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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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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9화. 산에 사는 사람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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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이름을 포기하여, 앞으로 1호라고 불릴 사내는 작은 오두막에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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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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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의 근육이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렸다. 초심자가 아이야테르 산을 한 번에 완등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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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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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두막 앞에서 고기를 손질하던 에샤는 1호의 상태를 살폈다.

        여기저기 몸을 쿡쿡 찌르고,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접어 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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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튼튼하군…… 근육이 아주 질겨.”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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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가 조금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사람한테 보통 근육이 질기다고 말하나? 이건 칭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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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날 수 있으면… 일어나봐라.”

        “! 예, 예! 일어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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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의 말에 1호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다시 넘어졌다.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다리가 부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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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인 것 같군.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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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조용히 오두막을 나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근처에 간이 오두막을 만들고, 그곳에 다른 이들을 눕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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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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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는 약해빠진 제 몸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는데, 고작 근육통 때문에 기회를 날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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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어머니… 그리고 딸… 조금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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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가지런히 정리된 하얀 로브를 바라보는 1호의 시선은 굳은 각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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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로브를 입는 순간부터 자신은 모든 것을 버렸다.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냈다. 그저 1호라는 이름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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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것은 단 하나, 복수.

        1호는 가만히 복수심을 다스리며 몸의 회복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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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부터 8호까지, 여덟 명이 다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사흘 정도 지난 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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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름도, 지위도, 가족과 인연도 전부 포기해야 하는… 그런 건가요?”

        “가혹하군. 너무 가혹해…”

        “대신 우리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 우리의 복수 딱 하나만은 보장해준다고 했으니, 상관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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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과의 연을 모두 끊어야 복수를 할 수 있다는 가혹한 결정 앞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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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그깟 이름과 인연이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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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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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에게 받은 커다란 순백의 로브를 뒤집어쓴 여덟 명은 에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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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모두 이름을 버리겠습니다. 세상과의 모든 인연을 자르겠습니다.”

        “……”

        “이름 없는 그림자로 살겠습니다. 주신 숫자를 이름으로 삼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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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이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작게 한숨을 쉰 것도 같았다. 1호는 에샤의 눈에 작은 안타까움이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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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코 복수의 길을 걷는 것이 안타까운 걸까. 허나 이제 무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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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저희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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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의 낮은 목소리가 등골을 타고 오싹하게 흘렀다. 1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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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는 몸을 움직이는 방법, 다른 하나는… 숨통을 끊는 방법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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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의 말에 여덟 명의 눈이 빛났다. 그들이 바라던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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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디, 가르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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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가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갈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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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이랑 도축밖에 모르는데 이렇게나 좋아하시다니… 좋았어! 나도 열정적으로 알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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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욕이 가득한 이들의 눈빛에 신이 난 에샤가 앞장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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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괜찮아진 것 같군.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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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에샤는 1호부터 8호까지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깎아지듯 가파른 경사의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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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변에서 가장 낮은 언덕이다. 몸풀기에는 딱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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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을 언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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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1호는 경사가 60도에 가까운 언덕을 본 적은 없었다. 차라리 비탈길이라고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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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뚝 솟아난 언덕의 위에 꽂힌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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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라가서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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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는 에샤의 명령에 잠시 얼을 탔지만, 이후 행동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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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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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가 가장 먼저 튀어 나갔고 그 뒤를 이어 3호와 6호,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머지가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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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다소 빨랐을지 몰라도 결국 언덕의 중간에서 모두 헉헉거리기 바빴다. 인간의 두 발을 포기하고 원시로 회귀하여 네발로 기는 모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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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흐엑, 헤엑, 헤, 흐으, 하윽… 내, 내가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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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발의 차이로 깃발을 뽑은 3호가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밑에서 그 모습을 보던 에샤는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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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는 내려와라. 그리고 다시 올라간다.”

        “흐엑, 헤, 후욱,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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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호를 제외한 나머지가 황망하게 에샤를 바라봤다. 에샤는 냉정하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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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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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직감했다.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나날은, 아주 끔찍하고 힘든 날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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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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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생각보다 다들 체력이 너무 안 좋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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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바닥에 누운 이들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주변에서 가장 낮은 언덕을 고작 여섯 번 오르내렸다고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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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을 아이야테르의 등산 전문가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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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슬슬 다른 것도 알려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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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종일 등산 훈련만 할 수는 없는 법. 슬슬 도축에 대한 교육도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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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미리 준비해둔 교보재를 꺼내ㅡ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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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결국 다 경험해봐야 하는 일인데. 한번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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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가르침이다. 따라와라.”

        “헉, 흐엑… 자, 잠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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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부터 8호까지, 푹 퍼져서 바닥을 질질 기어서 따라왔다.

        에샤가 이들을 이끈 곳은 방금의 60도 언덕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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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에에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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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곳곳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카우투스들이 암석을 핥고 있었다. 에샤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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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우투스는 귀가 매우 밝다. 시야의 맹점도 거의 없고, 시야각은 뒤통수의 약간 제외한 거의 모든 각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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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우투스의 사냥이 까다로운 이유였다. 사는 곳이 절벽이었으며, 맛 좋은 고기를 노리는 천적 때문에 눈과 귀가 미친 듯이 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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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너희들의 목표는, 카우투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한 마리를 생포하는 것이다. 잘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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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마친 에샤는 가볍게 절벽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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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과 발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절벽을 올라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일절 없었고, 지상에서 뛰어가는 속도와 버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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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곳을 맨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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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다.

        에샤는 능숙하게 절벽을 타며 무리에서 떨어진 카우투스에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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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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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이, 은밀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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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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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에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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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카우투스 한 마리를 제압한 에샤는 가뿐하게 절벽을 내려왔다. 여덟 명의 입은 떡 벌어져 닫힐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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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도축이다. 고귀한 의식이지. 단숨에 숨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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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조심스럽게 카우투스의 눈에 천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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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는 있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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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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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의 왼쪽 팔목에 은밀하게 숨겨진 암살검이 튀어나왔다. 에샤의 암살검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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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도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겠군.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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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고 있던 도축용 칼을 내려놓은 에샤는 자기 팔에서 암살검을 꺼내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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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칵!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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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살검을 원상태로 되돌린 에샤가 능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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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단호하고, 확실하게 대상을 끝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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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카우투스의 눈과 눈 사이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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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동물은 미간을 찌르면 단번에 뇌까지 닿는다. 치명적이고 확실하지. 가능하다면 단번에 이곳을 찌르는 거다… 어렵다면 관자놀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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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간을 찔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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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는 작게 되뇌며 빠짐없이 기억하여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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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에샤의 손에 내려간다. 이번에는 카우투스의 목울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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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여의찮다면… 목을 노려라. 경동맥, 기도, 식도… 가장 치명적인 것들이 목에 집중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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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하며 에샤는 손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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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도, 사람도… 목에 작은 구멍 하나면 죽는다. 기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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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경동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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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의 눈이 조금 떨렸다.

        에샤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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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칵!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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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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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마른침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에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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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의 손이 바람처럼 지나갔더니, 카우투스가 쓰러졌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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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가 카우투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치우자, 평온하기 그지없는 카투우스의 눈동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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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죽는 것을 모르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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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담담하게 암살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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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너희는…… 카우투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저 절벽을 오르고… 카우투스를 잡아라. 그 이후… 고통 없이 도축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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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도축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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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민한 1호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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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짐승을 잡는 이들이 되는 거다. 푸른 피의 짐승을 도축하는 칼이 되는 거야.’

        ​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그리하여 사람의 도리와 구실을 다하지 못하면 그것을 짐승이라 부를 것이니. 달리 무어라 부르겠는가?

        ​

        에샤는 싸늘하게 식은 카우투스의 사체를 능숙하게 해체하더니 이내 피를 빼냈다.

        ​

        “…앞으로 바빠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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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대로였다.

        이후 1호를 포함한 여덟 명은 말 그대로 아이야테르 산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미친 수준의 훈련을 소화했다.

        ​

        “컥, 켁, 훅, 하억, 주, 죽어, 진짜로, 죽, 죽는다고…”

        ​

        “…아직 근육이 덜 찢어졌다. 더 뛸 수 있군.”

        ​

        지쳐 쓰러져 죽을 지경인데 에샤는 근육을 쿡쿡 찌르고는 귀신같이 한계를 알아냈다. 딱 사람이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무자비한 훈련!

        ​

        “여, 여기를 지나가라고요…? 노, 노, 농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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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깎아지듯 가파른 벼랑을 밧줄 하나에 의지하여 지나가기도 했고.

        ​

        “으아아아아아아!! 사,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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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을 봐라. 멀리, 똑바로 고개를 들고. 두려움은 몸을 떨리게 하지. 두려움을 삼켜라…”

        ​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발붙일 수 있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

        누군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에샤의 통제 아래 진행되는 훈련은 놀라울 정도로 안전했다.

        딱 죽지만 않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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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지옥 같은 훈련을 반복하니 여덟 명은 놀라울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져 갔다.

        ​

        애초부터 가족과 연인, 자식을 잃고 방황하던 이들이었다.

        느끼기를 새로운 가족으로 여길 정도였다.

        ​

        “우리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나 다름없어.”

        “세상과 모든 연을 끊었으니… 이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

       에샤가 모르는 곳에서 의형제, 의남매를 맺는 의식까지 있었다.

        아마 에샤가 알았다면 소외감에 눈물 좀 흘렸으리라.

        ​

        “카우투스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으면… 너희들이 의도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너희를 찾을 수 없다.”

        ​

        메에에에에에ㅡ!

        ​

        “젠장… 또 들켰어.”

        ​

        매일같이 절벽 위에 사는 카우투스를 잡으려 시도했지만, 도대체 무슨 산양의 눈과 귀가 이렇게 밝은 것인지.

        멀리서 살짝 걸음만 옮겨도 얄밉게 궁둥이를 씰룩이며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

        한 달, 두 달이 다 지나도록 카우투스를 속이고 접근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

        “호흡을 느리게 하는 거다.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진다고 생각해라. 살기와 살의를 감춰라.”

        ​

        기척을 감추게 되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방법, 미끄러지듯 옆으로 뛰어오르는 방법, 한 폭의 낭떠러지에서 걷는 방법과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착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

        “…우리의 검은 한 번만 움직인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가장 조용하고 빠르게 끝내야 한다.”

        ​

        에샤의 훈련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점점 날카롭고 조용하며 치명적인 검으로 변해갔다.

        ​

        그리고 마침내.

        ​

        메에에에ㅡ

        ​

        “해냈다…”

        ​

        1호를 시작으로 카우투스 사냥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여덟 명 모두 카우투스를 생포하고, 조용한 죽음을 선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6개월.

        ​

        “…때가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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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때가 된 것이다.

        ​

        그의 가장 무섭고 두려운 사명을 실행할 순간이.

        ​

        ‘…내가 이분들에게 알려준 것들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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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가 이들이기 6개월 동안 가르쳐준 것은 고작 등산하는 방법과 도축하는 방법. 딱 두 가지가 전부였다.

        ​

        에샤의 생각에 이 두 가지로 귀족을 암살하는 것은… 신종 자살 방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

        물론 1호부터 8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

        “벽을 타는 방법, 검을 쓰는 법, 치명적인 일격과 힘줄과 핏줄의 위치, 기척을 죽이는 방법… 우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어.”

        “이제 때가 됐어요.”

        “복수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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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명이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암살검을 사람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했다.

        ‘정의’라 불리는 천칭으로 대상의 선과 악을 측정하여, 악으로 규정된 이에게만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

        이들은 이 규칙을 이렇게 해석했다.

        ​

        “선한 자에게 칼을 들이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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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확신했다.

        ‘정의’는 그들의 복수를 향해 기울어질 것임을.

        ​

        “부디, 천칭의 사용을 허락해 주십시오.”

        ​

        눈을 감고 오래도록 고민하던 에샤는 품에서 청동 천칭을 조심스레 꺼냈다. 

        ​

        마음 같아서는 이들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토록 단호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모른 척 도망가기에는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정이 들었다.

        ​

        애초부터 산에서 혼자 살던 에샤는 사람의 정을 갈구하는 17살이다. 6개월 동안 매일같이 보던 이들을 어떻게 모른 척하고 도망갈 수 있겠는가.

        ​

        “…나도 함께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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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에샤는 큰 결심을 했다.

        함께 가기로. 비록 그 끝에 죽는 것이 분명할지라도, 사나이 에샤 친우를 버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

        “…! 저희가 미덥지 못한 것은 알겠지만, 한 번만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우, 우리도 열심히 훈련했어요! 직접 나서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자, 잘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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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영문인지 1호와 3호가 득달같이 튀어나와 에샤를 말렸다. 에샤는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 없다는 말에 조금 비겁하게도 안도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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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다.”

        ​

        안도감 뒤에 밀려오는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라.

       에샤는 스스로에게 지독한 멸시를 담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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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싹ㅡ!

        ​

       에샤의 앞을 막았던 1호와 3호는, 커다란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넣었다가 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

        다행히 에샤는 별다른 타박 없이 묵묵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후우, 후, 흐으…”

        ​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1호와 3호가 주저앉았다. 실로 가공할 살기였다.

        ​

        “주제넘게 굴었던 걸까…?”

        “아니다. 수장님께서도 가벼운 경고로 지나갔으니 괜찮을 거야. 아마… 두 번은 없겠지만.”

        ​

        뒤로 빠져있던 여섯 명이 우르르 달려와 1호와 3호를 챙겼다. 

        ​

        “1호! 괜찮은 거야? 세상에, 땀 흘린 것 좀 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수장님을 막은 거야… 저것 좀 봐. 화가 단단히 나셨잖아.”

        ​

        가벼운 핀잔에 1호가 쓴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었다. 복수만큼은 스스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었으니까. 

        ​

        “흐. 정말이지 수장님은 엄청난 괴물이 맞는 것 같다.”

        ​

        훈련을 하면 할수록, 에샤라는 거산의 정상은 아득하게 높아져만 갔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사람, 그것이 1호가 느끼는 에샤였다.

        ​

        “얼른 가자. 이러다 수장님을 놓치겠어.”

        ​

        몸을 털고 일어난 1호가 부리나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때는 으슥하게 깊은 밤이었으나, 이들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산을 뛰어 내려갔다.

        ​

        가느다란 달빛마저 구름 뒤에 숨었으니, 때는 도축하는 이들의 시간이었다.

        ​

        “천칭의 밤이 시작됐다.”

        ​

        푸른 피의 짐승을 도축할 밤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다음 화는 내년에 올라옵니다!! 히히힣!!!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악마적인 재능이 따로 없습니다…!! 육체마저 이기는, 그야말로 악마적인 재능…! 에샤가 아이야테르 산에 사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되는 수준이군요…!! 그런 에샤의 밑에서 훈련 받은 이들이 총 여덟 명…!! 부패 귀족들의 악몽같은 밤이 시작되겠네요!!
    그리고 생일!!!! 끼요오오오오옸!!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해피버쓰데이 투 독자님!!!! !!!경>독자님 탄신일<축!!! 생일 선물은 꾹꾹 눌러담은 저의 고봉밥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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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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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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