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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0

       

       

       

       

       

       

       260화. 심연 ( 2 )

       

       

       

       

       

       사람이 너무 깜짝 놀라면 도리어 침착해진다고 하던가.

       

       지금 내가 딱 그랬다.

       맨날 온천에서 물놀이나 하고, 엉덩이춤이나 씰룩거리던 이베르가 고풍스럽게 떠드는 것을 보니 오히려 머리가 점점 식어간다.

       

       180도 돌아버린 정신이 다시 180도 돌아서 정상이 된 상황.

       

       

       “히, 히, 후ㅡ… 후우우…”

       

       

       어디선가 봤던 호흡법을 뱉으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순진한 응애인 줄 알았던 이베르가 사실 응애가 아니었다는,

       식스센스 뺨치는 초특급 반전이 일어난 상황.

       

       이 기분은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피카츄가 해맑게 피카피카ㅡ! 하다가 카메라가 꺼지면 뻑뻑 줄담배 피우는 걸 본 심정과도 비슷했다.

       

       

       – “저의 오랜& 친우이자, 형제, 어버이와도*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고결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자입니다.”

       

       

       

       이베르가 초원에 엎드려서 열심히 떠든다.

       방금까지 삑삑ㅡ 거리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다.

       

       

       – “그런 고귀한 °이가… 더러운 버러지들의 $술수에 당하여 타락하£고 있나이다! 그의 최후가 ▪︎이러해서는 아니 됩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다잡고 이베르의 말을 천천히 읽었다.

       말하는 내용을 보면, 누가 타락하고 있으니까 막아 달라는 뉘앙스처럼 보인다.

       

       

       – “그대의 가[장 천한 종이 이리 바라옵니¥다. 부디… 그에게 최후의• 안식을 허락하#시고,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소서…”

       

       “으잉?”

       

       

       읽다가 살짝 흠칫했다.

       이거 죽여 달라는 말 아닌가?

       

       앞에서 친구이자 형제, 아빠라고 했는데 죽여 달라고 하는 게 맞나?

       

       

       띠링ㅡ!

       

       《서리비룡 ‘이베르’는 과거의 오랜 인연, 용왕 ‘테리온’의 타락을 확인했습니다. 용의 수장이자 가장 오래 산 용 ‘테리온’이 완전하게 타락한다면, 지상에 크나큰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오.”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돼서 메시지로 나타났다. 우하단의 케넬름이 뿌듯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케넬름의 머리를 몇 차례 쓰다듬어 주고, 메시지를 정독하니 보통 심각한 내용이 아니다.

       

       용의 왕이 타락하고 있다고? 거기에 재앙이 닥쳐?

       이름만 들어도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무조건 해결해야겠네.”

       

       

       애타게 화면을 바라보는 이베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허락의 뜻을 표했다. 활짝 밝아지는 이베르의 표정.

       

       

       – 화악ㅡ!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삐이이이ㅡ! 삐이이이이!”

       

       

       내용물은 조금 징그러울 정도로 성숙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귀여웠다.

       

       일단 알겠다고는 했는데,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자연스럽게 케넬름을 바라봤다. 혹시 뭐라도 아는 거 있나 싶어서.

       

       

       – 《…?》

       

       

       케넬름이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첫 단추부터 쉽지 않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방방 뛰는 이베르를 가만히 지켜봤다. 이베르가 용왕의 타락을 확인했다고 했으니, 용왕의 위치라도 알려 주지 않을까 싶었다.

       

       

       – “삐이이이이익ㅡ!”

       

       

       그렇게 이리저리 날뛰는 이베르를 얼마나 봤을까.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함께 이베르를 바라보던 케넬름이 박수를 짝ㅡ 치며 벌떡 일어났다.

       

       

       – 슥, 스윽ㅡ

       

       

       그러더니 화면을 향해 눈 쪽에 무언가 쓰는 시늉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서 멍하니 쳐다보니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색안경?”

       

       – 《…!》

       

       

       바로 그거라는 듯 케넬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 건 해냈다는 뿌듯한 표정이다.

       

       확실히 ‘색안경’으로 이베르의 과거를 본다면 용왕에 대한 걸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뭐지?

       뭔가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일단 케넬름의 조언대로 머릿속 스위치를 눌러 ‘색안경’을 켰다.

       

       딸깍ㅡ

       

       망막 위로 투명한 비닐이 덧씌워지는 듯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곧장 이베르를 바라봤다.

       

       촤르르르륵ㅡ

       

       머릿속으로 무성 영화가 지나간다. 끝없이 긴 영화 필름을 배속하여 보는 듯, 수많은 장면들이 펼쳐진다.

       

       

       ‘어, 잠깐만… 이거 왜 이렇게 길어?’

       

       

       펼쳐지는 무성 영화가 무지막지하게 길다.

       내가 봤던 흔적 중에서 단언컨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 참고로 제일 길었던 건 ‘색안경’으로 봤던 태양이다.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좀 더 빠르게 넘기자.’

       

       

       장면을 빠르게 넘기다 보니 내가 원하던 부분에 도달했다. 

       성도를 돌아다니는 이베르와 순백의 신전, 케니스와 프리가… 그 곁에 있는 엘프의 모습이 보인다.

       

       단편적인 장면이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추하는 데는 충분했다.

       

       

       “벌써 케니스랑 프리가까지 이 일에 엮였네.”

       

       

       내가 준 대검을 통해 용왕이 케니스, 이베르와 접촉했고,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타락을 알릴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내가 즉흥적으로 골라서 만든 대검 때문에.

       

       일이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에 기분이 묘해졌다.

       운명의 실타래가 있다면, 내 손짓과 시선 한 번에 운명이 출렁이는 것 같다. 태풍을 만들어 내는 나비가 된 기분이다.

       

       

       “…거기에 엘프까지.”

       

       

       그나마 좀 멀쩡해 보이는 엘프의 존재까지 확인했다.

       

       

       딸칵.

       

       “어으. 아, 눈 아파…”

       

       

       ‘색안경’을 끄고 뻑뻑해진 눈을 비볐다. ‘색안경’은 다 좋은데 오래 쓰면 눈이 너무 아프다.

       

       지그시 눈을 누르며 알아낸 사실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니까 용왕의 위치가…’

       

       

       심연이라고 하는 장소였다.

       악마가 끝없이 태어나는 무한 리스폰 장소.

       

       그렇지 않아도 언제 한번 이 바퀴벌레 새끼들을 날 잡아서 조져야겠다고 벼르던 참인데, 마침 잘 됐다. 가서 싹 청소하고 와야지.

       

       

       ‘어?’

       

       

       ‘색안경’의 반동으로 뻑뻑한 눈을 문지르다가, 불현듯 아까 느낀 찝찝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

       

       

       내가,

       케넬름한테 색안경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딸깍.

       

       

       나는 다시 ‘색안경’을 쓰고 케넬름을 바라봤다.

       

       

       

       

       

       *****

       

       

       

       

       

       두껍게 쌓인 종이 뭉치는 고어로 빡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도 문법을 몇 차례나 빙빙 꼬아서 말이다.

       

       심연에 대한 정보를 엄중히 다룰 필요가 있기에 고어로 적은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단 심문관 중에서 정상이 없기에 그냥 이렇게 적은 걸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케니스에게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과거 완료형이고… 이건 인칭 대명사인가? 아, 분사구나. 이러면 이건 동사의 의미를 가지는 거니까…”

       

       

       

       케니스가 머리를 쥐어짜면서 열심히 고어를 해독하고 있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열심히 더듬거리기를 몇 시간.

       

       

       “끝났다!”

       

       

       점심 무렵에 시작된 고어 해독 작업은 늦은 저녁 무렵에야 끝났다.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치는 소리에 꾸벅꾸벅 졸던 프리가와 에스텔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정말이지 오래도 걸렸다.

       

       

       “우음, 어그윽…! 끝난 거야? 어우, 이게 도대체 몇 시간이나 걸린 거야?”

       

       “…츄읍”

       

       

       티나지 않게 침을 닦은 에스텔이 시치미를 뚝 뗐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게 너무 복잡하게 쓰여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네요!”

       

       

       케니스는 당차게 말하며 수많은 종이 뭉치 중에서 딱 한 장을 내밀었다.

       프리가와 에스텔의 표정이 괴상하게 찌그러졌다.

       

       

       “…고작 한 장?”

       

       “그 속도로 이 많은 종이를 전부 읽으려면 나도 늙어서 죽겠어.”

       

       

       프리가와 에스텔이 던지는 한 마디가 케니스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반박할 말이 없다… 몇 시간 동안 고작 한 장 번역한 건 명백히 그녀의 능력 부족이었다.

       

       

       “그러길래 내가 너네 아빠나 대사제 할배들한테 가자고 했잖아. 왜 굳이 고집을 부려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윽… 그, 그렇지만 공녀님이 먼저 저를 놀렸잖아요! 용사인데 고어도 못 읽는다고!”

       

       “그냥 한 말에 이렇게 발끈할 줄은 몰랐지! 그리고 용사가 고어도 못 읽는 건 맞잖아!”

       

       “어쨌든 읽었잖아요!”

       

       “몇 시간 동안 겨우 한 장이 읽은 거냐! 그런 건 우리 동네에서도 읽었다고 안 해줘!”

       

       

       이내 둘이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에스텔은 그 꼴을 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시가 급한 일이라고 하더니, 이래서야 언제쯤 심연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언제 심연에 간단 말인가. 

       

       

       “…”

       

       

       투닥거리는 둘을 구경하기 시작한 에스텔이 천천히 생각을 시작했다.

       

       

       심연, 심연… 심연에 간다… 심연이 뭐 하는 곳이었지?

       아, 맞아. 심연은 악마가 태어나는 곳이었어.

       

       그리고… 심연에 있는 악마는 악마 숭배자들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지. 비록 본체는 심연에 두고 있는 형태였지만.

       어쨌든 악마는 심연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그렇다면ㅡ

       

       

       “아.”

       

       

       에스텔이 작게 감탄을 뱉었다. 악마에 대한 것은 잘 모르지만, 이걸 어떻게든 잘 응용하면 뭔가 방법이 보일 것 같았다.

       

       

       “방법이 하나 떠올랐어.”

       

       

       작게 속삭이듯 말한 에스텔의 말에 투닥거리던 둘이 우뚝 멈췄다. 에스텔이 먼저 말을 꺼낸 것도 굉장히 드물었는데, 거기에 방법이 떠올랐다니?

       

       

       “무슨 방법, 아악! 공녀님! 머리카락 좀 놔요! …후우. 무슨 방법이요?”

       

       “심연. 심연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법.”

       

       “오. 정말?”

       

       “…사실 난 그냥 생각난 걸 말하는 거라.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몰라. 망상 같은 거야.”

       

       “그래도 일단 방법을 떠올렸다는 게 중요하죠. 말해 보세요. 뭔데요?”

       

       “음…”

       

       

       케니스와 프리가의 시선이 집중된 에스텔이 침음을 흘렸다.

       

       종교에 대해 문외한인 에스텔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말을 신전에서 하는 것이 맞나ㅡ싶었지만…

       

       케니스와 프리가는 어서 말해보라며 에스텔을 재촉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거 정말 말해도 되나?

       에스텔의 길쭉한 귀가 파르르 떨렸다. 

       

       

       “악마…”

       

       “”악마를?””

       

       

       결국 눈을 꼭 감은 에스텔이 크게 외쳤다.

       

       

       “악마를 소환해보면… 어떨…까…”

       

       “…네?”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베르야, 나를 속인거니?? 고룡을 응애로 살린 장본인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리얼리티 쇼크…!!!

    장마철이라 비가 미친 듯이 내립니다…!! 그야말로, 공기 반 물 반…!! 아니!! 이것은 이미 워터풀!! 정도를 넘어선 습기가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에어컨의 가호가 없었다면…!!! 우린 모두 습기에 패배해서… 워킹 곰팡이 포자 머신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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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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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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