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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8

       

       

       

       

       

       218화. 공주와 오크 ( 7 )

       

       

       

       

       

       사락-.

       

       데모닉이 조심스럽게 싯누런 종이를 넘겼다. 그 주위로 케니스와 프리가, 이스칼이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뭐야.’

       ‘노란 건 종이고, 까만 건 글씨네.’

       ‘…이딴 게 동화책?’

       

       세 명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데모닉이 동화책을 읽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케니스. 여기 이 문장. 한번 읽어보렴.”

       “네. 어, 음ㅡ 그러니까…”

       

       한참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케니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이, 이… 책은 어느 이름 없는? 섬에서 최초로 시작하여… 5명에게 읽게 하면 행운이ㅡ”

       “그만그만! 도대체 이 책의 어디에 그런 문구가 나오는 거냐.”

       

       혹시나 했지만 정말 고어를 못 읽었다.

       턱 끝까지 올라오는 한숨을 간신히 참아낸 데모닉이 케니스에게서 책을 돌려받았다.

       

       “후… 내가 읽고 내용을 설명해 주마.”

       

       데모닉은 파라락ㅡ하고 종이를 휘날리며 빠르게 동화를 읽어나갔다.

       은색 동공이 정신없이 흔들리더니, 책이 끝남과 동시에 멈췄다.

       

       “팔라딘 님, 그래서 이 책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습니까?”

       “흐음. 애매하군.”

       

       데모닉이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뭐가 애매한데요?”

       “이 동화책의 내용이 모호하구나. 확실히 지금 상황이랑 비교를 해보자면 조금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는 있지만… 아주 비슷하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고…” 

       “으아아! 답답하게 진짜! 그래서 그 책이 도움이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고, 공녀님! 도끼! 도끼 놓으세요! 아악!”

       

       데모닉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부글부글 끓어오른 프리가가 도끼를 뽑을 자세로 펄쩍 날뛰었고, 이스칼이 허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모든 소란에서 한 발짝 떨어진 데모닉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아니, 아주 불가능한 것도… 그것이 과연 가능한 건가? 아, 역시… 그런 건가.”

       “뭐가 가능한데요?”

       

       케니스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데모닉에게 물었다.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

       어쩐지 케니스는 데모닉이 할 말을 알 것 같았다.

       

       “그건… 그런가. 그렇게 된 거군.”

       “아악! 또, 또 시작이야! 우리 아빠 또 이런다!”

       “그렇군. 아직 너희들은 모르는 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데모닉이 일행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쪽이다. 일단 가면서 말해주마.”

       “어…! 설명 해주실 거예요?!”

       “…? 당연하지. 이런 중대한 사항에 대해서는 공유해야 하니까.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이 있어서, 한스 사도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싶구나.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데모닉이 성큼성큼 나아간다. 그러면서 빠르게 설명했다.

       

       “동화책의 내용 자체는 평범한 것이다. 성에서 살던 공주가 적군에게 쫓겨나고, 숲에서 병사들에게 쫓기다가 한 오크를 만나면서 시작하지.”

       “오크를요?”

       “공주가 공주 다짐육이 되면서 끝났겠네.”

       “아니. 오크는 공주를 병사들에게서 구해줬다. 제 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우면서 말이야.”

       “…오크가 공주를 구했다니. 상상하기 어렵군요.”

       

       이스칼이 말을 흐리며 초원을 바라봤다. 뙤약볕 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꿈틀거리는 초록색의 근육들이 가득하다.

       

       실로 안구에 해로운 풍경. 이스칼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중요한 건 동화책의 내용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동화책의 글귀 중, 이런 내용이 있었지.

       ‘오크들의 영혼에서는 불이 타오른다. 고통스럽게 타오르는 불꽃을 다스리는 방법은 저마다 달랐지만, 상처투성이의 오크는 공주를 영원히 지키는 것으로 제 불꽃을 다스리기로 하였다. 그러자 오크는 놀랍도록 마음이 평온해지며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문구다.”

       “불꽃? 오크의 영혼에?”

       

       프리가의 고개가 갸우뚱하며, 길게 묶은 머리가 찰랑 흔들렸다.

       

       “오크한테 영혼이 있었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데모닉도 확신할 수는 없는지 조금 자신 없는 말투였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오크의 영혼에서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동화책에 나오는 오크가 이 불꽃을 공주를 지키는 것으로 다스리기로 했다는 거다.”

       “그게 왜요?”

       “만약 이 동화책의 글귀가 사실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러면 저 오크들 모두 제 영혼에 끔찍하도록 뜨거운 불꽃이 있다는 소리겠지. 그 불꽃은 미치도록 뜨겁고 괴로울 것이고.

       아마 제정신이 아닐 것이야. 당연하지. 불꽃이 계속해서 제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일 테니.”

       

       파악ㅡ! 팍! 파악!

       

       오크들이 땅을 파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다.

       앞서가는 데모닉의 표정이 어땠는지, 케니스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오크처럼 변한 한스 사도 또한 마찬가지겠고.”

       “어? 그러면…”

       

       뒤따라가던 케니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오크처럼 변한 한스에게 동화책의 오크처럼 뭔가 불꽃을 다스릴 방법을 주면 된다는 건가요?! 그러면, 다시 원래로 돌아올지도ㅡ”

       “어디까지나 전부 가정이고, 만약의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근거가 낡은 동화책이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거라.”

       

       데모닉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 했지만, 어찌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초원을 노니는 케니스의 발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후다닥 앞장서서 달려가던 케니스가 곧장 한스를 찾아냈다. 

       오크 무리 가장 선두에서, 이질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땅을 파는 존재였기에 쉽게 눈에 띄었다.

       

       “아ㅃㅡ”

       “흠흠. 팔라딘 님이라고 불러야지.”

       “아. 팔라딘 님,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요?”

       

       케니스의 질문에 데모닉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동화책에서의 사례를 본다면… 오크에게는 불꽃을 다스릴 정도의 ‘강한 계기’가 필요한 듯싶었다.

       

       “글쎄… 한스 사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한 ‘무언가’ 필요할 것 같은데.”

       “후후.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가?”

       “고, 공녀님! 도끼 넣으세요! 그걸로 때리면 정신이 번쩍 드는 선에서 안 끝나요!”

       

       또다시 도끼를 꺼내든 프리가를 말리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데모닉은 슬쩍 한 걸음 떨어져서 한스를 바라봤다. 지금의 한스는 멍청하기 그지없고, 하는 행동도 무의미하다.

       

       그 모든 것들이 만약, 불꽃에서 도망치기 위한 도피적인 선택이라면?

       영혼이 불타는 고통을 잊기 위해, 제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너무 멀리 간 추측이군.’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냥 오크의 뇌가 땅콩보다 작아서 멍청한 것일 수도 있다.

       

       데모닉의 은빛 눈이 낮게 가라앉으며 한스를 바라봤다.

       신의 글자를 두 개나 받은 사도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쯧.”

       

       괜히 혀를 찬 데모닉이 휙 뒤돌았다.

       자신과도 비등하게 싸운 녀석의 지금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다.

       

       번쩍ㅡ!

       

       데모닉의 뒤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어떤 기척도, 낌새도 없이 돌연 번쩍인 불빛.

       벼락같이 반응한 데모닉이 곧장 뒤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ㅡ

       

       “…한스 사도?”

       

       한스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띠링.

       

       《’반짝이는 안내 벌레’를 사용했습니다.》

       

       “휴… 아슬아슬했네.”

       

       화면에서는 높은 나무로 올라간 데이지가 피를 줄줄 흘리는 오크와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데이지가 오크를 버리고 도망갈 때는 아차 싶었는데, 그래도 금방 돌아와서 다행이지.

       

       ‘여기서 한스 버리고 가면 다 조지는거야.’

       

       적당한 굴에 몸을 숨긴 데이지가 열심히 풀을 빻고 으깨기 시작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있는 오크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표. 한스.

       

       연극이라는 이름에 맞게 한스에게는 오크라는 배역이 주어졌다. 데이지는 아마 공주나 어디 귀족 영애인 것 같고.

       

       시작하자마자 데이지가 병사들한테 죽을 뻔했을 때는 진짜 식겁했다. 뭔가 스킬을 쓰기 전에 한스가 다 정리해서 다행이었지.

       

       “힐이라도 해줘야겠네.”

       

       데이지가 열심히 치료하고 있지만, 약초로 살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데이지가 잠자는 틈을 노려 죽어 가는 한스에게 ‘작은 치유’를 사용했다.

       

       – 샤아아아.

       

       옅은 별 가루가 흘러나와 오크의 상처를 휘감았다. 빠르게 차오르는 한스의 체력. 이러면 일단 한시름 놨다.

       

       삐익ㅡ!

       

       곧장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까 데이지가 병사들에게 잡히기 직전에도 스킬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이유다.

       

       《연극의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합니다. 지나친 스킬 사용은 ‘시나리오’의 방향을 틀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연극의 시나리오.

       

       정해진 이야기가 있다. 데이지와 한스는 그 시나리오를 끝까지 따라가면서 연극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다한 스킬 사용은 시나리오를 뒤틀 위험이 있다는 소리.

       

       메시지 창의 우하단 구석에 케넬름이 바들바들 떨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설마 나한테 스킬 자주 쓰지 말라고 해서 눈치를 보는 걸까?

       

       툭ㅡ.

       

       “훗.”

       

       반대로 생각하는 거다.

       

       스킬을 자주 쓰면 시나리오가 뒤틀린다고?

       

       스킬을 너무 써서 시나리오가 180도 돌아버렸다면, 거기서 더 많은 스킬을 많이 써서 시나리오를 360도 틀어버리면 된다! 그러면 정상이 되겠지!

       

       – “…!!”

       

       스킬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좋다. 일단은 케넬름이 말하는 대로, 정석적인 방법으로 해주지.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금할 필요는 없으니까.

       

       “…수틀리면 그냥 번개 찜질 갈기고, 만나는 애들마다 번개 숨결 갈기는 거야.”

       

       – 오들오들.

       

       케넬름이 오이를 만난 고양이처럼 떨기 시작했다.

       

       

       

       

       

       *****

       

       

       

       

       

       

       “새액ㅡ… 새액… 음, 우음.”

       

       높게 떠오른 태양이 데이지의 눈가를 간지럽혔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데이지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자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약초가 손에 눌어붙었다.

       

       “하암ㅡ…”

       

       늘어지게 하품하고, 몽롱한 머리가 천천히 잠기운에서 깨어난다.

       

        빛에 적응한 눈이 주변 풍경을 하나둘 새기기 시작한다.

       

       축축하고 습한 땅굴, 굴러다니는 동물의 뼈, 어쩐지 스산한 내부와 말라붙은 핏자국…

       

       “…핏자국!”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벌떡 몸을 일으킨 데이지가 후다닥 굴에서 뛰쳐나왔다. 

       

       오크, 오크가 보이지 않는다.

       상처가 깊은 몸을 이끌고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흔적, 뭐라도 흔적이…!”

       

       굴 주변에는 핏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데이지가 이를 악물었다.

       

       그 오크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왜 오크가 한스의 검을 들고 있고, 한스의 바지를 입고 있으며, 만신전의 펜던트를 가지고 있는가.

       

       “…읏.”

       

       사실 데이지는 이미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애써 부인했다. 일단, 일단 그 오크를 만나서 뭐라도 얘기를 해봐야 했다.

       

       파스슥ㅡ.

       

       데이지의 앞에서 수풀이 흔들리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크우으?”

       

       간밤에 데이지를 구해줬던 오크다. 누워있을 때는 몰랐는데, 데이지가 한참이나 고개를 꺾어 올려야 얼굴이 보일 정도로 덩치가 컸다.

       

       “…아, 아아.”

       

       오크의 한쪽 어깨에는 방금까지 살아 있었는지 가볍게 경련하는 사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사슴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오크의 초록색 몸을 붉게 물들인다.

       

       빛을 등진 오크의 얼굴이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노란색 안광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보였다. 아직 사냥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오크의 기세가 흉악하다.

       

       “쿠워ㅡ”

       “으, 아… 아앗.”

       

       거대한 신장 차이에서 오는 압도감,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흐릿함, 오크의 검에서 느껴지는 피의 열감, 미친 듯이 박동하는 데이지의 심장.

       

       오크를 올려다보는 데이지의 몸이 파르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털썩.

       

       “아, 으아아… 흑, 흐윽!”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데이지 주변으로 물웅덩이가 생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 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과연 데이지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땅콩뇌가 되어버린 한스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저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끼요오오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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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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