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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2

       

       

       

       

       

       302화. 결자해지 ( 1 )

       

       

       

       

       

       해안가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곳곳의 그늘진 곳에서는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연인의 속삭임이 가득하다.

       

       셀리나와 퍼리우스 후작이 준비한 맞선의 참여자들이 신비한 꿈을 꾼 이후 일어난 극적인 변화다.

       한바탕 기묘한 꿈을 꾸고 일어난 남녀는 아주 높은 확률로 연을 맺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은 꿈의 중간에 깨어난 이들뿐.

       

       꿈의 종장을 보고 온 이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꿈이라고는 하지만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탓이 크기 때문이리라.

       

       “…”

       

       셀리나는 곳곳에서 들려오는 연인의 밀어들 사이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방금 눈앞에서 봤던 풍경이 계속해서 아른거린다.

       

       암석 뒤에서 펼쳐진 뜨겁고, 열정적이고, 탐욕적으로 서로를 탐하는 이스칼과 프리가의…

       

       꾸욱.

       

       보기 싫은 풍경. 눈을 꾹 감아본다. 그리하면 더 이상 보이지 않을까.

       

       “하아.”

       

       낙인처럼 새겨진 풍경은 망막에 남아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임시 본부 천막에 도착한 셀리나는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질척하니 끈적한 감정은 올가미처럼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뭐라고…’

       

       이 감정의 정체.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질투.

       자신은 감히 이스칼의 연인인 프리가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죄책감이 몰려왔고, 동시에 박탈감이 성큼 들이닥쳤다.

       

       나는 이스칼과 같은 꿈을 꾸면서 신께서도 이끈 사이인데. 꿈이라고는 하지만 수십 년의 시간을 보냈는데.

       함께 헤쳐 나간 시련과 역경이 무수하게 많은데.

       

       퐁ㅡ

       

       답답한 가슴에 숨이 턱 막혀온다. 셀리나는 선반에 있던 와인을 따서 단숨에 들이켰다.

       간밤에 이스칼과 마시려 준비했던 것인데, 하등 쓸모없게 됐다.

       

       “꿀꺽… 꿀꺽… 꿀꺽…”

       

       단숨에 사라지는 보라색 액체.

       그에 비례해 셀리나의 뺨이 점점 붉어졌다.

       

       “크으…”

       

       몽롱한 기운이 머리에 가득하며 조금 숨 쉬시기 편해진다.

       아직 부족하다. 

       

       셀리나가 휘청 일어나며 술병을 더 많이 가져와 거침없이 내용물을 마셨다.

       

       한 병… 두 병… 세 병…

       

       셀리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 만큼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의 개수가 늘어난다.

       그렇게 길게 늘어졌던 해는 사라지고, 한 구석 야금 갉아 먹힌 달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지?”

       

       다른 이들이 한창 잠자리에 들 시간.

       느지막하게 임시 천막으로 돌아온 이스칼은 코를 찌푸렸다. 

       

       천막 가득하게 맴도는 알싸한 알코올의 향기. 

       술이다.

       냄새의 정체를 깨달은 이스칼이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누가 본부에서 술을 마신 거지?”

       

       화악ㅡ

       

       한 손에 신성력이 일어나며 천막의 어둠을 몰아냈다. 그러자 보이는 풍경은 곳곳에 굴러다니는 술병과 바닥에 널브러진 한 인영.

       

       “셀리나?!”

       

       기겁한 이스칼이 바닥에 쓰러진 셀리나를 부축했다. 바닥에 쓰러진 셀리나의 몸에서는 알싸한 술 향기가 풀풀 풍겨왔다.

       

       “도대체 혼자서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와인병만 얼추 네 병이다. 이걸 혼자서 다 마셨다고?

       

       “셀리나? 셀리나. 걸을 수 있나? 내 말이 들리기는 하는 건가?”

       

       “우… 으으음… 어, 아? 자- 기? 헤, 헤헤. 이스, 칼?”

       

       “오. 깼군. 혼자 못 일어날 것 같으니까 좀 도와드리지. 이쪽 어깨에 팔을 걸고ㅡ 으왓!”

       

       셀리나를 부축하려던 이스칼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부축하려던 셀리나가 온 힘을 다해 무게를 걸고 이스칼을 바닥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쿵!

       

       불안했던 자세인 와중에도 몸을 회전시켜 먼저 바닥에 쓰러진 이스칼. 그의 가슴팍 위로 셀리나가 넘어졌다.

       

       “윽. 셀리나. 어디 다친 곳은…”

       

       무의식적으로 뒤통수를 쓰다듬던 이스칼이 말을 흐렸다. 흐릿한 어둠 사이로 선연하게 녹색의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셀리나의 것이다.

       

       “후, 후후후.”

       

       “…셀리나?”

       

       불길하고 낮은 웃음소리. 어쩐지 오싹 소름이 돋은 이스칼은 말을 더듬었다. 

       적의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셀리나. 자, 장난이 지나치군. 일단 내 위에서 좀 비켜ㅡ”

       

       “…건데.”

       

       “으응? 뭐라고?”

       

       “…내 건데…”

       

       “내꺼라니?”

       

       도대체 무엇이?

       작게 중얼거리던 셀리나가 녹색 안광을 폭발시키며 이스칼에 외쳤다.

       

       “자ㅡ 자기는 내가! 내 건데! 내가 더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꾸, 꿈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데!”

       

       “세, 셀리나?”

       

       이스칼은 그제야 셀리나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꿈에서 있었던 일에 이토록 셀리나가 집착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 버렸다고 생각했거늘.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그것은 그냥 꿈에 불과ㅡ 후읍?!”

       

       이스칼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셀리나의 입술이 이스칼의 입을 꽉 막아버렸다.

       튀어나올 듯 커다래진 이스칼의 눈동자. 

       

       “하아… 하아…”

       

       거세진 셀리나의 호흡이 이스칼의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날숨에 독한 와인의 향기가 가득하다.

       

       “그냥 꿈…?”

       

       셀리나의 붉은 혓바닥이 살짝 튀어나와 입맛을 다셨다.

       

       “나한테는 그냥 꿈이 아니었는데?”

       

       “으, 으어?”

       

       “우린… 신께서 간택하신 인연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이건… 이건…”

       

       셀리나가 몽롱하게 속삭였다.

       

       “이건 어쩔 수 없었어.”

       

       “그, 그래도 이런 짓… 은… 우, 우음…”

       

       그 말과 함께 셀리나와 이스칼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동시에 잠에 빠진 것이다.

       

       저 멀리 외딴 곳의 암벽에서 쉬고 있던 프리가, 그녀도 비슷한 시각에 잠에 들었다.

       

       

       

       

       

       

       

       ***

       

       

       

       “어, 으, 으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가볍게 행한 행동에 생각지도 못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인데, 나는 지금 그 말의 의미를 강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아, 아니. 나도 이렇게 될 줄은 진짜 몰랐는데…”

       

       – “…”

       

       “진짜로!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케, 케넬름. 너도 봤잖아. 진짜 실수였어! 뇌 빼고 작업하다가 실수한 거야!”

       

       – “…”

       

       SD 케넬름의 시선이 따갑다. 

       양심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각을 세워 콕콕 가슴을 찔러온다.

       

       입이 열 개라도 무슨 말을 할까. 전부 나의 실수로부터 시작된 파국이거늘.

       

       “…후우…”

       

       화면으로 봤던 풍경은 한 편의 아침드라마와 다름없었다.

       

       잘 사귀고 있던 이스칼과 프리가, 그런데 갑자기 그사이에 난입한 셀리나의 등장. 그녀의 명분은 무려 신의 간택! 이에 폭주하는 프리가와 셀리나,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이스칼.

       

       …말해 무엇 할까.

       이번 일의 모든 시작은 바로 나였음이 명백했다 

       

       결자해지.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그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책임이 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난 그냥 어인족 저주만 풀고 싶었는데, 왜 일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걸까.

       

       돌아가는 꼴이 마치 오래되어 고장난 하수도와 같다.

       물이 새는 곳을 막으면 다른 곳에서 물이 새고, 또 그곳을 막으면 이상한 곳에서 물이 흐르는.

       

       – “…하아. 의도는 아니었지만 한 사내에게 두 여인을 엮어주셨으니, 응당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지요.”

       

       “그걸 도대체 어떻게…”

       

       머리가 아프다.

       이른바 명분의 문제였다.

       

       프리가에게는 전부터 교제하고 있던 연인이라는 명분이 있고, 셀리나에게는 신이 점지해 준 연인이라는 명분이 있다.

       

       솔로몬처럼 이스칼을 반으로 갈라서 줄 수도 없는 노릇. 

       

       “으음.”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때, SD 케넬름이 박수를 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 이건 어떨까요?”

       

       “오오! 뭔가 방법이 떠올랐어?”

       

       – “지금 상황은 두 여인이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이스칼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렇지.”

       

       – “그러면! 거기에 두 여인이 각자 한발 물러나서 서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겁니다! 이른바 양손의 꽃인 거죠!”

       

       “그… 으음?”

       

       해결책이 서로 양보하기?

       이게 되려나?

       

       – “아니면 다른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그건 아닌데…”

       

       뭐.

       사실 이게 최선이라고 봐야겠지. 저쪽 세계는 신분제가 있는 판타지여서 일부다처제 같은 것도 제법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서로 양보하게 할 건데?”

       

       이게 제일 중요하다.

       서로 죽어라 기 싸움 하면서 물러서지 않으면 사이에 낀 이스칼만 죽어날 텐데.

       

       – “솔직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정말 어지간해서는 서로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저 둘의 애정이 그리 가벼워 보이는 것도 아니고요.”

       

       “후우.”

       

       비관적인 케넬름의 말.

       그래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 나한테 말을 한 것일 터.

       

       – “그러니, 직접 나서서 둘을 중재하셔야 합니다.”

       

       “…내가?”

       

       저걸 직접 중재하라고?

       어떻게?

       

       

       

       ***

       

       

       

       초대 성녀, 케넬름. 

       그녀는 여섯 번째 신을 바로 곁에서 보필하는 아주 중대하고도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허나 그녀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여섯 번째 신께서 도통 신이라는 자각 없이 너무 경솔하고 가볍게 행동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개미의 한 걸음과 인간의 한 걸음, 거인의 한 걸음은 비교할 수 없다. 개미의 외침은 나뭇잎도 흔들 수 없지만 거인의 외침은 숲을 뒤흔든다.

       

       여섯 번째 신께서는 스스로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파급을 자각할 필요성이 시급했다.

       

       그간 케넬름은 여섯 번째 신께서 스스로 자각하기를 바랐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

       

       ‘좀 극약 처방이기는 하지만…’

       

       무엇이 신을 만드는가?

       신은 무엇으로 존재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무엇을 행하는가?

       

       그것은 케넬름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신의 생각은 신만이 알 것이다.

       

       케넬름은 그저 최선을 다해서 계기를 마련할 뿐.

       

       “그 계기라는 것이 두 여인의 치정 싸움이라니.”

       

       무게에 비해서 계기가 조금 어이없는 느낌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먼 훗날, 언젠가 여섯 번째 신께서 본인의 옥좌에 앉으실 때. 정말 고달픈 나날이 이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뚜드드드득ㅡ!

       

       “아. 시작한다.”

       

       상념에 잠기던 케넬름은 들려오는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강하게 찢어지는 소리.

       

       실은 공간이 아니라 차원과 차원을 가로막는 벽이 찢어지는 소리였지만,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었다.

       

       이번 일에서 케넬름은 여섯 번째 신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말인 즉, 평소 그녀가 하던 말투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말이란 그 사람의 언행과 됨됨이, 나아가 생각도 알게 해주는 것이었으니. 이제 여섯 번째 신께서는 케넬름의 도움 없이 스스로 나설 때가 된 것이다.

       

       “…괜찮겠지?”

       

       그럼에도 어째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초조하고 불안한 노릇인지.

       

       케넬름은 살짝 불안한 마음 한 스푼, 기대와 믿음 반 스푼을 섞은 눈빛으로. 눈앞의 풍경에 집중했다.

       

       별로 이루어진 거인의 앞에 도래한 세 명의 인간.

       

       날이 갈수록 더욱 찬란한 별로 옥체가 가득하였으니, 휘광과 광채가 온 세상을 떨친다.

       

       거인의, 신의 위엄과 존재감에 압도당한 인간 세 명은 감히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바짝 엎드릴 뿐.

       

       쿠구구구…

       

       잠시 가만히 서 있던 거인은 손을 뻗어 허공으로 향했다. 검지 손가락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어느 한 부분을 짚는다.

       

       이윽고 거인이 천천히 입을 움직이며 거룩하고 영광된 말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빛이 있으라.》

       

       그 목소리는 마치 수천수만의 군중이 아우성치며 노래하는 듯했고, 소년과 노인, 여인과 사내의 목소리를 한데 섞은 듯 오묘했으니. 마치 세상의 외침이라.

       

       세 명의 인간과 케넬름은 마른침을 삼키며 거인에게 집중했다. 

       

       번쩍ㅡ!

       

       돌연 거대한 섬광이 번쩍이더니, 거인의 손가락 끝에서 이글거리는 구체가 ‘만들어졌다.’

       

       본래 그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그 편린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어떤 까닭으로 저리 되는 것인지, 그들의 작은 머리로는 억만 번 다시 태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별의 거인은 방금 막 창조한 별을 무심하게 위로 던졌다. 쏜살같이 날아간 별은 우주의 한구석에 자리 잡으며 새로운 별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별의 거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와. 이게 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 날이 선선해진 까닭인지… 문득문득 차기작에 대한 생각이 퐁퐁 솟아오릅니다…!! TS 인방물부터, 판타지 유랑물, 히어로 물까지…!!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 메모장 안에서 꼭꼭 적어두는 중입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빈 속에 매운 것을 먹으면…!! 위 장벽에 구멍이 송송 뚫립니다…!! 이는 매우 과로운 바… 부디 몸을 아끼세욧!! 그리고, 스스로 싼 똥을 치운다는 것…!!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결자해지…!! 일의 끝을 매듭짓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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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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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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