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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3

       

       

       

       

       

       293화. 각성 ( 2 )

       

       

       

       

       

       “이, 이게 도대체 무슨ㅡ?!”

       

       당황한 이스칼이 주춤 물러났다. 눈부신 빛이 퍼져 나오며 심해의 어둠을 크게 밝혔다.

       기세를 한껏 올려 다가오던 크라켄조차 절로 움찔할 정도의 섬광.

       

       늙은 어인 에리얼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이! 이건ㅡ!”

       

       “에리얼! 뭔가 아는 게 있는 겁니까?!”

       

       “아, 아니… 설마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그, 그것이 진정 가능했다고…?”

       

       “그게 도대체 뭔데 그럽니까!”

       

       “서… 설마 그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오, 오오…! 이런 것이! 이런 것이 정녕 가능했다니!!”

       

       “…”

       

       황망하게 중얼거리는 에리얼의 혼잣말. 

       

       저 혼자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내뱉는 에리얼에게서 이스칼은 익숙한 어느 팔라딘이 겹쳐 보였다.

       

       츠파아아앗ㅡ…

       

       커다란 별처럼 빛나던 섬광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빛의 근원에는 서로를 꼭 껴안은 에이홉과 어인이 존재했다.

       

       “에이홉! 에이홉! 괜찮은가?”

       

       “아, 아아…”

       

       다급하게 달려간 이스칼의 몸이 우뚝 멈췄다. 문득 눈에 보인 풍경을 쉬이 믿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

       

       쥐 죽은 듯, 마치 아이처럼 조용히 누워 잠든 에이홉.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인어.

       

       ‘이, 인어…?’

       

       그것은 인어였다.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창백한 회색빛 피부는 살굿빛 피부로 바뀌었고, 보기 싫게 툭 튀어나왔던 물고기의 얼굴에는 작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알차게 자리 잡았다.

       

       풍만하게 나온 여인의 가슴과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빛을 반사하며 오색으로 빛나는 하반신의 비늘.

       살랑이는 물결에 맞춰 흩날리는 머릿결이라니.

       

       이미 연인이 있는 이스칼조차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인어에게 존재했다.

       

       “…지, 진정 그대가 방금 전의 어, 어인…이 맞소?”

       

       “키, 키히이…?”

       

       방금까지 어인이었던 인어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제 몸을 살폈다. 

       

       “챠아아악?! 데샤아아앗!!”

       

       이내 비명이 터져 나온 인어가 크게 놀라며 안고 있던 에이홉을 떨어트렸다. 본인의 변화에 가장 많이 놀란 듯했다.

       

       누가 봐도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인지라, 이스칼은 애써 시선을 인어의 얼굴로 고정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그그… 크흠! 흠, 흐흐흠! 이, 일단 이거라도 좀 걸치시고… 어, 어서 빨리 여기서 멀어지시오! 어서!”

       

       격한 움직임으로 출렁이는 무언가의 유혹에 견딘다.

       이스칼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기절한 에이홉과 잔뜩 놀란 인어를 다독이는 사이, 섬광에 물러났던 크라켄이 잔뜩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

       

       잠시 겁먹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크라켄은 더욱 성을 부리며 아틀라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쿠콰앙ㅡ!

       

       “이런! 모두 피하시오!”

       

       여덟 개의 촉수가 매섭게 휘둘러졌다. 무차별적인 파괴를 위한 공격.

       몇몇 개의 촉수는 그저 아틀라스를 파괴했고, 몇몇 개는 이스칼과 뒤의 일행을 향해 쏟아졌다.

       

       ‘막아야 한다…!’

       

       이스칼이 팔뚝의 방패를 고쳐 잡았다.

       

       이스칼은 피할 수 없었다.

       피해서는 안 됐다.

       

       “키이이익…! 챠샤아아악…”

       

       “어서, 어서 가자꾸나!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살아남은 이후에 들어도 늦지 않는다!”

       

       에리얼과 인어가 기절한 에이홉을 붙잡고 열심히 지느러미를 놀리고 있다. 여기서 이스칼이 피한다면, 저들의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우리라.

       

       촤라라라락-!!

       

       다섯 개의 촉수가 일제히 채찍처럼 내뻗는다. 물을 가르며 다가오는 모습은 흡사 초승달처럼 보일 지경.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모습은 어디를 공격할지 쉬이 짐작하기 어려웠다.

       

       “크으읏…!”

       

       이스칼이 이를 악물며 팔뚝의 방패를 최대한 움직였다. 피하지 않고 모두 막아볼 심산이었다.

       화살처럼 날아온 크라켄의 촉수가 이스칼의 방패를 두들겼다.

       

       콰앙! 쿵, 콰쾅-!

       

       거대한 충격파가 퍼지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건…?”

       

       황망하게 중얼거린 이스칼.

       그의 방패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이건 더욱 뒤에서 난 소리였다.

       

       《….? ────!!!》

       

       콰앙!

       

       느닷없이 거대한 흑염이 날아와 크라켄의 촉수에 작열했다. 바닷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도리어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흑염.

       

       이스칼은 일찍이 이런 흑염을 본 적 있었다.

       

       “한스 경?”

       

       한스의 의수, 용왕의 사념이 잠들어 있는 그의 의수에서 타오르던 흑염이다.

       

       “……”

       

       저 멀리 처박혀 있던 한스가 놀랍도록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크라켄의 촉수에 당해 한참이나 날아갔기에 분명 처참한 상태일 것이라 예상했거늘.

       

       “한스 경! 무사했다니 다행이군! 내가 전방에서 엄호할 테니, 한스 경이 녀석의 다리를 공격ㅡ”

       

       “언성을.”

       

       “어?”

       

       “감히 내 앞에서 언성을 높이지 마라.”

       

       “뭐…라고?”

       

       한스의 입에서 싸늘하도록 차가운 말이 들려왔다. 예의 바르고 정중했던 한스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투.

       

       저도 모르게 덜컥 몸이 굳은 이스칼이 천천히 한스를 살폈다.

       

       ‘뭔가… 뭔가 다르다!’

       

       그가 알고 있던 한스와 많이 달랐다.

       

       항상 정갈하게 정리했던 앞머리는 어째서인지 한쪽 눈을 덥수룩하게 가렸고, 반쯤 풀어진 붕대가 너저분하게 의수를 감싸고 있었다.

       거기에 사이한 붉은 빛으로 번뜩이는 안광이라니.

       

       보는 이의 오금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이 흘렀다.

       

       “너, 너는 누구냐! 어떤 삿된 것이 감히 한스 경의 몸을 차지한 것이야!”

       

       “……후우. 참으로 시끄럽구나. 나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지 마라. 우민.”

       

       “우, 우민?!”

       

       “지금의 나를 함부로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큭큭… 왜냐하면ㅡ”

       

       음침하게 웃음을 터뜨린 한스가 의수의 손바닥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다.

       

       “까딱했다간 내 오른팔에 잠든 용왕이 깨어날 테니까 말이야!”

       

       고오오오오ㅡ

       

       한스의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기묘한 아우라가 퍼져갔다. 이스칼은 느낄 수 있었다.

       

       말투도 우스꽝스럽고, 하는 자세도 이상하지만.

       저건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진짜로 용왕이 깨어날 수도 있다..!’

       

       한스의 의수에 잠든 것은 용왕의 사념 혹은 의식.

       저 말은 허세나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정말로 한스의 오른손에 잠든 용왕이 깨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스 경이 저리 된 것이지?’

       

       평소 굳게 의수를 봉인하고 있던 붕대가 절반 넘게 풀어진 모습. 

       아마 붕대가 풀어지며 의수가 한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

       

       흑염을 털어낸 크라켄이 크게 소리치며 촉수를 휘둘렀다.

       분노한 크라켄의 격노를 담은 촉수들이 사방의 공간을 점유하며 쏟아져 내렸다.

       

       피할 공간 하나 없이 빼곡하게 쏟아지는 절체절명의 순간.

       

       “한스 경! 위험하네!”

       

       “흥. 대충 알았다, 너의 수준. 시시해서 죽고 싶어질 정도군.”

       

       그 가운데에서 한스는 그저 피식 조소를 뱉었다.

       

       화르륵-! 꽈앙, 쾅!

       

       한스가 무심하게 롱소드를 휘두르자, 길게 뻗어진 흑염이 사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이윽고 촉수와 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단숨에 크라켄의 촉수 두 개가 잘려 나갔다.

       

       “여섯 신 맙소사!”

       

       가공할 위력에 이스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스가 어깨를 우쭐했다.

       

       “큭큭. 내가 진심을 발휘하지 않았다는 걸 행운으로 여기도록. 만약 그랬다면… 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이 자리에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을 거다!”

       

       “아, 으음… 그, 그렇군.”

       

       이스칼은 문득 한스가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굉장히 괴로워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큭! 크으윽…!! 아, 안 돼! 지금은 안 된단 말이다…!”

       

       “하, 한스 경?!”

       

       돌연 한스가 오른손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봤던 의수가 폭주하기 전의 증상이었다.

       설마 지금 의수가 폭주하려는 것일까. 걱정스럽게 달려간 이스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큭, 큭큭! 어이, 어이! 진정하라고 용왕! 피 맛을 봐서 흥분한 건 알겠지만, 고작 지금의 세상에 널 풀어놓으면 세상이 버티지 못하니까…!! 크큭!”

       

       “…”

       

       한스를 바라보는 이스칼의 시선이 미묘했다.

       

       ‘…저대로 괜찮은 걸까.’

       

       전투 능력은 확실히 뛰어난 것 같지만… 한스 경이 나중에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것 같아 살짝 걱정됐다.

       

       《────!!!》

       

       고통에 찬 크라켄의 비명.

       

       한스는 언제 신음을 터뜨렸냐는 듯 태연하게 다시 일어섰다. 하는 행동을 보니 애초부터 용왕이 폭주하려 했는지 의문이다.

       

       “키킥! 오직 전투의 흥분과 살육만이, 내 안의 용왕을 잠재울 수 있다!”

       

       한스가 중얼거리며 영문 모를 말을 떠들었다.

       

       흑염이 타오르는 롱소드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허공을 점했고, 무수한 선이 그어졌다.

       

       “더, 더어! 내 안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한 죽음의 장송곡을 노래하라! 크하하하!”

       

       촤자자작, 맥없이 잘리며 불타오르는 크라켄의 촉수들.

       

       이스칼이 결사의 다짐을 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크라켄을 몰아붙였다.

       

       꾸욱.

       

       “……”

       

       이스칼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일방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의수의 봉인을 푼 한스의 언행은 우스꽝스럽고 어딘가 과장됐지만, 그 힘은 진짜였다.

       

       “크하하하하! 내 안의 용왕이 피를 원한다!”

       

       꽈앙! 검을 내팽개친 한스가 크라켄에게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넝마가 된 크라켄의 살점이 사방에 낭자하게 흩날린다.

       

       쫘자자자작ㅡ! 콰앙! 쿠웅!

       

       일 권에 지척이 흔들렸고, 일 각에 허공을 노닌다.

       

       고결하고 심오한 깨달음과 극에 달한 기술이 아닌, 순수한 육체의 성능으로 크라켄을 압도한다.

       

       “엄청나군…”

       

       이것이 용왕의 힘.

       

       이스칼이 넋 놓고 한스와 크라켄의 전투를 바라봤다. 그것은 전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일방적인 그림이었다.

       

       “크하하하! 겨우 이게 전부냐ㅡ 커읍?!”

       

       이리저리 날뛰며 크라켄을 농락하던 한스가 문득 입에서 피를 토했다. 부들부들 사지를 떨더니 고목처럼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한스 경!”

       

       이스칼이 달려가 한스를 살폈다. 한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전부 박살났군…’

       

       팔부터 다리까지 피멍으로 가득하다.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내장도 엉망일 것이다. 짧게나마 용왕의 힘을 쓴 대가일까?

       

       팔을 뻗은 이스칼이 한스의 가슴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다. 꾸준한 수련으로 제법 능숙해진 신성력이 한스에게 스며들자, 불규칙적이던 숨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가장 최선은 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

       

       허나ㅡ

       

       《────────!!!》

       

       한스에게 한참이나 농락당하던 크라켄이 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한스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크라켄이 남은 촉수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분노를 토했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기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하. 한스 경보다는 내가 훨씬 만만하다는 건가?”

       

       그간 꽤나 영악한 모습을 보이더니, 정말 쉽지 않은 녀석이다.

       

       신성력을 움직여 방패에 두른다. 얇게 반짝이는 신성력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이스칼의 유일한 무기는 팔뚝의 작은 방패와 들 수 없는 방패, 날카로운 단검과 일말의 신성력.

       

       앞에는 강대한 적, 뒤에는 쓰러진 동료.

       문득 이스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는 매번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것 같군.’

       

       전열에 서는 자의 숙명이라는 걸까.

       

       《────!!!》

       

       신성력이 반짝이자, 얼마 남지 않은 크라켄의 촉수가 더욱 거세게 날뛰었다. 무언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어쩌면 혐오하는 것처럼.

       

       쐐애액ㅡ!

       

       문득 허공에서 거대한 촉수가 빗발치듯 쏟아졌고.

       

       쾅쾅-! 이스칼은 팔뚝의 방패를 힘차게 두들겼다.

       

       “와라, 이 괴물아ㅡ!”

       

       그는 언제라도 가장 앞에 서는 자였다.

       그가 든 방패의 무게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왕왕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노벨쨩…!! 중간에서 떡볶이 비용으로 횡령하다니…!! 벌로 떡볶이 3주 금지 처형을 내립니다…!! 땅땅땅!! 인보회 펀드…!! 저도 혹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안타까운 개인 사정으로 무산…!! 따흐흑…!!! 꾸준하게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저도 그런 날이… 올?까??요???? 뿌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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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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