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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8

       

       

       

       

       

       328화. 리메이크 ( 3 )

       

       

       

       

       

       ‘나 지금 머리가 너무 띵해…’

       

       맨날 툴툴대고 찡얼거리는 의미로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똥을 던진다고 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냥 비유였지, 정말로 똥을 던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단 말이다.

       

       기억은 없다고 하지만, 과거의 나도 결국 나였으니까.

       과거의 나를 욕하면 누워서 침 뱉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이 씹,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과거의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안일하게 행동한 건지,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분명 저쪽 차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저번에 케넬름은 그렇게 말했는데.

       

       마음에 들었다는 녀석이 차원을 개박살을 냈네?

       

       “허, 허허허허.”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앞뒤 상황을 알고 나니 그 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하나둘 이해가기 시작한다.

       

       “이러니까 지상이랑 심연이 계속 닮아 보였구나…”

       

       원래 하나의 땅이었던 걸 내가 차원 통째로 개박살냈으니까 당연히 닮아 보일 수밖에.

       

       심연은 내가 지상에 강림하며 떨어져 나온 지상의 일부분.

       그리 생각하니 차원 경계의 모습이 새삼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천의 모습을 한 차원 경계.

       나는 지금까지 차원 경계가 심연과 지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차원 경계로 오히려 심연이랑 지상을 붙이려고 했던 거야.”

       

       마치 반창고처럼 말이다.

       

       

       과거의 나는 떨어져 나온 심연과 지상을 억지로나마 붙여두기 위해 차원 경계를 천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차원 경계가 저절로 사라지게 만든 것이고.

       아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심연과 지상의 상처가 저절로 아물 것이라고 판단했겠지.

       

       “그런데 심연으로 이상한 감정이 모이는 건 예상하지 못했나 보네…”

       

       과거의 내가 한 조치는 썩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일 좋은 것은 아예 차원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거였지만.

       

       다섯 조각으로 자신의 몸을 찢은 것도, 아마 이 일을 계기로 찢었을 것이다.

       

       부주의였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한 차원의 절반 정도가 통째로 날아간 거니까.

       나름대로 죄책감과 재발 방지의 필요성을 느꼈겠지.

       

       “하아…”

       

       뭐.

       아무튼 전부 넘어가고.

       

       과거의 내가 의도한 것은 경계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면서, 심연과 지상이 하나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렇고,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이.

       

       세상만사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은 몇 없는 법이다.

       

       “원래대로면 이게 자연스럽게 붙어야 하는 게 맞기는 한데.”

       

       거울을 조작하여 지상의 곳곳을 비췄다.

       

       바람이 내달리는 푸른 초원, 사람이 가득한 도시, 돼지가 꿀꿀거리는 축사,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이 모든 장소에 심연이 스며들고 있었다.

       

       심연의 한 장면을 가위로 자려서 풀로 붙인 것처럼, 이질적인 존재감을 띠는 검붉은색의 광야.

       그 위로 보랏빛 독무가 꾸물꾸물 흘러나와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버린다.

       

       – “이곳은 지금 출입을 통제하는 중입니다. 돌아가 주세요.”

       

       – “여, 여기는 저희 집인데요?”

       

       – “3골드의 여비를 지급해 드리고 있습니다.”

       

       – “내년에 오면 되나요?”

       

       심연이 파고든 주변을 통제하는 기사들. 주변의 반응을 보아하니 심연이 파고든 현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다.

       

       당장 몇 주에서 몇 달 정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더 오래 통제할 수 있을까?

       

       거기에 한번 지상에 스며든 심연은 끊임없이 주변으로 퍼져가려는 성질마저 있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검붉은 광야는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하게 제 영역을 넓히고 있었으니까.

       

       ‘과거의 내가 의도한 건 알겠지만, 지금 심연을 지상이랑 합치면 대재앙이야.’

       

       과거의 내가 한 조치를 욕하지는 않겠다.

       나름대로 최선의 방식을 취한 거겠지.

       

       예상하지 못 한 것이 있다면, 심연으로 온갖 부의 감정이 모이며 악마가 태어났다는 것.

       

       덕분에 지금 심연을 지상과 합치면, 암에 걸린 조직을 그대로 몸에 붙이는 꼴이 됐다.

       

       “흐음…”

       

       저절로 만들어지고 있는 차원의 경계를 바라봤다.

       지금 저대로 둔다면 아마 원래의 차원 경계와 똑같은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기존처럼 심연과 지상을 가르는 단순한 벽이자, 두 차원의 상처가 자연히 아무는 것을 돕는 반창고. 딱 그 정도 수준이겠디.

       

       ‘심연이 원래는 지상이었다고 하니까… 심연을 반으로 찢는 것도 되게 애매해졌네.’

       

       과거의 나는 심연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렴. 심연은 본인의 실수로 원래의 차원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니까.

       

       그래서 나름대로 노력하여 심연과 지상을 다시 붙이려고 한 것이겠지.

       

       “내가 이걸 모른 척하기에도 좀 그렇단 말이지.”

       

       과거의 나는 자신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찢으면서까지 이 작은 차원을 지키려 노력한 것이다.

       그 정성을 봐서라도 심연이랑 지상을 다시 하나로 붙여주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악마가 제일 문제다.

       

       부의 감정에서 태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벌레 같은 놈들.

       

       잘린 팔을 다시 붙인다고 해도, 잘린 팔에 퍼져있는 암 조직은 떼어내고 붙여야 할 것 아닌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악마들을 하나하나 때려잡는 건 하책이다. 그래서야 악마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내 정신 건강에 심히 해로우니까.

       

       반복적이고 강조되는 노가다는 내 정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백날 악마를 죽여봤자, 다시 심연으로 모이는 부의 감정에서 악마가 태어날 것 아닌가. 

       

       심연으로 부의 감정이 모이는 기형적인 구조부터 어떻게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

       

       “… 부정적인 감정?”

       

       부정, 시기, 질투, 분노, 탐욕… 어딘가 익숙한 느낌.

       

       ……

       

       이거 탄탈로스에 쓰는 재화 ‘비명’이랑 비슷한 종류의 감정 아닌가?

       

       죄수들이 고통에 겨워서 지르는 ‘비명’도 따지고 보면 부정적인 감정의 한 종류일 테니까.

       

       “오…?”

       

       슬슬 머리가 돌아간다.

       

       각이 보였다.

       날로 먹을 수 있는 각이.

       

       거울을 조작해 탄탈로스를 비췄다.

       

       탄탈로스는 조금 특이한 차원이다.

       내가 직접 만들었기에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공간이다.

       

       독립적이라는 소리는 달리 말하자면 이동이 자유롭다는 뜻.

       

       이게 과연 내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차원이 통째로 움직이는 대규모 이사 겸 심연에 가득한 악마를 아주 쉽게 처리할 방법이 떠올랐다.

       

       일단ㅡ

       

       “우선 좀 쉬었다가 할까.”

       

       이제 거울 유지하는 것도 아슬아슬하네.

       

       팟.

       

       나는 거울을 사라지게 만든 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명치에 차오르는 것은 내가 자고 있을 때 가장 빨리 회복된다. 그러니까 이건 절대 내가 자고 싶어서 자는 게 아니다.

       

       전략적인 휴식이다.

       

       “…..커어… 스읍…”

       

       순식간에 잠에 빠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익숙한 모래사장에 서 있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와락!

       

       “으왓?”

       

       난데없이 달려든 케넬름이 와락 품에 안겼다. 부드럽고 말캉한 무언가의 폭력적인 감촉에 뇌가 과부화 될 지경이다.

       

       “믿고 있었다구요! 저는 진짜 믿고 있었어요!!”

       

       “어, 으응? 믿어?”

       

       “그럼요! 전부 위대하신 분의 계획대로 되고 있는거죠? 저, 확인했습니다! 차원의 경계가 지금 성공적으로 수복되고 있는 걸 봤어요!”

       

       아, 그걸 봤구나.

       

       

       아주 짧은 찰나 동안 사실 전부 임기응변이었다고 말해야 하나ㅡ 무수한 내적 갈등이 피어오르고 사라졌다.

       

       “그럼! 전부 내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마도?

       

       

       

        * * * * *

       

       

       

       텅 비어버린 명치는 이틀 정도 푹 자고 일어났더니 괜찮아졌다. 전에 비해서 확실히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이 체감된다.

       

       “자아. 그럼 이걸 어디부터 해볼까.”

       

       우선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차원 경계의 기능부터 조금 손을 봐야겠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날먹 빌드를 완성하려면, 기존의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면 안 된다.

       

       아주 대대적인 리메이크가 필요하다.

       

       “근본부터 뜯어고쳐야겠네.”

       

       뚜둑, 뚝- 손가락 마디를 풀었다.

       

       솔직히 이게 잘 될지도 모르겠고,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만ㅡ

       

       “성공하면 비명이 막 복사가 된다니까?”

       

       재화 복사는 절대 못 참지.

       

       

       

        * * * * *

       

       

       

       “주, 죽을 것 같다…”

       

       비틀비틀 어깨를 늘어트린 케니스가 죽어가듯 중얼거리며 침대로 몸을 던졌다. 고목이 쓰러지는 것처럼 푹 엎어진 케니스.

       

       푹신한 감촉에 당장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다.

       

       방금 막 오늘 할당치의 마지막 심연화를 해결했더니, 어느새 벌써 늦은 밤이었다.

       

       ‘요즘 너무 바쁘게 굴리는 거 아닌가 인간적으로…’

       

       이렇게 푹신한 곳에 몸을 누이는 건 거의 한 달만이다.

       

       케니스의 별빛으로 심연화 된 땅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케니스는 그야말로 대륙의 끝과 끝을 누비며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심연을 정화하다 보니, 처음의 커다랗게 일어나던 폭발도 제법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뭐, 그래봤자 불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폭발은 그럭저럭 제어했는데, 어째서인지 불꽃이 일어나는 것은 제어할 수 없었다. 케니스의 무의식이 정화의 상징으로 불꽃을 이미지한 까닭이었다.

       

       찌르르르ㅡ

       

       고즈녁한 밤이다.

       칭 밖으로 벌레들이 소리높여 울어 재낀다.

       

       “…시골은 조용해서 좋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외딴 시골까지 심연화가 일어났다는 뜻이었지만.

       

       가만히 누워 벌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들던 케니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

       

       고요하다.

       

       방금까지 창밖으로 들려오던 벌레들의 울음이 일제히 멈췄다. 서늘한 밤바람만이 창문을 흔들고 지나간다.

       

       침대 곁에 세워둔 성검을 쥔 케니스가 조심스럽게 경계를 취했다. 습격일까? 

       

       번쩍ㅡ!

       

       돌연 어두운 밤을 가르는 밝은 빛이 터져 올랐다. 

       

       땡, 땡, 땡ㅡ!

       

       “기상! 기사아앙!!”

       

       이변을 확인한 기사들이 요란하게 종을 울리며 뛰어다닌다.

       케니스가 곧장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하늘을 올려봤다.

       

       “저, 저건…”

       

       까만 밤하늘에 드레스처럼 걸린 연둣빛의 장막.

       

       오묘한 연둣빛의 무언가는 밤하늘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천천히 움직인다. 그 오묘한 움직임은 어쩐지 보는 이의 눈을 현혹하는 무언가 존재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아마 이 자리에 유니콘이 있었다면, 단박에 차원의 경계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유니콘은 제 주인 한스와 함께 성도에 남아있으니, 케니스는 저 연둣빛의 장막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타탓!

       

       창턱을 넘어 뛰어내린 케니스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웅장한 대자연의 마술일까? 바삐 움직이던 기사들도 하나둘 걸음을 멈추며 케니스를 따라 하늘을 올려봤다.

       

       “……아름다워.”

       

       누군가 중얼거린 말처럼, 아름다웠다.

       

       한바탕 마술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피어난 연둣빛의 장막은 밤새도록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켰고, 밤은 황홀감에 젖은 채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케니스와 기사들은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작은 폭풍을 마주했다. 

       

       히오오오, 히오오오오오ㅡ

       

       …기분 탓인지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후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히에에엑…!! 왕왕왕 큰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인공이 다소 나사 빠진 짓을 조?금?? 약?간? 핮기는 하지만… 도황에 비빌 정도인가요??! 맙소사…!!
    별빛 아미었으면… 주인공은 정말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갔을지…!! 상상만 해도 정말 아찔합니다…!! 키에에엑…!!
    주인공의 이미지 변화가 너무 다채로워서ㅋㅋㅋㅋ 웃음이 다 나오는군요ㅋㅋㅋㅋㅋ
    보내주신 후원은… 작가가 뒷산의 도토리 나무 아래에 소중하다 묻어두갰습니다…!! 저의 소중한 보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보물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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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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