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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7

       

       

       

       

       217화. 공주와 오크 ( 6 )

       

       

       

       

       

       꿀꺽.

       

       데이지가 마른침을 삼키며 오크의 검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두 개의 룬 문자.

       

       “크으으…”

       

       오크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데이지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 아아…”

       

       오크가 어째서 한스의 검을 들고 있는 것일까. 설마 한스에게 좋지 못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데이지의 눈이 거칠게 떨리는 듯싶다가 이내 조금 가라앉았다.

       

       ‘…아냐. 한스 님이 그럴 리 없어.’

       

       데이지는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한스가 결코 쉽게 당할 인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데이지가 한스를 믿었다.

       오크의 샛노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쩍였다.

       

       “크우ㅡ”

       “힉…”

       

       오크의 두꺼운 손바닥이 데이지를 향해 다가왔다.

       굳은살이 가득한 오크의 손은 가녀린 데이지의 목을 너무나 쉽게 부러뜨릴 것 같았다.

       

       침착하자고 마음먹은 데이지였지만, 새된 비명이 흘러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컹!”

       

       촤악!

       

       순식간에 움직인 오크의 롱소드가 어둠을 뚫고 달려온 사냥개의 대가리를 반으로 갈랐다.

       새빨갛고 뜨거운 핏방울이 데이지의 뺨에 튀었다.

       

       데이지가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으르르르…! 컹컹컹!”

       “워르르ㅡ 월월, 크르르!!”

       

       사방에서 침을 뚝뚝 흘리는 사냥개들이 여럿 나타난다. 사냥개들의 눈에는 데이지를 향한 맹목적인 적의가 가득했다.

       

       살벌하게 벌어진 턱 사이에서 침이 뚝뚝 흘러내린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데이지의 여린 살결을 씹어 먹고 싶다는 기세다.

       

       “흐, 흐아아… 아아, 아!”

       

       데이지가 미친 듯이 기어서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사냥개들을 피해 뒤로 물러나다가.

       

       텁.

       

       오크의 발에 막혔다.

       

       떨리는 고개를 애써 움직여 위를 바라봤다. 보이는 것은 오크의 샛노란 안광.

       데이지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 찼다.

       

       앞에는 미친 사냥개와 추격자들, 뒤에는 한스의 검을 든 오크.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컹, 컹컹!”

       

       오크와 잠시 대치하던 사냥개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데이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냥개의 질긴 근육이 탄력적으로 폭발하며 땅을 박찼고ㅡ

       

       써걱.

       

       시퍼런 롱소드에 두 동강으로 나뉘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오크가 태연하게 검을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것인지, 사냥개들이 목표를 바꿔 오크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크우으…”

       

       오크의 이빨 사이로 나지막하게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오크와 사냥개들 사이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조, 조용히… 이 틈에 도망쳐야 헤.’

       

       곧 있으면 추격자들도 도착할 것이다. 어린 자신이 그들을 피해 이 숲에서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초행길에 어두운 숲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히고 말 테지.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

       

       파스슷ㅡ

       

       사냥개와 오크의 사이에서 천천히 땅을 기어서 물러난 데이지의 눈앞에 형광색 벌레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을 발하는 벌레가 데이지의 앞에서 천천히 날더니 커다란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저거다…!’

       

       형광색 벌레가 앉은 커다란 나무로 천천히 기어갔다.

       

       굵고 올곧게 자란 나무다. 가지도 굉장히 울창해서 높은 가지는 밑에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라면… 숨을 수 있어.’

       

       데이지 정도의 어린아이가 숨기 딱 좋은 크기의 나무다.

       사냥개와 오크의 대치를 슬쩍 눈치 보던 데이지가 잽싸게 나무를 타고 올랐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답게 굉장히 능숙하게 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이내 적당한 가지에 몸을 숨겼다.

       데이지는 밑을 볼 수 있지만, 밑에서는 데이지가 보이지 않을 각도다.

       

       사냥개들은… 여전히 오크와 대치 중이다. 추격자들은 이제야 왔는지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간발의 차이. 데이지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컹, 컹컹!”

       “뭐야, 공주는 어디 가고 웬 오크 새끼가 있어?”

       “으르르르… 월월월!”

       “끼잉, 깨애앵… 끙끙.”

       “사냥개를 다치게 한 녀석이 저 오크인 것 같은데? 이런 씨, 재수 옴 붙었네!”

       “사냥개들이 공주를 쫓다가 오크랑 싸운 건가?”

       

       추적자들이 하나둘 모이며 오크를 둘러쌌다. 나뭇잎 틈으로 보이는 이들의 수는 어림잡아 열댓 명.

       

       모두 잘 단련된 병사들인지, 손에 든 날붙이가 흉흉하도록 번쩍였다.

       

       “퉷. 이제 어쩔 거야?”

       “…씨발. 재수 더럽게 없네. 공주는 놓치고 거지 같은 오크나 마주치다ㅡ 커읍!”

       

       사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추격자와 사냥개를 노려보던 오크가 검을 내질렀다. 떠들던 사내의 목에 붉은 선이 흐릿하게 그어졌다.

       

       사내의 목이 힘없이 공중을 유영하다 땅을 굴렀다.

       

       “이, 이런 씨발! 죽여어! 저 오크 새끼를 죽여!”

       “월월ㅡ!!”

       “싸운다!! 크워어ㅡ!”

       

       경악한 사내의 외침, 흥분한 사냥개의 소리 그리고 오크의 피 끓는 괴성.

       어둠 속에서는 강철끼리 부딪치는 소리, 짐승이 살을 탐하는 소리, 화살 쏘아지는 소리 따위가 들려왔다.

       

       그 모든 것들을 뚫고 롱소드의 날이 이따금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숨 막히는 단말마와 짐승의 외마디 신음. 

       

       어느 새부터인가 숲의 어둠마저 물러날 정도로 자욱한 피 안개가 일어났다.

       

       “윽!”

       

       데이지가 저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조심스럽게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데이지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잘린 팔과 목, 다리 따위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누군가의 창자가 길게 널브러졌다.

       피가 고여 생긴 웅덩이에 잠긴 시체, 시체, 또 시체.

       

       그 사이에 살아있는 것은 데이지와 오크.

       단 둘뿐이었다.

       

       “크으… 크우… 아프… 다…”

       

       오크의 몸도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등에는 화살 여러 개가 자라났고, 팔과 어깨에는 깊은 상처가 가득했고, 다리는 사냥개에게 물려 살이 움푹 파였다.

       

       오크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풀을 붉게 물들여 장미처럼 보이게 하였다.

       

       쿵-

       

       비틀거리던 오크가 나무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살짝 풀린 눈동자에 힘이 없어 초점이 맞지 않는다.

       

       데이지가 상처 입은 오크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상처가… 굉장히 깊다. 이대로 두면 오크는 분명 죽을 것이다.

       

       “이, 이걸 어쩌지? 어어어어떻게 해야…!”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오크를 버리고 멀리 도망쳐야 했다. 추격자들은 병사다.

       연락이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후발대가 올 거라는 뜻이다.

       

       “크… 우으…”

       “으읏.”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힘없이 죽어가는 오크가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그 이유를 데이지도 알 수 없었다.

       

       멍청한 오크에 불과한데, 때마침 뛰어든 사냥개가 없었다면 죽는 것은 데이지 자신이 됐을 수도 있었는데.

       

       오크가 한스의 검을 들고 있어서? 아니면, 그저 사그라지는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동정심일까.

       

       꾸욱ㅡ

       

       가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이 영문 모를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데이지가 오크를 지나쳐 해가 뜨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가야 할지 모른다.

       그저 무작정 달려갈 참이었다. 자신을 쫓는 이들이 찾지 못할 곳으로.

       

       그렇게 해가 뜨는 곳을 향해 달리던 데이지는.

       

       “…이건 진짜 바보 같은 짓이야…” 

       

       피를 철철 흘리는 오크에게 돌아와, 끙끙거리며 오크를 부축했다.

       

       “이봐요. 내 말 들려요? 일어나요!”

       “크우ㅡ 우으… 아프…다.”

       “하윽. 윽! 무거워…!”

       

       어찌어찌 비틀거리며 일어난 오크는 데이지가 이끄는 대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흐릿한 의식을 애써 깨워가며 데이지를 따라갔다. 오크의 뒤로 굵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흔적을 남겼고.

       

       사사삭ㅡ!

       

       데이지는 오크를 부축하는 동시에 열심히 피를 지웠다. 발로 문지르고 향이 강한 풀을 짓이겨 피 위에 뿌린다. 조금이라도 혈향을 덮어야 했다.

       

       “끄응ㅡ!”

       

       얼마나 걸었을까.

       

       힘에 부친 데이지가 혼절하기 직전에 썩 괜찮은 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짐승이 쓰던 곳인지 안에는 작은 뼈와 배변 따위가 가득했지만, 데이지에게는 최적의 은신처였다.

       

       쿠웅.

       

       굴에 들어서자마자 오크가 묵직한 소음과 함께 엎어졌다. 땀을 한가득 흘린 데이지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오크를 살펴볼 정신이 들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깊은 상처.

       

       상처도 많고, 흘리는 피도 심상치 않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상처가 곪아 병에 걸려 죽겠지.

       

       “이건…”

       

       그리고 오크의 가슴 언저리에서 반짝이는 목걸이.

       

       데이지가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오크의 목걸이를 살폈다. 여섯 개의 꽃잎이 겹친 문양. 색이 바랬지만 모양은 알아볼 수 있었다.

       

       “만신전의 펜던트잖아…?”

       

       어째서 오크가 만신전의 것을?

       

       그제야 오크의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의는 여기저기 찢겨나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바지는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놀랍도록 비대한 오크의 근육에도 버티는 바지라니.

       

       “…이 바지, 어디선가… 서, 설마!”

       

       오크의 바지 밑자락을 뒤지는 데이지의 손길이 다급해졌다.

       

       한스의 검과 만신전의 펜던트를 들고 있는 오크.

       그리고… 유니콘이 전해준 비보, 오크처럼 되어버린 한스.

       

       

       

       딱 맞물리는 퍼즐처럼, 현실성 없지만 ‘어쩌면’으로 시작한 상상이 데이지의 머리를 꽉 채웠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제발 여섯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아…”

       

       데이지의 손이 우뚝 멈췄다. 오크의 바지 밑단, 갈색 가죽을 삐뚤하게 꿰맨 흔적이 보인다.

       

       ‘내, 내가 꿰맨 흔적…’

       

       데이지가 직접 한스의 바지를 수선한 곳이다. 

       

       “아, 아아…”

       

       어째서,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왜 나에게.

       

       수많은 의문이 차오르며 데이지의 눈가에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면서 시야가 점점 흐려지다가, 눈을 꾹 비빈 데이지가 벌떡 일어섰다.

       

       “치, 치료. 그래, 맞아. 우선, 우선 치료부터 해야지. 상처가 깊으니까 우, 우선 지혈부터…”

       

       울면서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데이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우선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피부터 멈춰야 했다.

       

       다급하게 굴을 나선 데이지가 한참이 지나더니 여러 가지 풀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피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거나, 미약한 진통, 상처가 곪지 않도록 해주는 약초들이었다.

       

       데이지의 고사리 같은 손이 다급하게 움직이며 풀을 빻았고, 이마저도 여의찮으면 입으로 씹어가며 오크의 상처에 발랐다.

       

       “제발, 제발…”

       

       자신의 추측이 틀렸기를.

       

       데이지는 밤새도록 오크의 상처에 풀을 바르고 천을 두르다가, 어느 순간 기절하듯 잠들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마어마한 왕코인…!! 소나무 아래 묻힌 동전 지갑에 소중히 보관하여, 작가의 보물로 삼겠습니다…!!! 나날이 치킨값이 떡상하는, 실로 비인간적인 시대입니다…!! 과연 데이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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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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