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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9

       

       

       

       

       

       339화. 거악 ( 1 )

       

       

       

       

       

       “……”

       “……”

       

       지하감옥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한스는 차라리 혀 깨물고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답답해서 못 봐주겠구나. 이 몸에게 잠시 몸을 넘기거라. 내 알아서 잘해둘 테니.》

       ‘…….나는… 세상이 밉다…’

       

       한스의 자아 구석에 있던 용왕의 자아가 전면으로 나섰다. 한스가 의식의 길을 터줬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그럴 경황이 없었을 수도 있고.

       

       ㅡ스으으으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한스가 번쩍 눈을 떴을 때, 에스텔은 눈앞에 있는 인간의 존재감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 이게 인간의 몸인가? 참 볼품없군.”

       

       번쩍 눈을 뜬 한스의 동공 깊은 곳에서 불길한 적색이 번들거렸다. 얇게 찢어진 도마뱀의 동공이 보이는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용왕의 기세에 에스텔이 몸을 떨었다.

       

       “이건 이렇게 움직이는 건가? 아니군. 그럼 이렇게? 흠. 이건가?”

       “…?”

       

       그것도 잠시.

       

       한스의 몸을 빌린 용왕은 몸을 어색하게 삐그덕거리며 움직였다. 팔을 다리 사이로 움직이거나 갑자기 허리를 숙여 머리를 땅에 박는 둥. 

       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색한 사람처럼 굴었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용왕의 머리가 바닥을 향하고 다리는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섰다.

       

       허나 용왕은 곧장 자연스럽게 다루는 법을 깨닫고는 제 몸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인간의 몸은 참으로 열등하구나. 어찌 불안한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으며, 꼬리도 없이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인지.”

       “…아까 그 인간이 아니군. 넌 도대체 누구지?”

       “호오. 감히 이 몸을 그렇게 똑바로 바라보느냐.”

       “용? 용인가?”

       

       주변의 생물을 오만하게 아우르는 특유의 존재감. 길게 찢어져 번들거리는 동공. 에스텔은 이런 생물을 만나본 적 있었다.

       

       서리고룡.

       

       그도 지금의 한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원초적이었으며 거대했지만.

       

       “흠?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흥미로워… 뭐. 좋다 엘프여. 이제 그대와 나 사이에 하나의 끈을 연결하겠노니. 단순한 계약이니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말라.”

       “잠깐! 계약? 계약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나름 인간 세상을 돌아다녀 본 에스텔은 계약을 함부로 맺으면 크게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름 한번 잘못 써서 개처럼 고생하고 났더니 계약이라는 말에 치를 떨게 되더라.

       

       “하하하하. 엘프가 계약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이냐? 별종이로구나.”

       

       뭐가 그리 웃긴지 용왕이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좋다. 이 몸을 웃게 했으니 알려주지. 이 계약은 엘프 네 녀석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는 계약이다. 힘이지.”

       “힘을 준다니. 대가가 뭐지?”

       “대가, 대가라…”

       

       용왕이 피식 웃었다. 말이 좋아서 대가라고 하는 것이지, 실상 대가라고 부르기에도 사소한 것이었다.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하찮은 것이로다. 그대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니.”

       

       ㅡ츠파앗!

       

       용왕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높은 하늘에서 고고하게 지상을 바라보는 여덟 개의 별자리를 의식했다. 

       

       《여덟 개의 별에 걸린 계약자의 위업에 걸고 말하노니. 그대는 저 별을 등대 삼아 걸을지어다.》

       “큭, 아으윽!”

       

       용왕이 말을 읇조리자 에스텔의 오른 손목에서 치이익, 고기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여덟 개의 반점. 하늘에 걸린 흑염룡의 별과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 새 땀에 흠쩍 젖은 용왕이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후… 쯧. 인간의 그릇이 이렇게나 약할 줄이야.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육신이로다.”

       “이, 이건… 이봐!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시끄럽구나. 그건 엘프 네가 계약자의 별에서 힘을 조금 끌어다 쓸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통로다.”

       “별? 통로?”

       “음……”

       

       용왕이 한스의 몸을 겨누지 못하며 휘청거렸다. 몸을 오랫동안 조종한 것과 더불어 억지로 별의 힘을 썼더니 반동이 온 것이다.

       

       “……조금 피곤하구나. 자세한 이야기는 계약자에게 들으라. 계약자가 조금 우둔한 것 같다지만 이리 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할 테지.”

       

       용왕은 눈을 감았다.

       

       “안타깝구나. 계약자가 ‘벽’만 넘었더라도… 내 힘에 쉬이 휘둘리지 않고… 좀 더 일이 쉬웠을 것인데…”

       

       희미하고 안타까운 중얼거림.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특유의 길게 찢어진 동공이 사라진 채였다. 한스다.

       

       “이, 인간! 이게 도대체 뭐냐! 내 손목에! 이, 이상한 모양이 그려졌다!”

       “…”

       

       에스텔이 애타게 외쳤지만 한스는 듣지 못하는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벽… 벽을 넘으면 된다고?”

       “인간? 인간! 이익! 내 말을 듣고 있는 거냐!”

       

       ‘벽’.

       전사가 보다 높은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 벽을 넘어 무언가를 보고 돌아오면 생물로서 더 강한 존재가 된다고 했다.

       

       데모닉이 벽을 넘은 대표적인 강자였다.

       

       “…벽을 넘으면… 의수가 폭주하지… 않아?”

       

       한스의 눈동자에 독기가 들어찼다.

       목표가 생겼다.

       

       ‘벽’을 넘는다. 그리하여 의수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말 것이다.

       

       “아니… 인간… 내 말을 무시하지 말라고…”

       

       

       

        * * * * *

       

       

       

       에스텔과 데이지, 어둠의 흑염룡의 종복들 구성원들은 경중을 따져 각자 적당한 수위의 체벌이 내려졌다.

       

       그중 에스텔은 노동 교화 형벌이 내려졌는데, 돌로 가득한 석산에서 돌을 깨는 일이었다. 벌써 한 달째 이러고 있었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교화형도 이제 거의 끝 무렵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칵칵, 열심히 곡괭이를 내리찍던 에스텔이 힐끔 사방을 살폈다. 감독관의 감시가 살짝 소홀해진 틈을 타 재빨리 어깨의 대궁을 똑바로 들었다.

       

       신의 무기 특징 중 하나, 주인에게서 일정 거리를 떨어지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스텔에게서 압수하지 못한 것이다. 대신 화살처럼 쓸 수 있는 것이나 날붙이는 모조리 뺏겼지만.

       

       ㅡ끼기기긱…

       

       힘차게 시위를 잡아당기자 오른 손목의 반점들이 희미하게 빛을 내뿜었고, 대궁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역시…!”

       

       활을 당길 수 있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매번 기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에스텔이 애써 기쁨을 억누르며 입꼬리를 파들거렸다. 활을 쏘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무궁무진해지는가.

       

       ‘지긋지긋한 노동 교화만 끝나는 대로 악마들의 대가리에 바람구멍을 내주마.’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대궁을 어깨에 걸쳐 멘 에스텔.

       문득 쑤셔오는 오른손을 부여 잡으며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 쓰인단 말이지. 그 용이 말했던 대가라는 게 도대체 뭐일지.”

       

       무려 신의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대가가 가벼운 것은 아닐 터. 에스텔이 그간 있었던 일을 찬찬히 짚어가며 뭔가 달라진 것이 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한 달 동안 대가라고 부를 만한 걸 지불한 건 없는 것 같다.

       에스텔이 스산하게 웃음을 토했다.

       

       “키킥. 좋아, 좋다고.”

       

       음침한 그늘 속에서 오른손을 부여잡고 킥킥 웃는 에스텔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의 그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고요한 죽음이 빗발칠 것이다. 악마들아. 나, 죽음의 바람 에스텔이 간다.”

       

       ……흑염룡 별자리의 힘을 받는 대가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 * * *

       

       

       

       “오…”

       

       성도 한복판에 불이 났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나의 과실이 제법 큰 것은 분명했다. 

       

       그냥 케니스랑 한스가 데이트하는 게 꼴 받아서, 누구는 출근하고 있는데. 누구는 꽁낭거리면 하하 호호 웃을 걸 생각하니까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도망쳐야지.’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할 일도 딱히 없기에 그냥 성지로 향했다. 커다란 신전과 오밀조밀 자리 잡은 건물 여럿이 화면이 나타났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지.’

       

       쉼 없이 모두가 일하고 있다.

       

       짧은 다리로 열심히 광물을 캐는 드워프와 광물 깎는 밤의 일족, 황금 나무 밑에서 한가롭게 자는 엘프와 온천욕을 즐기는 이베르까지.

       

       – “삐이이이……”

       

       잔다고?

       다시 확인하니 엘프들은 황금 나무 주변의 작은 숲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잘못 본 걸까.

       

       내친김에 성지의 하늘을 고고하게 떠다니는 부유섬 아르고스까지 살폈다.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와 성이다.

       

       한 바퀴 쭉 돌며 부대 감찰하는 사단장의 마음으로 훑었다.

       

       창고에 가득 쌓인 무기가 눈에 밟힌다.

       

       얼마 전부터, 정확히는 한스가 심연에서 악마들을 대거 죽였을 때부터 성지의 여관이 찾아오는 모험가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새로운 무기 리스트도 훑어봤지만 딱히 마음 가는 것이 없다. 여느 때처럼 드워프와 엘프, 밤의 일족을 하나씩 잡아서 저글링을 하며 놀아줘도 흥이 나지 않는다.

       

       – “꾸에에에엑! 드, 드워프 살려!! 크아아아악!”

       

       -“이얏호오오오오!!”

       

       – “히에에에엑!! 살려주세요오오오…!!”

       

       흥이 나질 않는다.

       질린다. 속된 말로 물리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뭘까.

       

       ‘…슬럼프인가?’

       

       사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같은 무기를 만들어서 무기를 성급 강화해 줄 수도 있고, 아르고스를 통해서 격상을 해줄 수 있다.

       

       그도 아니면 성지나 탄탈로스를 하우징하는 것도 제법 괜찮은 선택이겠지.

       

       하지만.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기를 강화해도 쓸 곳이 없는데?’

       

       심연에서 바퀴벌레처럼 나오던 악마들은 이제 통제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왔다. 간간이 지상에서 악마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내가 신경 쓸 것도 없다. 

       

       무기를 만들고 강화하는 이유는 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함인데, 악마들을 싸그리 정리하고 났더니 역설적으로 무기를 만들 원동력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도 보라.

       싸울 적이 없어서 용사인 케니스가 저렇게 놀고 있지 않은가.

       

       ‘아니. 평화로운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무기는 적을 필요로 할 때 쓰임새를 다한다.

       

       악마들의 기세가 크게 꺾인 지금, 도리어 무기의 시대는 끝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못 만든 무기가 너무 많은데…!’

       

       방사능 대검은 자체적인 위험성 때문에 봉인했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아직 만들고 싶은 무기가 너무 많았다.

       한번 시위를 당기면 폭풍같이 화살을 날린다는 “맹렬한 북풍의 활”, 용암보다 뜨거운 열기를 사방으로 뿌리는 “멸망의 검-레바테인” 등등.

       

       ‘하지만 그런 무기들이 필요할 정도면 분명 엄청 강한 녀석일 거고… 그러면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이 다칠 텐데.’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온다.

       하지만 무기는 계속 만들고 싶고… 누군가 다치는 건 싫고…

       

       심마.

       일종의 딜레마가 정신을 갉아먹었다.

       

       출근길 버스에서 그러고 있자니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차라리 마왕 같은 거라도 있었다면…

       

       “오?”

       

       마왕? 엄청 거대하고 강한 적?

       그러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한다고?

       

       “이거…?”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닷…!! 오늘은 한 주의 끝!! 금요일!! 모두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세욧…!!!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락과 떡상은 본래 오고 가는 것…!!! 인생지사 새옹지마…!!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하지만…!! 독자님들에게는 승승장구…!!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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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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