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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324화. 깨지다 ( 4 )

       

       

       

       

       

       차원의 경계가 뭔데. 어떻게 고치는 건데.

       저도 모르지만, 위대하신 분만이 고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니까?

       

       그런 식으로 케넬름과 바보 같은 만담을 나누다가 시간이 되어 급하게 출근했다.

       

       삑ㅡ 

       

       아슬아슬하게 출근 버스에 카드를 찍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 와… 씨 진짜 놓칠 뻔했네.”

       

       지금 버스를 놓쳤으면 지각 확정이었는데, 가까스로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오늘은 어쩐 일로 출근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잖아?’

       

       재빨리 가서 앉았다.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출근 버스의 앉을 자리라니.

       

       하루의 시작부터 정말로 운이 좋았다.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그런 식으로 소소한 행운이 계속 이어졌다.

       

       주머니 넣은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누군가 찾아주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재밌는 영상이 바로바로 나온다거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운의 연속.

       덕분에 조금 행복한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어?”

       

       이변을 깨달은 것은 사무실에 도착한 직후였다.

       

       어쩐 일인지 8시 50분이 되었음에도 사무실에 아무도 없다.

       

       이럴 리 없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주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몸에서 핏기가 가셨다.

       

       “뭐, 뭐지? 도대체… 무슨…”

       

       없다. 아무도 없다.

       

       인기척 없는 사무실이 조용했다. 싸늘하게 식어 퀴퀴한 내음만이 가득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핸드폰을 두들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금 시간은 틀림없이 오전 8시 53분… 출근 시간이다.

       

       “…핫! 서, 설마 던전 브레이커가 일어난 건가!”

       

       맙소사.

       

       설마 내가 잠든 사이에 얇아진 차원의 경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면서 서울 한복판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몬스터들의 습격이 발생해 서울은 전시 사태에 접어들었으며, 마나를 각성한 헌터들이 유망 직업으로 떠오르는ㅡ

       

       “음? 박 주임? 어쩐 일로 오늘 출근을 다 했어?”

       

       “아? 부장님?”

       

       등 뒤에서 익숙한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처럼 반짝이는 부장님의 정수리를 보자 서글픔이 몰려왔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인류는 탈모를 극복할 수 없었구나…!

       

       “오늘 휴일인데, 이 시간에는 정말 왜 출근한 거야? 그것도 정장까지 입고.”

       

       “……네?”

       

       부장님의 말에 한참이나 어버버하다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서 요일을 확인했다.

       

       무정하게도 떠오르는 오늘의 날짜.

       

       “토… 토요일?”

       

       설마.

       패닉에 빠진 두뇌가 녹슨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리며 굴러간다.

       

       ‘내, 내가 균열을 직접 열기 전에… 그, 그러니까 그때가 분명히ㅡ’

       

       금요일.

       내가 균열을 열었을 때는 분명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

       

       나는 고작 하룻밤을 잔 거다.

       

       거기에 바보처럼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까먹은 채로, 확인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출근하고 말았다.

       

       “하, 하하…”

       

       이걸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내가 멍청해서 생긴 일이거늘.

       

       허탈한 마음에 건조한 웃음을 토하고 있자니, 활짝 웃음을 지은 부장님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설마 오늘도 출근해서 업무를 보려고 한 건가? 으응? 허허허. 내가 박 주임이 일 잘하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나 성실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

       

       “하, 하하하… 그, 그럼요.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이 아른거려서 도저히 쉬, 쉴 수가 없었습니다.”

       

       거짓말이다.

       반강제로 반납하게 된 휴일이 아까워서 피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부… 부장님은 어쩐 일로 주말에 출근을 다 하셨어요?”

       “나야 뭐, 늙으면 회사 오는 게 쉬는 거지.”

       

       턱, 어깨를 붙잡은 부장님이 활짝 웃었다.

       

       “자, 주말에 출근한 사람들끼리 얼른 일이나 하지!”

       “네, 네에… 하, 하하하…”

       

       탄탈로스에 끌려간 회색 괴물이 이런 심정이었나?

       

       

       

       ***

       

       

       

       바보 같은 실수로 귀중한 주말을 통째로 날려버린 다음 날.

       

       나는 잃어버린 하루를 보상받겠다는 각오로 미친 듯이 침대 위를 뒹굴거렸다.

       

       두 손에는 현대인의 영혼, 핸드폰이 휴일을 함께했다.

       

       ‘차원의 경계, 차원의 경계라…’

       

       물론 머릿속으로는 케넬름이 내게 말했던 것에 대해 열심히 고민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차원이 탄생할 때부터 당연히 있는 게 차원의 경계라고 했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차원이나 차원의 경계에 대한 지식은 없다.

       

       케넬름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온전했던 하나의 내가 관여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네.’

       

       이건 내가 아직 다섯 신, 그러니까 본래의 다섯 조각을 전부 소화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중간에 억지로 일어나서 회색 괴물을 탄탈로스에 처넣었지. 그게 문제가 된 거야.’

       

       본래라면 한참 더 자면서 조각난 힘을 소화해야 했을 것인데,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어설프게 소화가 됐다.

       

       얼추 따져보면 4할 정도를 소화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나머지 6할은 꽁꽁 뭉친 결정의 형태로 영혼에 스며든 상황이고.

       

       “말이 좋아서 40퍼센트지. 이 정도만 해도 전이랑 비교도 안 되네.”

       

       꽈악.

       

       굳세게 말아 쥔 주먹에 은은한 별빛이 감돈다. 

       그동안 균열 너머에서만 발현되던 별빛이 현실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뭐, 그래봤자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없었지만.

       

       “하아… 차원의 경계, 차원의 경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온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됐길래 아주 조금 찢었을 뿐인데 그걸로 망가지는 건지.

       

       그렇게나 중요한 거면 꾸준히 유지 보수를 하던가, 아니면 진작에 새삥으로 하나 장만을… 새삥으로…

       

       “오?”

       

       새삥?

       

       ……

       

       생각해보니까 그걸 내가 굳이 고칠 필요가 있나?

       

       

       

       ***

       

       

       

       “키싯…. 키시시싯ㅡ”

       

       건조한 붉은 토양과 짙은 보랏빛 독무가 가득한 이곳.

       심연.

       

       이곳은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이리저리 헤매는 하급, 중급 악마들로 언제나 가득했다.

       

       회색 괴물의 습격으로 무수한 악마가 죽었음에도, 심연을 다스리던 대악마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음에도.

       

       밑바닥을 전전하는 중하급 악마들은 하루살이 목숨이나 다름없기에, 그저 하루하루의 허기를 채우는 것에 급급했다.

       

       배고프다. 

       배가 고프다.

       

       이는 육체적인 허기가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종류의 허기다.

       

       힘. 힘에 대한 갈망.

       끝없는 굶주림과 탐욕.

       

       동족을 먹고 힘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악마의 본능에서 비롯된 동족상잔의 굶주림.

       

       그리고 지금 여기, 자신보다 약한 먹잇감을 찾아 황야를 어슬렁거리는 한 중급 악마가 있다.

       

       여느 때와도 같은 평범하게 지옥 같은 심연의 하루였다.

       

       독무에 창자까지 녹아 죽은 녀석이 있고, 배가 갈라져 내장이 보이는 시체와 땅에서 솟구치는 이름 모를 거대한 벌레가 있는.

       평범한 심연의 일상이었다.

       

       “…ㅡ킷?”

       

       그러다가, 단 한 순간.

       중급 악마가 딱 한 번 눈을 깜빡였다고 생각한 그 찰나의 순간.

       

       중급 악마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바싹 메마른 대지는 축축하고 생기 가득한 토양으로.

       보랏빛 독무는 새벽 내음을 가득 머금은 옅은 안개가 되었다.

       

       “키, 키힛?! 키사아악! 무, 무슨 일이냐 이게ㅡ!!”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성격 고약한 고위급 악마가 자신에게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가지고 놀다가 비참하게 죽일 셈인가?

       

       화들짝 놀란 중급 악마가 한참이나 오두방정을 떨다가 간신히 진정했다.

       

       흙을 파먹고, 풀을 파헤치고 냄새를 맡고.

       오만 과정을 다 거치고 나서야 중급 악마는 현실을 인정했다.

       

       여기는 지상이다.

       

       느닷없이 심연에서 지상으로 오게 된 중급 악마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것이다.

       

       이처럼 갑자기 지상에 오게 된 악마들이 대륙의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어떠한 계기도, 원인도, 공통점도 없이.

       그저 한 순간에 심연에서 지상으로 넘어온 악마들.

       

       부스럭!

       

       멍하니 흙을 씹어먹던 중급 악마는 수풀이 크게 흔들리자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폴짝폴짝, 새하얀 몸을 가진 토끼가 폴짝거리며 뛰어간다.

       

       달콤한 생명의 향기가 풍겨왔다.

       코를 씰룩거린 중급 악마가 침을 뚝뚝 흘리더니, 제 몸에서 송곳 가시를 발사했다.

       

       푸슉!

       

       토끼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 송곳 가시.

       

       너덜너덜해진 토끼 사체를 한입에 집어삼킨 중급 악마가 으적으적 턱을 움직였다.

       

       뜨거운 피의 감촉, 부드럽고 여린 날 것의 고기.

       꿀꺽 집어삼킨 중급 악마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째서 갑자기 지상에 오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ㅡ

       구태여 이 달콤한 만찬의 초대장을 붙잡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키, 키히히히! 식, 사의 시간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먹을 것이고, 사방에 널린 것이 먹이다!

       

       커다랗게 벌어진 턱 사이로 탁한 침이 뚝뚝 흐르는 중급 악마가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사냥이다! 인간 포식이다!

       

       당장이라도 인간의 살점을 가르고 배를 찢어서 신선하게 펄떡거리는 심장을 한입에 먹으리라!

       

       중급 악마의 눈에는 벌써부터 인간의 싱싱한 내장이 보이는 듯했다.

       

       “…캿?!”

       

       샤사사삭!

       

       열심히 달리다가 무언가 떠오른 중급 악마가 바짝 자세를 낮추며 기척을 죽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심연에서 지상에 대한 흉흉한 소식이 가득했다.

       

       지상의 하늘에 떠오른 일곱 개의 별로 ■가 지상을 본다든가, 악마를 잡아서 가둔 뒤에 영원히 괴롭히는 끔찍한 감옥이라든가, 대악마도 뼈를 못 추리는 무시무시한 사도들이 가득하다든가…

       

       지금의 지상은 악마에게 굉장히 위험한 곳임이 분명했다.

       

       ‘키킷! 아, 안 걸리면 그만이잖아!’

       

       나는 아닐 것이다. 나는 다른 멍청이들과 다르니까.

       중급 악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 중급 악마뿐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상에 올라온 다른 모든 악마가 이런 생각을 했으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심연의 집단 지성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키햐아아악ㅡ!”

       

       인간과 충분히 가까워진 중급 악마가 몸에서 날카로운 송곳 가시를 발사했다.

       빼곡하게 허공을 채우며 날아가는 송곳 가시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장이라도 고슴도치처럼 끔찍한 꼴이 되어 죽었을 것이다.

       

       “아니! 웬 놈이냐!”

       

       티티팅!

       

       우연히도 그 주변을 지나던 인간이 한스의 아버지와, 이를 호위하던 성기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성기사의 워 해머가 잔상을 그리며 움직이더니, 맑은 쇳소리와 함께 송곳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ㅡ쿠웩!”

       

       빠르게 달려들던 중급 악마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이 그의 마지막 깨달음이었다.

       

       콰직!

       

       워해머가 악마의 두개골을 오목하게 만들며 피를 흩뿌렸다. 

       

       “이렇게 외진 곳에 악마가 있다니… 별일이군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워해머에 묻은 까만 피를 툭툭 털어낸 성기사가 한스의 아버지를 챙겼다. 한스의 아버지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다행입니다. 조금 힘드시겠지만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변방에 악마가 나타난 것이 어째 불안합니다.”

       

       “그러게. 난 괜찮으니.”

       

       성기사와 한스의 아버지는 조금 더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처럼 대륙의 곳곳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나타난 악마들이 기승을 부렸으나ㅡ

       

       콰직! 콱! 빠각!

       

       마수의 난동으로 아직 흉흉한 기세가 살아있던 대륙의 철퇴를 흠씬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어느 때는 안 보이다가 또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서 기승을 부리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이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느 초월적인 존재의 치밀하고 정교한 계획(?)으로 망가진 차원의 경계가 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아는 필멸자는 아주아주 극소수였다.

       

       《우리는 망했네 주인! 망했다고! 경계가 완전히 무너졌어! 지상은 이제 열린 문이나 다름 없단 말이네!! 심연과 지상이 점점 가까워질 거야!》

       

       유니콘이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는 예언자처럼 발광했다.

       

       “에이. 신께서도 계획이 있으시겠지.”

       

       《푸히히힝ㅡ! 그, 그렇지?! 그렇겠지 주인?》

       

       한스는 불안한 유니콘을 다독이려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인지.

       아주 작게 다시 한번 되뇌었다.

       

       “…다 계획이 있으실 거야.”

       

       …….그렇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심연과 하나되는 지상…!! 지상에서 뿅뿅 나타나는 악마들…!! 이는 과연 호재일지… 아니면 화재일지!!! 앞으로 주인공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걸 수습할지ㅡ!!! 저도 알 수 없는 노릇이군요!!

    – ‘졸린석상’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초코파이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지만… 이는 하수!! 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시는 독자님의 마음을!!! 이 마음!! 확실히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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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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