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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323화. 깨지다 ( 3 )

       

       

       

       

       

       북부가 몇 번인지 모를 사업 준비로 들썩이고.

       대륙의 엉덩이 무거운 거물들이 만신전을 향해 모여들고 있을 때.

       

       이 모든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하아…”

       

       벌써 몇 번인지 모를 한숨으로 땅이 꺼질 지경.

       케넬름이 파도치며 떨어지는 붉은 머리카락을 마구마구 헤집었다.

       

       “하아아…”

       

       그녀의 한숨에 질량이 있었다면 아마 땅은 진작에 무너져서 심연, 아니 탄탈로스에 닿았을 것이다.

       

       슥.

       

       거울을 향해 손짓하자 가볍게 파문이 일어나며 다른 풍경을 비췄다.

       

       보이는 것은 하늘하늘 얇은 비단과도 같은 무언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보이는 각도에 따라 색이 오묘하게 바뀌는 신비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천의 곳곳이 찢어지고 구멍이 크게 뚫려 있었다.

       

       “끄응.”

       

       이를 확인한 케넬름이 크게 침음했다.

       결국, 그녀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차원의 경계가 완전히 박살 났네요.”

       

       그간 아슬아슬하게 버텨오던 것이 이번 강림을 계기로 완전히 찢어지고 망가졌다.

       

       본래 차원이라는 것은 본래의 성질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을 지니고 있다.

       상처 입으면 스스로 복구하고, 구부러지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작은 상처와 균열이라면 시간이 지나며 흔적도 없이 아무는 것이다.

       

       그렇지만ㅡ

       억겁의 억겁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차원의 경계는 계속해서 마모되었다.

       

       마모되어 경계가 얇아지고, 차원과 차원의 간섭이 점점 심해졌다.

       무척이나 아슬아슬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위태롭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괜찮다고 할 수 있었어요…’

       

       와중에 위대하신 분께서 확인 사살을 해버린 것이다.

       

       케넬름이 꾸깃 미간을 구겼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차원의 경계란 차원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것.

       

       그것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케넬름은 감히 예상하기 어려웠다.

       

       까득.

       

       초조하게 손톱을 깨문 케넬름이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왕복했다.

       

       “우선, 우선… 그래 악마. 악마들이 활개치기 더 쉽고 편해지겠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악마.

       

       지금까지 심연이라는 가장 밑바닥에서 지상까지 균열을 열어 넘어왔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힘의 손실이 발생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악마들이 온전한 힘을 갖추고 지상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음…”

       

       모르겠다.

       결국 포기한 케넬름이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런 일을 막으려고 스스로 몸을 찢으신 거 아니었나요…?”

       

       다섯 조각으로 몸을 찢고 다시 하나가 되시는 중이었는데도, 차원을 휘청거리게 만들다니.

       

       조금 더 스스로의 힘을 약하게 만드셔야 했던 것이 아닌가ㅡ 싶은 생각마저 떠올랐다.

       

       “앞으로 당신이랑 나는 고생 많이 하겠네요.”

       

       잠잠하게 파도치는 영혼의 바다 어딘가를 보며 케넬름이 중얼거렸다.

       저 깊은 바다의 어딘가, 리아의 혼이 잠들어 있을 터이니.

       

       멀지 않은 때에 리아가 깨어난다면 케넬름의 마음고생을 덜어줄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ㅡ우음…”

       

       요란하고 째지도록 높은 알람소리에 비몽사몽 눈을 문질렀다.

       

       덜 깬 머리와 반대로 팔이 스스로 움직이며 소음의 근원을 찾아 이리저리 사방을 더듬는다.

       

       ‘…? 아, 알람?’

       

       갑자기 알람이 왜 울려?

       

       어?

       뭐야?

       

       나 지금 자는 중이야?

       

       ㅡ지금 몇 시지?

       

       “으아아악!”

       

       문득 솟구친 기분 나쁜 예감에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등골이 오싹하도록 시린 이 느낌.

       제발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 오전 7시 10분」

       

       “아… 하아. 뭐야, 제시간에 일어났네.”

       

       천만다행으로 늦잠은 아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니, 그제야 천천히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분명히…’

       

       천천히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나는… 그래, 스스로 균열을 억지로 열어서 넘어갔다.

       넘어간 다음에 온갖 일을 하다가 무중력의 공간에서 잠들었고…

       

       잠든 와중에 다섯 신과 최초의 하나에 대해 깨닫게 됐다.

       

       “…맞아. 최초의 하나. 그리고 다섯 신과 여섯 번째 신.”

       

       모두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직 실감은 안 났지만.

       

       그리고ㅡ

       뭔가 되게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아! 회색 괴물!”

       

       내가 분명 그 괘씸한 녀석을 잡아서 탄탈로스에 떨어트렸을 것이다. 틀림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부랴부랴 핸드폰을 켜서 게임… 이걸 아직도 게임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게임을 켰다.

       

       늘 똑같은 정겨운 풍경의 신전과 드워프, 엘프, 이베르와 밤의 일족이 나를 반겼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반가움에 녀석들을 빙글빙글 저글링하며 잠시 놀아줬다.

       

       – “쿠아아아악!! 드워프! 드워프 살려!! 우아아아악!!”

       

       – “꺄하하핫! 난다, 날아!!”

       

       – “후에에에…!! 사, 살려ㅡ!! 흐이이이익!!”

       

       굉장히 좋아하는 녀석들.

       

       반가운 재회를 뒤로하고 화면을 탄탈로스로 향했다.

       

       화면에 보이는 탄탈로스는 아직도 여기저기 파손된 흔적이 뚜렷했다.

       

       그나마 용암 거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너진 벽을 메우고, 넘친 용암을 다시 정리했기에 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넷…

       다행히 비명 디스펜서들은 모두 무사하다.

       

       도망친 녀석이 한 놈도 없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그런 난리 와중에도 도망칠 수 없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면 회색 괴물이 도대체 어디에… 아. 여기 있네.”

       

       내가 몸소 탄탈로스에 처박은 회색 괴물.

       녀석은 탄탈로스의 어느 가시 구덩이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 쿡! 쿡!

       

       구덩이 위에서는 밤의 기병이 긴 창으로 회색 괴물의 몸을 푹푹 쑤시며 구덩이에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이지?”

       

       왜 밤의 기병이 탄탈로스 안에서 회색 괴물을 괴롭히고 있는 거야?

       

       멍하니 바라보다가 번뜩 ‘색안경’을 켰다.

       

       – 촤르르륵!

       

       순식간에 지나간 무수한 사진들.

       필요한 장면만 쏙쏙 골라서 확인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끼리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직접 간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니. 어지간히도 밉보였네.”

       

       어쩐지 눈에 보이는 밤의 기병대 숫자가 제법 줄었다 싶었는데, 회색 괴물에게 수십의 기병이 당했을 줄이야.

       

       그런 이유라면 밤의 기병대의 눈이 돌아가서 저렇게 간수를 지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임무 중 장렬하게 순직한 밤의 기병대를 기리며 작은 묘비 몇 개를 탄탈로스의 구석에 장식했다.

       

       이런다고 이미 죽은 녀석들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부디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하기를.

       

       “…”

       

       내 손으로 만들어 낸 생명이다.

       

       영원한 안식에 빠진 밤의 기병대를 위해 짧게 묵념한 뒤, 나는 그간 쌓인 비명을 소비해 밤의 기병대를 새로 보충했다.

       

       슥, 스슥ㅡ

       

       그런 뒤에는 평소처럼 쌓인 무기 정리하고, 다시 무기 만들고 팔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루틴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했다.

       

       ‘이제 좀 새로운 무기를 만들고 싶어지기는 하네.’

       

       매일 보는 게 똑같은 무기다 보니까, 아무래도 좀 물린다고 해야할까.

       

       우웅ㅡ!

       

       

       와중 도착한 하나의 알람.

       내용을 확인하니 케넬름이 보낸 알람이었다.

       

       – 《위대하신 분이시여.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뽀짝한 SD 케넬름이 아주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리 춤에 양 손을 다부지게 얹은 자세였는데, SD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별로 근엄해 보이지는 않았다.

       

       “할 말이 있다고?”

       

       슬슬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라 조금 조바심이 났다.

       긴 이야기는 아니겠지?

       

       이윽고 뽀짝한 SD 케넬름이 뚜방뚜방 화면을 가로질러 다가왔다.

       어째 날이 갈수록 점점 더 SD 캐릭터가 귀여워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꾸벅,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허리를 숙인 SD 케넬름. 단순히 허리를 숙였을 뿐인데 SD의 머리가 커서 바닥에 살짝 부딪혔다.

       

       콩!

       

       -《아윽!》

       

       빨개진 이마를 문지른 케넬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나를 봤다.

       

       – 《…흠, 흠! 위대하신 분이시여, 이번 강림의 여파에 대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오래 걸려? 나 이제 슬슬 씻고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

       

       시계는 벌써 7시 40분.

       솔직히 지금도 조금 빠듯한 시간이다.

       

       –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럼 빠르게 좀 부탁할게.”

       

       SD 케넬름이 고개를 흔들었다.

       말랑한 볼살이 위아래로 뽀용뽀용 흔들린다.

       

       – 《위대하신 분께서 직접 균열을 열어 본신의 두 팔을 지상에 강림하셨고, 그 여파로 차원의 경계가 기능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뭐? 아니, 그. 무슨 경계?”

       

       그게 뭔데. 

       차원의 경계가 기능을 상실했다고?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왔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분명 좋지 못한 소식이라는 것을.

       

       – 《차원의 경계는… 차원과 차원 사이에 위치한 얇은 막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 균열을 여시는 것도, 심연으로 가는 균열을 여는 것도. 모두 이 차원의 경계에 상처를 내서 차원을 이동하는 것이지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는지, 말을 이어가는 케넬름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꿀꺽.

       

       이어지는 케넬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본래라면 계속해서 수복되어야 할 차원의 경계가 마모되어 기능이 약해지고 있었는데, 내가 거기에 막타를 치고 만 것이다.

       

       “개억울하네 진짜.”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 《…ㅡ그래서, 아무래도 이 차원의 경계를 어떻게든 원상복구 시켜야 할 듯합니다.》

       

       “하아. 그걸 어떻게 고칠 수 있는데?”

       

       내가 묻자 SD 케넬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 《에? 저야 모르죠?》

       

       “…?”

       

       – 《차원의 경계는 차원이 만들어질 때부터 있던 거라서, 필멸자인 저는 정말로 모릅니다.》

       

       “그럼 내가 이걸 어떻게 고쳐?”

       

       – 《어… 일단 방법에 대해서는 저도 최대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고칠 수 있는 건 오직 위대하신 분밖에 없을 겁니다.》

       

       “…?? 아니 나도 모른다니까?”

       

       나는 차원의 경계라는 걸 처음 들었다니까?

       그걸 나보고 고치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연휴의 마지막 날…!! 슬프지만,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그런 날입니다!!
    후회없이 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끼에엑…!! 프롤로그만 320화가 되는 소설이… 있다?!! 뿌슝빠슝… 농담입니다!! 농담!!! 이제와서 프롤로그 끝! 본편 시작!! 이라뇨!! 1700화 이상 연재라니이…!! 작가가 망가지고 말 것입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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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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