은 바다의 꿈을 꾼다.

       어느 때는 가만히 구경만 하다 갈 때도 있었고, 오늘처럼 무언가 장난치다가 깨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꾸는 이 꿈을 매일 잊어버렸다.

       

       그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의 다 왔어.’

       

       알 수 있다.

       이제 앞으로, 조금만 더.

       

       부그르르ㅡ!

       

       깊이 가라앉은 몸이 점차 수면을 향해 떠오른다.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느껴졌고, 동시에 이곳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흐려지는 걸 느꼈다.

       

       매일 그렇듯, 나는 또 이 꿈에 대해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이 바다에 올 것이다.

       

       주인을 잃은 바다로.

       

       

       

       *****

       

       

       

       띠링ㅡ!

       

       《’이름 없는 티아라’의 현재 소유자는 ‘마을 소녀, 데이지’ 입니다.》

       

       “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드워프와 엘프, 밤의 일족을 골고루 섞어서 공중 저글링을 하던 와중 메시지가 나타났다.

       

       잠깐 메시지를 본다고 손을 멈췄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녀석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 쿵! 쿠쿵!

       – “으악! 으, 으어… 내, 내 허리! 야 야, 귀쟁이! 내 위에서 내려와!”

       – “우하하! 방금 그거! 되게 재밌었어! 막, 막! 내 몸이 하늘에서 붕붕 날았어!”

       – “으히이익! 잘못했어요이제하늘나는건그만하고싶어요용서해주세요잘못했어요위대하고전능하신분이시여ㅡ”

       

       아. 밤의 일족이 망가졌다.

       원래도 방구석에 잘 안 나오는 녀석들인데 내가 너무 심하게 장난치기는 했지.

       

       슥- 툭.

       

       인벤토리에서 ‘새빨간 사탕’ 하나를 꺼내 밤의 일족에게 떨어트렸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밤의 일족은 저 ‘새빨간 사탕’을 제일 좋아했다. 울던 녀석도 저거 주면 뚝 그치더라고.

       

       – “영원한빛으로나를보우하시… 아, 사탕… 하읍. 우물우물… 헤, 헤헤… 마, 맛있다…”

       

       정말 울던 밤의 일족도 뚝 그치는 마법의 사탕이다.

       

       “어디 보자, 메시지 내용이 뭐였지.”

       

       잠깐 꺼둔 메시지를 다시 불러와서 천천히 내용을 정독했다. 

       

       그냥 무지성으로 던져둔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가 데이지한테 갔다는 내용이었데, 데이지… 데이지…

       

       ‘데이지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박수를 짝- 쳤다.

       한스와 유대관계로 엮인 그 어린 여자애 이름이 데이지였다. 

       

       그보다 티아라가 데이지한테 갔다고? 도대체 어쩌다가?

       티아라는 그냥 눈에 들어오는 곳에 적당히 버렸던 것 같은데.

       

       ‘일단 봐야 알겠네.’

       

       화면을 옮겨 데이지를 찾아 나섰다. 데이지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티아라를 버리기 전에 즐겨찾기에 등록해 뒀기에 딸깍 한번에 찾을 수 있었다.

       

       “오, 잘 어울리네.”

       

       마침 데이지가 티아라를 머리에 쓰고 있던 참이다.

       

       데이지의 외형만 보면 한 11살? 12살? 대충 그쯤으로 보였는데, 공주의 티아라가 딱 어울렸다.

       마침 머리카락이나 눈동자도 티아라에 박은 흑요석이랑 잘 어울리고.

       

       툭-.

       

       티아라를 쓰고 헤실거리는 데이지가 귀여워서 무심코 머리 쪽을 터치했다.

       

       그러자ㅡ

       

       띠링.

       

       《연극 : 오크와 잿더미 공주의 진행이 가능합니다. 준비된 인물 : 한스, 데이지》

       

       “…이건 또 뭔.”

       

       갑자기 이렇게?

       

       “…”

       

       티아라에 나도 모르는 숨겨진 기능이 있던 걸까. 공주라는 이름에 맞게 어린 여자아이가 쓰는 것이 조건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터치하는 것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한스와 데이지가 뭔지 모를 것에 준비됐다고 나오다니, 굉장히 수상하기 짝이 없다.

       

       “…씁. 도대체 이게 뭐지.”

       

       취소할까?

       뭔지도 모를 것을 데이지랑 한스 단둘이서 하기에는 좀 위험 부담이 있다. 심지어 데이지는 싸우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다. 아무리 한스가 룬 문자를 두 개나 들고 있는 고오급 인력이라지만, 혼자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

       

       준비되지 않은 이벤트는 언제나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역시 이건 취소하는 게 맞다.

       

       손가락이 메시지의 거절 표시로 향했다.

       

       그 순간, 내면의 겜창 자아가 깨어나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 취소하게? 이거 취소하면 또 언제 할 수 있을 줄 알고?’

       

       멈칫.

       

       …맞는 말이다.

       티아라에 숨겨진 기능이 일회성 기능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번뇌한다. 고민한다. 갈등한다. 고뇌한다.

       

       이벤트를 달성하면 분명 보상이 따라오겠지. 실패하면 당연히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이번 경우에는 한스와 데이지의 목숨이 저당 잡혀있을지도 모른다.

       

       “아… 이걸 씁… 어쩌지?”

       

       겜창의 자아가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며 마치 뱀처럼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 달은 콩나물로 버티면 그만이야.’

       

       “…!”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형의 충격이 머리를 크게 후려치고 지나가며 눈이 번쩍 뜨였다. 무협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이런 것일까.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처럼 굴기 시작했지? 도대체 언제부터 중성화된 고양이마냥 굴었단 말인가.

       

       이벤트를 실패할 것 같으면?

       까짓거 현질 좀 하면 그만이다.

       

       “못 먹어도… 아니, 중요한 건 무조건 깬다는 마음!”

       

       손가락이 호랑이와도 같은 기세로 뻗어지며 연극의 시작으로 향했다.

       

       띠링ㅡ!

       

       《연극 : 오크와 잿더미 공주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성공 조건 : 성공적으로 연극을 마무리.》

       

       《실패 시 : 알 수 없음.》

       

       실패할 경우를 알 수 없는 게 괜히 더 무섭게 만든다. 그럼에도 쫄지 않으려 노력했다.

       현질, 현질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니까.

       

       촤악ㅡ.

       

       이윽고 붉은 커튼이 나타나 화면 전체를 가렸다.

       마치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천천히 커튼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연극의 막이 오른다.

       

       

       

       

       

       *****

       

       

       

       

       

       “하악ㅡ! 하악…!”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데이지는 밤 중의 숲을 달리고 있었다. 깊은 어둠에 잠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을 마구 헤치며 무작정 발 닿는 곳으로 달린다.

       

       ‘어?’

       

       순간 데이지의 표정이 아연해지며 뜀박질을 멈췄다. 그제야 목구멍까지 올라온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하으… 컥, 케읍! 여, 여기는…”

       

       마지막 기억은 선명하다. 자신은 분명 집에 있었는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자신은 왜 달리고 있었으며, 이게 무슨 노릇인가?

       

       부스럭.

       

       “읏…!”

       

       어둠에 쌓인 수풀에서 뭔가 움직이며 바스락거렸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린 데이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는… 위험해.’

       

       밤은 가혹한 시간이다. 거기에 울창한 숲속이라면 더더욱 위험했고, 자신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데이지는 사방을 경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동시에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무기로 쓸만한 건 없고, 상처는… 없네?’

       

       하나하나 꼼꼼하게 제 몸을 확인한다. 팔과 다리가 자유롭고 묶거나 학대한 흔적도 없다. 제일 먼저 가정한 납치의 가능성이 낮아졌다.

       

       데이지가 제 옷을 내려다봤다. 프릴과 장식이 가득 달린 드레스 차림이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더러워졌지만, 척 보기에도 굉장히 비싼 종류의 것이다.

       

       ‘드레스… 거기에 티아라도 있잖아.’

       

       머리 위에는 하얀 바탕에 까만 보석이 장식된 티아라가 놓여있다. 화려하고 값비싼 드레스에 티아라. 이래서야 마치 동화책에나 나오는 귀족이나 공주 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파스슥!

       

       수풀이 더욱 크게 흔들리며 낯선 남성의 거친 고함이 들려왔다.

       

       “저기다! 저쪽으로 발자국이 이어졌어!”

       “발자국에서 물러서! 사냥개들이 앞서가도록 하란 말이야!”

       

       성난 사내들의 목소리.

       

       기분 탓인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피비린내와 철의 비릿함이 맡아졌다. 저들이 쫓는 게 자신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데이지는 반사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흐읏ㅡ 후… 하윽…!”

       

       튀어나온 나무뿌리와 잔가지 따위에 발이 걸리고 얼굴이 긁혔다. 넘어진 무릎에서 피가 흐르고, 날카로운 가시가 팔을 찌른다.

       

       그래도 계속 달려야 한다.

       

       “컹! 컹컹!”

       “으읏!”

       

       사냥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잡히면 좋은 꼴 보지 못할 것이다.

       

       “공주가 서쪽으로 간다!”

       “거기 너! 넌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한곳으로 몰아넣으라고!”

       

       ‘공주?’

       

       자신을 공주라고 부르는 건가?

       

       호흡이 부닥치며 정신이 조금 혼미해졌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사내들의 말은 똑똑히 새겨들었다. 이 영문 모를 상황에 대한 실마리가 늘었다.

       

       “하, 하악… 흐읍…”

       

       턱 끝까지 부딪힌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 몸은 데이지가 정신을 차리기 전부터 한참이나 뛰고 있던 걸까. 체력의 한계에 다다랐다.

       

       “컹 컹! 크르르르ㅡ…”

       

       사냥개의 거친 호흡이 데이지의 목덜미에 뜨겁게 와닿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사냥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흐윽… 후으윽!”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며, 쫓아오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고,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이 상황을 감당하기에 데이지는 너무 어렸다.

       

       “크르르ㅡ!”

       

       뒤쫓아 오던 사냥개 한 마리가 데이지를 향해 높이 도약했다. 질기고 억센 턱 근육이 크게 벌어진다. 어둠 속에서 사냥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달빛을 반사하며 빛났다. 

       

       “꺄악ㅡ!”

       

       데이지가 눈을 감으며 몸을 움츠렸다.

       사냥개의 이빨이 데이지를 물어뜯으려는 찰나, 무언가 베는 소리가 들렸다.

       

       “깨갱! 깨앵, 끄으응… 캐앵…”

       

       겁 먹은 짐승의 울음소리.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저 멀리 도망가는 발소리.

       

       눈을 꼭 감고 있던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

       

       보이는 것은, 거구의 초록색 근육.

       오크의 것이다. 오크의 눈에서 귀기가 일렁이며 어둠을 꿰뚫었다.

       

       “크워어…”

       

       피 묻은 롱소드와 이글거리며 존재감을 발하는 두 개의 룬 문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 한스 님의…?”

       

       한스의 검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과연 한스의 운명은 어찌될런지…!!!! 작가인 저도 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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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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