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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8

       

       

       

       

       

       338화. 흑염룡의 무게 ( 3 )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연기를 따라 한스가 달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케니스에게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다.

       허나 찰나의 고민일 뿐이다.

       

       저토록 자욱한 연기가 치솟는 것은 분명 민가 주변에 큰불이 났음이니.

       여력이 남는 자가 달려가서 돕는 것은 사람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사정을 설명하면 케니스도 이해할 거야…!’

       

       케니스는 용사이니 오히려 잘했다면 칭찬해 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한층 더 땅을 더 강하게 박찰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치솟는 연기의 근원에 도착한 한스가 입을 떡 벌렸다.

       

       주변의 골목길은 온통 부서지고 금이 갔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곳곳에서 연기와 불이 치솟고 있었다. 거기에 적지 않은 수의 전사들이 기절하여 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한스가 다급히 달려 전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친 곳 없이 그저 기절만 했구나.”

       

       으슥한 골목길의 인적이 드문 곳이라 전사들을 제외하면 다친 이는 없었다.

       

       한스가 제 어깨에 기절한 전사들을 척척 짊어지며 한 번에 여섯 명씩 옮겼다. 우선 다친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난 후에 불을 끌 셈이었다.

       

       타고난 용력으로 힘든 기색도 없이 전사들을 안전한 구석에 몰아넣으니, 저 멀리서부터 척척척 다급한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성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성기사들이 저마다 물 바가지를 한가득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한스 님?! 지원하러 와주셨군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연기가 보여서 들렀습니다! 다친 사람들은 저기 구석에 있으니까 불부터 끄죠!”

       “예!”

       

       성기사들와 병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마다 양동이로 물을 퍼부었다.

       그리하자 시뻘겋게 혀를 낼름거리던 화마가 기세를 잃고 빠르게 작아지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렇게 불이 나다니. 그나마 규모가 작고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물기 가득한 진흙이 산재하여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연기만 자욱하게 난 것이 첫 번째 행운이었고, 한스가 빠르게 달려와 전사들을 치운 것이 두 번째 행운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골목길에서 왜 불이 난 것인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불이 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화재라는 것은 어지간히 건조한 날이 아니고서야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은 날이 한창 풀리는 봄.

       틀림없이 불을 놓은 범인이 있을 것이다.

       

       “한스 님. 잠시 이것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절한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저들의 복장이 좀 특이합니다.”

       “어디 보죠. 어… 이 사람들 왜 하나같이 오른손에만 붕대를… 아.”

       

       한스가 이마를 짚었다.

       자신이 피해 다니던 그 추종자 무리구나.

       

       “음… 으으윽…”

       “이봐. 정신이 좀 들어요?”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초점이 맞지 않던 전사가 한스를 보더니 눈을 번쩍 떴다. 

       

       “하, 한스 님!!”

       “예, 예. 제가 그 한스입니다. 지금 많이 다치셔서 제가 옮겨놨으니까 일단 누워 계세요.”

       “한스 님! 한스 님! 그, 그 엘프가! 꼬맹이 녀석들이! 저희들이 사명을 집행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두, 둘이서 저희들을 때려눕히고…!”

       “사명? 집행? 아니, 그런데 엘프랑 꼬맹이?”

       

       성도에 꼬맹이라고 하면 수백에 달했지만, 엘프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딱 하나뿐이었다.

       

       “에스텔?”

       

       오랫동안 성도에서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언제 성도에 돌아온 것인지.

       기껏 성도로 와서 한다는 짓이 전사들이랑 쌈박질한 다음에 방화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스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척 보기에도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모습에 다친 전사 중 한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어… 한스 님. 이 화재에 대한 것은…”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면서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을 겁니다. 우선 다친 곳부터 치료하시고ㅡ”

       “그, 그 화재가! 저희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예?”

       

       전사가 덜덜 떨면서 사건의 내막을 설명했다. 들으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이야기더라.

       

       자신을 따라 하는 행동으로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제 손에 불을 붙이다니?

       방랑 서커스에서 볼 법한 일을 실제로 행한 것이다. 

       

       “손! 손은 괜찮아요?”

       “예, 예. 손은 멀쩡합니다. 흑염룡의 별자리가 저희를 가호하셨기 때문에.”

       “그건 도대체 또 뭔…”

       

       흑염룡의 별자리가 이들을 가호했다는 건 또 무슨 헛소리일까. 

       골이 쑤셔오는 한스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아까 용왕이 지껄였던 말을 떠올렸다.

       

       ‘별로 새겨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고 했었어.’

       

       당시에야 용왕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에 흘려들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들어볼 것을 그랬다.

       

       “손 좀 줘봐요.”

       “예.”

       

       붕대를 푼 전사의 오른손은 놀랍도록 멀쩡했다. 오른손에 스스로 불을 붙인 이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

       

       “하아…”

       

       머리가 아프다.

       

       “우선… 우선 에스텔이랑 그 꼬맹이? 아까 말한 그 꼬맹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해요?”

       “물론입니다! 그 꼬맹이가 어찌나 살벌하게 눈을 빛내면서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지! 대낮부터 허깨비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호들갑을 떠는 전사가 설명하는 대로 외형을 받아 적던 한스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어깨에 닿는 똑단발에 밤색 눈동자와 머리카락, 살짝 낡은 원피스에 탁한 눈빛…’

       

       어째 설명을 들을수록 익숙한 얼굴이 그려진다고 하면 기분 탓일까.

       

       ‘…데이지?’

       

       한스는 그만 기절하고 싶었다.

       

       

       

        * * * * *

       

       

       

       에스텔과 데이지를 찾는 것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데이지는 애초부터 숨거나 도망칠 것도 없이 제 발로 찾아왔고, 에스텔은 특유의 길쭉한 귀와 미모로 이목이 쏠려 목격담을 따라가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후우. 그래서 변명은요?”

       “….저, 정말 죄송합니다…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까 너무 늦은 저녁이었고. 진작에 사람을 보냈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늦은 저녁까지 한스를 기다린 케니스가 잔뜩 화난 채로 한스를 노려봤다. 앞에 선 한스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 얌전히 바닥으로 시선을 깔며 열심히 사과했다.

       

       “휴ㅡ”

       

       가만히 한스를 노려보던 케니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화재 사고를 돕다가 늦었다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였어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했을 거야.’

       

       그래도 쉽게 용서하기에는 너무 괘씸하다. 사람 한 명 정도는 보내서 말이라도 전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중에 밥 한 끼… 아니지, 두 번 사요. 비싼 걸로.”

       “! 당연하죠! 당연합니다! 아주 비싼 걸로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진짜 많이 먹을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해요. 저 엄청 많이 먹거든요?”

       

       시무룩하게 차진 한스의 어깨가 단숨에 펴진다. 케니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에스텔이랑 데이지… 그리고 그, 한스를 따라다니는 분들이 그, 뭐였죠? 어, 어… 어둠? 어둠 뭐였는데.”

       “……어, ‘어둠의 흑염룡의 종복들’…입니다…”

       

       이 무슨 어둠의 다크, 바람의 윈드 같은 작명.

       자신이 지은 이름도 아닌데 어째 한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풉!”

       “제가 지은 이름이 아닙니다. 진짜로…”

       “알겠어요. 일단 에스텔부터 만나보죠.”

       

       유일한 엘프의 신분으로 지상에 남았기에 극빈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지만, 사건의 용의자로 취급되기에 에스텔은 적당히 포박된 채로 지하 감옥에 있었다.

       

       “…왔구나 인간.”

       “에스텔 씨.”

       

       비루한 지하감옥에 있을지라도 에스텔의 미모는 시들지 않았다. 도리어 진창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고고한 매력을 발했으니, 이를 보며 케니스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뭔 얼굴이 저렇게 예쁜 거야?’

       

       같은 여자도 홀릴 얼굴이다. 남자라면 말할 것도 없고.

       케니스가 한스를 힐끗 보며 은근히 한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의식했다.

       

       ‘아. 용사님이랑 뭐 먹지? 역시 무난하게 스테이크가 좋으려나?’

       

       정작 한스는 케니스와 뭘 먹어야 할지 열심히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말해보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시작은 내 개인적인 이유였다.”

       

       에스텔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참 뭐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한스와 케니스도 에스텔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평생 살아온 황금 나무가 대악마에게 불탔고, 그 일을 계기로 악마를 증오하게 됐다던가.

       

       “나는 아직 힘이 부족해. 신께서 나에게 주신 대궁도 제대로 당기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저 남자를 따라다닌 거다. 신께서 인정한 전사를 관찰하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싶었지.”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 아니야! 너희 인간들에게는 황금 나무가 커다란 나무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어머니와 고향, 그 이상의 존재다.”

       

       힘.

       힘이라.

       

       참으로 추상적인 것을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물리적인 용력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힘을 원한다고?’

       

       도대체 무슨 힘을?

       

       《호오. 귀쟁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나.》

       ‘용왕?!’

       

       돌연 한스의 머릿속에서 용왕이 말을 걸어왔다.

       

       가만히 지켜본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를 못 참고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 무기는, 흠? 느껴지는 기운이… 어떻게 이런 일이…? 아니. 지금 보니까 옆의 암컷은 도대체 무어냐?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암컷이라니! 용사님이시다.’

       《용사? 허 용사라고? 걸어 다니는 별빛이나 다름없는 것이 용사라니. 살아있을 적 봤던 미친년과 기분 나쁠 정도로 닮았군. 도대체 내가 잠든 사이에 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용왕의 말을 들어보면 지상의 사정을 한참이나 모르는 것 같았다. 한스의 눈을 빌려서 바깥을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저번에 뭐 지켜본다고 하더니 아는 게 하나도 없네.’

       《비유하자면 그림으로 풍경을 보는 것과 직접 풍경을 만끽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아무튼.

       용왕은 눈앞에 보이는 엘프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예로부터 귀쟁이들은 그 성질이 별났지만 순박하고 다루기 쉬운 종족이었다. 은혜를 쉬이 잊지 않으며 원한은 배로 갚는 이들이지.》

       ‘그래서 용건이 뭔데?’

       《계약자여. 저 엘프에게 은혜를 씌워 둘 기회라는거다.》

       ‘…너의 뭘 믿고?’

       《답답하구나. 어차피 이 몸의 사념은 계약자의 팔에 갇힌 꼴이거늘. 그대도 알고 있지 않느냐? 이 몸은 그대의 자아에 의탁해 살아가는 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악의가 없다는 것도 진즉에 알았을 터.》

       

       그렇긴 하다.

       용왕이 말을 걸 때면 특유의 위압감에 머리가 조금 울리긴 했지만, 한스를 해치겠다는 악의는 느낄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에스텔을 도우려고?’

       《후후후후. 이 몸이 말한 적 있을 것이다. 별로 새겨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대는 알지 못한다고.》

       

       잠시 용왕의 말에 귀를 기울인 한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었으면 죽었지.

       

       “야!! 안 해! 아니 못 해! 못 한다고!”

       “으힉?!”

       

       대뜸 소리 지른 한스 덕분에 놀란 케니스가 펄쩍 뛰었다.

       

       《계약자여. 단명종답게 굴지 말고 멀리 길게 보거라. 엘프에게 은혜를 베풀 기회는 얼마 없는 기회일 터. 거기에 제 목숨처럼 아끼는 황금 나무의 복수를 돕는 것이니 저 귀쟁이는 그대의 든든한 아군이 될 것이다.》

       

       ‘……아 진짜. 제발. 진짜로…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저 대궁은 분명 위대하고 고결하신 분의 기운이 서린 것. 평소라면 어림도 없겠지만, 그대의 위업이 별로 새겨졌으니 그 티끌의 티끌이라도 흉내냄은 가능하다.》

       

       한스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요, 용사님. 잠시 에스텔과 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머, 먼저 가서 데이지와 얘기를 좀 하고 계실 수 있을까요.”

       “어, 으음… 알겠어요.”

       

       빼어난 미모의 엘프와 한스를 단둘이 두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한스를 보니 차마 그런 의심을 할 수 없었다.

       

       ㅡ끼익. 

       

       케니스가 나가고 단 둘이 남은 지하감옥.

       

       “뭐지 인간?”

       “……후우ㅡ”

       

       한스가 한참이나 심호흡하고 볼을 짝짝 두들기다가, 이내 큰 결심을 한 듯 눈빛을 굳혔다.

       

       “히, 힘을 원하는 갉?!”

       

       혀 깨물었다.

       

       “……”

       “허?”

       “……”

       “……”

       

       침묵이 감돌았다.

       

       《계약자여. 아무리 그래도 방금은 너무 앞뒤가 없지 않았나 싶은데.》

       ‘조용히 해… 나 진짜 죽고 싶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히이이엑…!! 설정 오류…!! 안 돼애애앳…!!! 어서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와 더불어… 히익…!! 후에이익…!!! 한스를 둘러싼 상황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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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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