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75

       ​

       ​

       ​

       ​

       ​

       375화. 황금 나무의 잔재 ( 5 )

       ​

       ​

       ​

       ​

       ​

       발리안은 기절한 셰이드를 둘러업고 석실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봤다. 석실에 들어갈 적에는 어둑한 밤이었는데 어느새 지평선 너머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단장님. 좀 일어나 보십쇼. 단장님? 단장님?”

       ​

       기절한 셰이드는 요지부동. 가만 보니까 쌍검으로 후려친 뒤통수에서 시뻘겋고 축축한 것이 흐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

       “음. 넘어질 때 뒤로 넘어지셨나 보네.”

       ​

       인기척을 피해 셰이드의 방으로 돌아온 발리안은 붕대로 능숙하게 셰이드의 상처를 지혈했다. 그러고 잠시 있자니 셰이드가 다 죽어가는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

       “으, 끄으으윽. 머리가 깨지는 것 같군. 여기는, 도대체 어디…”

       ​

       “오. 일어나셨군요 단장님.”

       ​

       “발리안? 여기는… 내 방이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든 거지? 석실 너머로 무언가 끔찍하고 두려운 것이 나타났다는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아.”

       ​

       셰이드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석실 안에서 대악마가 소환된 이후부터 기억에 없는 모양.

       발리안은 석실 안에서 봤던 것에 대해 상세하게 전달했다.

       ​

       소환진에서 나타난 촉수투성이의 대악마, 갑자기 황금 나무의 장작을 엄마라고 부르더니 그걸 먹기 시작했고 카르타할이 이를 말리면서 저도 나무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대악마는 분에 떨더니 결국 카르타할의 거래에 응했다는 것이 발리안의 설명이었다.

       ​

       “도대체 그게 무슨. 하나 된 분 맙소사. 탄탈로스가 무너질 일이군. 그게 전부 사실이란 말이냐? 대악마는 갑자기 나무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나, 카르타할은 그 나무를 씹어먹었다고 하니… 도통 믿을 수가 없구나.”

       “저의 쌍검에 걸고 맹세하는데 전부 사실입니다.”

       “젠장. 사실이군.” 

       ​

       셰이드가 표정을 구겼다. 발리안의 말에 따르면 대악마가 본체를 가지고 지상으로 넘어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

       “이건 우리 탐험대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손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어.”

       “대악마가 그렇게 강한가요?”

       “저 사악한 괴물 녀석이 손짓 한번, 눈길만 줘도 너와 나는 썩은 고깃덩어리로 변할 거다. 차라리 죽으면 다행이지. 영혼이 붙잡혀서 죽지도 못하는 고통에 영원히 몸부림칠 수도 있다. 괴조랑은 비교할 수도 없는 괴물이야.”

       “오.”

       ​

       어째서인지 발리안의 눈동자가 불길하게 반짝였다. 평소라면 충분히 눈치챘을 전조증상이었지만 깊은 생각에 잠긴 셰이드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

       한참을 고민하던 셰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악마가 나타난 이상 이곳에 머무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

       “발리안. 귀족 계집년들이나 쫓아다니는 멍청이들에게 짐을 싸라고 전해라. 오늘 점심 전에 이곳을 뜬다.”

       “점심까지요? 되게 급하게 가시는군요.”

       “네가 지금 여기서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거다. 대악마가 나타났는데 오히려 점심까지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대범한 짓이야.”

       ​

       발리안은 셰이드의 명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계집의 분내에 홀린 선배들의 엉덩이를 합법적으로 걷어차는 발리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충실해 보였다.

       ​

       점심이 되자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들거나 다리를 절룩거리는 이들이 모였다. 저마다 커다란 짐을 메고 있는 채였다.

       ​

       “젠장. 도대체 뭠니까 단장? 이렇게 급하게 떠나야 할 필요가 있슴까?”

       ​

       오른쪽 눈이 파랗게 멍든 부단장은 셰이드에게 투덜거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앙칼진 귀족 계집을 침대에서 앙앙거리게 만들 수 있던 참이었는데.

       ​

       탐험대원들은 저마다 멍들거나 다친 부위를 문지르며 불만을 토했다. 절반은 부상의 제공자인 발리안에게, 나머지 절반은 이를 지시한 셰이드를 향한 것이었다.

       ​

       “조용! 지금부터 불만이 있는 녀석은 뒤로 빠져라. 그토록 환장하는 계집년의 젖가슴에 묻혀서 죽어도 좋다면 말이야.”

       ​

       결국 참다못한 셰이드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엄포를 놓으니, 그제야 단장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이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

       “…”

       “좋아. 이제야 좀 조용하군. 우선 가장 빠른 길로 이곳을 벗어난다. 설명은 그 이후에 하도록 하지.”

       ​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연합 왕국을 벗어나는 길.

       일의 시급함에 쫓겨 셰이드는 늘 하던 인원 확인마저 대충 건너뛰고 출발했다. 당장이라도 대악마가 뛰쳐나와 모두를 죽일 것이라는 공포가 셰이드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없이 꼬박 반나절을 걷고서야 셰이드는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제야 머리가 식은 셰이드는 무언가 빠졌다는 끔찍한 허무함과 불길함에 계속 뒤를 돌아봤다.

       ​

       뭔가 찝찝한… 앓던 이가 하나 빠진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고 온 것 같기도 했다.

       ​

       “젠장. 뭔가 하나 빠트린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

       탐험대 운영 일지를 놓고 왔나? 그것도 아니면 장부? 식량이랑 식수는 충분히 챙겼는데.

       ​

       셰이드를 괴롭히던 느낌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다음 날 아침, 기상 직후의 아침점호에서 인원 한 명이 사라진 것이다.

       ​

       “발리안, 발리안!! 발리안 이 미친 새끼 어디 갔어!!”

       “아무 데도 없습니다! 어, 어젯밤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친 새끼들이 그걸 지금 발견하면 어쩌자는 거야!”

       ​

       셰이드의 외침에 찔끔한 선임급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50kg에 가까운 짐을 메고 산길을 하루종일 걸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는데 사람 한 명 없는 것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

       “바, 발리안의 모포에서 편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

       잔뜩 뿔이 난 셰이드는 콧김을 내뿜으며 꼬깃꼬깃 구겨진 편지를 펼쳤다. 하단에 엑스자로 교차한 두 자루의 쌍검 표시, 물구나무서면서 봐도 발리안의 편지다.

       ​

       – “저에게는 쌍검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숙원이 존재… 대악마를 잡아 쌍검의 위대함을…널리… 알리고 오겠습…” 이런 씨발!”

       ​

       셰이드는 그제야 깨달았다.

       발리안은 셰이드가 감히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원대하게 미친 녀석이었다.

       ​

       “다, 단장… 어, 어떻게 함까?!”

       “끄으으응…”

       ​

       괴조의 경우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들에게는 대악마와 싸울 이유도 없었고, 명분도 없었으며 싸울 의지도 없었다.

       ​

       그들은 탐험하고 마수를 사냥하는 사냥꾼이지, 악마와 싸우는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것이 옳았다.

       ​

       “다, 단장! 얼른 갑시다, 응? 뭘 고민하고 있는 거요!”

       “미친 새끼가 알아서 사지로 걸어간 것뿐이잖소. 산 사람은 살아야지! 저 씨발 빌어먹을 곳에 대악마가 나타났다면서”

       “단장, 얼른 갑시다!”

       ​

       대악마에 대해 전해 들은 대원들은 패닉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포에 질린 눈동자와 생존을 외치는 저들의 입술.

       ​

       셰이드는 이들을 이해했다. 

       저들은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먹여 살릴 자식이 있었으며 노부를 모시고 사는 이들도 있었으니까.

       ​

       셰이드 또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단장이었다.

       ​

       “나 혼자 가겠다. 가서 녀석을 다시 잡아 오지.”

       “단장! 미친 소리 좀 하지 마십쇼 제발!”

       ​

       주변에서 비명 섞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셰이드를 붙잡는 이들. 셰이드는 덤덤하게 짐을 꾸렸다.

       ​

       “서쪽으로 쭉 가다가 몰트리함 마을이 나오면 내 이름을 대면서 그곳의 신전에 이 편지를 전해라. 대악마에 대한 일을 적은 편지다. 그곳의 사제와 내가 인연이 있으니 무시하지 않을 거다.”

       “젠장, 단장! 진짜 죽을 겁니다! 죽고 말 거라고요! 대악마라면서요! 그 미친 폐급 하나 때문에 단장이 목숨을 걸 이유는 없잖아요!”

       ​

       수십 년을 함께한 부단장이 울화통을 터뜨렸다. 붉게 물든 눈시울은 답답함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분노일까.

       ​

       “…그날, 발리안을 탐험대에 받아들인 것은 내 결정이었지.”

       ​

       셰이드는 발리안이 그로아나 개척 캠프에 도착한 날을 떠올렸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우기였다. 냇물은 폭포가 되고,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벼락은 태양을 대신할 정도였다.

       ​

       발리안은 그토록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달랑 검 두 자루만 들고 탐험대의 문을 두드렸다.

        옷은 다 찢어지고 해져서 걸레짝이었고 밀려오는 폭우에 신발은 어디로 갔는지 맨발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더라.

       ​

       “…난 그 녀석의 눈빛이 참 마음에 들었어.”

       ​

       며칠이나 먹지도 못해 가죽에 뼈를 붙여놓은 꼴이었고, 비틀거리는 모습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경계를 서던 이가 폭우에 휘말린 시체라고 생각했을까.

       ​

       하지만, 발리안과 시체의 차이점이라면.

       시체는 그토록 간절하고 독한, 뜨거운 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셰이드는 그날 오직 발리안의 눈빛 하나만을 보고 발리안을 받아들였다.

       ​

       “처음 나눈 대화가 가관이었지.”

       ​

       –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 “… 걸어, 서…”

       ​

       그러고는 픽 쓰러지는 꼴이라니.

       픽 실소를 터뜨린 셰이드는 간단하게 정리한 짐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했다.

       ​

       “뭐. 하는 행동은 좀 별나고 못난 녀석이지만. 그런 녀석도 내 단원 아니겠나. 단장은 단원을 챙겨야지.”

       ​

       셰이드는 왔던 길을 가늠했다. 지금부터 쉬지 않고 달리면 저녁에는 도착하겠군.

       ​

       “너희들은 어서 가라. 난 발리안과 함께 갈 테니.”

       ​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던 셰이드는 곧장 땅을 박찼다. 그의 뒤로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며 셰이드의 뒤를 따랐다.

       ​

       ​

       ​

        * * * * *

       ​

       ​

       ​

       화면 속에서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은, 그러나 거친 맛이 살아있는 중년의 사내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 말리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

       – “너희들은 어서 가라. 난 발리안과 함께 갈 테니.”

       ​

       낮고 굵은 목소리와 함께 돌아선 남성은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땅을 박찼다. 때는 쨍쨍한 한낮일 텐데 어째서 저 사내의 주변은 채도가 유달리 낮아 보이는 것일까.

       ​

       죽음을 각오하고 돌아가는 남자의 등은 어째서 이토록 넓고 외로운가.

       ​

       아아.

       아…

       그런 건가…

       ​

       “이것이… 상남자의 향기…?”

       ​

       나는 벅차오르는 상남자의 향기에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감기몸살을 이겨낸 이 몸, 강림.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에엣… 그, 위가 갑자기 그렇게 아픈 것이 좋은 증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서 병원에 가서 간단한, 아니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3대 광기… 군요!!! 테니아, 카르타할, 발리안… 그리고 발리안을 잡아오기 위한 셰이드의 역주행까지….!!! 대환장 파티의 순간입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