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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279화. 내 오른손에는… ( 3 )

       

       

       

       

       

       “흐음…”

       

       사륵- 사르륵-

       

       손가락 사이로 긴 머리카락이 엉킴 없이 흘러내린다. 은근한 감촉을 즐기며 열심히 생각에 몰두했다.

       

       용, 혹은 드래곤.

       판타지와 무협에 빠지면 섭한 단골 손님인 이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굉장히 특별한 존재로 묘사된다.

       

       판타지에서 드래곤을 잡으면 드래곤 하트나 드래곤 본으로 천하제일의 무기를 만들 수 있고, 무협지의 용은 영험한 신수로 등장하여 날씨를 다스리기도 한다.

       

       사르륵- 스륵-.

       

       용왕. 용들의 왕.

       녀석은 죽으면서 총 세 개의 부산물을 남기고 갔다.

       

       ‘심장이랑 비늘과 발톱.’

       

       무려 용왕의 것이다.

       각각의 재료가 어마어마한 보물이고, 무엇을 만들더라도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으으음…”

       

       고민이 깊어진다. 배부른 고민이다.

       

       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재료들로 과연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싶은 아주 배부른 고민.

       

       스르륵- 사악-

       

       “…”

       

       사실은 애써 다른 곳으로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이런 되지도 않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상황이 좀 위험하거든.

       

       사르륵- 사르륵-

       

       길고 붉은, 약간 파도치듯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도대체 어떻게 관리한 것인지 윤기 나는 머리칼을 자랑했다.

       단어 그대로-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

       

       손빗을 만들어 두피를 살짝 긁어주니 내 허벅지에 누워있는 이가 살짝 몸을 떨었다.

       

       “으읏, 하앗…! 으응ㅡ”

       “…”

       

       어쩐지 조금 야릇한 소리에 눈을 감고 조용히 애국가를 제창했다.

       군대 이후로 3절까지 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까스로 애국가를 3절까지 완창한 다음, 멈춰있던 손을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미안. 혹시 아팠어?”

       

       그 말에,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던 케넬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냥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계속할게.”

       “네, 네. 부디…”

       

       손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케넬름의 머릭카락을 쓰다듬는다. 동시에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 사고를 관철한다.

       

       ‘나는 누구고,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주변을 둘러보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래사장,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까만 바다… 인데, 조금 빛나는 부분이 보이는 바다.

       고개를 들어보면 촘촘히 빛나는 별들이 숨 막히게 쏟아진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지만, 나는 솔직하게 풍경을 즐길 수 없었다.

       

       “흐으읏, 하앗… 으으읏, 흣, 흐으윽…”

       ‘…하느님 부처님 맙소사.’

       

       나는 잠을 자면, 이따금 이 기묘한 모래사장의 꿈을 꾸고는 했다.

       그럴 때면 케넬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무릎베개도 받으면서 쉬다가 잠에서 깼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케넬름과 만나는 꿈이었다.

       심연 원정 이후 만난 케넬름의 안색이 굉장히 창백했다는 것만 빼면.

       

       ‘케넬름이 그렇게 지쳐 보이는 이유는 너무 뻔했지.’

       

       심연 원정 때문이다.

       당시에도 케넬름은 땀을 엄청 흘리면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막판에는 실제로 쓰러지기도 했고.

       

       아마 그때의 여파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비틀거리며 애써 괜찮은 척 웃어 보이는 케넬름의 미소라니.

       케넬름의 가녀리고 병약한 미소는 사내의 보호 욕구를 한껏 자극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덕분에 나는 호기롭게 말한 것이다.

       “내가 뭐라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라고.

       

       케넬름은 한사코 거절하다가 내가 계속해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고ㅡ.

       

       ‘부탁하는 게 무릎베개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니…’

       

       이걸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 과감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에게도 썩 나쁜, 아니 오히려 케넬름 정도의 미녀에게 무릎베개를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할 처지였으니 기분은 좋았지만.

       

       “흐으읏, 하, 하그읏ㅡ 응, 응읏, 흐으응…”

       “…”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했다.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케넬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케넬름에게 도움을 청했다.

       

       “용왕이 남기고 간 것들로 뭘 만들면 좋을까?”

       “음…”

       

       잠시 고민하던 케넬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에게 무언가를 조언하기 전에 세 번 정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제 생각으로는… 그 세 가지를 합치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합친다고?”

       

       “용왕의 심장, 비늘, 발톱. 이 모두 굉장한 귀물이고 보물이지만, 결국 하나의 존재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따로따로 써도 굉장할 테지만, 셋을 함께 썼을 때보다는 못하지요.”

       

       “오. 그런가?”

       

       듣고 보니 나름 그럴듯한 말이다.

       세 개를 따로 써서 애매하게 좋은 무기 세 개를 만드는 것보다 세 개를 한 번에 써서 개쩌는 무기 하나를 만들자는 소리 아닌가.

       

       “그러면 역시 검을… 아니다. 케니스는 서사급을 받았지. 이번에는 프리가한테 줄 도끼나 이스칼의 방패를 만들까?”

       

       그렇지 않아도 프리가랑 이스칼도 슬슬 무기 바꿀 때가 되어가던 참이다.

       

       용왕의 부산물로 만든 용 사냥꾼의 도끼라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덜덜 떨려온다.

       아니면 방패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용왕의 비늘은 강도가 범상치 않았으니, 어지간한 공격에도 끄떡없는 방패가 탄생하리라.

       

       세 개를 합쳐서 무엇을 만들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불현듯 무언가 까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한스.”

       

       녀석 팔 한쪽이 없어졌었지.

       

       한스의 부상은 아무리 회복 스킬을 써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케넬름에게 물어보니,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의 오른팔은 일종의 ‘대가’로 바쳐진 것입니다. 분에 넘치는 힘을, 말하자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거야?”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좀 까다로울 것입니다.”

       

       “쓰읍. 그래?”

       

       말하자면 일정 등급 이상의 무기를 쓰려면 최소한의 요구치를 충족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것은 힘이 될 수도 있고, 민첩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종류의 무언가일 수도 있고.

       

       “흠…”

       

       오른팔, 오른팔이라…

       

       “케넬름. 혹시 이 세 개를 합쳐서 의수 만들 수 있어?”

       “의수… 말씀이신가요?”

       

       눈이 동그애진 케넬름이 되물었다. 면사포 사이로 보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살짝 반짝였다. 

       

       “아마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예, 만들 수 있습니다. 약간의 시간과 예산만 있다면 말이죠.”

       

       “오, 그래? 잘됐네. 그럼 이걸로 의수를 만들자고.”

       

       “알겠습니다.”

       

       케넬름은 순순히 허리를 숙이며 내 결정을 존중했다.

       

       혹시나 싶었는데 의수도 할 수 있다니. 

       어떤 원리로 만드는 건가 궁금해져서 케넬름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걸로 의수를 어떻게 만들어? 그 뭐냐, 저 까만 바다가 도와주는 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까만 바다의 일부분이 벌떡 일어나 파도치며 나를 돌아봤다. 누워있던 강아지가 제 주인을 돌아보는 모양새다.

       

       귀여운 짓과는 별개로 까만 바다의 능력은 무궁무진했다. 그야말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수준.

       나는 까만 바다의 진정한 힘을, 그 편린을 탄탈로스를 만들며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저 신비한 바다의 힘으로 하는 걸까?

       

       “예? 아뇨.”

       

       내 말을 들은 케넬름이 고개를 살랑살랑 저었다.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이번에는 드워프에게 맡겨야죠. 바다가 요즘 제 말을 안 들어줍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달라고 한 거였어?

       드워프를 갈아 넣으려고? 드워프는 이세계의 만능 공돌이인가?

       

       “……너 앞으로 케넬름 말 잘 들어. 괜히 틱틱거리지 말고. 내가 가끔 확인할 거야.”

       

       철써억ㅡ

       

       으름장을 놓자 까만 바다가 칭얼거리듯 작게 파도쳤다.

       

       

       

       *****

       

       

       

       짹짹짹-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와 눈을 찔렀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몸을 움직여 곧장 핸드폰을 잡았다.

       

       꿈은 휘발성이 강하다. 깨어남과 동시에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렇기에 기상 직후, 케넬름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아있을 때 곧장 게임을 확인해야 한다.

       

       띠링ㅡ!

       

       《S급 ‘용왕의 그림자’ 제작이 가능합니다.》

       

       “빠르구만.”

       

       일 처리 확실한 케넬름답다고 해야 할까.

       

       ‘용왕의 그림자’는 오른팔에 사용하는 의수의 형태였다.

       

       용왕의 까만 비늘을 사용했기에 굉장히 어두운 흑빛이 감돌았고, 다섯 개의 손가락에는 크고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있다.

       제일 중요한 심장은 의수의 동력원으로 사용되어 근육과 뼈를 대신했다.

       

       《용왕의 그림자 : 타락한 용왕의 심장을 정제하고, 비늘을 깎고, 발톱을 갈아서 만든 의수. 야성적이고 폭력적인 용왕의 기운이 그대로 서려 있다.》

       

       “좋네.”

       

       마음에 쏙 든다. 뭐라고 해야 할까.

       중2병스러운 감성을 충족시키는 디자인이다.

       

       슬쩍 시간을 봤더니 새벽 6시 20분이다.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서 굉장히 여유로웠다.

       

       “이제 한스만 잡아 오면 되겠구만.”

       

       의수의 주인공만 등장하면 된다. 한스를 데려와야 의수를 전해줄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한스를 잡아 올까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세계 탐험 모드’로 향했다. 

       

       – “…스으ㅡ”

       

       화면에서 보이는 한스는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스의 침대 이불보가 불룩불룩 움직이는 것 아닌가.

       

       “…뭐야 이건.”

       

       마치 에일리언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한스의 이불보가 한참이나 꿈틀거렸다. 그 기묘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스의 이불을 자세히 바라봤다.

       

       – “…힛.”

       

       “이 새끼가…?”

       

       세상에 맙소사. 

       

       놀랍게도 한스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였다. 그것도 한스의 품을 꼼실꼼실 파고들며 실실 웃는 여자.

       

       뼛속 싶은 곳부터 살의와 증오가 몰려왔다. 누구는 1시간 있다가 출근해야 되는데, 누구는 여자랑 같이 침대에서 자?

       이게 알파의 삶? 이게 인싸?

       

       “용서 할 수 없어.”

       

       요즘 제법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내가 좀 대우해 주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증오는 나의 힘이요, 질투는 나의 칼.

       

       격동하는 내 감정을 따라 가슴팍의 찰랑이는 물풍선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불똥처럼 타오르는 분노와 질투.

       

       밉다. 한스가 미워.

       여자랑 한 침대에서 자는 한스가 밉다.

       누구는 좀 있다가 출근해야 하는데, 여자랑 침대에서 꽁냥거리는 한스가 미워.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의 물결을 한쪽 팔로 이끌었다. 몸속에서 격렬하게 파도가 일어나며 명치가 쭈욱 비어간다.

       

       “흡ㅡ!”

       

       허공을 향해 내뻗은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듯이 강하게 붙잡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야 할 허공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손아귀에 붙잡혔다. 사람의 뒷덜미를 잡은 감촉이다.

       

       느껴진다. 알 수 있다.

       질투로 무장한 지금의 나는 무적이라는 것을.

       

       “한스으으으ㅡ!”

       

       그대로, 힘차게 당긴다.

       

       마치 무를 뽑아 올리는 농부와도 같은 기세로,

       거대한 물고기를 끌어내는 어부의 그것처럼.

       

       “크으으읍ㅡ!”

       

       중간에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질기고 튼튼한 막이 내 손을 막는 듯한 감각. 이에 지지 않으려 더욱 강하게 팔을 당겼다.

       

       쩍… 쩌적…

       

       얇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금이 사방으로 퍼지며 손에 걸리는 저항이 점점 약해지는 걸 느꼈다.

       

       거의 다 왔다.

       

       “흐아아아아압ㅡ!!”

       

       나는 마지막 기합과 함께 손을 힘차게 당겼고ㅡ

       

       쩌저적-! 채앵!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팔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후우우…..”

       

       아침부터 땀을 한가득 흘렸다. 오른팔이 얼얼하고 욱신거린다. 갑작스럽게 운동했을 때와 비슷하다.

       

       “한스는…”

       

       제일 중요한 것.

       한스가 제대로 잡혀 왔는가.

       

       – “…….여기는……”

       

       ….멍이 든 뒷목을 어루만지는 한스가, 성지의 여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내 마음을 도려낸 인싸 알파 녀석.

       

       “용서하지 않아.”

       

       꿀밤 한 대만 맞아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또 특근을 제안하다니…!! 실로 비인간적인 제안…!!! 끼에에엑!!
    솔직히… 한쪽 팔이 비인간적인 의수인거…!! 존나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판타지 수학 대전의 케이가 그러했고…!! 프로토타입의 주인공이 이를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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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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