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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0

       

       

       

       

       

       240화. 자동화와 북부 ( 6 )

       

       

       

       

       

       커다란 바위, 탄탈로스로 향하는 입구 앞에선 기병이 잠시 침묵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쿠그그그그ㅡ 쩌억!

       

       돌연, 커다란 바위가 제 몸을 반으로 가르며 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 무엇하나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를 지켜본 군중이 술렁였다.

       

       “꿀꺽… 저, 저게 탄탈로스로 향하는 길…!”

       

       지옥으로 가는 길.

       

       예술 혹은 신앙에 대한 열망이 일렁이는 몇몇의 눈이 기이하게 불탔지만, 차마 제발로 지옥에 걸어들어가는 미친 짓을 저지를 용자는 없었다.

       

       따각ㅡ 따각ㅡ

       

       물론 인간에게나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지, 밤의 기병에게는 꽃길로 포장된 귀향길이나 다름 없는 것. 기병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까만 어둠 속으로 제 몸을 들이밀더니, 금새 사라져버렸다.

       

       반으로 갈라졌던 바위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단단한 바위로 돌아왔다. 그들이 보러온 기병이 가버렸으니, 열광하며 소리치던 군중도 하나둘 흩어지며 제 갈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오, 오오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을 보았어!! 나는! 나는 그 안에서 예술을 보았다네!!”

       

       물론 몇몇 기인들은 커다란 바위를 붙잡고 울고 웃기를 반복했지만,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북부에서는 제법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밤의 기병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지만, 남기고 간 흔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악마를 사냥하는 기병…!! 악마와 죄인을 사냥해서 직접 지옥에 넣는!! 오, 오오! 그 푸른 안광과 까만 말!”

       “그 까만 갑주의 기병을 보았나?! 그 압도적인 무력은 또 어떻고!”

       

       예술가들은 두 무리로 나뉘었다. 한 쪽은 탄탈로스의 기병을 보며 불타오른 영감을 현실에 표출하기에 바쁜 이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우리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하지?”

       “뭐어, 설마 흙이라도 먹으면 어떻게든 살지 않겠나? 정 안 되면 길거리에서 초상화라도 그리면 빵은 사 먹겠지.”

       “이봐 친구들, 혹시 나한테 썩 괜찮은 제안이 있는데… 들어 보겠어?”

       “그쪽은 뉘쇼?”

       “이런, 실례. 나는 이런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야.”

       “”…프리우스 후작의 수인 애호 협회?””

       

       돈줄이 끊겨 막막해진 이들에게 드리운 수상한 협회의 수상한 스카우트를 받아 성도와 제국으로 향했다.

       

       상인들의 모습도 크게 바뀌었다.

       

       몬테그로스에서 그림 장사를 하던 상인들은 탄탈로스의 그림과 조각상을 싹 내려야 했다. 이 그림은 팔면 값 좀 나오겠는데ㅡ 싶다가도, 밤의 기병에게 반파된 도로의 흔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제아무리 황금에 환장하는 것이 상인이라는 족속이지만, 일단 목이 붙어 있어야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하아, 이 조각상… 아무리 봐도 그냥 전시만 해두기에는 너무 아깝단 말이지.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자네 미쳤는가?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그러다가 탄탈로스의 기병한테 잡혀갈지도 모른다고!”

       “쩝… 그렇지?”

       

       허나 한번 탄탈로스의 그림으로 돈맛을 본 상인들은 쉽사리 미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창고에 모셔둔 그림만 몇 점이며 조각상과 기념품은 또 몇 개인가.

       

       이걸 어떻게든 처분해야 그들이 살 수 있었다.

       

       “제국으로 가자. 제국에서는 이걸 팔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차라리 성도로 가려고 하네. 이걸 신전에 기부하면, 돈이라도 좀 쥐여주지 않겠는가? 자네도 제국 말고, 나랑 같이 성도로 가는게 어떤가?”

       “…그럴까?”

       “괜히 욕심부리지 말자고. 제국에서 그림을 팔다가 탄탈로스의 기병이 쫓아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난 아직도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해. 덕분에 잘 때 온 가족이 모여서 자고 있단 말이네.”

       

       그렇게 한동안 북부는 탄탈로스의 기병이 남기고 간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바람이 불었으면 무언가는 날아가고, 무언가는 새로 바람을 타고 오는 법.

       

       날아간 것은 돈과 루샨 공작의 머리카락이었다.

       

       “어, 어억!”

       “주인님! 주인님!!”

       

       탄탈로스의 기병이 대로를 가로지르며 몸소 상인들에게 경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뒷목을 잡고 쓰러진 루샨 공작.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현실을 부정했다.

       

       “허허. 허허허. 내가 요즘 일을 열심히 하기는 했나 보네. 참으로 끔찍한 꿈을 꾸었지 뭔가?”

       “…”

       “아니 글쎄! 꿈에서 탄탈로스의 기병이 나타나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하늘에서는 벼락이 떨어지는 꿈이었는데. 얼마나 생생했는지, 내가 아직도 손이 이렇게 떨린다네.”

       “…”

       “…”

       “…꿈… 맞지?”

       “공작님…”

       

       북부를 빠져나가는 상인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질수록, 루샨 공작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길게 늘어났다. 그의 눈에는 모두 도망치는 돈줄이었다. 허나, 저들을 어떻게 붙잡겠는가?

       

       탄탈로스의 기병이 이번만 봐주겠다고 으름장을 두고 갔는데!

       

       “공작님… 너무 상심하지 마시지요. 이번에 만신전에서 탄탈로스와 관련하여 문서를 보냈습니다.”

       “그, 아마 나쁜 내용은 없을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탄탈로스의 기병께서 이번 일은 불문으로 넘어가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단 이리 줘보게.”

       

       짧은 시간 동안 10년은 늙어버린 루샨 공작이 떨리는 손으로 문서의 봉인을 뜯었다. 온갖 미사여구와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건너뛰어서, 요점은 매우 간단했다.

       

       ‘너희 이번에 탄탈로스 관광으로 돈 좀 만지다가 탄탈로스 기병한테 혼났다며? 한번 봐준다고 했으니 우리도 별말 안 한다. 앞으로 조심해라.’

       

       “후우ㅡ”

       

       루샨 공작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눈깔이 뒤집어진 대사제들이 “이 불경한 자가ㅡ!”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사태는 피하긴 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기병이 들쑤신 이후, 며칠 동안 몬테그로스는 짐을 바리바리 싼 상인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빠져나간 몬테그로스는 이전의 북적이던 분위기에 비해 다소 심심한 분위기가 맴돌았고, 남은 예술가들은 탄탈로스에 대한 예술혼을 불태우는 이들뿐.

       

       마치 이전의 몬테그라스로 돌아간 것 같았다.

       

       물론 그때와 비하면 훨씬 사람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었다.

       

       온 힘을 다해 탄탈로스 관광 사업을 추진하던 루샨 공작의 마음이 허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아빠! 아직도 그렇게 빌빌거리고 있어?”

       “공작님. 저희 왔습니다…”

       “아… 프리가 왔구나. 이스칼 사도께서도 오셨구먼.”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그런 거지. 언제까지 그렇게 침울해할 건데?”

       

       요즘 매일 웃고 다니는 프리가와 이스칼이 루샨 공작을 찾아왔다. 둘이 손을 꼭 잡은 모양새다.

       

       멍하니 바라보던 루샨 공작의 눈이 살짝 빛났다.

       

       ‘…먹히겠구만.’

       

       이스칼에게서 젊을 적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면, 기분 탓일까.

       

       싱글싱글 웃는 프리가의 얼굴도 어쩐지 조금 다르게 보인다. 포식하기 직전 맹수의 그것이랄까.

       

       “공작님, 여기… 요즘 모습이 너무 안 좋아 보이셔서, 제가 직접 축성한 성수를 좀 가져왔습니다. 사제들께서 만든 것보다는 못하지만ㅡ”

       “이거이거, 또 아빠 앞이라고 겸손 떠네. 야, 그냥 솔직하게 말해. 너 이거 만든다고 며칠 동안 신성력 박박 긁어서 만든 거잖아. 효과도 훨씬 좋을 거라며.”

       “아, 아니. 공녀님.”

       “어허 씁! 내가 뭐라고 부르랬지?”

       “아무리 그래도 고, 공작님이 앞에 계시는데…”

       “어쭈?”

       “…프, 프리가.”

       “히, 좋아 좋아.”

       

       살짝 웃는 프리가의 눈에서 아주 꿀이 떨어진다.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루샨 공작은 어쩐지 옆구리가 살짝 시려왔다.

       

       뽀득뽀득.

       

       요즘 들어 점점 비어가는 정수리를 살짝 매만진 루샨 공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오늘 저녁에 애 엄마나 만나러 가야겠다. 요즘 바쁘다고 조금 소홀히 했으니, 아주 비싼 술을 챙겨가야겠지.

       

       “아, 그래. 프리가. 오늘 저녁 먹고 같이 네 엄마나 보러 가자꾸나. 얼굴 못 본 지 제법 됐으니, 심통이 아주 단단히 났을 거야.”

       “좋아. 나도 엄마 못 보러 간 지 좀 됐으니까.”

       “예비 사위께서도 오시게. 가족 될 사람이라면 애 엄마한테 인사 한번 해야지.”

       “예, 예비 사위…!”

       

       그날 저녁은 이스칼과 프리가, 루샨 공작 셋이서 먹었다. 물론 바짝 긴장한 이스칼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가늠도 할 정신도 없었다. 

       

       루샨 공작이 물어보면 대답하고, 프리가가 떠들면 맞장구치는 식사가 끝나고.

       

       커다란 술 한 병을 챙겨 든 루샨 공작은 어느 작은 묘비 앞으로 둘을 안내했다.

       

       “여기가 애 엄마 되는 사람이네.”

       “엄마, 나왔어.”

       

       봄바람을 맞아 파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비석의 주변으로, 유독 풀이 올라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루샨 공작이 서 있는, 그의 발자국에 꼭 맞춘 자리만 싹이 올리오지 않고 있었다.

       

       지난한 세월, 루샨 공작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내의 묘를 찾아왔으며, 얼마나 꾸준히 찾아왔는지. 싹이 올라오지 않는 그의 흔적이 말해줬다.

       

       이스칼은 목울대에서 턱 올라오는 숨을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퐁.

       

       술병을 딴 루샨 공작은 비석 위로 비싼 술을 아낌없이 뿌렸다. 이 모습을 보면 아내가 뭐라고 할까?

       

       ‘아마 먹지도 못하는 비싼 술을 아깝게 왜 버리냐고 했겠지.’

       

       그런 사람이었다.

       

       “여보. 내가 좀 늦었구려. 이해 좀 해주시게. 그간 일이 어지간히 바빴어야지.”

       “…엄마, 오랜만이야.”

       “……이스칼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비석은 그저 침묵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셋은 비석 앞에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절반 정도 남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는 프리가가 근처 나무에서 따온 이름 모를 열매였다.

       

       공작, 공녀, 신의 사도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쪼그려 앉아서 열매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물론 북부인 사이에서 술을 마신 이스칼이 제일 먼저 뻗었다.

       

       “윽, 우윽… 고, 공녀님… 도대체 세, 세상이… 빙, 빙…”

       “그래그래. 저게 좀 독한 술이긴 했어. 근데 너 또 공녀님이라고 부른다?”

       

       뒤지게 독한 술에 해롱거리는 이스칼을 프리가가 등에 업어 장기 투숙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우음… 윽, 무, 물…”

       

       나신으로 일어난 이스칼이 더듬거리며 냉수를 찾아 들이켰다. 쩍 갈라진 목에 물이 들어가니, 그제야 좀 살 것 같다.

       

       방 안을 둘러보니 바로 옆에 누운 프리가의 하얀 나신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가의 몸에는 열꽃처럼 울긋불긋한 지난밤의 흔적이 가득하다. 이스칼은 재빨리 프리가의 이불을 고쳐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빨간 혈흔이 침대에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이스칼의 것은 아니었으니… 프리가의 것이다.

       

       “아, 윽. 머, 머리가…”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창을 활짝 열었다. 퀴퀴한 방 안으로 시원한 공기가 가득 들어왔다.

       

       냉수를 한 모금 마시며,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러니까…’

       

       분명히 어제 루샨 공작, 프리가, 자신까지 셋이서 술을 먹었고… 잔뜩 취한 자신을 공녀님이 업어서 여기까지 온 다음에… 그 다음에…

       

       ‘여섯 신 맙소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헉… 허헉?! 엣?? 어, 엄청난 후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독자님께서 보내주시는 응원과 사랑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가 이런 응원을 받을 만큼의 작가인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보내주신 사랑의 전부를 돌려드리지는 못 할 망정, 이런 모습 옳지 않겠지요. 마음 같아서는 3연참을 하고 싶었지만…. 작가의 능력이 부족한 탓에 두 편이 전부입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응원에 감사하며, 또 다시 감사합니다.

    Ps. 이런 크고 거대한 후원은 작가의 여린 심장을 놀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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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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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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