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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290화. 무지갯빛 비늘 ( 3 )

       

       

       

       

       

       이스칼과 한스는 온 힘을 다해서 발을 놀렸다. 빽빽하게 사방을 둘러싼 촉수의 사이를 능숙하게 빠져나가며 아틀라스를 향해 도망친다.

       

       등 뒤로 당황한 크라켄의 기색이 느껴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을 기세로 대치하고 있던 적이 설마 도망치리라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북부에서 살아남는 방법… 적이 예측할 수 없게 움직여라…!’

       

       과연 프리가가 알려준 비장의 전략. 

       크라켄에게도 순조롭게 통했다. 

       

       촤아아악-! 쾅, 콰앙!

       

       뒤늦게 정신 차린 크라켄이 여덟 개의 다리를 기민하게 휘둘렀지만, 한스와 이스칼은 철저하게 방어 위주로 대처했다.

       끈질기게 휘감아오는 촉수를 상대로 얼마나 헤엄쳤을까.

       

       ‘거의 다 왔다…!’

       

       아틀라스의 경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크라켄의 공격도 더욱 집요해졌다. 

       

       촤아악-!

       

       “푸하아아-!”

       

       몸을 던진 이스칼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등 뒤로 질기게도 쫓아오던 크라켄의 촉수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추격을 포기한 것일까.

       

       “하, 한스 경! 에이홉! 무사한가!”

       

       “후우, 후… 둘 다 무사합니다.”

       

       한스도, 세상 모르고 기절한 에이홉의 상태도 멀쩡하다. 크라켄을 마주하고도 무사히 도망치다니

       

       그것도 단 두 명의 인원으로.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이라면 모를까. 녀석의 주 무대인 심해에서 둘이서 싸우는 건… 사양하고 싶군.’

       

       일단 한숨 돌렸다. 

       물론 아틀라스에도 크라켄 촉수의 흔적이 남아있던 만큼 아주 안심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잠시 쉴 틈을 벌었다.

       

       “후… 저게 도대체 뭐 하는 괴물이랍니까? 이스칼, 혹시 저 녀석을 압니까?”

       

       “알고 있지… 설마 이렇게 볼 줄은 몰랐네만.”

       

       크라켄에 대해 들은 한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상대해 본 느낌으로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녀석이었다.

       

       장소가 심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바닷속만 아니었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겁니다. 분하군요.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녀석을ㅡ”

       

       “자, 잠시 진정하게 한스 경. 지금 우리가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잊은 거 아닌가?”

       

       “그야 에이홉의 물약 덕분에… 아. 이런.”

       

       “우리가 먹은 물약의 유효 시간은 2시간이네. 지금 내 짐작으로는 아마… 대충 10분 정도 남았겠군.”

       

       “…10분 안에 녀석을 해치우면ㅡ”

       

       “진심인가? 육지라면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바닷속이네. 우리로서는 움직이는 것조차 제한되는 곳이라고.”

       

       “씁…”

       

       한스가 미간을 구겼다.

       

       크라켄은 해구 깊은 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아탈라스에서 왕복하는 것에만 6분이 걸릴 것이고, 녀석을 해치우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계산하면…

       

       아무리 계산해도 무리였다.

       

       “저런 녀석을 두고 그냥 가야 한다니… 이래서야 수행의 의미가 무색하군요.”

       

       “하, 하하… 에이홉에게  물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다시 오면 되지 않겠나.”

       

       아쉬운 기색이 가득한 한스와는 달리 이스칼은 내심 안심했다.

       

       ‘만전의 상태였다면 모를까… 방패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지금에서 싸운다는 건, 솔직히 피하고 싶군.’

       

       아무튼 크라켄도 무사히 따돌렸으니, 에이홉을 챙겨서 어서 지상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아, 안 돼애애애애애!!”

       

       “으핫!”

       

       “에, 에이홉?!”

       

       쥐 죽은 듯 누워있던 에이홉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우렁차게 외쳤다. 일어나는 기세가 마치 솟구치는 용오름과도 비슷했다.

       

       “아, 안 돼! 절대로 안 돼! 나,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이네! 지금 돌아가면 다시 60년이나 지나야 아틀라스의 문이 열려! 나는!! 그런 일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네!!”

       

       “아니 에이홉. 냉정하게 생각하시죠. 지금 상황으로 크라켄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노인장. 생각을 좀 해보시게. 직접 잡혀가기까지 했으면서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러니까 더욱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네!”

       

       에이홉이 침을 튀기는 기세로 열변을 토했다. 어쩐지 묽고 탁한 물방울이 에이홉의 주변을 둥둥 떠다녔다.

       

       “내가 생각을 해봤네. 아틀라스에 아무도 없는 이유와 도시에는 생활한 흔적만 남은 이유!”

       

       “어, 으음…”

       

       “아틀라스의 주민들이 얼마 전까지라도 이곳에서 생활했음은 분명하네! 하지만 갑자기 사라졌지. 그것도 도망치듯 급하게! 그 이유가 무엇이겠나?!”

       

       “…설마 크라켄을 피해서 도망쳤다고 말하는 건가?”

       

       “바로 그거라네!”

       

       에이홉의 주변에 떠다니는 탁한 물방울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스와 이스칼이 질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아틀라스의 주민들은 크라켄에게 착취당하고 있던 것이 분명하네! 오랜 기간 핍박당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주민들이 일제히 도망친 것이지!”

       

       에이홉의 추측은 어딘가 그럴듯했다. 허나, 결정적 요인의 부재가 존재했다.

       

       “도망쳤다면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아틀라스의 크기를 생각하면 못해도 수백의 인구가 있었을 건데, 그 많은 머릿수가 숨을 만한 곳이 있을지… 조금 의문이군.”

       

       “그, 그것은…”

       

       그들이 알 수 없는 단 하나의 퍼즐.

       

       도망친 아틀라스의 주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  “끼히이익-! 끼, 끼에엑…!”

       

       – “후히히히힉… 끼르히이익-!”

       

       내 기대를 정면으로 박살 낸 인어의 말라빠진 면상들. 쩍 벌린 입에서 돌고래 우는 소리와 칠판 긁는 소리를 합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보고 있자면 눈과 귀과 동시에 괴로워지는 풍경.

       듣기 싫은 고주파에 신경이 슬슬 긁혔다.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외친다. 당장이라도 벼락을 떨궈서 녀석들을 황태로 만들어 버리자고.

       

       ‘아, 안 돼… 참아, 내 안의 제우스! 도시를 불법 점거한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다짜고짜 벼락은 좀 아니야!’

       

       일단 나름의 문명 비스무리한 것을 일구며 사는 녀석들 같다.

       이리저리 무너진 폐허의 도시에 금방 자리 잡아서 살림을 일구고 있었으니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도시 외곽을 순찰하는 녀석부터 부상자를 치료하는 녀석, 무너진 폐허를 수리하는 녀석과 어린 개체를 돌보는 녀석까지.

       그야말로 작은 사회를 보는 듯했다.

       

       ‘생긴 건 조금 보기 싫어도 어느 정도 지능은 있다는 소리인데…’

       

       내 도시를 불법 점거한 건 조금 건방지지만… 이래서야 무작정 죽이기 껄끄럽다.

       온건하게 말로 내보내는 방법과 힘으로 협박하면서 쫓아내는 방법 중에서 고민이 들던 차.

       

       띠링-!

       

       “음?”

       

       느닷없이 알람이 울렸다.

       

       《다섯 종족의 일원! 바다의 일족, 인어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진짜냐고…”

       

       현실 부정이 극에 달한다. 설마설마했지만 진짜 이 얼굴로 인어라니.

       그 옛날 인어 공주의 실사 영화를 봤던 트라우마가 뇌를 자극할 지경이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 “끼, 끼기기긱?”

       

       – “삐히이이ㅡ!”

       

       돌고래 뺨치는 고주파로 대화하는 것들이 인어라고?

       

       “…..케넬름. 진짜야? 지, 진짜로 얘네가 인어라고…?”

       

       – “어, 네, 네에… 그, 그렇습니다…”

       

       “하, 하하…”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정신을 바로잡았다. 다섯 종족이라고 하니 오히려 잘된 거다.

       

       지금까지의 다섯 종족을 보면 어느 한 녀석 멀쩡한 구석이 없었지. 

       엘프는 저주로 나무에서 못 내려왔고, 밤의 일족은 히키코모리아싸찐따였다. 오크는 그냥 멍청이들이었고.

       

       ‘수인, 엘프, 밤의 일족, 오크… 마지막은 인어인가?’

       

       긍정적으로, 더불어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인어의 저 흉악한 면상은 저주로 인한 것일 확률이 높았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였다.

       저주를 어떻게든 풀기만 한다면 추악한 면상에서 그대로 반전된, 천상의 미모를 뽐낼 것이라는 소리였으니까.

       

       “이러면 오히려 좋을지도…?”

       

       – “………흐으응?”

       

       케넬름의 미묘한 콧소리와 얇은 눈초리를 애써 모른 체했다.

       

       “…흠, 크흠. 그래도 비늘은 좀 봐줄 만하네.”

       

       얼굴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지만 하반신은 제법 봐줄 만했다.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이 요사하게 빛나는 모습은 하나의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아! 이스칼이랑 한스!”

       

       문득 잊고 있던 녀석들이 퍼뜩 떠올랐다. 해구에 다이빙한 이후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

       

       행여나 무슨 사고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조금 불안한 마음에 다급히 화면을 옮겼다.

       

       – “이, 이 도시에 살고 있던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것은 조금만 더 조사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틀림없이!”

       

       – “그러기에는 물약의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에이홉. 이제 겨우… 한 5분 남았군요. 자, 어서 가시죠.”

       

       “아아악! 끄아아아악!! 이, 이거 놔! 날 놓으란 말이야!! 나,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어! 아아악! 내 평생을 아틀라스에! 첫사랑의 여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에 바쳤는데에에에!!”

       

       한스의 어깨에 잡힌 노인이 거칠게 발버둥 친다. 허나, 무의미.

       한낱 노인의 힘으로는 한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아틀라스에서 돌아가려는 건가…’

       

       어쩐지 이스칼의 표정이 조금 다급해 보인다. 말했던 물약…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물약의 효과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이 제법 촉박한 듯했다.

       

       “얘네들을 이대로 보내는 게 맞나?”

       

       – “…제 의견으로는, 일단 아틀라스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이유는?”

       

       – “에이홉… 그러니까 노인의 말에 따르면, 아틀라스로 향하는 길은 60년에 한 번 열립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오. 역시 케넬름이야. 그게 맞는 것 같네.”

       

       요컨대 아틀라스는 입장 시간에 쿨타임이 존재하는 공간. 들어와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도 상관없지만, 한 번 나가면 꼼짝 없이 6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왕 들어온 기회에 뽕을 뽑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

       

       “그래서 내가 여기를 못 찾은 건가?”

       

       60년에 딱 하루. 그것도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찾을 수 있는 해저 도시라니.

       

       아무런 힌트도 없으면 이런 도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어떻게든 꼭꼭 숨겠다는 의지마저 엿보인다.

       

       ‘마치 찾을 수 없게 일부러 숨긴 것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아탈라스를 숨겼다…?

       만약 숨겼다면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숨겼을까.

       

       “이런 건 역시 인어들한테 직접 알아봐야겠지.”

       

       인어에 대해 점점 궁금한 것이 늘어간다.

       열심히 헤엄치며 수면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칼과 한스.

       

       안타깝지만 너희들은 조금 더 아틀라스에 있어야겠다.

       

       슥-.

       

       이스칼과 한스의 발을 붙잡고 쭉 내리 끌었다. 단숨에 바닥을 향해 끌려오는 두 녀석.

       

       – “부르르르릅ㅡ?!”

       

       – “끄, 끌려간부르르릅!”

       

       열심히 헤엄친 것이 무색하게 다시 아틀라스로 돌아온 녀석들. 한스와 이스칼의 눈에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물론 아틀라스에 남고 싶어 했던 노인은 기쁨의 댄스를 분출하고 있었다.

       

       노인이 머리에 손을 얹고 허리를 좌우로 튕기는 그 풍경은… 그닥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이 씹, 내 눈 진짜.”

       

       시시각각 시력이 나빠지는 기분에 서둘러 화면을 돌렸다.

       저 멀리 산호가 반짝이는 풍경을 보면서 썩은 안구를 정화하고 있었다.

       

       “…어?”

       

       넓게 펼쳐진 산호밭의 멀리에서, 그러니까 내가 설치한 짭 아틀라스의 방향에서 무언가 열심히 헤엄쳐 오는 것이 보였다.

       

       인어였다.

       혼자서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헤엄치는 것인지, 녀석은 홀로 아틀라스를 향해 오고 있었다.

       

       – “어… 이스칼? 저기 뭔가 오고 있습니다. 저기 저쪽, 보입니까?”

       

       – “…나도 봤네. 일단 경계하지. 외형이 참… 세상에, 말도 안 나오는군.”

       

       한스와 이스칼이 자연스럽게 경계했다.

       생긴 걸로 차별하는 건 나쁜 짓이지만… 솔직히 처음 본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는 걸 알고 있다.

       

       – “어, 어어! 저, 저저저저저거!! 저기!! 저 다리가ㅡ!! 이, 인어!! 인어다!!”

       

       노인이 펄쩍 뛰며 인어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그래. 이제야 인어라는 걸 확인했구나.

       나는 살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을 걸쳐서 인어를 찾아왔을 텐데, 거기에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기억하고 찾아왔을 것인데.

       

       ‘현실은 마른 멸치 면상의 인어라니…’

       

       아니나 다를까.

       

       – “크아아아아아악!!!”

       

       노인은 인어의 얼굴을 보자마자 뒤로 자빠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억까를 당한 다섯 일족…!!! 인어는 어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도망치는 것… 그것은 상대와 싸워주지 않음으로 절대로 지지 않는… 그야말로 필승의 전략입니다…!!! 다른 말로는 역돌격이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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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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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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