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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07

       

       

       

       

       

       307화. 가장 낮은 곳에서 ( 3 )

       

       

       

       

       

       “으음.”

       

       방에 앉아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혼자서 어깨를 돌리고, 제자리에서 펄쩍 뛰다가, 이리저리 좌우로 뛰기를 한참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근력, 지구력, 반응 속도 등등. 육체가 이상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이건 단순히 좋아지고 있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환골탈태에 가까운 수준이다.

       

       심지어 다른 문제에 비하면 육체의 변화는 두 번째 문제였다.

       

       ‘…요즘 내 마음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스스로의 상태를 냉정하게 되짚었다. 

       

       요즘의 나는, 모든 생명체에 대해 박애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다. 궁극의 아가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직은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아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감정의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아마도.

       

       “…역시 그것 때문인가?”

       

       스스로 균열을 찢어 우주의 꿈을 열었을 때.

       그 이후로 이런 변화가 시작됐다.

       

       우주 공간에 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는 진짜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수준이었는데,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저것 뭔가 이상한 게 점점 많아진단 말이지.’

       

       딸깍-

       

       머릿속에 상상한 임의의 스위치를 눌러서 사용할 수 있는, 일명 ‘색안경’.

       

       색안경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특이한 기능이 있었는데, 그동안 대상의 과거를 보여주다가 이번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다.

       

       “얘는 26/57, 저 강아지는 4/13… 나무는 3/8.”

       

       대상에게 숫자가 보인다.

       뭐 어딘가의 야한 만화처럼 이상야릇한 수치가 보이는 건 아니었고, 이건 그보다 좀더 추성적인 개념을 수치화 시킨거다.

       

       ‘으음… 일종의 가능성…?’

       

       대상이 성장할 수 있는 최댓값과 현재 수치를 표현한 것 같다. 현재 전투력과 최대 전투력…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대상의 현재 수준과 성장 가능한 한계치?

       

       너무 흐리뭉실한 개념이라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는데,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면 되게 헷갈리는 느낌?

       

       아무튼.

       이 수치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서 볼 수 있었다.

       

       벌레, 동물, 사람, 식물의 종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수치의 크고 작은 차이만 있을 뿐.

       

       “어디 보자. 케니스는… 오우, 전투력이 587/793? 한스는 298/326이네?”

       

       이처럼 강한 녀석들은 전체적인 수치가 제법 컸다. 

       

       0이라는 수치는, 생물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0을 가진 녀석은 없는 건가?’

       

       하다못해 탄탈로스에서 웰던으로 익어가는 악마에게도 숫자가 있다. 날아가는 날벌레도, 늘어지게 잠을 자는 강아지와 나무에게도.

       

       이것저것 궁금한 것투성이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전에 어렴풋하게 봤던 다섯 명은 도대체 누구지? 애초에, 케넬름은 도대체 뭐 하는 존재인 걸까.

       

       ‘■… 신?’

       

       점점 내가 인간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는 많이 이상한 기분이었다.

       

       부우웅ㅡ!

       

       문득 핸드폰이 진동하며 알람이 나타났다. 짧고 간결한 두 개의 글자만이 보인다.

       

       《긴급》

       

       …케넬름?

       

       나는 다급하게 화면을 옮겨 케넬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핸드폰은 계속 진동하며, 《긴급》 알람을 보내왔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나는.

       

       뚜두두둑-!

       

       “끄으으읍…!”

       

       근육통을 억지로 견디며 균열을 열었고, 망설임 없이 그 사이로 몸을 던졌다.

       

       

       

       ***

       

       

       

       요즘 어쩐 일인지 악마의 활동이 굉장히 뜸해지고 있는 추세였다. 

       

       악마의 기세가 크게 꺾이니, 악마의 후장을 핥아가며 살아가는 악마 추종자들은 끈 잃은 연처럼 덩달아 추락하기 일쑤.

       덕분에 성도의 주변은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만신전의 연병장은 시종일관 뜨거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훈련이란 하루하루 조금씩 쌓아가는 것. 잠깐의 평화로 녹이 슨다면 그 얼마나 무딘 칼인지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었다.

       

       “후우…”

       

       이는 케니스도 마찬가지.

       

       명상을 위해 연병장의 구석에 앉은 케니스의 주변으로 별빛이 번쩍거리며 강렬한 존재감을 발했다. 자연스럽게 연병장에서 훈련하던 이들의 시선이 하나둘 케니스에게 집중된다.

       

       “훈련 중에 한눈팔 정신이 있군. 오랜만에 나랑 같이하는 훈련이 그립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결국 한스와 대련 중이던 데모닉이 나서서 주의를 줬다. 그제야 훈련에 집중하는 녀석들을 보며 데모닉이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돌려 케니스를 바라본다.

       

       케니스의 주변에서 번쩍이는 별빛의 흔적.

       이를 본 데모닉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별빛…’

       

       별빛.

       

       별빛은 어마어마한 가능성의 시각화다.

       필멸하는 존재가 감히 품을 수 있을까 의심이 되는 순수한 힘이고, 순수하기에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케니스를 노리는 것 아니겠는가. 별빛을 손에 넣는다면, 감히 대적할 이 없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

       

       그렇기에 자신은 리아를ㅡ

       

       “ㅡ라딘 님?”

       

       문득 들려온 한스의 부름에 데모닉은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하네. 잠깐 떠오른 것이 있어서. 바로 시작하지. 들어오게.”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어울리지 않게 상념에 빠지다니.

       

       휘휘 고개를 털어낸 데모닉이 다시금 검을 붙잡았다. 으레 검을 휘두르면 잡념은 손쉽게 사라지곤 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공격이 너무 뻔하군. 눈으로 지금 공격할 거라고 외치는 건가?”

       

       “으그윽!”

       

       매섭게 덮쳐오는 한스의 공격을 이리저리 막아내며 지적하던 데모닉.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던 데모닉이 돌연 몸을 흠칫 떨었다.

       

       파각!

       

       “이런…!”

       

       하루 종일 몸에서 뗀 적이 없는 데모닉의 펜던트 끈이 갑자기 부서지며 펜던트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펜던트를 잡아낸 데모닉은 식은땀을 닦았다. 

       

       “후. 큰일 날 뻔했군.”

       

       “팔라딘 님, 괜찮으십니까?”

       

       “펜던트는 멀쩡하네. 다행히도 말이야. 정말 큰일 날 뻔했군. 이건 아내와 남은 마지막 추억인데.”

       

       잠시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던 데모닉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펜던트가 오래되기도 했으니 부서진 것일 확률이 높았다.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 미묘하게 몸을 간지럽히는 불길한 살랑거림은 뭘까?

       

       이건 마치 하나의 징조처럼 느껴졌다.

       

       ‘리아, 별빛, 케니스, 악마와 전조…’

       

       데모닉은 자신의 의식을 붙잡는 하나의 미혹을 자각했다.

       

       그것은 하나의 섬뜩한 가정이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끔찍한 망상.

       

       앞뒤 관계도, 논리도, 모든 정황과 인과를 무시한. 

       어쩌면 가장 허상에 가장 가까운 무언가.

       

       마치 눈먼 화살이 날아와 머리통에 박히는 것처럼.

       길 잃은 생각 하나가 데모닉의 심장을 서늘하게 꿰뚫고 지나갔다.

       

       그의 아내, 리아는 별빛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별빛을 탐낸, 그리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맹신한 이의 손에 별빛을 잃었다.

       그녀의 별빛은 대부분이 타락하여 일개 악마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ㅡ

       간신히 남아있던 리아의 별빛은 유언이 되어 케니스에게로 이어졌다. 케니스의 새로운 숨결과 심장이 되어 어린 케니스를 살아 숨쉬게 했다.

       

       …그렇게 끝이 났을 터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

       

       망상은 망상에 그쳐야 한다. 불길한 말은 내뱉는 것만으로도 힘을 갖기 마련이니.

       하지만 데모닉은 어째서인지 이 허황하고 현실성 없는 생각을 쉬이 떨칠 수 없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리아가ㅡ’

       

       불길한 상상에 몸을 떨던 데모닉을 이상하게 여긴 한스가 크게 외쳤다.

       

       “팔라딘 님!”

       

       “…아.”

       

       어느새 데모닉의 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팔라딘 님. 괜찮으십니까? 표정이…”

       

       데모닉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한스가 걱정스레 말했다.

       

       “조금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 미안하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잠시, 몸이 좋지 않아서.”

       

       한스의 부축을 거절한 데모닉은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어지럽다. 한참이나 걸으니 작은 묘비에 도착했다.

       

       소박하고 아담한 묘비.

       아내 리아가 묻힌 곳이다.

       

       “리아…”

       

       데모닉이 무너지듯 묘비 앞에 주저앉았다. 혼미한 정신이 점점 멀어지며 몽롱하다. 와중 여러 단어가 파편처럼 그의 정신을 맴돌며 눈을 어지럽혔다.

       

       별빛, 약탈, 가능성, 리아, 죽음, 악마.

       

       모든 필멸의 존재는 크든 작든 저마다 저마다의 가능성, 성장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별빛은 이러한 가능성의 실체화.

       

       별빛의 약탈은 곧, 모든 가능성의 박탈로 이어진다.

       

       존재의 실격.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퇴보할 수도 없이 외딴 절벽에 올라선 사람처럼 한 점에 영원히 머무르게 된다. 그저 하염없이 0에 머무른다.

       

       ‘리아…’

       

       모든 가능성을 박탈당한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그건 감히 데모닉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전례가 하나도 없을뿐더러, 살아있는 존재라면 너무나 당연하였으니까.

       

       

       

       ***

       

       

       

       으적으적.

       

       ‘그것’은 끊임없이 먹었다. 먹는 만큼 힘이 강해졌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해졌다 느꼈을 때, 그것은 있는 힘껏 몸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들겼다.

       

       쾅!

       

       한 번.

       

       콰앙!

       

       두 번.

       

       쩌적ㅡ!

       

       세 번.

       

       그리고.

       

       콰아아앙!

       

       드디어 지긋지긋한 벽이 부서지며, 벽 너머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콤한 먹잇감을 향한 환희. ‘그것’이 기쁨에 차올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앞에 보이는 건 그토록 기대했던 먹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제 발로 사지에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요.”

       

       하얀 성녀복과 금색의 작은 망치.

       붉은 머리카락과 꿀색 눈동자.

       

       성녀 케넬름이 장도리를 꽉 움켜쥐며 식은땀을 흘렸다.

       

       갑자기 영혼의 바다가 흔들린다 싶더니 나타난 이 괴물. 처음 보는 형태, 처음 보는 유형, 들어본 적 없는 능력이다.

       

       허나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다.

       심연의 균열에서 악마를 빨아먹는 녀석이 바로 이것이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는 거죠…!’

       

       식은땀이 흘러 등을 적신다. 눈앞의 존재에게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땅한 생기도, 사악한 기운도, 기척도.

       

       흡사 길가의 돌멩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렇기에 강렬한 위화감이 몰려왔다.

       

       분명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녀석을 보고 있음에도 생명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얼른, 얼른 오셔야 할 텐데…!’

       

       초조한 대치가 이어진다. 

       

       균열을 찢고 나온 ‘그것’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고, 케넬름은 살짝 떨리는 손을 감추며 마른침을 삼켰다.

       

       쿠쾅ㅡ!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애달픈 부름을 듣고, 거대한 무언가가 영혼의 바다에 강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비밀이 많은 여자… 케넬름…!! 본래 미녀에게 비밀이 이것저것 있어야 조금 더 신비로운 매력을 더해주는… 에? 아니라구요? 헛소리말고 얼른 떡밥이나 해결하라구요?!
    아, 알겠습니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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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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