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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8

       

       

       

       

       

       278화. 내 오른손에는… ( 2 )

       

       

       

       

       

       인생에 있어서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한스는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매우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검 한 자루 들고 무작정 상경한 촌놈이 멋도 모르고 설치다가 통째로 얼음에 갇히기도 했고, 신의 무기라는 걸 받아서 사도가 되었다.

       

       그래, 그의 인생은 그때부터 미친 망나니의 칼춤처럼 온갖 위험하고 아찔한 인생의 변곡점을 수도 없이 마주했다. 

       

       “……으음…”

       “ㅡ한스! 한스, 세상에. 정신이 들어요?! 내, 내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어요? 이럴 때가 아니지.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금방 사람들을 불러올게요!”

       

       흐릿한 시야 사이로 붉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는가 싶더니 우당탕-! 하며 누군가 뛰쳐나갔다.

       

       “……아….”

       

       천천히 정신을 차린 한스는 깨달았다.

       지금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변곡점을 마주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 내 팔이…”

       

       허망하게 흔들리는 오른팔의 소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감각은 굉장히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펄럭-

       

       한스는 허탈할 정도로 쉽게 펄럭이는 그의 오른팔 소매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하아ㅡ”

       

       깊은 한숨을 내쉬며, 왼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다.

       

       케니스의 불타는 성검을 움켜잡았을 때, 그녀의 노란 불꽃이 제 몸을 갉아먹으며 불태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스는 제 몸의 상실을 어렴풋하게 예상했다.

       

       허나, 막연하게 예상하고 예측하는 것과 그 결과를 두 눈으로 마주한 것은 엄연히 다른 법.

       

       오른팔의 상실, 그것도 아마… 영구적인 상실은 생각보다 더더욱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인기척이 느껴진다. 작고 조심스러운, 마치 소동물 같은 움직임이다.

       

       눈을 가리고 있던 한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데이지?”

       “……한스 님…”

       

       머뭇머뭇 데이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들꽃들을 한 아름 따서 들고 있었다.

       병문안 선물로 들고 온 모양이다.

       

       툭.

       

       “어, 어어…? 하, 한스… 님?”

       

       데이지의 품에 있던 꽃송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아아…아… 하, 한스 님… 팔… 팔이ㅡ!”

       

       데이지의 갈색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며 한스의 오른팔과 얼굴을 왕복했다.

       

       “하하… 미안. 조금 보기 안 좋지?”

       “하, 한스 님… 파, 파파팔… 팔이… 오른팔이ㅡ!”

       

       데이지의 갈색 눈동자 한가득 눈물이 글썽거리며 차올랐다.

       한스는 반사적으로 배에 힘을 줬고, 데이지가 한스의 품으로 몸을 던졌다.

       

       단어 그대로의 던졌다는 의미다.

       

       “컥…”

       

       외마디 비명을 토해낸 한스.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배 쪽에도 붕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뿐인 왼손이 허우적거리며 한스의 고통을 짐작하게 했다.

       

       “…흐으윽, 흐읍… 흐으으응ㅡ”

       

       데이지가 얼굴을 파묻은 배 언저리가 뜨겁고 축축하게 젖어간다. 그것을 느낀 한스는 쓰게 웃으며 왼손으로 데이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어깨 언저리에 닿을 정도였던 데이지의 머리칼은 어느새 날개뼈를 덮을 정도로 길게 자랐다.

       

       “머리 많이 길렀네.”

       “ㅡ크흡, 하, 한스 님이… 흐응. 긴 머리를 좋아하시는… 훌쩍. 것 같아서요…”

       “내가 긴 머리를 좋아한다고?”

       “네에… 그래서 열심히 훌쩍. 기르고 있었어요.”

       

       자신이 긴 머리를 좋아한다니.

       한스가 황당한 눈으로 데이지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

       

       

       한스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뛰쳐나간 케니스는 수많은 사제들을 이끌고 요란하게 돌아왔다.

       

       “…그러니까, 정말 죄송하지만ㅡ”

       “오른팔을 회복할 수 있는 경우는 아예 없다는 거군요.”

       “이런 말을 하기 정말 죄송하지만… 아주 희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한스는 담담하게 사제의 진료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날뛴 것은 한스의 뒤에 서 있던 두 여자들이었다.

       

       “잠ㅡ, 사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겨우 팔이 없어진 거잖아요! 여긴 성도인데, 오른팔 하나 없는 사람을 치료 못 한다뇨! 그것도 심연에서 용맹하게 싸우고 돌아온 전사에게 이런 대우는 말도 안 돼요!”

       “…맞아요. 만신전에서 이보다 더 다친 사람들도 많이 봤고, 대사제 님들이 손을 대면 낫는 것도 봤어요. 오른팔이 없어진 건… 대사제 님들이 나서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잖아요.”

       

       길길이 날뛰는 케니스와 낮고 어둡게 읊조리는 데이지.

       졸지에 두 여인의 눈초리를 한 몸에 받은 사제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계속해서 닦았다.

       

       “아, 아아아니. 이건 제가 아니라 대사제분들이 오셔도 또, 똑같을 겁니다.”

       “…뭐라고요?”

       

       케니스의 날카로운 눈빛.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던 케니스의 공격적인 모습에 사제가 한껏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를 구원한 것은 한스였다.

       

       “둘 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아마, 사제님의 말씀대로 대사제께서 오셔도 똑같을 거예요.”

       “한스!” “한스 님.”

       

       한스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외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고차원적이고, 근본적인… 그의 팔을 대가로 가져간 것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둘 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사제님도 정말 감사합니다. 일단… 좀 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대신, 필요한 게 있으면 꼭 불러줘요.”

       “한스 님. 여기에 꽃 두고 갈게요.”

       “통증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약을 두고 가겠습니다. 자기 전에 한 번씩 드시면 될 겁니다.”

       

       케니스와 데이지, 사제가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병문안으로 온 이들이었고, 한스는 환자였다. 그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당연했다.

       

       끼익- 탁.

       

       모두가 떠난 방은 고요한 침묵으로 가득 차올랐다.

       방 안 가득 찬 침묵 속에서, 한스는 조용히 앉아 텅 빈 오른팔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를 때까지 계속.

       

       …가슴에 무언가 맺힌 듯 먹먹하다.

       

       

       

       *****

       

       

       

       달이 휘영청 떠오른 늦은 밤.

       한스는 야심한 밤을 틈타 몰래 병동을 빠져나왔다. 답답한 가슴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허리춤에는 그가 애용하는 롱소드 한 자루가 걸려있는 채였다.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고 한참을 걸어서 연병장에 도착한 한스.

       이윽고 달을 벗 삼아 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휙- 휘익-

       

       왼손으로 잡은 검의 궤적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롱소드를 잡는 것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무게 중심부터 파지법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그래서 한스는 더욱 강하게 롱소드를 휘둘렀다. 

       그가 배운 검술은 미천하다. 하지만, 베고 찌르는 것은 문제 없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양손이 달려있을 때의 이야기.

       

       텡강ㅡ!

       

       왼손을 떠난 롱소드가 땅바닥에 나뒹군다. 

       

       “…….하아ㅡ”

       

       깊은 한숨을 내쉰 한스가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스로의 왼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악력이나 힘은 부족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놀랍게도 한스는 왼손으로 투핸디드 롱소드를 무리 없이 들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이 조금 맞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의 몸에 깃든 초월적인 용력은 양손으로 잡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롱소드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기행을 가능하게 했다.

       

       문제가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왼손의 숙련도일 뿐.

       

       한참이나 앉아있던 한스가 벌떡 일어나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위로 긋고, 좌에서 우로 벤다.

       

       답답한 가슴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한스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아주 오랫동안 검을 휘둘렀다.

       

       깊은 밤부터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계속.

       

       한참이나 검을 휘두른 한스의 몸에서 굵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막 일어난 환자의 몸이다.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가 검술 훈련이라니, 케니스나 데이지가 알면 한스의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후우ㅡ”

       

       간단하게 샤워하여 땀을 씻어낸 한스가 비틀비틀 병상으로 돌아왔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검술 훈련을 했더니 오랜만에 근육이 쑤셔온다. 

       

       그래도 한껏 땀을 흘렸더니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꽤 이른 아침에서야 잠을 자게 됐지만… 환자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읏차.”

       

       침대에 몸을 던지니 꿈뻑꿈벅 시야가 흐려지다가 이내 금방 잠이 몰려왔다. 

       

       한스는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흐려지는 의식 사이로, 작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ㅡ?”

       

       누군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한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누구…지…’

       

       눈을 떠서 확인하고 싶은데, 이미 깊은 수면에 빠지고 있는 그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육체는 이미 잠에 빠졌고, 의식만 가까스로 수면의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형태다. 

       

       “…ㅡㅡ?”

       

       뭐라고 중얼거리며 머뭇거리던 상대는 이내 부스럭거리며 한스의 이불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무… 무슨ㅡ…’

       

       꼬물거리며 파고든, 누군지 모를 사람이 한스의 가슴 폭에 조심스럽게 얼굴을 묻었다.

       한스의 품에 폭 안긴 상대방의 은근한 열기가 기분 좋게 몰려온다. 꼼실꼼실 움직이며 한스의 몸 곳곳에 코를 문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도대체… 누, 누구……’

       

       오오, 눈꺼풀의 무거움.

       그것은 제아무리 힘센 천하장사라 하여도 들어올리기 힘든 것이라.

       

       한스는 필사적으로 눈을 뜨려 노력했지만, 수마는 노련한 사냥꾼처럼 한스의 뒷덜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누가 정말로 내 뒷목을 잡고 있는 것 같은ㅡ’

       

       어느 순간 까무룩 의식이 끊어진 한스는, 한참이나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ㅡ

       

       “……여긴?”

       

       어딘가 익숙한 여관에서 눈을 떴다.

       

       …어째서인지 뒷목이 굉장히 뻐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런, 이런 미친 찐빠라니…!! 제가 글을 쓰면서 이런 기열찐빠같은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습니다… 도, 도대체 왜 이런 찐빠를… 갸아아악ㅡ!!!

    외팔의 검사가 된 한스…!! 허나ㅡ 그는 투핸디드 소드를 한 손으로 잡는 것이 가능했다ㅡ!!! 이 무슨 용력!!! 실로 놀랍군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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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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