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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4

       

       

       

       

       

       264화. 죽음을 갈망하여 ( 2 )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정말 드물다.

       

       퇴근하고 기분 좋게 피자에 맥주를 먹으려 했는데 갑자기 야근이 확정되는 일도 있고

       비 온다는 예보도 없었는데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홀딱 젖을 수도 있다.

       

       사소한 것들이라면 그냥 재수 없으려니-하고 넘길 수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건 사고가 트럭처럼 나를 덮치게 되면,

       어쩔 도리 없이 분하고 또 화가 나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그랬다.

       

       《Warning!》《Warning!》《Warning!》

       

       삐익ㅡ!

       

       《케니스, 프리가, 이스칼, 한스, 에스텔 등 71,438명의 전사가 ‘심연’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검붉게 번쩍이는 화면이 다급한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존재감을 자랑한다.

       

       화면의 구석에서 다급하게 발을 동동 구르는 케넬름은 당장이라도 내가 뭔가 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ㅡ

       

       “씹… 너무 빠른데.”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조만간 ‘심연’이라는 곳에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심연’에 갈 방법을 조사하라고 직접 ‘악마 1호’를 풀어주기도 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방생했던 ‘악마 1호’를 밤의 기병이 직접 나서서 회수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 “아그아아아아¤악!! 어째서! 어째서냐아°아아!! 왜, 왜!! 나를 죽이$지 않는 거냐!! 죽여!! 나를 죽£이라고!! 크아아아아아¡아!! 제발 나를 죽이라고!!!”

       

       – “…”

       

       밤의 기병은 발작하는 ‘악마 1호’를 묵묵히 포박하고 어깨에 둘러멨다.

       

       잠깐 바깥 공기 먹었다고 말 험해진 거 봐. 다시 돌아오면 탄탈로스 한가운데에 장식해야지.

       

       하여튼.

       중요한 건 지금 ‘악마 1호’가 아니라 심연이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연에 진입한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적어도…

       

       ‘황금 나무의 대궁을 엘프한테 주거나, 케니스의 무기를 격상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못 했다.

       ‘격상’의 쿨타임은 아직 2시간 정도 남았고, ‘황금 나무의 대궁’은 주인 없이 쓸쓸하게 인벤토리에서 썩어가고 있다.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

       

       무작정 손을 움직여 케니스를 따라 화면을 움직였다. 심연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위험한 장소라는 건 확실했다.

       

       – 《크, 큰일입니다…》

       

       당장 케넬름만 봐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었으니까.

       

       케니스를 찾아 화면을 돌리니 때마침 커다란 균열을 막 통과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공에 뚫린 저 균열을 넘어서 심연으로 향하는 걸까.

       일단 균열을 넘어간 케니스를 따라 화면을 움직여 균열을 통과했다.

       

       케넬름이 너무 불안해하길래 일단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한참이나 화면을 바라봤는데, 로딩이 이상할 정도로 길다.

       

       계속해서 까만 화면만 나온다.

       이 정도로 로딩이 길었던 적이 없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들면서 살짝 불안해질 무렵에서야.

       

       파앗!

       

       “나왔다!”

       

       화면에 케니스가 나타났다.

       

       케니스는 검붉은 황야에 서 있었다.

       

       보랏빛의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었고, 바닥에는 까만 연기가 기괴하게 몸을 뒤틀며 살아있는 뱀처럼 기어다닌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는 불꽃이 쏟아지고 녹색 비도 내리고 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풍경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심연?”

       

       악마가 태어나는 곳이라고 하더니.

       딱 악마 수준에 어울리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심연 돌입에 당황했던 머리가 점차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황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번 용왕 레이드는 그야말로 초초초대규모의 레이드.

       

       케니스와 다른 녀석들이 함께 입장한 것은 당연했고, 그 뒤에 있는 병력만 해도 7만에 가까웠다.

       이 정도 인원이 용왕인지 뭔지한테 칼질 한 번씩만 해도 용왕을 회 처먹을 수 있을 거다.

       

       옛날부터 다구리에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치지지지지직ㅡ!

       

       “어! 뭐, 뭐야. 왜 이래!”

       

       화면에 길게 노이즈가 생기며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마치 주파수가 안 맞는 안테나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는 것처럼, 화면 속의 풍경이 이리저리 일그러져 보였다.

       

       당황하여 이리저리 핸드폰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하고 탁탁 손바닥으로 쳐봤지만

       화면 가득 낀 노이즈는 사라지지 않았다.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주파수를 놓친 라디오처럼 거칠게 찢어진 잡음만이 들려올 뿐.

       

       “아, 아! 진짜 뭐지? 왜 이래 갑자기!”

       

       식어가던 머리가 화악 달아올랐다.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이다- 이딴 말을 지껄였지만, 그래도 직접 보지 못하면 불안하다.

       

       “! 케넬름!”

       

       고개를 휙 돌려 케넬름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 구석에 서 있던 케넬름이 두 손을 꼭 모아서 기도하는 자세로 눈썹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 《후윽, 크…! 흐으으…!》

       

       끙끙거리며 힘을 잔뜩 주는 기합까지 준다.

       아무래도 화면에 낀 노이즈와 케넬름이 관련된 것 맞는 것 같은데.

       

       – 《흐, 하으읏…! 하, 후으… 큽…!》

       

       아무리 봐도 케넬름이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케넬림이 한껏 기합을 주는 소리를 내도 화면의 노이즈는 잠깐씩 흔들리기만 할 뿐, 사라질 기미도 없었고.

       

       “돌겠네 진짜! 어, 그러니까… 일단, 일단 나가자.”

       

       짙은 노이즈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잔상을 더듬어 가며 간신히 화면을 움직였다. 장님처럼 한참이나 헤맨 끝에 간신히 균열에서 다시 빠져나왔다.

       

       치지지ㅡ….

       

        – 《하, 흐읏… 하으윽…》

       

       심연에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노이즈. 땀에 푹 젖은 케넬름이 풀썩 쓰러지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씁… 이거 진짜 조졌는데…”

       

       낭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심연으로 화면을 옮기면 노이즈가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이러면 내가 저쪽을 도와주는 건 당연히 무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잠깐이기는 했지만, 저쪽 동네 환경이 살벌했어. 거기에 독 안개랑 악마도 얼핏 보였으니까…’

       

       내가 본 것만 해도 불꽃 쇼랑 산성비, 독 안개, 악마… 이게 끝일 리 없다. 틀림없이 뭐가 더 있을 거다. 그런 것까지 전부 감안하면…

       

       난이도가 하늘을 뚫었다.

       

       7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적대적인 필드에서 레이드를 뛰는 셈이다. 그것도 내가 관여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곳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저 노이즈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당장은 내가 도와줄 수 없다. 행여나 아무거나 막 누르다가 팀킬이라도 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는 대참사니까.

       

       가슴이 조여온다.

       조급함에 쫓겨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며 다리를 떨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나 대신 저쪽을 도와줄… 그런 뭔가가… 아, 아아!’

       

       있다!

       

       몇 번이나 신전과 이 세계를 넘나들며 싸운 적 있는 녀석이 있었다.

       심지어 이번 일의 원흉…이라고 하면 좀 그러니까, 정보 제공자나 다름없는 녀석!

       

       신전으로 곧장 화면을 옮겼다.

       늘 그렇듯 푸르게 펼쳐진 초원이 펼쳐진다.

       

       – “삐익ㅡ!”

       

       때마침 ‘차원 관문’ 앞에 있던 이베르가 화면을 향해 힘차게 울부짖었다. 관문 앞을 계속해서 서성거리고 있었는지, 이베르 주변의 풀만 잔뜩 눌린 채였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곧장 이베르를 드래그해서 ‘차원 관문’ 속으로 던졌다!

       

       – “삐이익?! 삐이이이이이ㅡ….!”

       

       메아리치며 점점 작아지는 이베르의 비명이 들릴 듯 말듯 희미해진다.

       

       나는 이베르를 던지자마자 심호흡하며 눈을 꼭 감고 바닥에 누웠다. 이베르가 ‘관문’을 통과할 때면 꼭 찾아오는 어지러움에 대비하ㅡ

       

       피잉ㅡ

       

       “으… 후, 후우ㅡ”

       

       견딜만하다. 저번보다 훨씬 괜찮아.

       

       명치 언저리에 찰랑거리던 무언가가 잔뜩 빠져나가는 느낌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 않지만, 이 정도 현기증은 매우 양호하다.

       

       야생의 이베르를 메가 진화 상태로 던져놨으니 녀석은 알아서 심연으로 갈 것이다. 용왕을 죽여달라고 말한 장본인이니까 빠릿하게 움직이겠지.

       

       “당장 급한 불은 끈 것 같고. 문제는 이 노이즈인데…”

       

       급한데로 이베르를 투입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노이즈.

       이걸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

       

       

       

       

       

       챙, 채채챙! 촤아악! 푸욱!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는 심연의 황야는 때아닌 소란에 잠겼다.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피가 쉴 새 없이 바닥에 뿌려졌고, 갓 튀어나온 싱싱한 내장이며 고기가 사방에 가득했다.

       

       “크아악!! 내, 내 팔! 아악!”

       

       “부상자를 뒤로 호송해라! 방패를 높이 들어! 더 높이 들으라고!!”

       

       “쿱, 커허억! 케헥ㅡ! 하, 항마부…가…”

       

       모든 전사들이 무사히 심연으로 넘어왔지만, 그제야 비로소 시작이었을 뿐이다.

       

       살아있는 인간들을 어떻게든 죽여서 찢어먹겠다는 듯, 온 사방이 꿈틀거리며 악마가 튀어나왔다. 심연이라는 차원 자체가 거대한 괴물의 위장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눈 감지 마세요! 눈 떠요 눈! 크게 숨 쉬고!”

       

       “항마부! 항마부 가져와! 지금 독기가 계속 강해지고 있잖아!”

       

       후방의 사제들은 피를 토할 지경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신성력을 쏟아냈다. 잘린 팔을 붙이고, 독기를 몰아내고, 까맣게 탄 항마부 중에서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정화한다.

       

       7만에 달하는 정예 중의 정예들이건만.

       심연은 끝없이 악마를 쏟아냈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닥에서 악마의 손톱과 이빨이 번뜩였다.

       

       콰앙! 촤아아악! 부우웅!

       

       그 모든 것을 뚫고 느리게라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이들 덕분이었다.

       

       “케니스! 어느 쪽이냐!”

       “저쪽! 저쪽이에요!”

       

       용사를 필두로 하여 계속해서 몰려오는 악마의 파도를 뚫는 이들. 수시로 뒤틀리는 방향감 속에서 케니스의 인도를 따라 나아갔다.

       

       케니스가 성검에 묻은 끈적한 체액을 휙 털어내며 사방을 둘러봤다.

       

       “…너무 늦어.”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지만, 턱없이 느리다.

       목표로 하는 용왕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속도는 곧 생명이었다. 

       

       심연이라는 공간은 인간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고, 악마는 계속해서 몰려왔다.

       

       “! 조심하세요!”

       

       촤악!

       

       “가, 감사합니다!”

       

       이름 모를 전사의 등 뒤로 달려들던 악마의 주둥이를 베어낸 케니스가 종횡무진 전장을 누볐다. 케니스의 성검이 번뜩일 때마다 네다섯의 악마가 바닥에 쓰러졌다.

       

       키에에엑! 인간이다! 꿔어어어얿!!

       

       “진짜! 끝도 없이! 몰려오네!”

       

       콰앙!

       

       프라가가 거친 욕설과 함께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난전이라면 딱 그녀 취향이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바닥에는 독 안개가 흐르고 방향감이 계속 뒤바뀐다면… 말할 것도 없으리.

       

       “퉷! 거지 같네.”

       

       프리가가 걸쭉하게 욕을 뱉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방금 왼쪽과 뒤의 방향감이 또 뒤틀렸다.

       온 시야에 닿는 것이 전부 악마 악마 악마.

       

       존나 강력한 무언가로 싹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케니스가 보여줬던 그 불꽃 쇼를 썼으면 했지만… 그건 아직 때가 아니라며 아끼더라.

       

       후우ㅡ

       

       프리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닥치대로 죽이고 죽여도 광기 어린 눈으로 이빨과 손톱을 들이미는 꼴이라니.

       

       파르르르-.

       

       “?”

       

       용 사냥꾼의 도끼가 무언가에 공명하며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갸웃한 프리가는 어딘가 목덜미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고.

       

       무언가를 찾아 자신도 모르게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지…?”

       

       그리고 저 뒤에서.

       하늘을 아우르는 기세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산이 내려앉는 듯한 위압감.

       익숙한 형체의 것.

       

       프리가의 눈이 잔뜩 커지더니 크게 외쳤다.

       

       “도마뱀!!”

       

       프리가의 부름에 답하듯, 짙푸른 서리 빛의 용은 대지를 쓸어 버릴 기세로 날아와서는ㅡ

       

       푸콰아아아아악!!

       

       《재가 되어라, 이 버러지들아!!》

       

       푸른 불꽃을 토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심연… 과연 그 이름처럼 흉악한 환경…!!! 과연 주인공과 케니스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 작가인 저도 많은 관심과 흥미가… 가는군요…!!!! 끼뇨오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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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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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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