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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3

       

       

       

       

       

       273화. 심연을 부숴라 ( 6 )

       

       

       

       

       

       – 타캉ㅡ!

       

       화면 속 용왕을 봉인하고 있던 사슬 중 하나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날아오른 사슬의 파편들.

       그걸 보는 내 심장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던 것이 부서진다는 것은 다가올 파멸의 예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 《────!!》

       

       두 눈이 까맣게 물든 용왕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누가 봐도 광폭화 혹은 폭주의 증상이었다.

       사슬 하나가 부서진 탓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 거칠게 난동을 부리는 듯 보였다.

       

       용왕을 향해 반사적으로 번개를 떨구려다가 가까스로 손가락을 멈췄다.

       

       ‘이 스킬은 아니야. 아까 전에도 한 번 써봤을 때 용왕한테 거의 안 먹혔잖아. 지금 벼락을 떨구면 괜히 더 자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고니 선생께서 이르시길.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했다.

       

       당장이라도 사슬을 모조리 끊고 일어날 것 같은 용왕의 난동에 당황했던 마음을 진정시킨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지금의 나는 매우 침착하고 냉정하다… 냉정. 평정심. 

       

       좋아. 뺨을 짝- 두들기며 정신을 일깨웠다.

       

       ‘생각해, 생각. 지금 상황이 어떻지?’

       

       침착하고 정확하게, 하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다.

       화면을 움직여 원정대의 곳곳을 눈에 담았다.

       

       지금이 비록 망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처럼 느껴질지라도,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는 마련이다.

       

       케니스를 비롯한 다른 녀석들이 용왕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발리스타는 개뿔이 이쑤시개처럼 튕겨 나가고, 용왕은 사슬 하나를 끊어낸 상황이었을지라도.

       

       ‘분명히 뭔가 용왕을 잡을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있어야 한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던데, 설마 약점 비슷한 것이 없을까.

       

       …

       

       짧은 시간 동안 전장 곳곳을 빠르게 훑어본 결과, 나는 다시 한번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진짜 엿 됐다!”

       

       용왕의 비늘은 아무리 공격해도 흠집 하나 가지 않았다. 사슬을 끊어내려는 용왕의 몸부림은 계속 심해졌고 이베르마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 영감! 크으윽! 제발 좀 멈추란 말이다!》

       

       날뛰는 용왕의 머리 위에서 열심히 물고 뜯고 할퀴는 중인데 흠집 하나 안 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의 방어력.

       

       – “하아, 하으윽… 크으으!”

       

       기도를 올리는 케넬름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머리 위의 휘광은 아까보다 더욱 작아져서 노을처럼 간신히 그 형태만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심연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초조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우를 반복해서 걸었다.

       손톱이 부서져라 깨물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생각해, 생각! 물리적인 타격도 안 먹히고, 내가 가져온 벼락도 안 통하잖아. 나머지 스킬은? 다른 스킬은 어떻지?’

       

       내가 쓸 수 있는 스킬 슬롯은 모두 다섯 개.

       그중 벼락과 광역힐, 기마대 스킬로 세 개를 채웠고 나머지 두 개는…

       

       ‘…하필이면 지금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야.’

       

       반짝이는 안내 벌레와 순수한 안개. 각각 안내 유도 기능과 디버프 제거 효과가 있는 스킬이다.

       

       직접적인 전투력 대신 유틸성이 강한 스킬이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전투용 스킬이나 더 챙길…

       

       “…전투용… 스킬을…?”

       

       쥐어뜯던 머리카락을 놓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불현듯 스친 깨달음의 단달마에 소름이 오소소 올라온다.

       

       왜 지금까지 이 방법을 잊고 있었지?

       아니, 애초에 어떻게 이 스킬의 존재를 잊고 있을 수가 있지?

       

       다급하게 핸드폰을 붙잡고 화면을 넘겼다. 익숙한 상점이 나타났고 곧장 스킬 항목으로 향했다.

       번쩍거리는 온갖 네온 글자와 화려한 세일 마크가 붙은 스킬들 사이로 단 하나의 스킬을 찾아서 헤맸다.

       

       ‘어디 있는 거야!’

       

       용왕은 온갖 공격을 견딜 만큼 튼튼하고, 덩치에 걸맞게 체력 또한 무지막지하다.

       그런 존재가 얼마나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명확한바.

       

       그런 용왕과 싸움을 한다면 이쪽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구태여 싸우지 않고 이긴다면?’

       

       순살.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죽여 버린다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 찾았다.”

       

       애타게 찾아 헤매던 스킬을 찾아냈다. 어찌나 꼭꼭 숨어있었는지 정말이지 한참이나 찾아 다녔다.

       

       이 간결하고 완벽한 계획에는 단 하나의 맹점이 존재했으니.

       그 누구도 다치지 않고 상처 입지 않는 이 계획의 유일한 단점, 그것은 바로…

       

       《즉사의 일격(일회성) : 99,000원》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 하여도 결국 생명. 모든 생명의 종착지는, 죽음입니다.》

       

       …내 통장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아아… 이걸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세계의 완성… 인가?”

       

       《결제하시겠습니까? Y/N》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내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며 멈췄다.

       

       ‘정말로… 정말로 이것밖에 방법이 없을까?’

       

       내 통장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냐…?

       ……찾아보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

       

       

       

       《────!!》

       

       타캉ㅡ!

       

       용왕의 두 번째 사슬이 박살 나며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에 비례해 더욱 자유로워진 용왕은 거세게 날뛰었다.

       

       용왕의 몸부림에 대지가 부서지고 갈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크으윽! 유니콘! 한스! 지금 사슬 상황은 어떤가요!”

       

       “잠시만요! 유니콘!”

       

       《어서 타게 주인!》

       

       케니스의 외침에 한스를 등에 태운 유니콘이 빠르게 하늘로 솟구쳤다.

       

       위에서 바라본 전황은 굉장히 암울했다.

       두 번째 사슬이 부서진 용왕은 더욱 거칠게 날뛰며 원정대를 몰아붙였고, 원정대는 용왕의 거대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이힝… 상황이 많이 어렵구려…》

       

       “다른 사슬의 상태도 너무 안 좋아. 당장 부서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한스가 다른 사슬의 상황을 살피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두 번째 사슬이 부서진 이후, 다른 사슬들이 눈에 띄게 팽팽해졌다. 

       

       남은 사슬은 얼추 헤아려도 스무 개 남짓.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케니스! 남은 사슬도 상태가 불안해요!”

       

       “치잇.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지 못한 소식에 케니스의 안색이 까맣게 죽었다.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용왕은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높고 튼튼해서 아무리 두들겨도 넘을 수 없는 벽.

       

       까득.

       

       “아냐… 아니야, 케니스. 아직… 아직 할 수 있어. 포기하지마.”

       

       고개를 훌훌 털어낸 케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빛의 성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손바닥이 터져 붉은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항마부가 까맣게 타들어가며 독기를 흡수하고 있었고, 발광하는 용왕은 자신을 구속하는 사슬을 끊기 위해 몸부림쳤다.

       

       시간이 없다.

       더,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어떻게…?’

       

       별빛.

       자신의 몸에 스며든 별빛을 움직여야 한다.

       

       “스읍… 후우ㅡ”

       

       케니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다. 그녀의 몸 곳곳에 잠들어 있는 별빛, 그리고 별빛의 잠재력.

       

       케니스가 필사적으로 별빛들을 움직였다. 그녀의 의지를 따라 천천히 흐르는 별빛이 옅은 은하수처럼 흘러나와 케니스의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저 흘러나오는 형태의 별빛으로는 부족했다. 이건 별빛을 다루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천하의 명검을 불쏘시개로 쓰는 꼴.

       

       ‘불태워!’

       

       케니스가 마음속 깊이 담아둔 감정을 올올이 풀어 헤쳐 별빛에게 쏟아부었다. 기쁨도 슬픔, 분노도 부담과 상실감도.

       모조리 별빛에게 쏟아부었다.

       

       타닥… 탁, 치지지직ㅡ!

       

       케니스의 주변으로 부싯돌 튀기는 소리가 들려오는다 싶더니 옅은 별빛이 타탁-타오르기 시작했다.

       별빛을 장작 삼아 가세게 타오르던 불꽃은 이윽고 한 쌍의 날개가 되어 펄럭였다.

       

       펄럭!

       

       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한 쌍의 날개가 움직였다. 묵빛 대검을 따라 별빛이 흐르며 불길이 타오르고, 거대하게 불타는 검의 헝태를 이루었다.

       

       주홍빛과 붉은빛이 섞인 날개를 단 케니스가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짙은 독무 사이에서 피어오른 그녀는 마치 샛별과도 같았다.

       어둠을 밝히는 단 하나의 샛별.

       

       무언가에 홀린 듯, 모두가 눈동자가 케니스를 향했다.

       

       “…기필코, 제가 당신을 막겠습니다.”

       

       케니스의 황금빛 눈동자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붉은빛으로 이글거렸다. 단호한 각오로 뭉친 케니스의 선언.

       

       별빛을 감지한, 이제는 반쯤 악마가 되어버린 용왕이 케니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

       

       눈이 까맣게 물든 용왕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낮게 울부짖었다.

       살의, 식욕, 파괴. 아주 단순한 욕구로 뭉친 울음소리였다.

       

       크게 벌어진 용왕의 아가리에서 까만 불꽃이 타타탁-! 튀며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이베르를 통해 몇 번 봤던 전조 증상. 

       용이 숨결을 뱉기 직전의 동작이다.

       

       “용의 숨결이다!! 뒤로 빠져라! 전속력으로 빠져! 부상자들은 뒤로 옮기고, 사제들은 닥치는 대로 축복을 내려라!”

       

       데모닉이 다급하게 명령을 내려 원정대를 통솔하기 시작했다.

       용왕의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광야. 

       아무런 엄폐물 없이 용의 숨결을 맞이하는 것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막아야 한다! 지금은 안 돼!》

       

       득달같이 달려든 이베르가 용왕을 향해 몸을 던졌다. 커다란 언덕 크기의 이베르가 전력으로 몸을 던지자 쿵ㅡ! 하는 소리가 퍼지며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끄으으…》

       

       효과가 있었는지 약간 비틀거리는 용왕. 허나 아가리 안에서 불길하게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의 기세는 여전했다.

       

       “차아앗ㅡ!!”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케니스가 용왕의 턱을 향해 날아갔다. 펄럭이는 불꽃의 날개 한 번에 공간을 접어서 나는 듯, 그녀의 신형이 쭉 늘어나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글거리는 불의 대검을 따라 긴 불의 꼬리가 늘어졌다. 

       직선을 따라 뻗어진 검의 궤적이, 한순간 초승달의 형태를 그리며 길게 휘어졌다.

       

       극한의 집중 속, 케니스가 인지하는 세상도 길게 늘어졌다.

       엿가락처럼 주변의 풍경이 길게 늘어난다.

       

       가속된 인지를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이 아주 느리고, 천천히 움직인다.

       

       휘이이ㅡ

       

       느려진 세상 속에서 케니스를 따라 한 줄기 바람이 살며시 불어왔다.

       

       독무가 가득한 심연에 어울리지 않는, 어쩐지 미약한 온기를 품고 있는 바람 한 줄기.

       

       케니스는 얇고 가는 바람에 실려 온 한 소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후후후. 언니여, 힘이 필요한가?》

       

       장난기 가득하고, 맑고 순수한

       악의 없는 소녀의 목소리.

       

       케니스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목소리 밖에 아는 것이 없었지만.

       

       ‘……아르고스?!’

       

       부유섬에 위치한 거대한 궁전의 자아, 아르고스가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심연에 있는 케니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용왕…!! 그야말로 튼튼하고 딱딱한, 거기에 아픈…!! 단단묵직…!! 불합리…!! 너프가 시급한 존재…!! 과연 주인공과 케니스는 어떻게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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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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