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뉴 하우징 ( 2 )
하우징!
모름지기 거점을 꾸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 가지였다.
‘컨셉과 장식, 분위기가 중요하지.’
컨셉은 연옥과 6도(道)라는 컨셉으로 잡아뒀다.
나머지는 장식과 분위기.
나는 새하얀 공간을 천천히 거닐며 잠시 고민했다.
“우선 길게 뻗은 외길을 만들자.”
그리 정하였더니 발밑에서부터 지평선까지 뻗어나가는 외길이 생겨났다.
외길, 삶의 일방적인 방향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돌아올 수 없는 길에 왔음을 암시했다.
“너무 하얀 것도 별로 보기 안 좋지. 조금 더 어둡게 바꿔볼까?”
짝 박수를 치며 주변을 조금 검붉게 바꿨다.
온통 순백이던 공간이 노을녘의 하늘처럼 불타고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으니 만족이다.
‘이제 다음은…’
부처 선배님께서 만드신 6도, 이는 중생이 쌓은 선악에 따라 윤회하는 6개의 길을 뜻한다.
각각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이 중에서 지옥이랑 아수라, 아귀는 필요 없으니까 제외.’
이미 탄탈로스라는 훌륭한 아귀도와 지옥도를 만들어 뒀다. 아수라 또한 마찬가지.
비슷한 이유로 황금 기마대가 있는 천상 또한 제외하려다가…
“아니지. 천상은 남겨둘까?”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드워프들 또한 성지를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완벽의 땅 성지에 있으면 드워프들은 스스로 성장이라는 것을 할 수 없을 테니.
‘일단 천상도 만들자.’
아직 성지가 빈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비는 날이 올 테니.
그때까지 천상을 어딘가에 임시로 연결해둬야 할 텐데….
“천공섬 아르고스한테 보내놓자.”
6도에서 3가지가 빠진 3도가 결정됐다.
외길의 끝에 커다란 문 세 개가 솟아오른다.
왼쪽부터 천상, 인간, 축생문이다.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은 다시 인간으로, 더 큰 죄라면 축생으로 환생하겠지.”
물론 같은 문 안에서도 나름의 경중을 따지게 될 것이다.
환생이라고 하니 또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 떠올라 주변을 향해 크게 원을 그렸다.
동그랗게 뻗어가는 손끝을 따라 무지막지한 크기의 수레바퀴가 만들어진다. 황금으로 장식된 수레바퀴가 두둥실 떠올라 하늘에 내려앉았다.
‘윤회라고 하면 또 바퀴 상징이 빠질 수 없지.’
부처 선배님의 좋은 아이디어, 알뜰하게 써먹는 중이다.
대충 큰 틀을 잡았으니 이제 세세한 장식을 추가할 차례.
이 부분에서 예수 선배님의 연옥을 살짝 참고했다.
‘길게 뻗은 외길 밑으로는 넘실거리는 불꽃을 두르자.’
본래 연옥이라는 것은 영혼의 정화를 뜻하는 것.
불꽃은 예로부터 정화의 상징이 아니겠는가.
‘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업의 무게는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이 부분에서 무엇보다 고민이 컸다.
‘죄를 측정한다고 하면 저울이고, 저울 쪽에서 유명한 천사는 미카엘 아닌가?’
대충 매체에서 천사라고 하면 날개 달린 깃털에 아름다운 외형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은 코스믹 호러 급의 외형을 자랑한다.
천 개의 눈동자가 달린 날개라든가, 눈동자로 이루어진 구체라든가…
“예수 선배님의 아버지께서는 미적 센스는 영.”
그 부분까지 따라 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별빛을 빚어 커다란 천사 마네킹 하나를 만들었다.
성별은… 음. 무성으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장식하며 마무리하자 천사 마네킹이 번쩍 눈을 떴다.
《나의 창조주시여. 하명하소서.》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미카… 에르야.”
《미카에르! 감사합니다.》
미카엘이라고 하려다가 마지막 양심에 걸려 살짝만 바꿨다.
“자. 이 저울과 검을 받아라.”
즉석에서 별빛으로 빚어낸 저울과 검을 미카에르에게 넘긴다.
“넌 지금부터 내가 연옥이라 이름 붙인 곳에서 영혼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명 받들겠습니다. 나의 창조주시여.》
이후 미카에르와 연옥의 곳곳을 장식하고 녀석을 도울 하인들을 만들며 마무리했다.
* * * * *
아드득, 까드득.
만마의 제왕이자 심연의 패왕, 발가르. 그 이름도 두려운 심연의 지배자.
허나 지금은 흙먼지를 가득 묻힌 채 이빨이나 뿌득뿌득 가는 꼴에 불과했다.
《복수한다… 복수하고 말 거다… 복수… 복수… 복수한다…》
그가 이렇게나 형편없는 꼴인 것은 다름 아닌 케넬름 덕분!
신화 학살자라 불리며 무수한 신화를 몸소 담가버린 케넬름의 장도리 앞에서 마왕의 위엄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두고 보자, 그 건방진 계집…! 감히 이 몸을 쓰레기처럼 흙바닥에 굴려?》
뭐.
그렇게 말은 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당시 케넬름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의 간격이 존재했으니까.
《내 기필코 심연으로 돌아가 피와 뼈를 깎으며 수련하리라.》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일부러 흙먼지도 안 털고 있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한참이나 동쪽으로 왔더니 어느덧 황량하게 펼쳐진 사막에 다다랐다.
《이곳에 프리키가 있다는 것인가.》
과연, 근처까지 오니 프리키의 기운이 느껴진다.
무척 흐릿한 기운을 따라갔더니 무수한 천막이 늘어선 마을이 보인다.
발가르가 거침없이 천막을 헤치며 가장 큰 천막으로 들어섰다.
깨끗한 침대 위에 창백한 낯빛으로 색색 숨을 몰아쉬는 프리키가 누워 있었다.
《여기 있었느냐.》
발가르가 성큼 다가서서 프리키를 어깨 위에 둘러메더니 쿵, 발을 굴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적을 이뤘으니 더 이상 꾸물거릴 필요가 없었다.
《열려라!》
얼어붙은 탄식이 사막의 하늘을 베어 가르자, 공간이 쩍 열리더니 이내 심연으로 이어지는 균열이 되었다.
발가르는 프리키를 둘러업은 채 균열 너머로 사라졌다.
“……아아. 프리키. 프리키……!”
“여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는 두 인영이 있었다.
루나와 프리키의 부모였다.
프리키의 어미가 연신 눈물을 찍어 삼키며 균열을 바라봤고, 프리키의 아비 또한 떨리는 손을 애써 참아냈다.
어렵게 만난 자식을 다시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라.
마음 같아서는 프리키를 데려가는 마왕을 당장이라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여보. 괜찮아. 다, 다 잘될 거야. 우리 꿈에서…… 꿈에서 위대하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응?”
간밤의 꿈에서 커다란 별 하나가 내려와 부부를 보며 가로되.
너희 딸의 영혼은 이미 심각하게 뒤틀리고 오염되어 너희가 알고 있는 딸이 아니로다.
이에 부부가 오열하며 물으니, 그리하면 어찌해야 저희 딸을 구원할 수 있겠나이까.
“끅, 흐윽…… 우, 우리 딸… 응? 다, 다시 우리 곁으로 보내 주신다고 하셨어. 응……? 그, 그러니까 인제 그만 울어.”
“흐으읍, 끄윽, 흐윽, 흑. 으, 으응….”
내 너희 딸의 영혼을 거두어 태초의 순수한 모습으로 너희에게 돌려보낼지니.
딸을 데리러 오는 이가 있을 테니 그를 막지 말거라.
그리하여 너희의 딸을 가장 어린 모습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거라.
가장 어린 모습.
위대하신 분의 말씀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하던 루나의 어머니가 다부지게 눈물을 닦았다.
그래, 위대하신 분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리될 것이다.
“흑, 끄흡. 그, 그런데 가, 가장 어린 모습이 뭐, 뭘까……?”
“음……”
둘은 한참이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로드가 명쾌한 답을 내려줬다.
“딸을 되돌려 주겠다, 가장 어린 모습. 잉태하라는 뜻이군.”
잉태?
그 말은…… 거사? 합방?
루나 아비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로드와 모래 마녀가 눈치 빠르게 천막 밖으로 사라졌다.
“좋은 시간 보내도록. 크흠. 그리고 언제쯤 프리키가 너희에게 돌아올지 모르니 될 수 있으면 많은 시도를 하는 걸 추천한다.”
겸사겸사 부족한 종족 수도 좀 늘릴 수 있으면 좋고.
“자, 자, 잠깐만 로드! 로드!”
“……여보? 나, 나 씻고 올게.”
“여보? 여보?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씨, 씻고 온다니?”
직후, 둘만이 남은 천막에서는 꼬박 아흐레 동안 알 수 없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 * * * *
심연으로 돌아온 발가르는 프리키의 몸을 살폈다.
《좋지 않군.》
몸에 입은 상처는 치료됐지만, 본인이 영혼을 굳게 걸어 잠갔다.
영혼이 밖으로 나오려는 의지가 없으니 몸이 멀쩡해도 결국 천천히 죽을 터였다.
실제로 프리키는 느리지만 꾸준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래서는 어버이께서 주신 임무를 해결할 수가 없지 않으냐.》
발가르의 마지막 임무, 그것은 프리키의 말뚝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조금 거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얼어붙은 탄식을 움켜쥔 발가르가 검으로 프리키를 겨눴다.
서릿빛으로 빛나던 검에서 무수한 망령이 튀어나왔다.
이윽고 죽은 듯 누워있던 프리키의 몸이 덜덜 떨리더니, 반투명한 색채의 프리키가 스르륵 허공에서 나타났다.
프리키의 영혼 중 일부를 강제로 끄집어낸 것이다.
매우 거친 방법이라 발가르 또한 내키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프리키의 영혼이 몸을 아주 떠날 기세였으니까.
《대답해라 프리키. 너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말뚝은 무엇이냐?》
“나, 나, 나의 마, 말뚝……… 아, 아아……”
허공에서 흐느끼던 프리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그냥 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아아……. 쉬, 쉬고 싶어………. 아, 아, 아무도 나, 나를 건드리지 않는 고, 곳에서………. 푸, 푸, 푹 자고 시, 싶어어……….”
《……?》
그냥 방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었던 프리키의 소망을 듣고는 그만 얼이 빠져버렸다.
Ilham Senjaya님, 즐거운 연휴 보내고 계신가욧!!! 작가는 본가에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글을 써서 올립니다…!!
즐거운 선 연휴 보내세요!!!!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설날, 떡국…!! 그리고 세뱃돈…!! 용돈을 받는 입장에서 어느덧 주는 입장이 되어버렸다니, 세월이 참 무상합니다…!! 뭔 용돈 드릴 일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요…!! 작가 주머니 말라죽어요…!!! 참…!! 떡국… 드셨나요!! 요즘 비비고 만두를 넣은 떡국이 그렇게 맛있다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는데ㅋㅋㅋㅋ 대기업의 맛은 확실히 다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