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쌍검은 만병지왕 ( 2 )
케넬름이 설렁설렁 망치를 휘두르며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도대체 내 짬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챙, 카캉! 으적!
“으걱!”
작은 망치에 관자놀이를 찍힌 발리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리다가 죽어버린 발리안은 거짓말처럼 저 멀리에서 스르륵 다시 나타났다.
“흐업! 흐, 흐어억! 주, 죽어! 죽어어!”
카가가각! 카캉! 으지직!
겁에 질려 마구잡이로 쌍검을 휘두르는 발리안.
난무하는 쌍검을 작은 망치 하나로 툭툭 쳐내는 케넬름의 머릿속은 영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억지로라도 리아를 보냈어야 했나? …아니야. 리아 그 아이는 전투랑은 너무 거리가 멀었지.’
케넬름에게 리아라는 파릇파릇한 후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리아는 살아생전 무기보다는 성경을 더욱 가까이했던 샌님 사제. 전투가 중요한 이번 일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에휴. 그래도 뭔가… 좀 기분이 이상하네요.’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떠맡은 기분이랄까.
이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려 케넬름은 조금 더 경쾌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흐아아아! 제발! 좀!!”
“동작이 너무 크네요. 이얍.”
우직!
머리가 오목한 하트처럼 변한 발리안이 바닥에 쓰러진다.
저 멀리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발리안이 거친 호흡을 마시며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으아, 흐아아아!!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곳이야! 사람 살려!”
“어머. 그쪽으로 가봤자 다시 여기로 돌아올 뿐인데요.”
케넬름의 반대로 달렸지만, 어느새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기묘한 공간에 발리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도,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여기서 나가고 싶거나 저한테 대답을 듣고 싶으면, 저한테 딱 한 번이라도 공격에 성공하면 되요.”
케넬름이 작은 망치를 툭툭 두들기며 답했다. 발리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눈 앞의 여자는 무식할 정도로 강한데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ㅡ
“포기인가요?”
“아, 아니 잠깐 생각을 좀ㅡ”
으직!
머리가 으깨진 발리안이 쓰러지고, 부활한 발리안이 저 멀리서 일어난다.
도망치다가 머리가 으깨지고, 협상하려다 머리가 으깨지고, 포기한 채로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으깨진다.
으직!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했더니 발리안의 눈에 독기가 가득 차올랐다.
채채챙! 캉!
“흐아아아! 좀! 죽어! 죽어어어!”
“그렇게 동작을 다 보여주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네요.”
교차로 휘둘러지는 쌍검을 쳐내는 케넬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줄 알았는데, 쌍검의 움직임에 어째 익숙한 것이 보인다.
‘…저건, 창잡이들의 습관인데?’
아까부터 쌍검에 미묘하게 회전을 주고 있다. 찌르고 빠지는 위주의 공격과 어설프지만 자신의 공격을 쌍검으로 돌리며 막으려는 시도까지.
‘거기에 발놀림이나 거리 조절도 되게 잘하고 있었단 말이죠.’
예전에 창이라도 썼던 것일까?
“당신 혹시 창을 쓴 적이 있나요?”
“헉, 흐읍. 아주 예전에, 아버지한테서ㅡ”
대답하며 호흡을 고르는 발리안.
케넬름이 벼락같이 뛰어들어 발리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얍. 빈틈!”
으직!
저 멀리서 다시 살아난 발리안의 포효가 울려 퍼진다.
“어째서! 당신이 물어봤잖아!”
“적이 물어본다고 대답하는 것도 우습지만, 설령 대답하더라도 빈틈을 보이면 안 되죠.”
“그런게 어디있ㅡ”
“억울하면 저한테 한 번이라도 공격을 닿게 해보세요.”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나오는 부조리함!
뻔뻔한 케넬름의 대답에 발리안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저 여자의 미모에 홀려 마음을 빼앗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벌써 수십 번이나 저 여자의 망치에 대가리가 으깨진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다.
‘저 여자는 악귀! 악마야! 여인의 탈을 쓴 살인마!’
보통 사람이라면 수십 번 죽은 시점에서 마음이 꺾이거나 정신이 나갔을 테지만, 이 기묘한 공간의 특수성 덕분에 정신이 온전한 발리안은 터무니없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진짜… 당신한테 꼭 한 방 먹일 테다.”
“후후. 기대할게요?”
으직!
그렇게 꿈속에서 케넬름과 발리안의 하하 호호 즐거운 대련이 이어졌다.
“그렇게 느려서 제 옷깃에 스치기라도 하겠어요?”
“흐아아아!! 진짜! 아 진짜!!”
으직!
“당신이 가지고 있는 쌍검의 특징과 당신의 강점에 집중해야죠! 빠른 공격에 특화된 무기와 재빠른 발을 좀 살려봐요!”
“그게 말처럼 쉬우면 내가 이 고생을ㅡ”
으직!
“공격은 물 흐르듯 이어지게! 방어를 할 거라면 확실하게 물러서야죠!”
“으아아아악! 무슨 장도리를 그렇게 쓰는 거냐고! 이건 사기야!”
으직!
“이건 분명 꿈인데! 왜, 어째서!! 내 공격이 닿지를 않는거야!!”
“꿈에서 일어나고 싶어요? 그럼 저한테 조금이라도 닿으라니까요?”
“야아아아아!!”
으직! 으직! 으직! 으직!
수백, 수천 번 머리가 오목해지는 극한의 대련 속에서, 발리안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쌍검의 사용법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 * * * *
케넬름에게 발리안의 자동 수련을 맡기고, 나는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신참 리아와 면담을 했다.
“그러니까… 너는 생전에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했다는 거지?”
– “네! 서류 정리나 이런저런 잡무는 거의 다 할 수 있어요.”
“흐음 그래?”
행정직 도우미 같은 느낌일까?
지금까지 케넬름이 부족한 것 없이 잘 도와주기는 했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케넬름은 전투와 현장에 특화된 부류다.
저번에 지상에서 다른 애들을 아주 잠깐 굴렸는데 미친 살육 기계로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천생 현장 체질이야.
본인이 현장 특화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해서 그렇지. 성녀라서 그런 걸까?
“으음. 그러면…”
잠깐 고민하다가 성지의 하늘에 고고하게 떠 있는 부유섬 아르고스를 가리켰다.
“여기로 가서 성지의 재정적인 상황이나 24시간 단위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좀 정리해 봐. 가면 아르고스라는 애가 도와줄거야.”
– “네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느긋하게 대답한 리아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유부녀 특유의 여유로운 관록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데모닉. 이 부러운 녀석.’
평생 행복하게 백년해로해라.
화면을 돌려 발리안과 케넬름의 수련 상황을 확인했다.
– “좀 더 빠르고 강하게 휘둘러야죠! 그게 당신의 전부인가요!”
– “으아아아아아!! 도대체 왜!! 내 공격은 닿지를 않는 거야!”
– “느리니까요.”
– 으직!
“오우…”
케넬름의 망치에 살벌하게 머리가 으깨지는 발리안.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망치를 든 케넬름이 나를 알아봤다.
– “어, 앗. 위대한 분이시여!”
“어, 으, 으응. 잘 되고 있나 잠깐 보러 왔어…”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건 좋은데 그, 뺨에 피가 좀 많이 튀었네.
– “아주 순조롭습니다! 원래부터 창에 대해 좀 알고 있더라고요. 봐주는 보람이 있네요!”
– 으직!
“아, 어, 그래…? 너무 망가지지 않게 살살해둬…”
말하는 와중에도 케넬름이 망치를 휘둘러 발리안의 뚝배기를 두 번 작살냈다.
내가 주문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잠깐 갈등했다.
‘발리안 정신이 무너지거나 망가지지 않도록 대비도 잘 해뒀으니까 문제는 없고… 얘가 워낙 쌍검에 대한 자질이 낮아서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어. 응. 이게 최선이었어.’
쌍검에 하나하나 대해 가르치려고 하면 너무 오래 걸린다.
애초에 어디서 쌍검의 고수를 초빙해온단 말인가.
“그래 이게 맞아. 최고의 스승은 실전이라는 말도 있잖아?”
이건 발리안에게 둘도 없는 기연이다.
신이 직접 만든 무기를 후원받고 최초의 성녀에게 1대1 지도받을 기회라니?
‘굳세어라 발리안…’
나는 쌍검충 발리안을 위해 짧은 애도를 빌며 침대에 누웠다.
방치형 수련 개꿀이네.
* * * * *
“…”
아.
발리안은 눈을 뜨며 낡은 천막이 보였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지긋지긋한 꿈에서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더듬어 구멍 난 곳은 없나 확인했다.
없다.
오목하거나 깨진 곳 없이 두개골이 멀쩡하다!
“흐, 흐흐흐흐…! 흐흐흐흐흐하하하하!”
발리안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승리의 희열을 만끽했다. 최후의 순간, 자신의 공격은 분명 그 빌어먹을 악귀 같은 여자에게 닿았다.
‘비록 옷깃에 살짝 스치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분명 닿았다고! 내가 한 방 먹였어!’
그 한 방을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죽음이 있어야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덜그럭.
“음?”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던 발리안이 제 품에 안긴 낯익은 쌍검 두 자루를 발견했다. 특유의 짧은 날과 짐승의 발톱을 닮은 외형, 검날에 옅은 주홍빛과 은은한 열기를 머금은 두 자루의 쌍검.
“이건… 꿈에서 내가 썼던 무기잖아?”
이것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마귀 같은 여자가 나오는 꿈이 단순한 개꿈이 아니라는 것은 예상하였다. 그런 생생하고 현실 같은 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땡, 땡, 땡, 땡!
“이런 늦었다!”
개척 캠프의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발리안이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영문 모를 꿈과 수상할 정도로 좋아 보이는 쌍검에 대한 의혹은 잠시 머리 한구석으로 구겨 넣는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이야ㅡ 막내가 종 울린 다음에야 나오고, 세상 많이 좋아졌다잉?”
“지각이야 지각! 오늘 아침 설거지는 막내구먼!”
서부 마경 그로아나 수림 개척 캠프의 유구한 전통, 아침 점호. 오늘 설거지 담당은 지각한 발리안이다.
발리안까지 모두 나왔음을 확인한 단장이 점호를 시작했다.
“음. 다 모였군. 간밤에 아픈 사람은 없겠지?”
“““예에ㅡ”””
“좋아. 가볍게 캠프 3바퀴 구보한 뒤에 식사하도록 하지.”
아침부터 커다란 캠프를 3바퀴나 달리니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물론 캠프에서 오래 구른 고참들은 멀쩡했고, 발리안만 죽기 직전이었다.
“흐에, 헤엑. 흐어억…”
“이거 이래서 언제쯤 쓸만한 녀석이 되려나?”
고참들이 발리안의 등을 팡팡 치며 지나갔다. 단장도 피식 웃으며 발리안의 어깨를 두들겼다.
“적당히 쉬다가 밥 먹으러 와라. 오늘 아침은 우디가 힘 좀 줬다고 하더군.”
“흐, 허억. 예!”
한참이나 호흡을 고른 뒤에야 진정된 발리안은 후다닥 아침을 먹고 텐트로 돌아가 붉은 쌍검을 확인했다.
틀림없다.
꿈속에서 질리도록 다뤘던 그 쌍검이다.
“이건… 도대체…”
터무니없을 정도의 명검, 아니 걸작이다.
검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날카로운 예기와 사납고 투박한 외형, 그와 더불어 은은하게 주홍빛을 뽐내는 검날까지.
스릉.
닿지 않았음에도 검날에 손이 베일 지경이다.
꼭 맞는 이 감촉, 무게감, 느낌!
발리안이 쌍검을 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이 황홀하고도 묵직한 감각.”
느껴진다.
이 쌍검을 얻은 자신은 어제의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꿈속에서 사악한 악녀에게 수없이 머리가 터져가며 몸으로 배운 것들은 결코 헛것이 아니었음을.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이라도 단장에게 달려가 테스트해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무조건 테스트를 통과하고, 선배들과 함께 개척 탐험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위대한 쌍검사 발리안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거야!’
후다닥 나갈 채비를 마친 발리안이 돌연 몸을 덜컥 멈췄다.
“어, 어어…?”
그러고 보니… 선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몇몇 모험가들이 던전이나 꿈속에서 엄청난 존재, 그러니까 신을 만난 뒤에 신의 무기를 직접 받았다고.
‘꿈, 무기… 나랑 상황이 비슷하잖아?’
그렇다면 설마, 자신이 꿈에서 만난 그 붉은 머리의 여인이…신?!
심각하게 고민하던 발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렇게 흉포하고 잔인하고 손속이 무자비한 존재가 신이겠는가?
“에이 아니겠지…”
신이 아니라면… 신의 밑에서 일하는 존재라는 소리인데.
그 잔혹한 상정과 손속, 뛰어난 전투력을 생각해본다면 살아생전 악마 대가리를 수천은 터뜨린 악마 살해자가 분명하리라.
“분명 신의 기병대에 있는 장군이거나, 그도 아니면 무자비한 악마 도살자가 분명해.”
신의 명으로 움직이는 살육 기계가 틀림없으리라.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엘든링과 몬헌에서 많은 영감을 받기는 합니다…!! 둘다 아주 재밌는 갓갓겜이거든요…!! 몬헌은 요즘 잘 못하고 있지만, 엘든링은 아주 재밌읍니다..! 닼소…!! 수백 번 죽다보면 정신이 피폐해지기 시작하죠ㅋㅋㅋ!! 저는 닼소 3부터 입문을 했기에…!! 닼소 1,2는 엄두도 안나는군요…!! 유사 닼소를 체험하고 온 발리안에게 명복을 액쎤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