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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4

       

       

       

       

       

       304화. 결자해지 ( 3 )

       

       

       

       

       

       꿈은 언젠가 끝이 나기에 꿈이다.

       흩어질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깨어나면 새벽의 이슬처럼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모래처럼 날아갈 꿈이 아니라, 너무나도 선명한 현실과도 같았다면.

       

       그리하여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혼동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면. 

       그것은 과연 일개 꿈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흐읍ㅡ!”

       

       “아, 아아!”

       

       이스칼과 셀리나가 깊은 물에서 막 올라오는 사람처럼 크게 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남사스럽게도 둘의 몸은 포개져 있는 채였지만, 그런 걸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세, 셀리나…?”

       

       “…하아, 하아… 방금, 내가 되게… 이,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아…”

       

       셀리나의 떨리는 눈동자. 잘게 흔들리는 이스칼의 손.

       서로 눈을 마주친 이스칼과 셀리나는 직감했다. 

       

       별과 빛으로 가득한 바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공간.

       그리고 별들의 바다 가운데에서 세상의 중심처럼 자리 잡은 거대한 존재.

       

       그것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둘은, 아니.

       프리가까지 세 명은 초월적인 존재를 직접 만나고 온 것이다.

       

       “방금 그 꿈은 설마ㅡ”

       

       “…맞는 것 같습니다.”

       

       말해 무엇 할까.

       그들의 영혼은 위대한 신의 부름을 받아 신을 마주하고 온 것이다.

       

       이스칼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신의 거대한 존재감은 쉬이 지워지지 않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이를 무엇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을까?

       

       ‘개미가 바라본 인간… 아니지. 먼지의 시선에서 바라본 태양과도 비슷했다.’

       

       별들의 바다 가운데 자리 잡은 신은 그저 시선을 향하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잡아 이끌었고, 다스렸으며, 비틀었고, 창조하였다.

       

       말 한 마디에 별이 태어나는 그 광경!

       불타고 이글거리며 끝없이 타오르는 태양이 한순간 ‘만들어져’ 우주의 저편으로 가는 장관이라니.

       

       의지한다. 고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신.

       

       바스락.

       

       이스칼은 문득 손을 내려다보았다. 신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내리며 가르침을 베푸신 이후,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

       빛에 감싸인 이스칼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흩날리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움켜잡기는 했는데…

       

       “종이?”

       

       매끈하고 하얀, 아주 고급스러운 종이 한 장이 이스칼의 손에 잡혀 있었다.

       어찌나 부드러운 감촉인지 황제의 비단 못지않다.

       

       “…어, 이거 설마? 그 꿈에서 가져온 거야?!”

       

       그 위에 선명한 검은 색의 글씨.

       이스칼은 전율했다.

       

       읽을 수 없다.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다.

       하지만, 이 문자의 의미는 어쩐지 그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스칼은 떨리는 손으로 하얀 종이를 훑었다. 제일 위에 있는 글씨의 의미를 떠올린다. 

       

       그래.

       신께서는 가장 먼저 말씀하셨다.

       

       “ㅡ빛이 있으라.”

       

       이것은 신의 말씀.

       

       “계명….”

       

       신의 지엄한 말씀.

       

       

       

       ***

       

       

       

       “흐으읍!”

       

       커다란 암벽 뒤, 인기척이 드문 곳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프리가.

       언제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축축한 땀이 끈적하게 늘어져 기분 나빴다.

       

       욱씬.

       

       “아극, 으… 머, 머리야.”

       

       돌연 쑤셔오는 두통에 머리 붙잡고 있기를 한참.

       프리가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그러니까… 별이 가득한 까만 곳에 있었는데…’

       

       흐릿한 발자취를 더듬는 사냥꾼처럼, 차근차근 기억의 뒤를 따라간다.

       

       그래. 하나씩 기억난다. 이스칼과 도둑고양이도 있었지.

       그리고ㅡ

       

       “…신?”

       

       그 거대하고,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를 달리 무어라 불러야 할지 프리가는 몰랐다. 그래서 신이라 불렀다.

       

       “내가, 그러니까 내가ㅡ”

       

       오싹-!

       

       기억을 떠올리던 프리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눈을

       마주쳤다.

       

       신이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낮추어.

       자신을 똑바로 바라봤다.

       

       “흐으읏ㅡ!”

       

       덜덜 떨리는 손을 강하게 움켜쥔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고개를 휘휘 털어내며 애써 그 기억을 떨치려 노력했다. 

       

       신과 눈을 마주친, 감히 서로를 똑바로 바라본 그 경험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알몸으로 용의 주둥이 안에 있는 기분이었지.’

       

       감히 용과 신을 비교할 수는 없다만, 굳이 대상을 찾자면 용이 그나마 아주 살짝 비슷했다.

       

       “아. 맞아. 그리고 나한테 뭐라고 떠들었는데.”

       

       그 내용을 곰곰이 떠올리던 프리가는 눈을 꾸깃 찌푸렸다.

       

       “뭐라고 했더라? 뭐? 우연이랑 우연을 엮어서 필연이라고? 그러니까 소중히 하라고 했었나?”

       

       아주 고급지게 말하시는 까닭에 절반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얼추 의미는 전해졌다.

       

       ‘요컨대, 셀리나랑 사이좋게 손잡고 이스칼이랑 결혼하라는 거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들 이유가 없다.

       애초에 이스칼의 연인은 자신밖에 없는 것인데. 무엇이 인연이고 또 무엇이 필연인가.

       

       ‘에이씨.’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존재를 직접 눈앞에서 본 다음에도 강짜를 놓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가 분명했으니.

       

       유감스럽게도 프리가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용맹과 만용의 차이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여기서 대드는 것은 자살 행위다.

       

       프리가는 자꾸 발작하려는 성질을 애써 죽였다. 그래도 신이라는 작자가 꼴에 양심은 있어서 서열 정리는 해주지 않았는가.

       

       “흐흣. 마지막에 셀리나한테 항상 겸손하고 공경하라는 거. 그건 나를 말하는 게 맞겠지?”

       

       그나마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암.

       적법한 정실이 누군데, 감히 첩이 대드는가?

       

       ‘임신도 내가 먼저 할 게 뻔하고.’

       

       그렇게 했는데 이 정도면 무조건 임신이지.

       

       기분이 좋아진 프리가는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그 발걸음의 끝에는, 이스칼과 셀리나가 있는 임시 본부가 있었다.

       

       

       

       ***

       

       

       

       계명, 그것은 신께서 전한 율법이다.

       

       만신전은 대륙 신앙의 영적 수도인 만큼, 적지 않은 양의 성서와 경전, 복음서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오늘로 모든 성서의 위에 올라서는 것이 생겨버렸다.

       

       신께서 직접 전한 말씀!

       

       거기에 신께서 직접!

       신께서 직접 적은 것이라니!

       

       감히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성물!

       

       신의 강림 이후 제법 의젓한 태도를 유지하던 만신전이 눈을 훼까닥 뒤집고 헐레벌떡 아르테리스로 달려온 이유였다.

       

       이스칼의 손에서 만신전으로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운반된 한 장의 종이는 만신전의 모든 경전을 갈아엎게 만들었다.

       

       신학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 세상에 연구할 것이 너무 많구나!”

       

       아직 그 의미가 해석되지 않은 룬 문자부터, 신의 계명이 적힌 종이라니! 아마 평생 논문을 써도 부족할 것이다.

       

       신학자의 밑에서 연구하는 조교들도 비명을 질렀다.

       

       “으, 어… 아…”

       

       비명을 지를 기운조차 남지 않아 조용히 기절했다.

       

       어느 순간을 시작으로 만신전은 횃불이 꺼지지 않고 지상에 내려온 별처럼 매일 밤마다 빛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신학자들의 피땀 눈물로 빛나는 별이었다.

       

       “신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이 ‘빛이 있으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셨으며ㅡ”

       

       “인연과 인연이 얽혀 운명이다. 그리하여 필연이니 우연을 소중히 하라… 이 얼마나 심오한 말씀입니까!!”

       

       연구, 또 연구.

       신학자들은 잠을 줄여가며 신의 말씀을 연구했다.

       

       “이웃을 사랑하라… 이건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변의 모든 이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ㅡ”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의 진의는ㅡ…”

       

       끝없는 토론.

       

       “여섯 번째 신께서는 전체적으로 사랑함의 중요성과 우연의 무거움, 겸손과 배움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는 모든 이에게 마땅히 알아야ㅡ…”

       

       만신전의 근간에 새로운 글귀가 새겨지고 있었다. 단 한 장의 종이에서 시작된 파급이었다.

       

       아직 정돈되지 않아 만신전 내부에서 출렁이는 물결이었지만, 머지않아 온 대륙으로 퍼져나갈 파도가 될 것이었다.

       

       그 모든 소란의 근간이자, 가운데 서 있는 장본인은 놀랍게도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호롭ㅡ

       

       ‘음. 차가 달군.’

       

       신의 계명을 가져온 것으로 인지도가 수직 상승한 이스칼. 이제 거리를 혼자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소문에 따르면 이스칼이 황금빛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에서 내려와 계명을 적은 종이를 가져왔다나 뭐라나.

       

       덕분에 이스칼은 ‘수호자 이스칼’이라는 멋들어진 이명에서 ‘황금 날개의 이스칼’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이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래도 흑염용왕의 주인보다는 내가 낫지.’

       

       아무렴.

       한스보다 훨씬 좋지 않은가.

       

       사실 이스칼은 이토록 여유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일주일 후에 그는 결혼하게 된다.

       

       그것도 두 명의 여인, 프리가 그리고 셀리나와 동시에.

       한 번에 두 여인과 결혼한다.

       

       “허허허허.”

       

       이 소식을 들은 몇몇 유부남 사도 부대원들은 침중한 태도로 이스칼을 위로했다.

       

       “그… 하. 힘내십쇼.”

       

       “마누라가 한 번에 두 명이라니. 여섯 신 맙소사…”

       

       전우를 사지로 보내는 듯한 표정이라고 할까. 사뭇 안타깝다는 눈빛이 가득했지만, 사실 이스칼은 아직도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가? 결혼식이라고? 유부남? 내가?’

       

       번갯불에 콩 볶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다.

       

       신께서 셋의 인연을 필연이라 선언하신 탓에 만신전이 사력을 다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ㅡ그리하여 세 사람의 결혼을 온 세상이 축복할 것이며, 셋은 앞으로 평생의 동반자로 서로를 의지하고…”

       

       “아…?”

       

       뭔가 엄청나게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다. 사방에서 꽃이 떨어지고 모두가 축복하며 성가를 부르는 위대한 결혼식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양손의 꽃으로 두 명의 아내가 생긴 이스칼.

       

       “너! 앞으로 처신 잘하라고. 내가 진짜 마음에 안 드는데,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거니까!”

       

       “흐, 흐읏. 나도 정말로… 자, 자기랑 결혼을…”

       

       불안하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녹색 안광을 빛내는 셀리나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팍팍 내는 프리가.

       

       두 여인 모두 순백의 드레스로 몸을 감싸고 꽃과 보석으로 치장하여 봄의 요정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아마 성도의 많은 총각들이 피눈물 흘리며 이스칼을 저주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이스칼은 아리따운 꽃을 양손에 쥔 남자였지만, 실상은ㅡ

       

       “그, 그만… 이제 진짜 안 나와…”

       

       “팍씨! 야, 안 세워?! 어쭈. 이것 봐라?”

       

       “공녀님. 그렇게 다그치기만 하면 안 되죠. 이렇게, 여기를 이렇게 하면…”

       

       “응고옥!”

       

       “오. 뭐야. 어떻게 했냐?”

       

       “후후. 자기는 이 부분이 민감하니까 여기를 부드럽게 만지면ㅡ”

       

       “으그어억! 살려줘!!”

       

       나름 행복한 신혼을 만끽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응기긱…!! 이런 고봉밥 댓글…!! 작가의 배가 터져 죽어 버려욧…!!! 오곡!!! 오곡밥!!!
    부처가 신이 아니라니…!! 아. 물론 저는 알??고 있었지만 말이죠? 아무래도 주인공이 잘??못 알았던? 모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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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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