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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4

       

       

       

       

       

       314화. 아브락사스 ( 4 )

       

       

       

       

       

       순간 하늘이 무너진다면 이러할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데모닉이 몸을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 모양새가 마치 힘을 다해 쓰러지는 고목의 그것과도 비슷했다.

       

       리아.

       나의 영원한 사랑이여.

       

       아득하게 멀어지듯 그립고 따뜻한 여인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주박에서 벗어나 안식을 누리고 있기를 바랐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평화로운 안식 속에서 재회하기를 소망했다.

       

       이런 형태의 재회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아…”

       

       “아빠!”

       

       케니스가 데모닉을 재빨리 받아냈다. 데모닉의 얼굴은 시체와도 같았고, 사지가 힘없이 축 늘어져 병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안해요, 데모닉. 이런 이야기를 듣게 해서.”

       

       “저는, 저는…”

       

       케니스의 품에 안겨서 한참이나 더듬거리던 데모닉은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한순간 그의 등이 너무나도 작아진 것처럼 느껴져,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다.

       

       “아빠, 천천히 걸으세요.”

       

       케니스가 데모닉을 부축하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불편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부디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녀님… 모두 저희의 부덕함과 죄업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안토니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몸 둘 바를 몰랐다. 케넬름이 안토니오의 정수리를 가만히 내려봤다. 

       

       “무엇이 리아의 영혼을 먹었는지, 그건 조금 더 확인해야 할 테지만 노리는 바는 명확합니다. 인간을 먹고 힘을 키워서 케니스를 노릴 거에요. 본능적으로 케니스의 안에 있는 것을 노릴 테니까.”

       

       근본부터 결핍으로 탄생한 존재다. 생명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무언가’를 갖추지 못한 텅 빈 인형 같은 것.

       

       빈 조각을 채우려는 본능에 이끌려 결국에는 케니스를 노려오리라.

       

       ‘달리 말하자면 녀석의 핵을 이루고 있는 리아의 영혼이 그토록 결핍됐다는 소리지만…’

       

       도대체 무슨 일로 리아의 영혼이 저리 텅 비었을까.

       

       케넬름은 내심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했다.

       

       ‘별빛의 약탈, 이후 케니스를 살리며 별빛의 완전한 고갈… 아무래도 그게 결정적이었겠죠.’

       

       마지막에 케니스와 데모닉을 어렴풋하게 알아봤으니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천운이 따라준다면 리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모두에게 너무 잔혹한 이야기군요.’

       

       별빛을 빼앗긴 리아에게도, 그녀를 사랑한 데모닉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케넬름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리아와 케니스는 케넬름의 먼 후손.

       

       까마득하게 먼 후손이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이토록 가혹한 운명이 닥치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죠.”

       

       불편한 이야기는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

       

       마음 같아서는 균열을 열고 도망치는 녀석을 직접 잡고 싶었지만, 그녀의 몸을 이루는 별빛이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앞선 전투에서 적지 않은 양의 별빛을 사용한 까닭이다.

       

       머릿속으로 이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를 빠르게 정리한 케넬름이 박수를 크게 치며 모두의 집중을 이끌었다.

       

       “자. 이제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는 그대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떤…?”

       

       “그대들이 지금까지 알던 모든 것들의 기반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성도와 만신전의 모든 지식을 송두리째 흔들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모든 것이 뒤바뀔 겁니다.”

       

       꿀꺽…

       

       성도와 만신전의 모든 지식이 뒤집힐 것이다. 

       

       그리 단언하는 케넬름의 박력에 모든 대사제가 마른침을 삼켰다. 눈에는 살짝 핏줄이 올라와 벌겋게 충혈됐다.

       

       이글거리는 열기는 탐욕스럽게 지식을 탐하는 자 특유의 광기.

       

       “최초의 성녀시여. 오오, 인류의 시대를 연 케넬름이시여.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대사제들이 어서 빨리 말해 달라고 아우성쳤다.

       

       이에 살짝 질린 프리가가 이스칼에게 속삭였다.

       

       “저 노인네들 좀 이상한 것 같아. 지금까지 평생 공부한 것들이 전부 바뀐다는 소리인데, 그걸 저렇게 좋아한다고?”

       

       “으음….. 뭐든지 극한에 다다른 이들은 머리 한구석이 조금씩 미쳐 있다고 하더니. 이것도 그런 종류 아닐까… 싶은데.”

       

       굳이 따지자면 대사제들은 ‘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미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이 평생을 쌓아온 지식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해도, “오히려 좋아!”라고 외치며 새로 접하게 될 지식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인간들이다.

       

       지식욕에 이글거리는 대사제들의 기세를 흡족하게 바라본 케넬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장 태초에, 혼돈과 어둠으로 가득한 이 땅에 다섯 신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첫 문장이죠.”

       

       케넬름이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틀렸습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태초에 땅으로 내려오신 분은, 단 하나의 신이었습니다.”

       

       케넬름의 말에 대회의실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 단 하나의 신이셨다니… 그럼 나머지 네 분의 신께서는…”

       

       말을 더듬으며 누군가 질문했다. 당연한 물음이었다.

       

       다섯 신 중에서 하나의 신이 먼저 내려오고, 나머지 넷이 나중에 내려왔다는 소리 같았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저은 케넬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다섯 신이 아닙니다. 오직 단 하나의 신께서 가장 먼저 이 땅에 임하셨고, 이후 스스로 몸을 찢어서 다섯 신으로 재탄생하셨습니다.”

       

       “……예?”

       

       “찌, 찢었다고요? 자신의 몸을 찢어서 다섯 신이?”

       

       이제 대사제들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형국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가장 먼저 내려온 신은 한 분이었고, 그 하나의 신이 스스로의 몸을 찢어서 다섯 신이 되었다고?

       

       과연 케넬름이 앞서 말한 것처럼, 대사제들의- 더 나아가서 수천 년 동안 쌓여온 모든 신학의 근본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실이었다.

       

       안토니오가 손을 덜덜 떨었다.

       만약 케넬름의 말이 사실이라면, 성도의 모든 글귀가 바뀐다!

       

       가장 근간에 두고 있던 다섯 신은 사실 하나의 신에서 나누어진 것이고, 가장 태초의 신이 곧 다섯 신이라니.

       

       “그, 그럼…! 그 최초의 하나께서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도대체 그 하나의 신께서는!”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케넬름이 씩 미소 지었다.

       

       “태초의 하나께서 스스로 몸을 나누어 다섯이 되었으매, 그리하여 지상을 보살피고 어여삐 여기셨노라. 녹색으로 우거진 땅을 바라보니, 참으로 보기가 좋아 흡족해하셨음이다. 그리고ㅡ”

       

       “…꿀꺽.”

       

       “하나는 다섯으로 나뉘었으니, 마땅히 본래의 형태로 돌아온 것이 이치인즉. 길고 긴 시간이 흘러 다섯께서는 곧 하나의 형상을 이루어 다시금 이 땅을 비추심이니.”

       

       “허, 허어어…!!”

       

       눈치 빠른 몇몇은 기함을 토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ㅡ!!”

       

       흥분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안토니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설마 여섯 번째 신께서!!”

       

       대회의실의 공기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이 마치 이러할까.

       

       케넬름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학의 역사는 근본부터 새로 연구해야 했다! 해석이 달라지고, 문구가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진다! 그야말로 모든 신학적 자료가 뒤바뀔 것이다!

       

       “…미친 변태 노인네들.”

       

       프리가가 잔뜩 질린 표정으로 툭 뱉었다. 이스칼과 한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없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우린 나가서 뭐라도 좀 먹고 오자.”

       

       “그거 좋죠.”

       

       프리가의 제안에 흔쾌히 응한 한스가 대회의실의 문을 열려는 그때.

       

       “어?”

       

       ….ㅡ두두두ㅡ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한스가 귀를 쫑긋거리며 문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부터 땅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힘차게 대지를 박차며 바람처럼 달려오는 이 소리는… 말발굽 소리?

       

       “…!! 어, 어어!”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한스가 몸을 던져 문을 막았다. 지금 이 자리에 절대 오면 안 되는 녀석이 오고 있다!

       

       막아야 한다!

       

       “아, 안 돼!!”

       

       콰앙!

       

       《이히히힝ㅡ!! 된다네 주인이여!》

       

       한스의 노력이 무색하게, 문 바로 옆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유니콘이 들이닥쳤다.

       

       우람하게 솟은 일각의 뿔로 벽을 손쉽게 뚫고 온 유니콘이 새하얀 갈기를 자랑하며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처녀의 향기를 쫓아! 이 몸이 왔네!》

       

       한스가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욱신거리는 와중에 유니콘의 말을 되새겼다.

       

       “여기에는 처녀가 없는데?”

       

       대회의실에는 여자가 두 명밖에 없다. 프리가와 케넬름이다.

       

       하지만 프리가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 처녀가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남는 것은 한 명 뿐.

       

       유니콘이 케넬름을 바라보며 반갑게 아는 척했다.

       

       《푸히히히힝!! 성녀시여! 이 짙은 향기의 주인은 역시 그대였나!!》

       

       “……성녀님?”

       

       “성녀님이 처녀라고?”

       

       “그럴 리가.”

       

       대사제들이 고개를 모아 숙덕였다. 최초의 성녀 케넬름이 처녀라고?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케넬름께서는 아이까지 낳아 후대를 이으신 몸인데 어찌 처녀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만신전의 오래된 벽화에도 그려진 사실이었다. 실제로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케넬름의 벽화가 있기도 했고.

       

       《푸힝? 아아ㅡ 그대들은 모르는 건가?》

       

       유니콘이 코를 높이 들어 올리며 몹시도 거만하게 지껄였다.

       

       “어, 으아아! 아아아아앗!!”

       

       어째서인지 얼굴이 벌게진 케넬름이 몹시 당황하다가 유니콘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저 방정맞은 유니콘의 주둥이를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허나 상대는 유니콘.

       처녀를 상대로 절대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신수.

       

       유니콘은 흩날리는 비단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케넬름을 자신의 등에 태웠다.

       

       《나 유니콘의 뿔을 걸고 맹세할 수 있네! 내 등에 탄 성녀께서는! 틀림없는 처녀!!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순결을 간직한 처녀란 말이네!!》

       

       유니콘의 기백에 잠시 압도당한 한스가 더듬더듬 머리를 굴렸다.

       

       ‘이건 진심인 것 같은데?’

       

       유니콘에게 처녀는 중대사항.

       그는 처녀를 두고 절대 농담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케넬름이 정말 처녀란 말인가? 하지만, 케넬름에게는 후대를 이은 자식이 있는데?

       

       “우으, 으으으으으!”

       

       모두의 시선이 케넬름을 향했다. 터질 듯 붉어진 얼굴의 케넬름이 한참이나 유니콘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푸르르륵! 이토록 농익은 처녀의 향기라니!! 이런 짙은 향은 내 처음 맡아보는ㅡ》

       

       케넬름이 품에서 작은 망치를 꺼냈다. 짙은 별빛이 망치에 스며들었다.

       

       “조용히 하세요!!”

       

       깡!

       

       유니콘의 머리에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닷…!! 저는 그렇게 칭찬을 들을 만한 글쟁이가 아닙니닷…!! 부끄럽게도 그저 하루 한 편을 쓰기에도 급급한, 모자람이 가득한 글쟁이일 뿐…!!
    허나…!! 적어도 저의 글을 봐주시는 독자님과… 제 글 앞에서만큼은…!! 내가 이 세상 최고의 글쟁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것이 제 글을 봐주시는 독자님들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 언제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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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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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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