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유사품에 주의 ( 3 )
광기… 혹은 신념?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발리안의 눈빛을 보며 애덤이 혀를 찼다. 무엇을 말해도 들어 먹지 않을 인간의 눈이다. 애덤은 저런 눈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라이언하트… 아니, 레온. 그 친구도 가끔 저런 눈을 했었는데.’
떠나간 옛 친우를 그리던 애덤이 허리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하. 좋다. 너 같은 녀석한테 뭐라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겠지. 내가 알고 지내던 친구도 자주 그랬었는데… 쌍검, 그래. 마음대로 해라.”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대장간에서는 쌍검을 취급하지 않는단 말이지.”
“예?!”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발리안의 표정이 황망하게 변하자 애덤이 짓궂게 씩 웃었다.
“그러니까, 한번 만들어 봐야지.”
애덤, 대장장이 종족 드워프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인간 대장장이가 큼직한 망치를 쥐었다. 망치의 자루에는 애덤의 손 모양이 새겨져 꼭 맞아떨어졌다.
“꼬맹아. 너는 신의 무기를 본 적 있냐?”
“아, 예. 몇 번이라면 멀리서 조금…”
“그 신의 무기라는 것들은 참 신기하고 또 신비한 귀물이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제 주인의 곁으로 돌아오고, 아무리 험하게 다뤄도 어지간해서는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는다.”
치이익ㅡ
묵묵히 화로의 화력을 올리며 말하는 애덤의 얼굴이 붉은빛으로 넘실거렸다.
“신의 무기는 그야말로 야금술의 꿈, 신화의 경지에 다다른 절정! 나는 신의 무기를 만드는 분들에게 짧게나마 가르침을 사사받으며 몇 가지 배운 것이 있다.”
“…”
“재료는 조악한 구리였고, 불은 무지막지하게 뜨겁지만 흉내는 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의 무기와 평범한 무기를 가르는가!”
까앙!
힘차게 내려친 망치가 붉게 달아오른 주괴를 때렸다.
사방으로 퍼지는 불똥은 어쩐지 대장간에서 피어오르는 은하수처럼 보였다.
“섬세한 기술! 그리고 일도(一道)! 하나의 정신으로! 하나의 생각으로! 만 번을 두들기며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까앙! 까앙! 카앙! 깡!
“주괴에 잡념이 섞이지 않도록! 나 자신을 함께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만 번의 망치질에 오직 하나의 집념만을 불어넣는 것이다!”
카앙! 캉! 캉! 까앙!
붉게 달아오른 주괴를 신들린 듯 내리치는 애덤의 망치질은 흡사 벼락과도 같았다. 같을 궤적, 같은 길을 수없이 반복하며 내리치는 망치의 벼락.
카앙! 까앙! 깡! 카강!
“뜨거운 불 앞에서 쉬지 않고 만 번을 두들기고 천 번을 접어 백 번을 갈아 연마하면! 인간의 몸으로 감히 신의 무기를 따라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말을 끝으로 애덤은 이틀 밤낮 동안 불 앞에서 망치를 두들겼다. 그 모습은 어딘가 홀린 사람과도 같았으며, 모든 것을 뜨거운 불 앞에 바친 거목처럼 우직하였다.
깡!
쉼 없이 울려 퍼지던 망치 소리는 딱 사흘째의 새벽에 멈췄다.
“이, 이게…”
애덤의 작업을 모두 지켜본 발리안이 손을 떨었다.
아직 뜨거운 불길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검날, 허나 서늘하고 예리한 검날은 명검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운이 좋았군.”
애덤이 완성된 쌍검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만든 사람이 이리 말하니 발리안은 황당하게 애덤을 바라봤다.
“예…? 운이 좋았다니.”
“운이 좋았다고 꼬맹아. 나라고 뭐 매번 이렇게 슴풍슴풍 신의 무기 아류작을 만들 수 있는 줄 아냐?”
애덤이 코웃음 치며 팔짱꼈다.
“어림도 없는 짓이지. 오십 번 해서 하나 나오면 운이 좋은 거고, 잘 안되면 백 번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
만 번의 망치질에 하나의 생각을 담는다ㅡ 알고는 있어도 인간이 그리 행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뜨거운 불 앞에서, 그것도 고된 노동을 하면서.
“이건 말 그대로 신의 무기를 따라 한 아류작이다. 신의 무기를 따라 한 거라서 신의 무기에는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너 같은 애송이한테는 과분한 무기지.”
툭, 애덤이 쌍검의 마무리를 끝내며 발리안에게 물었다.
“돈은 얼마 있냐.”
“이, 이만큼…”
발리안이 자신 없는 태도로 돈주머니를 보였다. 구릿빛의 동전이 대부분이고, 그 안에 가끔 은빛 동전이 박혀있다.
도대체 이런 세기의 명검을 사려면 얼마나 줘야 한단 말인가. 빚을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발리안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쯧.”
혀를 찬 애덤이 퉁명스럽게 검을 내밀었다.
“절반 놓고 가라. 망가지거나 부서지면… 내가 만든 검이 그리 될 리 없으니 네가 잘못 쓴 거겠지. 알아서 고쳐라.”
“예…?”
돈의 절반?
고작?
이런 검을 사는데 고작 이 정도?
발리안이 멍청하게 애덤을 바라보자, 애덤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귓구멍도 막혔냐! 돈 절반 놓고 얼른 가라!”
“아, 예!! 예! 좋은 쌍검 정말 감사합니다!!”
발리안이 부리나케 검을 챙겨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급히 달려간 자리에는 발리안에게 빌려줬던 스승님들의 수염, 그러니까 드워프의 수염이 남아 있다.
“쯧.”
애덤이 떨어진 수염을 정리하며 혀를 찼다.
녀석의 눈에서 간만에 옛 친우를 떠올렸기에 흥이 올라 일단 쌍검을 만들어주기는 했다만…
‘또 이런 때에 신의 무기 아류작이 튀어나온 것은 무슨 까닭인지…’
괜히 송장 하나 만드는 데 손을 보탠 건 아닐까.
조금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며 작업대를 정리했다.
애덤이 이렇게 신의 무기 아류작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 다섯 달 됐을까? 그동안 쉬지 않고 창이며 검과 단검을 만들었지만, 성공한 것은 방금의 쌍검과 진열대의 단검까지 합해도 다섯 점이 전부다.
‘만신전에는 진즉에 말을 했다만…’
이래 봬도 팔라딘을 친구로 뒀던 몸.
신의 무기 아류작을 만들 수 있게 된 직후 곧장 만신전에 알렸다. 자칫하면 신성 모독이나 불경죄 같은 것으로 잡혀가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만신전이 그리 유해졌을 줄 누가 알았을꼬.”
성공 확률도 낮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애덤 혼자에 신의 무기 반의반에 못 미치는 성능 때문일까. 만신전에서는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더니 의외로 순순히 허가증을 내줬다.
‘오히려 더 만들 수 있는지 넌지시 확인까지 하고 갔지.’
신의 무기가 필요한 이는 많은데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일단 제자들한테 방법을 알리고 연습을 시키는 중이기는 하지만… 그리 녹록하지는 않아 보인다.
“휴우ㅡ 스승님 중 한 분이라도 계셨었다면…”
한숨을 내쉰 애덤이 저 멀리 사라져가는 발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쯧쯔. 저 못난 녀석이 검에 맞는 검사여야 할 터인데.”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녀석 손에 굳은살이 너무 없었던 것 같은데.’
애초에 쌍검술을 알고는 있…겠지?
* * * * *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ㅡ
“덤벼라 이 돼지 녀석아!”
꾸히이이익!
성도에서 멀리 떠나 험한 산골에 도착한 발리안이 손의 쌍검을 쥐며 호흡을 골랐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성인의 허리춤까지 오는 커다란 멧돼지!
개척 마을까지 내려와 난동을 부리는 까닭에 의뢰가 내려진 악독한 녀석이었다.
부웅ㅡ 붕, 붕!
발리안이 어설프게 양손의 검을 휘두르며 멧돼지를 위협했다. 나름 쌍검술에 관한 책을 보며 혼자 연습한 티가 난다.
“순순히 내 공적치와! 쌍검의 제물이 되어라!!”
타앗!
쌍검을 역수로 쥔 발리안이 힘차게 도약했다.
높게 뛰어오른 발리안의 기세에 밀리지 않은 멧돼지가 되려 땅을 박차며 앞으로 돌진했고ㅡ
퍼억!
“꾸헤에엑!!”
발리안은 돌진한 멧돼지에게 치여 볼품없는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꾸히이익! 뀌익, 꾸에에엑!!
승리를 만끽한 멧돼지가 발리안을 한껏 비웃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크윽.”
엎어져 있던 발리안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마지막 순간에 가까스로 멧돼지의 돌진을 쌍검 중 한 자루로 막았고, 덕분에 갈비뼈 두어개 나가는 수준에서 그칠 수 있었다.
‘쌍검이 아니었다면 분명 죽었을 거야…’
사실 방패를 들었다면 갈비뼈도 나가지 않았겠지만, 발리안에게 쌍검 외의 다른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논외다.
절뚝. 절뚝.
배를 부여잡은 발리안이 절뚝거리며 산에서 내려왔다. 오늘 의뢰도 허탕이다.
산에서 내려오니 임시로 세운 나무 건물과 커다란 천막 몇십 개가 세워진 마을에 도착했다. 경계로 세워둔 높은 나무 벽에 깃발이 힘차게 펄럭인다.
애덤이 멍하니 깃발을 올려봤다.
‘서부 마경 그로아나 수림 개척 마을…’
악마와 마귀들의 소란이 잠잠해짐에 따라 8개 왕국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마경 개척 계획.
발리안이 와 있는 이곳은 4대 마경 중 서쪽의 마경, 그로아나 수림(樹林). 엘프들이 이 숲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있는 울창한 정글이다.
‘서쪽에는 울창한 정글과 산이 펼쳐진 그로아나 수림, 남쪽으로는 마수가 들끓는 호루트 해안. 북쪽에는 사시사철 눈이 불어오는 마수의 산이 있고 동쪽에는…’
뭐가 있더라?
무슨 사막이라고 했는데.
잠시 떠올리려 노력하던 발리안은 이내 포기했다. 4대 마경이 어쩌고저쩌고… 그보다 중요한 건 오늘 의뢰에 실패했고, 종일 굶어야 한다는 거니까.
꼬륵ㅡ
‘아아. 쌍검사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오늘 저녁은 싹을 도려낸 생감자다. 발리안이 쌍검을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숙소로 향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엣, 여, 염증이요…? 부디 빠르게 병원에 방문하여 치료 받으시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추운 날씨에 발생한 염증은 심각한 병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많이 쓰는 관절인데!!! 조속히 병원에 방문하여!!! 꼭!! 치료 받으셔서 완치되셨으면 좋갰습니다!!! 완치될 때까지 후원은 벤입니다!!! 몸부터 챙기세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