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5

       

       

       

       

       

       275화. 용이여 잠들어라 ( 2 )

       

       

       

       

       

       두근- 두근-

       

       케니스는 떨리는 눈으로 하얀빛에 휩싸인 검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깃털처럼 내려앉은 대검은 놀랍도록 가벼웠다.

       

       그와 동시에 가볍게 맥동했다. 마치 가녀린 생명을 품에 안은 것처럼, 얇은 맥박이 느껴졌다. 이건 그저 거대한 망치의 여운이 남은 것일까?

       

       “이게…”

       

       묵빛을 띠던 대검은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굉장히 진해졌다. 거친 불꽃의 일부분을 잘라서 검으로 붙인 듯, 당장이라도 타오르며 이글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와 더불어 삐죽하게 솟아난 네 개의 톱날은 구불구불 춤추는 듯 솟아올랐으며 이는 마치 그녀의 검을 하나의 불꽃처럼 보이게 했다.

       

       정체 모를 괴수의 손바닥 같은 형태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외형으로 바뀐 그녀의 성검.

       조금은 낯설었지만 케니스는 지금의 형태가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꾸욱.

       

       손아귀에 착 감기는 감각. 

       

       《히힛. 언니 마음에 들어?》

       

       “…정말로 마음에 쏙 들어. 정말로. 이 이상의 명검을 내 평생 만질 수 있을까?”

       

       아르고스의 물음에 케니스가 살짝 몽롱한 기색으로 답했다. 

       

       용사와 성기사 이전에, 케니스 또한 한 명의 검사. 

       명검에 대한 욕심 또한 당연히 존재했다. 그간 성검이라는 세기의 명검을 가졌기에 다분히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

       

       《힛… 다행이네.》

       

       “정말 고마워, 아르고스. 이 검은… 여섯 번째 신께서 만들어 주신 거지?”

       

       《맞아. 난 그냥 옆에서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위대하신 분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언니의 인사라면 엄청 좋아하실 거야!》

       

       “…그래, 그래야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한낱 인간으로서 이토록 신의 총애를 받은 존재가 또 있을까?

       

       아마 최초의 성녀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케니스처럼 신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감사하고, 또 과분하다.

       신께서 자신을 너무나 애정하시는 게 느껴져서. 

       

       “…꼭 해낼게.”

       

       또 믿는 것이 느껴졌기에.

       케니스는 더더욱 굳게 검을 쥐었다. 

       

       한없이 가볍게 들리는 검이었으나,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잠시 훈훈한 분위기가 맴돌고.

       

       《아, 아! 깜빡할 뻔했네!》

       

       당황한 아르고스가 화로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의 일부분을 떼어내 바람에 날려 보냈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던 작은 불티는 지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원정대의 누군가에게 떨어졌다.

       

       “…이건.”

       

       손가락이 부르트게 활을 당기고 있던 에스텔은 느닷없이 자신의 품에 안긴 불티를 천천히 손에 품었다.

       잠시 온기를 남기던 불티는 이내 형상을 바꾸더니 거대한 대궁의 것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고목을 재료로 사용하였는데, 대궁의 크기는 에스텔의 머리보다 두 뼘 정도 컸고 활시위도 굉장히 굵고 억셌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감촉은 부드럽고 고목이 보낸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궁이었다.

       

       “신께서 나에게…?”

       

       상서로운 외형의 대궁이다. 불티에서 피어오른 고목의 대궁이라니.

       필시 신께서 그녀에게 주신 것이리라.

       

       전장의 한복판이라는 것도 잊은 에스텔이 대궁을 천천히 손가락을 쓸었다.

       

       “황금… 나무?”

       

       몽롱한 기색으로 대궁을 쓰다듬던 에스텔이 흠칫 놀랐다. 이 기척, 이 기운… 틀림없는 황금 나무의 것이다.

       

       …왜 대궁에서 황금 나무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까?

       

       ‘설마 신께서 황금 나무를 재료로…’

       

       불길한 상상을 하던 에스텔이 머리를 붕붕 저었다. 설마 신께서 다 타고 재가 된 황금 나무를 가져다가 활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콰앙ㅡ!

       

       “칫.”

       

       일단 눈앞의 용왕이 먼저다.

       

       에스텔은 상념을 끊으며 눈앞의 용왕을 향해, 거대한 대궁의 활시위를 당기ㅡ

       려다가 손을 풀었다.

       

       “아, 아파…”

       

       활시위가 너무 굵고 억세서 손가락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음, 음! 좋아. 늦지 않게 제대로 전달했네!》

       

       케니스와 대화하며 지상을 살피던 아르고스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까먹기 전에 가까스로 전달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스스로에게 남은 시간을 헤아린 아르고스.

       얼마 남지 않았다.

       

       《히힛! 만나서 즐거웠어. 이제 얼른 가, 언니! 정말 시간이 없네!》

       

       “고마워 아르고스. 정말로 고마워.”

       

       《응! 나중에 꼭 다시 만나서 놀자!》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아르고스의 인사와 함께 케니스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응. 꼭 다시 만나자.”

       

       계속해서 아르고스의 불꽃을 눈에 담았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기에, 눈도 깜빡이지 않고 새파란 불꽃의 형상을 마음에 새겼다.

       

       아르고스, 아르고스.

       성지의 부유섬이자 대장장이 궁전의 화로.

       

       “…꼭, 다시 만나.”

       

       아주 천천히 뒷걸음질 치던 케니스는, 땅의 끝에 다다라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지듯 몸을 던졌다. 지상을 향해, 자유롭게 낙하한다.

       

       《어, 언니?!》

       

       기겁한 아르고스의 비명.

       놀란 반응이 무색하게, 곧장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친 케니스가 높게 날아올랐다.

       

       《언니! 놀랬잖ㅡ》

       

       타박이 섞인 아르고스의 투정이 불어온 바람 한 줄기에 섞여 사라졌다. 부유섬은 바람을 타고 홀연히 나타났던 그때처럼, 바람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후우ㅡ”

       

       케니스는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날숨을 따라 흘러나온 별빛이 곧장 불타올랐다.

       마치 케니스가 불길을 뱉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두 손으로 움켜쥔 그녀의 성검, 불길의 형상을 한 검을 따라 주홍빛 불길이 기어올랐다. 

       

       화륵ㅡ!

       

       검을 쥔 순간부터, 케니스는 알 수 있었다.

       

       이 검으로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중 나선의 성검과 묵빛의 성검을 잡았을 때도 이랬다.

       

       누군가 머릿속에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하나의 그림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하늘을 뒤덮은, 붉고 거대한 이것은…

       

       ‘이건, 꼭…’

       

       눈을 감고 머릿속의 그림을 되새기던 케니스는 눈을 떴다. 

       

       《그르르르…》

       

       오로지 파괴와 식욕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찬 용왕의 탁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느껴진다.

       용왕의 탁한 의지가, 심연을 찢어 삼키고 더 나아가 지상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겠다는 그의 어두운 욕망이.

       

       남은 사슬을 모두 열다섯 개 남짓. 아르고스에 있는 사이 몇 개의 사슬이 더 부서졌다.

       저 사슬이 모두 부서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확연하게 보였다.

       

       꽈악.

       

       지금이 아니라면,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둘 수는ㅡ”

       

       콰앙!

       

       케니스의 등에서 폭발적으로 커진 날개가 허공을 박찼다. 

       

       “없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성검을 똑바로 들어 용왕을 겨눈 케니스가 길고 거대한 불의 꼬리를 허공에 남겼다.

       

       보랏빛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양단하며 떨어지는, 하나의 유성처럼.

       

       콰아앙ㅡ!

       

       케니스의 성검에 솟아난 네 개의 송곳, 그중에서 하나의 송곳이 붉게 타오르며 불꽃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케니스는 더더욱 가속하며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크으으… 크아아아아ㅡ!》

       

       용왕은 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케니스만을 잔뜩 노려봤다. 

       

       탁하고 검은 눈동자를 반으로 쪼개어 갈라진 사이로 보이는 노란색 동공이, 길고 얇게 번들거렸다.

       

       《───!!》

       

       용왕이 거칠게 몸을 뒤틀었다. 타캉-! 소리를 내며 세 개의 사슬이 한 번에 부서졌고, 용왕은 한쪽 다리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케니스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거대한 산맥이나 다름없는 용왕, 그의 다리는 덩치에 걸맞게 매우 거대했다. 대지의 손이 덮쳐오는 착각마저 일었다. 케니스의 주변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온다.

       

       “케니스! 피해!”

       

       다급하게 외친 프리가가 하늘을 올려봤다. 

       

       허나, 분명 용왕의 공격을 봤을 케니스에게서는 그 어떤 피할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었다.

       

       “크으으…!! 아그으으윽ㅡ!”

       

       성검에 하나의 불꽃이 켜졌다. 

       이제 그녀는 한 줄기의 화살처럼, 오직 직선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저거 완전히 미쳤네!”

       

       공격은 닥쳐오는데 케니스가 피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인 프리가가 다급하게 이베르를 불렀다.

       

       “야, 야! 도마뱀! 얼른 이리 와!”

       

       《나는 그대가 부른다고 오는 애완동물이 아닌ㅡ, 커억!》

       

       급해 죽겠는데 앙탈 부리는 이베르의 턱에 가볍게 도끼 한 방으로 진심 어린 대화.

       대화 이후 얌전해진 이베르의 등에 올라탄 프리가가 외쳤다.

       

       “도마뱀! 빨리 날아! 빨랑! 케니스 저거 아무래도 못 피하는 것 같아!”

       

       《……용은 그대가 그렇게 막 부려도 좋은 대상이 아닌…》

       

       턱을 문지르며 투덜거리는 이베르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 위에서, 프리가는 용 사냥꾼의 도끼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그때의 느낌이 분명ㅡ’

       

       용 사냥꾼의 도끼가 강하게 진동하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용과 인간을 연결하는 기묘한 방법.

       

       프리가는 그것을 딱 한 번 경험했음에도 완벽하게 따라 하고 있었다. 강제로 자신의 정신에 연결하려 드는 프리가의 의지를 느낀 이베르가 기겁했다.

       

       《아, 아니 이게 지금 뭐 하는…?》

       

       “빨랑 연결해.”

       

       《끄응.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다니.》

       

       정신을 두들겨 오는 프리가에게 활짝 문을 열자, 프리가의 정신이 흙 묻은 발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용의 차가운 심장에는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고, 인간은 용의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황홀감에 이베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와 반대로 프리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크으… 으으윽! 진짜…로 거지 같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용의 세상은 인간에게 참으로 버거운 것이였다. 저번보다는 견딜만했지만, 오래 끌어서 좋을 것 없다.

       

       “도마…뱀! 빨리… 케, 니스 쪽으로…”

       

       《크흐흐.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라!》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친 이베르가 거세게 날갯짓하며 하늘을 갈랐다. 그 위에 올라탄 프리가는 단단히 버티며 도끼를 굳게 잡고 있는 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으니까 연참입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