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거악 ( 4 )
심연의 가장 낮은 곳.
온갖 부정적이고 탁한 감정들이 흐르고 고이는 곳에는 탄탈로스가 있다.
멀리서 본다면 탁하고 어두운 구체의 형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가까이 다가와 구 형태의 막을 통과한다면 그제서야 탄탈로스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저 까만 구 형태의 결계를 통과하기 전에는 탄탈로스가 어떻게 생긴 곳인지, 외부 경계는 몇이고 전투 인원은 몇인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정찰대를 꾸리겠다. 암행과 잠복에 능숙한 이들을 골라와라.》
발가르가 빠르게 판단했다.
강력한 힘으로 무작정 부딪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미지의 적을 상대할 때는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했다.
대악마 중에서 둘이 지원했고, 각자 기척을 죽이는 데 자신 있는 중·하급 악마 여럿이 앞으로 나섰다.
《크히히히, 히힉! 나, 나나나! 내가! 내가 갈래! 나한테 맡겨! 얼른!!》
《마왕… 님… 나, 나아… 잘…수, 숨어…》
촉수를 질질 끌며 앞으로 나온 테니아와 까만 장막으로 몸의 티끌조차 보이지 않게 가린 세라스였다.
둘을 보며 발가르가 잠시 고민했다.
《세라스가 가도록 해라.》
사실 시도 때도 없이 광소를 흘리는 테니아에게 기척을 죽이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ㅡ척.
《좋다. 가라, 발가르의 첨병들이여. 얼어붙은 탄식이 너희들을 축복하노니.》
발가르가 양손으로 곧게 잡은 얼어붙은 탄식이 짙은 서리빛을 흘렸다. 은밀하게 새겨진 음각에서 흘러나온 빛은 발가르의 주변을 잠시 맴돌다가 세라스와 다른 악마들의 머리를 한 바퀴 돌고는 사라졌다.
《차…차가, 워…》
머뭇거리던 세라스가 쑥 꺼지는 것처럼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모습에 발가르가 흠칫 놀랐다.
‘아무런 전조 없이 한순간에 기척이 사라졌다. 저게 세라스가 다루는 권능인가? 아니면 특별한 기술의 일종?’
첫 만남부터 제가 다루는 권능을 밝힌 펜리르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대악마들은 자신의 권능을 밝히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시위와도 비슷했다.
악마가 자신이 다루는 권능을 밝힌다는 것은, 가진 패를 모두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아직 완전히 발가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까짓 인정, 상관없다. 결국 심연의 모든 것이 내 손 안에 들어올 것이니.’
하나 된 분이 내린 천명이자, 자신의 사명이었다.
어버이께서 명한 것은 반드시 완수해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다시금 어둠 속에서 세라스가 쑥 솟아났다. 여전히 나타나고 사라짐의 전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따라갔던 녀석들의 수가 많이 줄었군.》
《이, 입구에서부터… 사사… 사냥개가 제법… 마, 많았어요오…》
《상관없다. 보고 온 것을 상세하게 말해라.》
세라스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며 살펴보고 온 탄탈로스의 내부를 설명했다.
삐끗하면 떨어지는 곳에 뜨거운 용암 구덩이 수십 개가 늘어섰으며 곳곳을 순찰하는 거대한 용암 거인이 가득하고, 밤의 기병들은 몇 개의 대대를 이룰 정도였다. 거기에 탄탈로스 최강의 존재라 불리는 심판자 이시디움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생각보다 내부에 병력이 많다. 더군다나 탄탈로스의 내부는 저들에게 익숙한 곳. 밖으로 끌어내서 싸움을 걸어야 한다.’
깊게 고민하던 발가르가 펜리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밤의 기병과 용암 거인, 거기에 이시디움이라는 존재끼지.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말해 보아라.》
《밤의 기병들은 해골마를 제 몸처럼 다루고 악마를 원수처럼 여겨 거품을 물고 달려드나이다. 독하기는 어찌나 독한지, 한번 정한 상대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용암 거인과 이시디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나이다.》
펜리르가 냉큼 대답했다.
묘하게 신사적인 태도도 그렇고, 펜리르는 이것저것 아는 것이 많았다.
《펜리르. 너는 안개와 폭풍을 다룬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좋다. 너에게 절반의 악마들을 주겠다. 이들을 이끌고 탄탈로스의 주변에서 대기하라.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안개와 폭풍을 일으켜 일대의 시야를 가려라.》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인 펜리르가 절반의 악마를 이끌고 탄탈로스 주변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적당히 가까워진 시점에서 펜리르의 울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
낮고 우렁차게,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늑대의 하울링이 퍼져간다.
동시에 짙은 안개가 일어나며 탄탈로스의 주변을 자욱하게 덮었고 작은 폭풍이 일어나며 안개가 흩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평범한 안개가 아닌 대악마의 권능 서린 안개다. 이렇게 짙은 대악마의 안개라면 탄탈로스에서 이쪽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
“…──!!”
느닷없는 안개에 탄탈로스의 주변이 시끄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발가르가 얼어붙은 탄식을 손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마신다.
지고한 어버이께서는 천하의 보검을 자신에게 내리셨다.
허나, 그 이상으로 뛰어나고 견줄 이 없는 육체와 능력을 빚어 자신에게 주셨음이니.
이 또한 찬미해 마땅한 어버이의 은혜라.
‘검을 쓸 필요도 없다.’
발가르의 육신과 영혼, 심장.
그의 모든 것은 가장 순수한 부정의 기운으로 이루어졌다. 발가르에게 심연의 공기에 녹아있는 부의 감정은 자신의 신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를 다루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ㅡ콰아아아아!!
퍼져간다.
검고 사악하여, 이 세상의 모든 색과 빛을 흡수할 듯한 흑색의 기운이.
너무나도 탁하고 어두워서 도리어 가장 순수한 기운이 실체마저 갖추며 심연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자색의 하늘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간다.
‘나와라.’
안개로 눈을 가리고, 발가르가 기운을 풀어 저들을 자극한다.
펜리르의 말이 맞다면 밤의 기병이라는 녀석들은 악마를 미치도록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죽이고 또 죽여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탄탈로스 앞에서 기운을 풀어 도발한다?
ㅡ투두두두두……
《나오는군.》
한참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작게 땅울림이 전해졌다. 이 정도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 절반은 나왔을 것이다.
《아리오크, 테니아. 가라. 펜리르를 도와 저들을 상대하라.》
《크우우웁! 저어어언재애애앵!! 피의 복수!! 학살과 젼쟁이댜!! 크우우우우!!》
《히히히히히히!! 죽여? 죽여죽여죽여도 돼? 창자를 찢어서 크히히히! 머, 머머먹을꺼야! 먹어! 먹어먹어!!》
발가르의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아리오크가 냉큼 제 무기를 들고는 강하게 땅을 박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신형이 사라졌다.
테니아는 기분이 좋은 것인지 제 몸의 촉수를 휘적휘적 흔들며 땅을 박찼다. 손에는 여전히 괴상하게 휜 막대기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노래하라. 탄식이여.》
ㅡ사아아아아…
얼어붙은 탄식에서 망령의 귀곡성이 흘러나온다. 서리빛이 은은하게 퍼지며 사이한 빛을 반짝였다.
차갑고, 또 차가운.
영혼마저 얼려 버릴 것 같은 탄식을 품은 눈보라다.
눈송이 하나하나가 빨려 들어가듯 대악마와 악마들을 향해 떨어졌다. 눈에 닿은 악마는 불길하고 차가운 푸른색의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며 더 강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ㅡ 챙! 쿠웅! 채채채챙!
“────…!”
“────?! ───!!!”
대악마 셋과 더 강해진 악마들이 태풍 같은 기세로 밤의 기병들과 부딪혔다.
《너는 길을 안내해라.》
《……아, 아아! 네, 네에…!》
발가르가 뻥 뚫린 탄탈로스의 입구를 손쉽게 넘어섰다. 중간중간 잔류한 밤의 기병과 용암 거인들이 덤벼왔지만, 얼어붙은 탄식이 몇 번의 궤적을 그리면 거대한 동상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탄탈로스의 중심에 앉아있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했다.
《───!! 이!! 불경하고도 끔찍한 것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너의 존재를 함부로 들이미느냐!! 감히 너 같은 마귀귀에게 허락된 곳이 아니다!!!》
《오, 오오오… 오오오오… 세상에 어찌 저렇게 순수하도록 사특한 기운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오오오… 슬퍼도다! 저 사이한 존재로 이 세상이 얼마나 혼탁해질 것인가!》
《너의 존재는 참으로 순수할 정도로 까맣고 또 부정하구나. 부정하기에 순수할 지경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파올 지경이로다. 그러니 너의 존재는 여기서 끝이다.》
세 개의 머리, 여섯 개의 눈, 여덟 개의 팔.
심판자 이시디움의 세 얼굴 모두가 격노와 혐오를 토했다. 그와 함께 쿵쿵 땅을 울리며 용암 거인 수십이 거리를 좁히며 발가르와 악마들을 포위했다.
《너의 존재 자체가 역천이요, 부정의 근원이자 타락의 만상이로다!!!》
《너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존재가 탄식의 눈물을 흘릴 것이며, 죄 없는 이들의 한숨과 통곡은 강처럼 흐를것이다…》
《만마의 제왕이여. 순수한 타락과 부정이여. 삼판자 이시디움의 이름으로 너의 여정에 종언을 고하겠노라.》
척, 척, 척, 척.
이시디움의 여덟 개의 팔이 등 뒤로 향하더니 각자 다른 무기 여덟 개를 꺼냈다.
지팡이, 창, 검, 망치, 철퇴, 편곤, 월도와 방패.
각기 다른 여덟 개의 무기를 동시에 다루는데 모양새가 달인의 그것이라, 무기가 서로 얽히지 않고 도리어 교묘한 궤적을 그리며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네가 감히 나의 존재를 부정하느냐.》
우습다.
자신의 존재는 하나 된 분의 뜻으로 빚어져 탄생한 것인데. 눈이 여섯 개나 있으면서도 제 눈앞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꼴이다.
《나의 존재가 하늘의 뜻이고, 필멸이며 이치이거늘.》
《네가 하늘과 이치를 논하느냐ㅡ!!》
얼어붙은 탄식이 서릿빛 기운을 줄기줄기 흘린다. 가만히 칼날을 겨눠 저 오만한 심판자의 심장을 겨눴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
《와라. 너의 시체를 짓밟아 이 땅에 나의 존재를 새기겠다. 그것이 나의 천명이자 사명. 어버이의 뜻을 완수하리.》
이시디움의 팔이 만개하는 붉은 연꽃처럼 사방을 적색으로 뒤덮었다.
콰아아악!
그리고 그 위를 덧칠하듯, 얼어붙는 탄식이 푸른색의 기운을 짙게 흘리며 궤적을 그렸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시디움과 발가르의 싸움 수준이 실화냐…? 정말 가슴이 웅장하다 못해 심연이 무너질 것 같… 어, 어어…!! 심연 땅이 왜 갈라지냐!! 으아아악!! …농담입니다!! ^^/ 같은 사업부 안에서 소통은 중요하죠…!! 소통의 부재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분명합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아, 그런가… 그렇게 된건가… 모르는건가? 아직 독자님에게는 이르군… 아니.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지… 대화는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