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황금 나무의 잔재 ( 2 )
불로불사(不老不死).
늙지 아니하며 죽지도 아니한다.
얼핏 듣기에는 실로 달콤한 과실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니, 저 하늘의 구름과 우뚝 솟은 태산마저도 정해진 끝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원리로 모든 생명에게는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착지가 기다리고 있다.
왕과 거지, 부자와 하인, 병사와 범죄자를 가리지 않고 거두어 가는 가장 공평하고 평등한 징수원.
언제라도 그렇지만 손에 쥔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손안에 있는 것들을 쉬이 놓기 싫어하는 법이다.
이들은 죽음이라는 징수원에게서 자신의 보석과 금을 지키기를 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습게도 대륙을 호령한다는 제국의 황제조차 불사에 집착하지 않을진대.
어설프게 약소 왕국을 통치하는 이들이 더욱 삶과 목숨에 집착했다.
그들이 불로불사라는 미몽을 얼마나 은밀하고 집요하게 강구했는지는, 악마와 인신 공양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을 시도했다고 봐도 좋았다.
수수께끼의 학자 카르타할은 홀연히 나타나 이런 권력자들의 마음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방법. 영원토록 병에 걸리지 않고 금은보화를 누리며 미녀를 취하는 삶! 제가 이뤄드릴 수 있습니다.”
실로 뱀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카르타할이 작은 왕국의 늙은 왕을 구워삶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도미노처럼 주변 왕국의 귀족과 왕, 왕비를 자신의 수족으로 만든 카르타할은 곧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황금 나무. 엘프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신화시대의 산 증인. 이 황금 나무의 조각이나 파편이 필요합니다. 되도록 많이.”
“그, 소문의 황금 나무 말인가? 그것은 그로아나 수림 깊은 곳에 있다고 하던데.”
“카르타할. 어째서 그 나무가 필요한지 알 수 있나요? 제가 듣기로 황금 나무는 거대하고 사악한 악마의 공격에 전부 불탔다고 하던데요…”
“크흠, 흠! 소문대로 황금 나무는 정말로 황금으로 된 나무인 건가…? 그렇다면 혹시 쓰고 남는 것을 내가 기념으로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은데.”
우매한 이들의 질문에 카르타할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경멸의 뜻을 담고 있었지만, 실처럼 가느다란 눈매에 가려져 다른 이들은 이를 알 수 없었다.
멍청한 돼지 같은 녀석들.
불로불사라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두고 한다는 것이 황금이나 탐하겠다는 머저리들.
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카르타할의 지성에 대한 모욕이었지만… 카르타할은 단단한 가면을 쓰고 방긋 웃으며 답했다.
“황금 나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신성의 보고입니다. 신성은 마치… 그래요. 극도로 정제되고 압축된 신성력과도 비슷한 겁니다. 신성력보다 한층 더 위대하고 뛰어난 것이지만요.”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신성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이들은 순식간에 왕국 연합이라는 연합을 선포하더니 그로아나 수림으로 탐험대를 파견했다. 마경을 개척하여 삶의 터전을 넓힌다는 거창한 명분과 함께.
카르타할은 이 우스운 꼴을 보며 폭소를 참느라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그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는지 마침내 황금 나무의 잔재를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과연 신성의 보고, 신화시대의 기둥이자 엘프의 고향이라 불리는 황금 나무. 카르타할이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악마에게 신성을 빼앗기고 불타 죽은 황금 나무의 잔재에는 카르타할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신성이 깃들어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누른 카르타할이 뜨거운 열기를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영원한 삶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단 한 걸음만을 더 나아간다면, 저와 여러분은 영원히 죽음을 피하며 살 수 있습니다.”
불로불사라는 작고 좁은 쪽배에 몇 명이나 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제, 가장 어렵지만 쉬운 것만이 남았습니다.”
그리 말하자 석실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무수한 마수가 득실거리는 마경을 헤치고 황금 나무의 파편을 가져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남았단 말인가?
“황금 나무에 깃든 신성을… 인간의 몸을 옮겨 깃들게 하는 일. 애석하게도 인간이 신성을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가 알기로 인간 중 딱 한 명, 가능한 사람이 있지만… 불로불사라는 생명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을 도울 것 같지는 않군요.”
“도대체 그 한 명이 누구인데 그러는 건가. 산 같은 황금과 보석, 미녀로도 설득할 수 없는 사람인가?”
세상 모든 이가 자신처럼 황금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카르타할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만신전의 용사입니다. 용사는 신성과 매우 흡사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을 사용하지요. 폐하께서는 용사를 황금과 미녀로 설득할 수 있으십니까?”
“크, 흐흠! 계속 설명하시게.”
다른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을 확인한 카트라할이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 저희들은 다른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을 받아 신성을 몸에 이식하고, 불로불사를 뿌리내리는 과정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주 우연치 않게도, 적절한 대가를 치르면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이들을 알고 있죠.”
카르타할이 석실의 바닥을 낮게 기는 듯 속삭였다.
“대악마를 소환하는 겁니다.”
의자 수십 개가 요란하게 일어나며 석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대악마라는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들은 반응이었다.
“미쳤군! 미쳤어!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악마를 소환하자고? 그것도 대악마를?”
“만신전의 고문실을 구경하고 싶거든 자네 혼자서 구경하게! 나, 나는 이 불경한 말을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석실은 아우성치는 괴성으로 메아리쳤다. 카르타할은 돼지들의 합주를 감상하듯 잠시 이를 즐겼다.
“다들 진정하시지요. 염려하시는 바가 뭔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만신전의 추적이, 그리고 하나 된 분의 눈동자가 두려우신 것이지요?”
“자, 자네도 알 것 아닌가! 새로운 계명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어! 그 내용 중에는 신께서 보고 계신다는 내용도 있단 말이네!”
카르타할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보는 이를 안심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신뢰감을 주는 미소였다.
“만신전의 이단 심문관이나 강철 성기사, 사도 부대나 놋쇠 날개 기사단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비슷한 이유로 용사나 다른 사도들도 오지 않을 것이고요.”
“무슨 이유로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건가.”
타당한 질문에 카르타할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 듯 말 듯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동공은 조금 섬뜩한 빛이 가득했다.
“이유가 중요합니까? 여기까지 온 이상 여러분과 저는 한배를 탄 운명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
“…”
석실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카르타할에게 물었다.
“그, 그, 그래도 하나 된 분께서는…! 그분은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보는 분이라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지상에 몇 번이고 기적이 임했고 말이야.”
몇몇 이들은 성호를 그으며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만신전의 목걸이가 번쩍거렸다.
카르타할은 그 꼴을 보며 미묘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찰나의 순간 지나갔기에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 된 분에 관해서 여러분은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알아야겠네.”
“악마 소환이라니! 자칫하다가는 영혼이 탄탈로스에 처박힐 수도 있어!”
아우성치는 돼지들의 노래를 들으며 카르타할이 빙긋 웃었다.
“너 길 잃고 헤매는 어린아이야. 나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함으로써 인도의 빛을 비추리라.”
“환희의 기도서… 8장 34구절?”
오, 누군가 정확하게 맞추자 카르타할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은보화의 돼지 속에서도 진주가 있었다.
이 또한 위대한 하나 된 분의 뜻이 아니겠는가.
“저희가 가는 길은 결코 불경하거나 부덕한 길이 아닙니다. 저희가 악마를 소환해서 누군가를 죽이기라도 합니까? 아니면 사악한 힘을 소망했습니까?
저희는 이 황금 나무의 신성을 인간의 몸으로 옮기는데, 아주 살짝 도움만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부도덕하고 불경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허튼소리! 악마를 소환하는 행위 자체가 끔찍한 불경이지 않은가!”
“악마 숭배자가 성도에서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는가! 우릴 모두 죽이려는 속셈이 분명하군!”
누군가의 지적에 카르타할은 흔들리지 않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 더 현명하고 우아한 방안이 있으십니까? 신성이라는 이 무지막지하고 위대한 힘을, 아무런 실수도 없이 인간의 몸에 옮길 수 있습니까?”
“그, 그건…”
“…”
석실을 가득 채우며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신성이 무엇인지, 신성력과 무엇이 다른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다른 방안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다른 더 좋은 방안이 없다면 다들 동의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 두려운 건 아니다.
그 여파가 두려운 것이다.
악마를 소환한 이들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하게 죽었는지 구태여 되새기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불로불사가 주는 달콤한 과실이 탐났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며 권력과 미녀, 산해진미와 금은보화를 누리는 삶!
영원히 부드러운 비단 속에 헤엄치며 권력을 향유하는 삶은 얼마나 달콤할 것인가. 늙지 않고 살아가는 그 짜릿함은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결국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타할은 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지난한 여정의 끝이 오고 있어요. 끝까지 가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 법입니다.”
“…제일 중요한 제물은 어떻게 하려는 거요.”
카르타할은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곧장 대답했다.
“저의 팔과 다리를 잘라서 바칠 겁니다. 부족하다면 기꺼이 배를 갈라서 내장이라도 바치지요.”
“대악마씩이나 되는 존재가 겨우 인간 한 명의 팔다리와 내장으로 움직일 리 만무하오. 무모하군.”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면요?”
“그건 무슨 말인가?”
카르타할은 여전히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카르타할은 그대로 모임을 파했다.
시차를 두고 석실을 나간 이들은 음침하고 축축한 석실에서 나눈 밀담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화려하게 웃고 떠들며 연회를 만끽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나는 듯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채로.
* * * * *
– “불로불사라니!! 감히, 감히! 필멸을 살아가는 자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불멸을 넘보다니! 이, 이건 신성 모독입니다! 당장 저 녀석들의 사지를 찢어서 개먹이로 뿌리고 뼈의 개수를 두 배로 늘려서ㅡ”
얼굴이 시뻘건 악귀의 표정을 지은 케넬름이 망치를 휘두르며 방방 뛰었다. 머리를 한참이나 쓰다듬어야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불로불사?’
솔직히 말하자면 신성 모독이나 불경하다는 생각보다 순수한 호기심이 먼저 들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인데 내가 지금까지 한 짓을 보고도 악마를 소환하겠다는 거지?”
다른 놈들은 카르타할이라는 놈에게 선동당하거나 물주로 이용당한 바보들이다. 하지만 카르타할, 상석에서 모임을 주도한 녀석은 뭔가 다르다.
묘하게 침착한 태도와 우아한 말투, 시종일관 여유로운 행동거지.
거기에 이 녀석, 실눈이다.
‘이거 관상이 무조건 흑막이거나 뒤가 구린 놈인데.’
– 딸깍.
머릿속 스위치를 눌러 색안경을 사용했다. 카르타할의 인생이, 살아온 궤적이 무수한 단면으로 펼쳐졌다.
“…어, 어어?”
입이 점점 벌어진다. 내가 보는 것이 진정 현실인지, 그도 아니면 끔찍하도록 뒤틀린 악몽인지 알 수 없다.
“으아, 으아아아아! 아아아아!!”
결국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손이 덜덜 떨리며 얼굴이 파랗게 식어간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완전히 미쳐버린 광기의 장막을 들춘 이 공포라니!
– “위대하신 분이시여! 어, 어찌 그러십니까?!”
SD케넬름이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하여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두렵고 또 두려워서 한참이나 덜덜 떨고서야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친 놈이야.”
– “네?”
“카, 카르타할이라는 녀석…! 완전히 미친놈이라고! 도저히 인간이 아니야!”
아아!
내 뇌를 꺼내서 씻을 수 있다면! 이 두렵고 흉측한 기억을 도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지, 진정하세요. 도대체 무엇을 보셨기에…”
“저, 저 새끼…”
떨리는 손가락으로 녀석을 가리켰다.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그 아래에 꿈틀거리는 형용할 수 없는 광기의 피조물!
저 생글생글 웃는 낯짝을 들춰보면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너무 두려웠다!
“저 새끼 만신전의 조교야…!! 대사제 밑에서 일하는 조교였다고…!”
– “그것이 어찌…”
만신전의 조교는 현실의 대학원생과 비슷하다.
하지만 대우는 훨씬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무언가였다.
나는 이 흉측하고 두려운 말을 내뱉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한참이나 망설이며 입을 여닫기를 반복했다.
“그것도…”
카르타할은 광인이다.
“19년 동안 자진해서 조교 생활을 이어간… 일부러 졸업을 거부한 미친 새끼라고!!”
카르타할, 녀석은 의도적으로 19년 동안 대학원생을 자처한 광인이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다들 감기 몸살 조심하시고, 물 자주 많이 드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