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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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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9화. 평범 호소인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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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가 5호를 만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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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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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서 하얀 머리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기에 자세히 바라봤더니 익숙한 생김새였다.

        누구의 얼굴인가, 케니스가 눈을 찌푸리며 잔뜩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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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건… 하얀 머리카락? 되게 특이하네요. 노인도 아닌 것 같은데 저런 백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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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걷던 한스가 케니스와 같은 방향을 보며 말했다.

        조금 기다렸더니 금방 가까워진 인영은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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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5호? 5호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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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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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가 5호를 보고는 펄쩍 놀라 달려갔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의 일족과 함께 성지로 갔던 5호가 아닌가.

        다시 얼굴을 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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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에요? 아니 그보다 지상에는 어쩐 일로? 혼자 온 거예요? 다른 일족들은요? 세상에 성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얼굴이 완전 반쪽이 됐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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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다다 쏟아지는 질문의 비에 5호의 눈동자가 핑핑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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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정신을 차린 5호가 만신전으로 안내해달라 부탁했고, 케니스는 선뜻 5호를 만신전으로 안내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제가 언제라도 도우러 갈 테니까!”

       

       케니스의 씩씩한 응원에 5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의 도움이라니, 세상 그 무엇보다 든든한 지원이다.

       

       “으음.”

       

       대서고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5호가 신음을 흘렸다.

       대서고 문밖의 대사제들이 5호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순수한 신앙과 탐구욕만이 가득한 눈길이다.

       

       

       5호가 성지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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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 부담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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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같았으면 대사제들의 면담에 얼마든지 응해 줬을 것이지만… 지금 5호는 홀로 온 것이 아니었다.

        ​

        “흐이… 아, 아까 그 요, 용사님…… 사, 사람이 막 반짝반짝거리고…! 질문이 우다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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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상극에 가까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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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호의 그림자에 숨어있는 밤의 일족이 한마디씩 중얼거렸다.

        케니스와의 만남이 퍽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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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참이나 지형에 관한 책들을 훑던 5호의 눈이 우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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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야테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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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았다.

        5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관련 내용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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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 대략 그려진 지형과 성도의 위치를 대조하면 아이야테르 산의 위치를 알 수 있으리라.

        ​

        ‘…아이야테르 산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으로… 몇몇 동식물만이 제한적으로 자생하며 물을 찾아보기 힘들고… 오르기 매우 어려운 산으로 손꼽히는…’

        ​

        읽을수록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 떠오른다.

        ​

        성지에서 쫓겨났을 적에 처음 보게 된 곳이다.

        그곳도 무척이나 험준하고, 사방이 돌로 가득하였으며, 물이 없었고 몇몇 동식물만이 살고 있었다.

        ​

        “…아.”

        ​

        그제야 깨달은 5호가 탄식을 터뜨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이야테르 산에 떨어졌다는 것을.

        ​

        그것도 모르고 먼 길을 돌아 만신전까지 왔으며, 그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

        ​

        한숨을 크게 내쉰 5호가 문밖의 대사제들을 훔쳐봤다.

        ​

        이글이글.

        ​

        시선으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의 열기.

        대사제들에게 붙잡힌다면 아마 하룻밤을 새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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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얼른 가자……! 사, 산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잖아…!

        ​

        일족들이 그림자 속에서 마구 재촉한다.

        잠시 고민하던 5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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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해요. 다음에 꼭 다시 올게요.’

        ​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긴 5호의 몸이 그림자 속으로 쑥 사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대사제들이 기겁하여 달려들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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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런!”

        ​

        “성지에 대한 귀중한 증언이!!”

        ​

        열심히 바닥을 두드린다고 그림자가 열릴 리는 없었으니.

        5호가 떠난 자리 뒤로 대사제들의 안타까운 한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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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쩝. 어쩔 수 없지요. 무언가 바쁜 용무가 있는 것 같았으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합시다.”

        ​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요.”

        ​

        대사제들은 의외로 순순히 5호를 포기했다.

        이미 그들에게는 성지를 증언해줄 알랜시아라는 귀중한 인적 자원이 있었다.

        ​

        “흐흐흐. 아쉬운 만큼 알랜시아 장로에게 잔뜩 물어봐야겠습니다.”

        ​

        대장로 알랜시아가 대사제들의 무수한 질문에 못 이겨 졸도하기까지 7시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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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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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아이야테르 산의 밤은 빠르게 찾아온다. 에샤는 고즈넉한 달을 보며 홀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

        ‘도대체 나는 누굴까?’

        ​

        으레 17살이면 겪는 자아의 혼돈과 세상에 대한 의문이었다.

        ​

        청명하게 밝은 달을 보며 에샤는 생각했다.

        ​

        도대체 자신은 누구이며, 같이 살던 삼촌과 이모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10년 전, 어린 자신을 두고 홀연히 사라졌는가.

        ​

        어머니는 왜 일찍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이곳으로 돌아와 조용히 숨을 거두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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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알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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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입에 붙어버린 암살단 수장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

        휘이이이잉ㅡ

        ​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에샤의 콧잔등을 스쳤다.

        에샤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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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컥ㅡ!

        ​

        미끄러지듯 뽑힌 암살검이 달빛을 반사한다.

        몸을 일으킨 에샤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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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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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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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있는 거 알고 있다.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 있을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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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쑥 그림자 속에서 몸을 일으킨 5호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

        “……어떻게?”

        ​

        인간이 어둠 속에 숨은 밤의 일족을 알아차렸다고?

         도대체 어떻게?

        ​

        “……혹시나 해서 말해 본 거였는데, 설마 진짜 있을 줄은 몰랐군.”

        ​

        사실 에샤도 긴가민가해서 던져본 블러핑이었다. 

        설마 진짜로 그림자 속에서 여인이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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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깃.

        ​

        “……”

        ​

        허세에 당했다는 걸 깨달은 5호가 표정을 작게 찌푸렸다. 

        5호의 그림자에 숨은 일족들이 에샤를 보고 요동쳤다.

        ​

        “으아아아아아……! 도, 도, 도, 도도도도망쳐! 도망쳐 막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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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 얼굴을 봐……! 자, 잡히면 죽을 거야! 주, 죽어! 키햐아아아악!!”

        ​

        “히이이이이익……누, 눈을 마주쳤어…! 무,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

        험상궂은 에샤의 얼굴을 보고는 단체로 패닉에 빠진 것.

        ​

        꿈틀꿈틀 파도치는 그림자를 본 5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몇 번이나 한숨을 쉰 것인지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

        과연, 찬찬히 바라보니 에샤의 인상과 기세가 범상치 않기는 했다.

        허나 딱 그 수준.

        ​

        전직 이단 심문관으로 일하면서 온갖 것들을 봐온 5호에게는 적당히 봐줄 만한 얼굴이었다.

        ​

        에샤와 5호는 달빛 아래 시선을 마주쳤다.

        ​

        은은한 달빛 아래 반사되는 5호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

         쏟아지는 달빛이 5호의 코와 입술에 부서지며 흩날렸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에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

        두근ㅡ

        ​

        ‘어?’

        ​

        홀린 듯 5호의 얼굴을 바라보던 에샤는 강한 두근거림에 당황하여 제 가슴을 바라봤다.

        ​

        뭐였지? 암습인가?

         독? 저주? 그것도 아니면 심장병?

        ​

        “너… 아이야테르 산에 오래 살았어?”

        ​

        5호의 목소리는 어린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와도 같았다.

        잠시 홀렸던 에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

        “…크, 흐흠. 그래 오래 살았지. 태어나면서부터 이 산에서 살았다.”

        ​

        “……그렇구나.”

        ​

        제대로 찾아왔음에 5호의 그림자에 숨은 일족들이 아우성쳤다.

        ​

        “제, 제, 제대로 찾아왔어어…! 이, 이제 10년 저, 전의 일만 알아내면…!”

        ​

        5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다. 일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

        “……당신, 혹시 10년 전… 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10년 전의 비사라고?”

        ​

        에샤가 고개를 저었다. 

        ​

        상대를 잘못 찾아왔다. 10년 전의 에샤는 고작 7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

        “잘못 찾아왔군… 10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10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아무거나 좋아.”

        ​

        5호가 절박하게 매달렸다. 아이야테르 산의 토박이가 모른다고 하면 도대체 누굴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

        ​

        5호의 눈동자가 축 처졌다.

        이를 본 에샤의 가슴이 아려왔다.

        ​

        잠시 고민하던 에샤가 손가락을 튕겼다.

        10년 전에 가장 큰 일이 있지 않은가.

        ​

        “10년 전, 이 산에 살던 사람들이 일제히 산에서 내려간 적이 있었다. 왜 내려갔는지, 내려가서 무얼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산에 홀로 남은 것은 일곱 살 어린아이뿐이었지.”

        ​

        “……!”

        ​

        이거다!

        5호의 직감이 바로 이것이라고 외쳤다.

        ​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사연이 숨어있을 것 같은 비사가 아니던가!

        ​

        “그 아이를 만나게 해줘. 부탁이야. 나쁜 짓을 하려는 게 아니야.”

        ​

        에샤는 저도 모르게 5호의 부탁을 들어줄 뻔했다.

        ​

        초인적인 통제력으로 참아낸 에샤가 창자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5호의 부탁을 거절했다.

        ​

        “…방금 처음 만난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그것도 그림자에 몰래 숨어서 온 손님이라면 더더욱.”

        ​

        스슥ㅡ

        ​

        어둠 속에서 암살단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들의 손목에서 뻗어 나온 암살검이 스산한 예기를 발했다.

        ​

        “으읏…!”

        ​

        “마, 막내한테서 떠, 떠, 떨어져……!”

        ​

        “우, 우우으으으…… 바, 밤이라면 우, 우리는 지지 않아…”

        ​

        5호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밤의 일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의 일족의 손끝에서 그림자가 형체를 이루며 이빨을 드러낸다.

        ​

        일촉즉발의 상황.

        ​

        에샤가 먼저 결단을 내렸다.

        ​

        “…이름.”

        ​

        “뭐…?”

        ​

        “너, 여자. 이름이 뭐냐.”

        ​

        에샤의 나이 17살.

        태어나서 처음으로 헌팅이라는 것에 도전한다.

        ​

        “그, 그건…”

        ​

        ​

        5호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5호와 막내라는 애칭으로 불린 지 너무 오래돼서 자신의 이름이 낯설었다.

        ​

        “……루나.”

        ​

        그녀의 눈동자가 마치 붉은 달과 같다고 하여 부모님이 붙여준 이름이다.

        ​

        “루나.”

        ​

        에샤는 몇 번이고 루나의 이름을 곱씹었다.

        ​

        스륵.

        ​

        흉흉하게 뻗어 나왔던 암살검이 모습을 감췄다. 에샤가 먼저 경계를 풀자 암살단원들도 하나둘 검을 집어넣었다.

        ​

        “따라와라.”

        ​

        짧게 말한 에샤는 곧장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

        스스슥.

        ​

        상황이 다소 맥 빠지게 끝나자 밤의 일족이 허둥지둥 루나의 그림자 속으로 돌아갔다.

        ​

        한참이나 걷던 에샤는 커다란 바위를 몇 개나 오른 뒤에야 멈췄다.

        열심히 뒤따르던 루나의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한 방울 흘렀다.

        ​

        ‘……예쁘다.’

        ​

        루나의 땀을 바라보던 에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

        “사정이 있어 아이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릴 적부터 내가 알고 지냈으니 나에게 물어봐라.”

        ​

        두근두근.

        ​

        사실대로 10년 전의 아이가 자신이라고 말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에샤는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

        ‘예쁘다.’

        ​

        두근두근.

        ​

        에샤의 심장이 방정맞게 쿵쾅거렸다.

        홧홧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휙 뒤돌았다.

        ​

        만약 누군가 에샤의 마음을 볼 수 있다면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붉은색이라 말할 것이다.

        ​

        그의 나이, 17살.

        질풍노도의 사춘기였으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나이.

        ​

        아직 스스로의 감정을 깨닫지 못한 에샤였지만, 달아오른 그의 심장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어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

        “……음.”

        ​

        이를 알 리 없는 루나는 짧게 고민했다.

        무엇을 물어봐야 할 것인가.

        ​

        “10년 전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해줘.”

        ​

        “…크흠. 아, 알겠다. 잠시만… 흐흠, 크흐흠.”

        ​

        여전히 루나에게서 등 돌린 에샤가 애꿎은 달을 보며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꼴사나운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

        “……?”

        ​

        밤의 일족의 사랑받는 막내, 나이를 따지면 210살에 가까운 루나는 끈기 있게 에사를 기다렸다.

        ​

        이윽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에샤가 말문을 열었다.

        ​

        “10년의 이 산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 것도 아닌 수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었다.”

        ​

        달빛 아래에, 17살의 청년과 210살의 처녀가 있었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애매한 연상은 닭장이지만, 아득한 숫자의 연상은 오히려 메리트라고 생각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 편씩 쓰다보니 어느새 400화에 가까워졌습니다…!! 끼요노옷…!! 모두 독자님들의 응원과 사랑, >>>댓글과 추천<<< 이 있기에 가능했겠지요…!! 이 글쟁이,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나 다음 화가 궁금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추신 : 400화 기념으로 케넬름 일러를 뽑아볼 생각입니다…! 너무 많은 기대는 부담스러워요… 그냥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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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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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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