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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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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화. 평범 호소인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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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에서 뒹굴거리는 밤의 일족을 내쫓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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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말로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신경 쓰이는 게 사람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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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 이 녀석들 잘 하고 있기는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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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답답해져 참견하게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밤의 일족을 관찰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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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일족의 아싸력은 우주 최강, 세계 제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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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녀석들을 대뜸 지상으로 던진 다음 덜컥 10년 전 사건에 대해 조사해오라고 한 것이 너무했나 싶기도 했지만… 또 이렇게 극약 처방을 하지 않았다면 녀석들의 아싸 기질은 나날이 심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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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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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스스로 납득하며 밤의 일족을 향해 나아가던 화면을 가까스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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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밤의 일족에게 주어진 역경이자 고난이다. 언제까지 따뜻한 성지 품에서 지낼 수는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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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녀석들은 자립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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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일족에 대한 처분은 케넬름과 리아에게 전적으로 일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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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가다가 산적이 나타나서 가진 걸 전부 내놓으래.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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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하고 폭력적인 자들이군요. 저의 장도리는 언제나 답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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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게좋게 타일러서 다음 근처의 경비대에 자수하도록 해야죠. 물론 이단이면 죽이고 묻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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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의 성향이 극과 극을 달리는 만큼 다소 충돌은 있겠지만, 큰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알아서 대처할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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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그럼 이제 나는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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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랑 한스나 염탐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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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찾아낸 케니스와 한스는 의외로 다른 장소에 있었다.

        요즘 늘 같이 다녀서 꼴 보기 싫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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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데모닉과 함께 수련에 매진하는 중이었고, 한스는 우락부락한 오크들을 모아놓고 무언가 꾸짖고 있었다.

        한스보다 덩치가 큰 오크가 쩔쩔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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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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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한스를 구석에 숨어서 몰래 바라보는 작은 그림자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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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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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데이지 너 아직도 한스 따라다니고 있었니?

       

       

       

         * * * * *

       

       

       

        “……10년 전의 그 밤은,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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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을 올려보며 말하는 에샤의 눈은 회한으로 가득 찼다.

        루나는 침묵하며 에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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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날이었지. 여느 때와 똑같이 마을 어른들과 동물을 사냥하고, 도축하고, 절벽을 오르고…… 하지만 그 아이가 잠든 밤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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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는 아직도 10년 전의 그 밤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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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핏 잠에서 깬 아이의 눈에 누군가 조용히 나가는 것이 보였지. 아마 아이의 부모였을 거다. 너무 졸렸던 아이는 다시 잠에 빠졌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을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사라진 이후였다. 그날부터 아이는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아무도 없는 마을을 혼자 지키면서, 5년 동안.”

        ​

        에샤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루나는 떨림 안에 담긴 동요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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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이 그렇게 흐른 뒤, 갑자기 아이의 아비가 돌아왔다. 겉은 조금 멀쩡했지만, 속은 썩어문드러진 시체나 다름 없는 꼴로. 그리고 그날 밤, 조용히 죽었다.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으며, 끝까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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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에 루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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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 심문관으로서 수많은 이단들과 ‘대화’를 해본 루나는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의 ‘아이’가 에샤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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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렇다면 에샤의 나이가 이제 겨우 17살이라는 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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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얼굴과 몸으로 17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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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는 매우 실례되는 생각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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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을 뒤적거린 에샤가 작은 이빨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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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은 송곳니. 이건 죽은 아비의 몸 안에 박혀 있던 거다. 그 뒤로 나는, 아니 소년은 유일하게 남은 흔적인 이 송곳니의 주인을 찾아 부단히도 산을 뒤졌다. 이 송곳니의 주인이 모든 일의 열쇠라고 생각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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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 송곳니를 살펴 본 루나가 몸을 흠칫 떨었다.

        작은 송곳니는 지상의 그 어느 동물과도 닮은 모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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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곳니의 뾰족한 부분과 치아의 내부가 텅 비어있는, 마치 빨대와도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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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빨을 박은 뒤 무언가를 빨아먹을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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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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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의 머리속에 북부에서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밤의 일족에게 걸려있던 저주를 해주할 때, 그들은 처녀의 피를 흡혈하여 해주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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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그럴 리 없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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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의 동요를 아는지 모르는지.

        달을 보며 한참이나 마음을 삭히던 에샤가 뒤돌아 루나를 바라봤다. 에샤의 눈시울이 살짝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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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그렇게 된 거다. 지금까지 아이의 아비를 제외하면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죽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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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송곳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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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동물의 이빨과 비교해봤지만 이런 특이한 구조의 이빨을 가진 동물은 없었다. 아이도 이제 와서는 거의 다 포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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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의 멈춰버린 심장이 드세게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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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일족이 10년 전의 사건에 관여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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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이나 동요하던 루나가 스스로 뺨을 챱챱 두들기며 정신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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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자신의 일족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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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는 일족의 은둔형 외톨이 기질과 극도의 대인 기피증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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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이라면 일족은 모조리 북부 마수의 산 구석에서 쥐죽은 듯 살고 있을 시기다.

        북부에서 한참이나 남쪽으로 떨어진 이곳까지 올 수 있는 일족이 있을 리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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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는 제 일족의 무고함을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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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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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는 조심스럽게 그 이빨을 줄 수 있냐 물었다.

        에샤는 흔쾌히 송곳니를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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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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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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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이나 송곳니를 살핀 루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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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일족의 치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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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도대체 누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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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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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곳니에 코를 가져가니 아주 흐릿한 악취가 풍겼다. 밤의 일족이 가진 신체가 아니었다면 차마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송곳니에 있던 흔적을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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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악취, 너무 옅기는 하지만…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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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는 이 악취를 잘 기억해뒀다. 

        큰 단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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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 송곳니의 주인부터 찾아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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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을 더듬어 올라갈 실마리를 찾았다.

        그런 루나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망설이던 에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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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건은 이게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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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안에 담긴 것은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17살 소년의 가슴 아픈 첫사랑.

        허나 고뇌에 잠긴 루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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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고마워. 큰 도움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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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나의 형상이 쑥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지켜보던 에샤가 차마 말릴 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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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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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꿎은 허공을 부여잡은 에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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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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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 에샤, 첫사랑의 달콤함과 끝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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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루나가 떠난 후 에샤는 앓아 누워 두문불출했다.

        전형적인 상사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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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사흘째, 불현듯 에샤에게 깨달음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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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렇게 누워만 있는다고 루나가 돌아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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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었다.

        사랑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의 손을 잡아 주지 않는다.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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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찾아가겠어……! 루나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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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소년은 청년이 되어가는 첫 걸음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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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에샤는 가장 먼저 암살단을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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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장님이 갑자기 전원 소집을 명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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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이나 폐관 수련을 하시더니 무언가 큰 깨달음이 있으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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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렁술렁, 여덟 명이 속닥이는 소리는 에샤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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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샤의 안색은 초췌했다. 사흘이나 물과 음식을 끊어 울룩불룩하던 근육이 울룩한 근육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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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 에샤의 눈을 본 암살단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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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 다 모인 건가.”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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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산을 아주 오랫동안 떠나려 한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정이다.”

        ​

        에샤의 큰 결심이었다.

        루나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단서도 없다. 무턱대고 떠나는 여정이기에 에샤는 짧으면 반 년, 길면 수 년을 예상했다.

        ​

        충격적인 발언에 암살단원들이 눈을 부릅 떴다. 에샤는 암살단의 실질적 지주였으며, 암살단의 중심이 되는 천칭의 소유자였다.

        ​

        에샤가 없는 암살단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

        “그, 그런!”

        ​

        “수장님! 어찌 그런 말씀을!”

        ​

        “다시 돌아오시는 겁니까? 부디 저희를 내치지 말아 주십시요…!”

        ​

        에샤는 아우성치는 암살단원들을 보며 슥 손을 들었다.

        거칫말처럼 입이 꾹 다물린다.

        ​

        “……영영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나의 고향이자, 너희들이 기다리는 곳. 긴 시간이 흘러, 혹은 간혹 쉴 곳이 필요하면 나는 돌아올 것이다.”

        ​

        ‘저는 이곳을 아주 떠나는 게 아니에요. 이 산은 저의 고향이자 여러분이 있는 곳이니까요.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잊지 않도록 꼭 들를게요.’

        ​

        그리 말한 에샤가 품을 뒤지더니 청동 천칭을 꺼냈다. 암살단을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신의 천칭이다.

        ​

        “받아라.”

        ​

        척.

        ​

        에샤가 천칭을 1호에게 내밀었다.

        하얀 로브 밑으로 1호의 눈이 커다래졌다. 천칭을 바라보는 1호의 손이 덜덜 떨렸다.

        ​

        “어, 어, 어찌 이것을 저에게…”

        ​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이끌어야 한다.”

        ​

        “하, 하지만 저, 저는… 자, 자신이 없습니다. 어찌 제가… 그러다 암살단이, 저희가 그릇된 선택을 하면.”

        ​

        1호는 천칭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망설였다. 

        ​

        답답해진 에샤가 1호의 손에 천칭을 억지로 쥐어줬다. 1호의 손에 들린 청동 천칭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

        “……걱정하지 말아라. 천칭이 너희를 이끌 것이며, 나 또한 너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또한 너희가 엇나갈 때면, 내가 나타날 것이다.”

        ​

        “…아아.”

        ​

        1호는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려 멍하니 에샤를 바라봤다.

        ​

        에샤는 미리 준비해둔 간단한 짐을 챙겼다. 1호부터 8호까지 암살단 전원이 모여 에샤를 배웅했다.

        ​

        “……거창한 인사는 필요없다.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니.”

        ​

        에샤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동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에샤의 뒤로 1호가 물었다.

        ​

        “수장님. 어디로 가시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왜 떠나시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

        “…”

        ​

        멈칫. 걸음을 멈춘 에샤가 침묵했다.

        ​

        루나를 찾으러 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밝히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

        에샤, 17살.

        조금 늦게 찾아온 첫사랑.

        ​

        10년 간 정 붙일 사람도 없이 자랐기에 에샤가 연심을 대하는 태도는 한없이 투박하고 서툴렀다 

        ​

        “……”

        ​

        “……”

        ​

        침묵이 길어진다.

        에샤의 목덜미가 살짝 붉어졌지만 떠오르는 태양의 화사한 색채가 이를 가렸다.

        ​

        “혹시 말씀하시기 어려운 것이라면.”

        ​

        “인연을.”

        ​

        “예?”

        ​

        “……그날 밤, 끝맺지 못한 인연을 위해 간다.”

        ​

        그리 말하는 에샤의 목소리에는 굳은 각오가 가득했다.

        암살단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

        느낀 것이다.

        지금 에샤는 아주 중요한 인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떠나는 것임을.

        일상 일대의 각오로, 그야말로 죽음조차 각오한 여정이 되리라.

        ​

        척.

        ​

        “…무운을 빌겠습니다.”

        ​

        암살단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암살단의 수장을 위한 경의였다.

        ​

        그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여 그들의 수장을 배웅했다.

        에샤는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산에서 내려갔다.

        ​

        에샤도, 암살단원들도.

        그 누구도 고개를 돌려 서로의 마지막을 바라보지 않았다.

        ​

        언젠가 어둠 속에서 다시 만날 것임을 알기에.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좋은 작가님과 연락이 닿아 일러에 대해 이야기 중입니다…!! 아쉽게도 2월 초 쯤에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시네요…!!
    기다리는 것 또한 설렘의 일환…!! 기다림이 없다면 선물의 즐거움도 없겠지요!! 우히히히!!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캐릭터의 매력…!! 개인적으로 저는 캐릭터와 스토리, 필력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 작품을 견인하는 삼두 마차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한 마리의 토끼조차 제대로 잡기에 급급하지만…!! 이런 올챙이 같은 저라도 400화까지 글을 쓰고, 또 봐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으니…!! 이 올챙이 작가는 언젠가 뒷다리 나온 작가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PIA1650768166992’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작품을 재밌게 봐주심에 이 글쟁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이 있다면.. 이 올챙이 작가, 언제까지라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독자님이 계신다면, 올챙이 작가는 무적이니까…!! 그야말로 잉어킹에서 갸랴도스가 된 작가…!! 그 날까지,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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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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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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