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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1

       

       

       

       

       

       311화. 아브락사스 ( 1 )

       

       

       

       

       

       헤르만 헤세 작가의 데미안이라는 책을 아주 어릴 적에 읽은 적이 있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절반의 절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딱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에 남았다.

       

       “새는 알을 깨고 날아간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나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였었나.”

       

       그 뒤로 다른 문장이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솔직히 제법 머리가 굵어진 지금도 이 문장의 정확한 진의는 알기 어렵다. 대충 성장하려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라ㅡ이런 뜻 아니었을까.

       

       아무튼.

       케넬름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이 문장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

       

       

       

       내 손바닥 위에 올라선 케넬름이 작게 숨을 마시며 호흡을 골랐다. 긴장한 기색이 뚜렷해서 나도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

       

       “가장 태초에, 이 땅에 물과 흙만이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

       

       뭔가 태초의 분위기부터 시작했다.

       

       “흙은 단단하게 뭉치기만을 반복했고, 물은 고이고 고여서 썩어가는 땅이었습니다. 순환과 흐름이 없어 조용히 죽어가는 땅이었죠. 썩어서 고인 물은 독무를 내뿜었고, 단단하게 뭉친 흙은 용암이 되어 세상을 불태웠습니다.”

       

       《…? 지금 내가 보는 저 땅을 얘기하는 게 맞지?》

       

       케넬름이 말하는 것이 까마득한 옛날이라고 해도 지금의 대륙과는 너무 다른 판국이다. 그 정도면 전에 봤던 심연에 가까운 모습 아닌가?

       

       “틀림없습니다.”

       

       《음… 일단 알겠어. 계속 해.》

       

       “예.”

       

       다시 숨을 고른 케넬름이 말을 이었다.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죽음의 땅… 그대로였다면 변화도 죽음도, 그리고 생명도 없는 불모의 땅이 되었을 겁니다.”

       

       뭔가 분위기와 이야기 흐름상 이쯤에서 다섯 명의 신이 등장할 것 같은 타이밍.

       

       “다섯 분의 신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기 전에는 말이죠.”

       

       《그래, 딱 지금쯤 등장하겠다 싶었지. 아주 전형적인데?》

       

       내 시답지 않은 농담에 케넬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내가 했지만 이게 웃겼나?

       잘 모르겠지만 일단 케넬름의 긴장한 표정이 풀렸으니 다행이다.

       

       “후후. 그렇네요. 조금은 전형적인… 그런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케넬름이 나를 향해 양손을 크게 벌렸다. 무언가 커다란 것은 안으려는 듯한 동작에 내 손을 가져가니 꼬옥 껴안았다.

       

       작은 인형이 내 손가락을 붙잡은 느낌.

       케넬름이 내 손가락에 가만히 얼굴을 부볐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본래 다섯 신이라고 알려진 존재는… 단 하나의 존재였습니다.”

       

       《……..뭐?》

       

       케넬름이 말을 한참이나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되물었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다섯 신, 그러니까 내가 전에 환상으로 봤던 다섯 명이 원래는 하나였다고?

       다섯 신은 사실 엑조디아인가?

       

       “예, 본래 다섯 신이라고 알려진 존재들은 모두 단 하나에게서 나누어진, 일종의 파편과도 비슷한 것입니다.”

       

       《아, 아니. 잠깐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럼 내가 봤던 그 거인 다섯 명은 뭔데?>

       

       엑조디아가 아니라 사혼의 구슬이었네.

       

       “후후. 너무 당황하셨습니다.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감히 제가 하나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혹시, 저 작은 세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아니, 어떻다고 느끼셨습니까?”

       

       《어떻게 느꼈냐고 말하면…》

       

       고개를 돌려 허공에 떠오른 거울을 바라본다. 그 너머로 비추는 것은 무수한 사람과 풍경, 생명이 한데 어우러진 대자연의 모습.

       

       아름답다, 숭고하다, 사랑스럽다ㅡ 여러 감정이 솟아났지만, 항상 그보다 먼저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감정이 있었다.

       

       《…너무 약해 보인다?》

       

       저 아름다운 세상은 너무나 작고, 차원은 한없이 연약하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 낸 작은 조형물을 보는 기분이다. 내가 툭 치면 우르르 무너지고 부서질 수 있는, 그런 작고 위태로운 세상.

       

       바라던 대답이었는지 케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이 땅에 내려온 최초의 하나께서도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욱 거대한 존재셨으니, 말할 것도 없었죠.”

       

       《? 잠깐만. 지금 뭔가ㅡ》

       

       케넬름의 말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케넬름은 나의 물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여 최초의 하나께서는 자신의 몸을 다섯 개의 조각으로 찢었습니다. 본신으로 강림하면, 이 작고 여린 차원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 뻔했으니까요.”

       

       《그거 완전 미친 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케넬름이 말하는 시점의 대륙에는 용암이랑 독무가 가득했을 때인데 도대체 뭐가 아름다웠다는 걸까.

       

       광인짓을 하면 실제 광인.

       

       자신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찢을 각오를 했다는 시점에서 확신할 수 있다.

       케넬름이 말하는 최초의 하나라는 녀석은 보통 광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크흡! 푸흣. 아하하하!”

       

       내 말을 들은 케넬름은 무엇이 그리 웃겼는지, 눈물이 쏙 빠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죠. 위대하신 분께서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아까부터 말이 되게 묘하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케넬름의 단어 선정.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다시 케넬름의 이야기에 다시 집중을…

       

       《어? 잠깐만.》

       

       입을 열려는 케넬름을 제지하고 고개를 휙 돌렸다.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는 거울 속으로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봤다.

       

       《조금 전의 장면, 다시 보여줘.》

       

       내 말에 화려하게 빛나는 바다가 잔잔히 파도치며 들썩였다. 거울 속의 풍경이 빠르게 돌아간다.

       

       《지금. 지금 멈춰.》

       

       얼굴을 거울에 가까이 들이민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거울 너머로 보이는 저 회색 찰흙 같은 녀석은… 방금 여기서 도망친 놈 아닌가?

       

       《저 새끼가 지금 저기서 뭐 하는 거야?》

       

       거울 속 찰흙 괴물이 케니스와 프리가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그것도 웬 여자의 상반신을 흉내 낸 모습으로.

       

       꾸깃.

       

       눈이 찌푸려진다. 솔직히 저 찰흙 괴물 녀석이 뭘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녀석에게서 처음 본 숫자 0이 굉장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녀석이 지성체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데 바로 케니스랑 프리가를 건드려?

       이건 선 넘었지.

       

       《처음 보는 경우여서 좋게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

       

       가만두지 않겠다ㅡ 라고 마음을 먹으니, 내 몸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 꽈릉!!

       

       나의 분노는 벼락으로 빚어져 강림했다.

       

       《아, 어…?》

       

       우렁찬 뇌성에 내가 다 벙쪘다.

       아니, 어? 지금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저건…?”

       

       거울 속의 풍경, 정확히는 찰흙 괴물이 흉내 낸 여성의 모습을 본 케넬름이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저 아이는, 설마… 아니, 도대체 어째서…”

       

       한참이나 생각하던 케넬름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뭔가 아는 게 있는 거지? 저 회색 찰흙 괴물에 대해서.》

       

       “…예. 짐작이나 예상이 가는 바는 있습니다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혼란스러워 보이는 케넬름의 얼굴. 일단 케넬름의 생각이라도 듣고자 했다. 그래야 내가 뭐라도 도와줄 수 있으니까.

       

       《일단 그거라도 나한테 말해봐.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있을 수도 있으니ㅡ으극!》

       

       돌연 눈앞이 흐려지며 머리가 핑 돌았다. 술을 엄청나게 먹은 것처럼 사방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어째서ㅡ… 벌써ㅡ!!”

       

       《아, 으윽.》

       

       내 발끝부터 서서히 별이 되어 흩어지는 것이 보인다.

       

       아.

       나는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아브락사스. 알을 깨고 날아오르는 새.

       아직 나는 알을 온전히 깨고 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새는 알을 깨야 날아오를 수 있다. 때는 완성되어 간다.

       새가 알을 깨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다섯 명의 신, 다섯 개의 종족과 단 하나의 신.

       

       사아아아ㅡ

       

       신체 말단이 별빛으로 흩어지며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약간 길쭉한 구체의 형태로, 마치 거대한 알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알을 깬다. 그리고 날아오른다.

       

       ‘다섯 종족이 트리거였나…’

       

       잠이 오는 것처럼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몽롱한 와중에 케넬름의 외침이 들려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걸까?

       

       ‘나는 이래서 계속… 꿈의 형태로 왔던 건가…’

       

       이번에는 내가 직접 균열을 열고 왔지.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었나.

       

       《ㅡ아…》

       

       흐릿한 의식을 애써 깨우며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손바닥을 넘어서 팔꿈치가 별빛으로 흩어진다.

       나에게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저 회색 찰흙…은…’

       

       강하고, 이질적인 존재다.

       

       케니스와 프리가, 거기에 다른 녀석들이 합류해도 고전을 면치 못하겠지.

       

       《케넬, 름…》

       

       끔뻑끔뻑, 점점 몸의 감각이 둔해지는 걸 느낀다. 

       견디기 어려운 수마가 정신을 덮쳐온다.

       

       지금 잠에 들면 꽤 오랫동안 일어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았다.

       

       “ㅡ…ㅡㅡ!! …ㅡㅡ”

       

       《하하…》

       

       케넬름을 향해 어깨만 남은 손을 휘둘렀다. 흩어져 가던 별빛의 일부가 케넬름의 주변으로 모여 소용돌이친다.

       

       “ㅡ…?!”

       

       바란다.

       그리하면 이루어진다.

       

       인과를 뛰어넘은 힘이 케넬름을 휘감았다. 별빛은 오색으로 찬란하게 소용돌이치더니, 이내 케넬름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아ㅡ…》

       

       무사히 갔겠지?

       그래야 할 텐데.

       

       아.

       이제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 없다.

       

       나는 몰려오는 수마에 편안히 몸을 실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날아오른다.

       알을 깨려면 우선 알이 되어야 한다.

       

       몸이 점점 흩어지는 걸 느꼈지만, 의외로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포근함이 가득하다. 마치 요람에 누운 것처럼.

       

       《아ㅡ》

       

       훨훨 날아오르고 싶구나.

       

       

       

       ***

       

       

       

       《ㅡㅡㅡ…!! 아ㅡ!! 파!! 아파아파아파아파!!》

       

       거대한 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회색 괴물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아프다고 외치는 비명과 달리, 까맣게 굳은 피부는 빠르게 재생되어 간다.

       

       케니스는 그 상황에 잠시 벙쪄 있다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뭘 멍때리고 있어!”

       

       뒤에서 쏘아지듯 달려온 프리가의 도끼가 수직으로 꽂힌다. 콰앙! 회색 괴물이 만들어 낸 여인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졌다.

       

       프리가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씹. 손맛이 별로야. 제대로 안 먹히는데?”

       

       그 말을 증명하듯 쩍 쪼개진 괴물의 머리는 꾸물거리며 금세 재생하고 있었다. 별다른 충격이 없는 모습이 케니스가 외쳤다.

       

       “신성력! 신성력으로 공격하세요! 단순한 물리력은 잘 안 통해요!”

       

       케니스의 붉은 성검이 불타오르며 횃불처럼 타올랐다. 거대한 불기둥을 움켜쥔 소녀가 몸을 내던지며, 회색 괴물을 향해 도약할 때.

       

       콰ㅡ앙!

       

       그보다 한 걸음 앞서서, 더욱 빠르게 달려든 존재가 있었다.

       

       《ㅡㅡㅡㅡ!!》

       

       자욱하게 일어난 연기 너머로 느껴지는 것은 흉악한 살성과 폭력, 살의.

       반드시 너를 죽이고 말겠다는 뚜렷하고 올곧은 의지.

       

       저벅저벅.

       

       “어머.”

       

       연기를 뚫고 작은 발소리가 들려온다.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멈춘 케니스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이렇게 움직이는 건 오랜만이라서, 힘 조절이 잘 안됐네요.”

       

       어깨를 붕붕 돌리며, 손에는 황금빛의 작은 망치를 들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

       

       이를 알아본 케니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어, 어어!! 어어어어ㅡ!”

       

       하얀 성녀복, 붉은 머리카락, 흐르는 꿀과 같은 눈동자ㅡ

       그리고 저 작은 황금빛 망치와 얼굴!!

       

       초상화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최초의 서, 서서성녀 케넬름ㅡ!!”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던 케넬름이 케니스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어쩐지 대견하다는 눈빛에 케니스가 몸을 떨었다.

       

       “후후. 잘 알고 있네요. 기특하게도.”

       

       최초로 기적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기적의 성녀, 케넬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케넬름은 성녀이기 이전에 본신의 무력도 상당한 편이었다.

       

       성녀가 장도리 망치로 악마 수백 수천의 대가리를 으깼다고 하면, 성녀의 이미지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조용히 덮인 것이었지.

       

       케넬름이 성녀와 병행했던 또 다른 하나의 직책. 

       그것은ㅡ

       

       “지금은 첫 번째 팔라딘 케넬름으로 온거랍니다.”

       

       최초의 성녀 겸 첫 번째 팔라딘, 케넬름.

       신의 기적을 말미암아 잠시 지상에 현현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한 주의 끝을 알리는 금요일…!! 다들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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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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