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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2

       

       

       

       

       

       272화. 심연을 부숴라 ( 5 )

       

       

       

       

       

       “오, 오오…”

       

       여운에 젖은 데모닉이 하늘을 올려보며 길고 긴 기도에 빠졌다. 구더기의 체액으로 만들어진 끈적한 진탕에도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데모닉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사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죽어서 저 영광스러운 이들의 사이에 설 수 있는가?”

       

       “한 줌 부질없는 나의 목숨을, 기꺼이 그대에게 바치겠나이다!”

       

       빛에 휩싸인 수많은 성인과 성자들. 그 사이에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라이언하트의 모습.

       

       그것은 성기사들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생전 가장 영광스러운 팔라딘으로 지내며 만인의 귀감이 되었고, 최후에는 대악마를 홀로 소멸시키는 업적을 달성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의 군세에 합류하였다.

       

       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된 일이란 말인가.

       

       “라이언하트 경… 내 반드시 그분의 뒤를 이어 영광의 군세에 합류할 것이다!”

       

       “전장으로, 전장으로! 내 최후를 영광으로 장식할 영광의 전투가 필요하다!”

       

       당장이라도 전장에 나가서 악마의 모가지를 썰어버릴 듯 기세가 흉흉해진 전사들.

       기도를 마친 데모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대들이여! 싸워라! 명예롭고 영광되게 싸운 그대들은 빛의 군세에 함께하리라! 라이언하트의 영광을 위해!”

       

       “여섯 신의 광명을 위해!”

       

       전사들의 눈에 전의가 끓어올랐다.

       이전에도 전의가 가득했지만, 이번 것은 그 정도가 달랐다.

       

       순수한 투쟁에 신앙과 광기가 섞인 무언가였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참 단순해서 좋군.》

       

       이베르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영감은… 정신을 잃었나.》

       

       어마무시한 양의 구더기를 몸에서 쏟아낸 용왕은 기진맥진하여 시체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커다란 가슴팍이 천천히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탈진한 듯싶었다.

       

       썩어 문드러진 부위가 상당한 만큼, 몸을 파먹고 있던 구더기의 양도 엄청났다. 그래도 이제는 구더기들이 거의 다 기어 나왔다. 남은 것은 정말 잔챙이에 가까운 녀석들이리라.

       

       《흐음. 이 영감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베르는 고민했다. 다름 아닌 어떻게 해야 그를 죽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과거에 그가 했던 것처럼 가슴팍을 갈라서 심장을 터뜨리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심장은 용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었으니까. 

       

       《…쉽지는 않을 것 같군.》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성장해 버린 덩치가 문제다. 어지간한 공격은 비늘도 뚫지 못할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새파란 벼락에 용왕이 그저 몸만 움찔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지 않았나.

       영감을 확실하게 죽이려면 최소한 신의 벼락보다 강한 일격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도대체 어찌해야…》

       

       이베르의 고민이 깊어졌다.

       

       갖가지 방법들이 떠오른다.

       

       극독을 제작하여 먹이는 방법, 몸 안에서 심장까지 파고들어 죽이는 방법, 눈을 통해 뇌를 파괴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베르의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쥐 죽은 듯 몸을 누이고 있던 용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쿠그그그그…

       

       고개를 들며 일어나는 굉음에 모두가 긴장하며 저도 모르게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영감. 정신이 드나? 마침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영감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뭐가 있는지ㅡ》

       

       《…》

       

       이베르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용왕은 고개를 쭈욱 뻗었다. 커다란 아가리가 쩌억 벌어지며 그 내부의 살벌한 이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요, 용왕이 입을 벌리고 있다!”

       

       “다들 뒤로 물러나라! 용왕이 닿지 못할 곳까지 물러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원정대가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지금 보니 용왕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글거리며 불타던 눈동자는 까맣고 혼탁한 색으로 변하여 어딘가 몽롱한 기색이 가득했다.

       

       《무슨ㅡ! 영감!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정신 차려라 영감!》

       

       이베르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용왕의 눈은 여전히 탁한 색으로 가득했다. 

       턱을 크게 벌린 용왕은 천천히 바닥을 향해 고개를 내렸다. 마치 무언가를 먹으려는 동작이었다.

       

       허나 용왕의 고개가 향한 곳에는 용왕이 먹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 저건 설마…!”

       

       제정신이라면 먹지 않을 것이 있었다.

       구더기의 사체가 가득했다.

       

       으적, 끄드득ㅡ! 꽈득…!

       

       구더기의 사체를 턱 가득 쓸어 담은 용왕이 탁한 눈으로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입 안 가득 찬 구더기 터지는 소리가 질척하게 울려 퍼졌다.

       

       “이게 씹 도대체 뭔…”

       

       《영감…》

       

       말로 설명 못 할 기현상에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구더기의 사체를 꿀꺽 삼킨 용왕은 기계적으로 턱을 벌려 바닥의 구더기 사체를 다시 입에 담기 시작했다.

       

       《끄, 끄으으으…! 나, 나는…》

       

       여전히 탁한 눈의 용왕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구더기를 씹어 삼킬 때마다 검게 물든 눈의 탁기가 계속해서 진해지며, 몸을 묶은 사슬이 불길하게 떨려왔다.

       

       《죽어야… 죽어야 한… 다…! 나, 를… 어서 죽여다오… 내, 내 안에ㅡ!! 내 몸 안에… 끄으으윽!!》

       

       “뭐?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의 연속.

       프리가가 짜증스럽게 되물으며 머리를 긁었다. 정말이지 사람 복장 터지게 말하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말해주는 법이 없다니.

       

       “야 도마뱀! 넌 저게 무슨 소리인지 아냐?”

       

       《음. 으음…》

       

       이베르가 떨리는 눈으로 구더기 사체를 씹어 삼키는 용왕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조금 가늘게 떨려왔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정말로 상상하기 싫었던 최악의 가정이다.

       

       《영감은 지금… 타락이 정말 많이 진행된 모양이다.》

       

       악마는 악마를 포식해서 힘을 키울 수 있다. 그렇기에 악마의 기본은 동족상잔. 

       그리고 영감은 아마 추정하건대… 먼 과거에서 모종의 사건으로 타락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저 사슬로 억제하면서 스스로 잠에 빠지는 걸로 최대한 늦춘 모양이다. 왜 목숨을 끊을 수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더기들은 애벌레의 형태였지만, 엄연히 악마의 일종.

       영감이 구더기들의 사체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마치 악마가 다른 악마를 먹고 힘을 키우는 것과 같은 이치.

       

       “뭐? 지금 그러면 진짜 엿 됐다는 소리 아니야?!”

       

       타락을 막는 것이 임계점에 달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프리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펄쩍 뛰었다.

       

       《───! 》

       

       짐승에 가까운 형태의 포효가 용왕의 아가리를 타고 퍼져 나왔다. 고통과 광기에 차오르는 용왕의 눈동자.

       당장이라도 사슬을 부수고 일어나려는 듯, 용왕이 거칠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카가가각! 차르륵! 카르르륵!

       

       살벌하게 흔들리는 사슬의 비명이 어쩐지 끔찍한 미래를 예언하는 경종의 울음과 비슷하다. 

       

       《이제 정말… 정말 시간이 없다! 영감을 죽여야 한다! 더 꾸물거리다가는 모두 죽고 말 거다!》

       

       이베르가 다급하게 외쳤다. 원정대의 마음이 조급하게 타들어 갔다.

       용왕을 죽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용왕의 목이든 심장이든 찌를 수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을 뿐.

       

       “에이씨! 일단 패! 패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프리가!”

       

       물러나도 방법이 없다.

       프리가는 그 상황에서 도리어 앞으로 뛰어드는 것을 선택했다. 앞으로 홀로 뛰쳐나간 프리가의 모습에 기겁한 이스칼이 따라 뛰쳐나갔다.

       

       “아빠! 저도 일단 가볼게요! 뒤를 부탁해요! 한스! 어서 가요!”

       

       “저, 저도 돕겠습니다!”

       

       이에 질세라 케니스가 묵빛 대검을 꼬나들고 발광하는 용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스도 은근슬쩍 케니스의 옆을 따라 달렸는데, 용기의 룬이 밝게 빛나는 채였다.

       

       《───!》

       

       “크읏…!”

       

       거대한 재앙을 향해 뛰어드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씹은 데모닉이 외쳤다.

       

       “전사들은 앞으로 나와 진형을 갖춰라! 검과 방패를 들고 영광스러운 전투를 준비하라! 발리스타를 준비해라!!”

       

       7만 명의 군세가 일제히 움직이며 하나의 단단한 벽처럼 형태를 이루었다. 마치 성을 상대로 공성전을 펼치는 모양새.

       

       전사들 사이로 거대한 화살이 장전된 발리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기둥에 가까운 두께였다. 이걸 심연까지 분해된 형태로 들고 온다고 제법 고생했다.

       

       “장전ㅡ!”

       

       데모닉의 외침이 전 군세에 울렸다.

       발리스타가 끼기긱-하는 소리를 내며 한껏 뒤로 당겨졌다. 거대한 화살촉에는 사제들이 밤낮에 걸쳐 축성한 신성력이 듬뿍 담겨 있었다.

       

       “케니스ㅡ! 프리가ㅡ! 이스칼! 피해라!!”

       

       열심히 용왕의 비늘을 두들기던 이들이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발사!”

       

       수천의 발리스타가 일제히 화살을 쏘아내자, 하늘에서 마치 비가 내리는 듯싶었다.

       

       티디디딕!

       

       신성력을 흘리며 옅은 궤적을 남긴 거대한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 용왕의 비늘을 두들겼다. 대부분은 맥없이 부러지고 튕겨 나왔지만, 그중 요행에 가까운 타격을 입힌 것도 존재했다.

       

       《───! 》

       

       눈에 화살이 꽂힌 용왕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맞았다! 효과가 있어!”

       

       “눈! 용왕의 눈을 노려!”

       

       “어차피 발리스타로는 피해를 주기 힘들어! 용왕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데 집중해!”

       

       발리스타가 용왕의 신경을 끄는 사이, 케니스는 열심히 용왕의 비늘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이익! 뭐가 이렇게 딱딱해!”

       

       카카카칵!

       

       묵빛 대검과 부딪힌 용왕의 비늘에서 불똥이 튀어 올랐다. 온 힘을 다해 휘둘렀는데 비늘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용왕의 비늘은 한 장 한 장이 케니스의 덩치와 비슷한 크기였고, 그 경도와 내구성도 어마무시했다. 열심히 도끼를 휘두르는 프리가와 한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야! 얘 진짜 뒤지게 튼튼한데?!”

       

       “아무리 휘둘러도 흠집 하나 안 갑니다! 손이 아파올 지경이에요!”

       

       “큿…”

       

       케니스가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었다.

       

       발광하는 용왕의 눈은 이제 먹물처럼 탁한 색으로 가득했다. 본래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난폭한 짐승의 그것이었다.

       

       《───!! ───! 》

       

       차르르르륵!! 카가가가강!

       

       잔뜩 약이 오른 용왕이 거세게 포효하며 몸을 뒤흔들었다.

       

       용왕의 몸을 묶은 거대한 사슬 중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타캉ㅡ!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사슬이 부서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히에엑…!!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심연이 불타 없어질 때까지 야스라니…!! 그런 극악무도한…!! 케넬름이 혹사 당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주인공의 똥을 치우는 쇠똥구리 모드…!!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몰?룹니다?? 아니 정말로 언젠가는?? 작가인 저도 야쓰?는 잘? 몰?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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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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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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