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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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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1화. 폴과 함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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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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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뱉었다.

        길게 뻗은 땅은 외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했으며,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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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에서 죽은 분들의 영혼이 이곳, 연옥으로 향한답니다. 그러니 길 잃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게 전부 죽은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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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길게 뻗으며 아내의 얼굴을 찾아 헤맸다.

        혹시나 먼저 죽은 아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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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티르 마을의 크라스 씨! 크라스 씨! 이쪽으로 오세요!”

        “값싸고 편안한 숙소를 싸게 모십니다! 지금 따라오시면 1박에 동화 2개!”

        “맛 좋은 꼬치가 있어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천상으로 가도 모를 맛! 잊었던 기억도 살아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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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럽게 외치며 호객하는 날개 달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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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시장통 아닌가?

        폴이 미심쩍은 눈으로 가이에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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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어르신, 여기서 일주일이나 재판을 준비하면서 어디에서 잘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길바닥에서 잘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노잣돈을 챙겨오지는 않았네만.”

        “주머니를 한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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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주머니를 뒤적거린 폴의 손에 은화 네 개가 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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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가신 분들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자금이랍니다. 은화 한 개가 동화 백 개짜리니까, 아끼지 않으셔도 하고 싶은 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먹을 것을 파는 건 뭔가? 이미 죽었는데 뭔가를 먹을 필요가 있나?”

        “먹을 필요는 없지만, 맛있잖아요. 그리고 다 쓸모가 있는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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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를 헤치고 나아간 가이에드는 누군가와 한참 흥정하더니 곧 동화 7개로 일주일 치 숙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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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숙소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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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방에 앉아 한숨 돌리는 폴을 향해 가이에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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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이제 저희는 일주일 뒤에 열리는 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구먼. 내가 뭐 도울 일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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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사후가 걸렸다는 말에 폴은 한껏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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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미 어르신의 생전에 대해 전부 조사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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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가이에드가 어디선가 두터운 종이 뭉치를 꺼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낱낱이 적힌 것은 폴이라는 노인의 60년 가까운 인생에 걸친 모든 선행과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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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아무래도 단순히 글로 적힌 것들이라서요. 자세한 상황은 제가 알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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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 한 장 훑어보니 온갖 자질구레하거나 큼직한 것들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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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세, 폴, 암탉 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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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응. 내가 7살에 암탉을 훔쳤다고? 이것도 악업이야? 절도?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가?”

        “천사들의 영업 비밀이라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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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가까운 인생을 열심히 더듬으며 최대한 앞뒤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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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요. 연옥에는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가 뛰어난 것들이 아주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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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폴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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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으응.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끝내지. 슬슬 눈이 감기는구먼.”

        “그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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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을 보니 노을 진 하늘은 밤이 오는 것인지 점점 검푸스름한 빛에 잠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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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는 건가? 절도죄는 그냥 절도가 아닌가?”

        “같은 절도여도 상황에 따라 죄의 무게는 달라지기 마련이거든요. 철부지 일곱 살이 어머니 몰래 암탉을 훔친 거랑, 다 큰 성인이 암탉을 훔친 건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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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를 정리한 가이에드가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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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내일 아침에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푹 쉬세요 어르신. 내일부터는 연옥의 구경도 겸하면서 재판을 준비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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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남은 폴은 조용히 침대에 몸을 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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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하게도 이미 죽은 몸일 터인데 꿈까지 꿨다.

        아내와 함께 강가에서 노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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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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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이 되자 가이에드는 폴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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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어르신. 얼른 이곳으로 오세요.”

        “허어. 여기는 도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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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뻗은 대로를 따라 좌우로 온갖 노점이며 상점이 즐비했다. 더욱 장관인 것은 바다처럼 가득한 망자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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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처럼 날개 달린 이들이 오가는 망자들을 향해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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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연옥이 사후 재판을 위한 곳이라고 해서 항상 딱딱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 저 앞으로는 연옥의 명물인 온천도 있고, 그 옆에는 보기 좋은 꽃밭도 있어요. 전부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효과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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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오가는 망자 중에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 아이들도 더러 보였으니.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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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는 망자들의 얼굴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보이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주일을 최대한 즐기려는 노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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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는 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가는 사람들과 좌우로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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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는 폴을 이끌고 좌측으로 향했다.

        북적거리는 인파를 뚫으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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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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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이 입을 쩍 벌렸다.

        칼로 자른 것처럼 땅이 뚝 끊겼으며 그 밑으로 이글거리는 주홍빛 불길이 태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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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으아아아악! 너무 아파!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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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쉬기도 어려운 열기의 불꽃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라니.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진 자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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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들은 지은 죄를 정화하는 형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불꽃 안에서 악업을 씻는 중이죠.”

        “무, 뭐라고? 그럼 저들이 나 같은 망자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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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의 설명에 폴이 펄쩍 뛰었다.

        불꽃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 미래의 자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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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이에 가이에드가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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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무서운 벌이죠. 쉬는 것도, 먹는 것도 허락받지 못한 채 저렇게 뜨거운 불 안에서 죄를 전부 씻을 때까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다니요.”

        “……그러게 말이네. 저, 정말 무섭군.”

        “저들은 저렇게 지은 죄를 전부 씻은 다음에야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답니다. 물론 그때는 천상문이 제외되고, 인간문과 축생문 중에서만 들어갈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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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히 용암에 타는 탄탈로스보다 낫기는 하겠다만, 불에 타는 고통이 어디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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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 중에는 가족을 폭행한 이도 있고, 친우를 배신하고 사기를 치거나, 부하를 버리고 도망친 장수도 있다고 합니다.”

        “탄탈로스로 가야 마땅한 썩을 놈들이군!”

        “아슬아슬하게 탄탈로스를 면한 셈이죠.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인간은 축생문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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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는 폴을 인도하며 우측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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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서 옥수수 볶은 것을 동화 1개에 사서 먹었는데, 신묘하게도 희미하던 기억이 또렷해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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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신기하군. 내가 옆집 피터 할범 텃밭에서 서리하던 것이 생각났어. 그날 저녁으로 딱딱한 검은 빵을 먹은 것도.”

        “좋군요! 그런 식으로 연옥에서 최대한 많은 기억을 되살려서 재판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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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자금으로 넉넉하게 놀 수 있을 정도의 싼 물가 덕분에 폴의 양손은 온갖 먹을 것으로 가득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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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입을 먹을 때마다 잊고 있던 기억이 살아나는 그 신묘한 경험이라니. 물론 재판과는 전혀 쓸모없는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그건 그거대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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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하! 그래, 맞아. 젊었을 때 울타리 뛰어넘기를 하다가 울타리에 걸려서 바지가 찢어진 적도 있었지!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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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오르는 기억에 울고 웃으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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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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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넓은 꽃밭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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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솨아아아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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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지만, 온갖 화려한 색으로 피어난 꽃들이 저절로 고개를 흔들며 폴을 향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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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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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꽃밭이다.

        꽃밭의 곳곳에는 향기로운 꽃에 취한 이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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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한참이나 꽃밭을 구경하다가 허리를 숙여 익숙한 꽃 한 송이를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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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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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아내가 그리도 좋아하던 꽃이 제비꽃이었다.

        폴은 조심스레 제비꽃을 주머니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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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끝으로 달콤한 꽃향기가 물씬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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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망울 피어나듯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옛 기억들, 폴은 향수와 추억에 젖어 꽃밭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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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처음 만났을 적이 생각나는구먼. 그때 아내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찬 여인이었지. 바느질도 꼼꼼했고, 손이 다부져서 무엇 허나 허투루 하는 일이 없었어.”

        “음, 음.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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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히 폴의 곁을 지키던 가이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폴의 말을 종이에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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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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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을 만들고 이세계 기준으로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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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은 그야말로 대성황!

        대박의 대박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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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연옥으로 오는 대상이 굉장히 넓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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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난 전사나 탄탈로스에 갈 정도의 나쁜 놈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거의 다 연옥으로 오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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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그 범위는 온 대륙의 죽은 사람들이니, 연옥은 나날이 북적이는 인파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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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 가득한 노점과 먹거리.

        온갖 놀거리와 체험할 것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이세계의 테마파크라고 불러도 무방한 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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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동안 온갖 체험을 통해 생전의 기억을 되새기고, 최후에는 미카에르를 통해 사후의 처분을 결정받는다.

        연옥에서의 일주일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최후의 휴가이자 생을 되돌아볼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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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나 잘 만들었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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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듯함이 몰려온다.

        나의 이 개쩌는 연옥을 모두가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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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탈로스 때처럼 이 웅장하고 위대한 연옥을 널리 알리고 싶다!

        허나 그러지 못한 이유는 다름 아닌 케넬름의 반대였다.

        ​

        – “지금도 지상의 신학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뒤바뀌는 판국입니다! 저기 말라 죽어가는 신학 조교들을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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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넬름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어두운 골방에서 썩어가는 시체 하나가 꿈틀거리며 깃펜을 놀리고 있었다.

        ​

        자세히 보니 시체가 아니라 조교였다.

        ​

        ‘이세계에 있는 대학원생이지.’

        ​

        – “끅, 끄그윽…. 이,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졸업 노, 논문이 완……성…….”

        ​

        끊어지는 단말마 이후 푹 고개가 꺾이는 조교.

        ​

        그가 필사적으로 적어가던 종이 가장 위에는 큼직한 크기로 《사후 세계 탄탈로스의 이치, 영혼의 불변성에 대한 상관 관계에 대하여》라고 적혀있다.

        ​

        “음.”

        ​

        논문…… 이구나.

        그것도 하필이면 사후 세계에 대한…….

        ​

        – “감히 연옥을 알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잠시만, 아주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지상이 충분히 진정됐을 때 연옥에 대해 알리셔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 “지금까지 행하신 기적과 행보에 대해 배우느라 신도들이 쓰러질 지경이에요.”

        ​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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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신학 개혁이 치사량을 넘어서 오버 플로우 일보 직전이라는 소리.

        ​

        케넬름과 리아가 한뜻으로 저리 말했으니.

        나는 별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

        ‘연옥 구경이나 해야지.’

        ​

        탄탈로스를 총괄하는 이시디움과는 비슷하게 연옥이라는 차원을 책임지는 미카에르는 무척이나 바빴다.

        혼자서 온 세상 모든 망자의 판결을 도맡아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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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는 망자들이 웃는 모습이며 미카에르의 판결에 따라 인간문과 축생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

        “에휴.”

        ​

        못난 대학원생들 사정까지 내가 알아줘야 하는 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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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우리의 성녀님, 케넬름의 일러스트가 나왔습니다!! 빰빠바밤!!!

    촉수에 앉아 있어서 불경한 생각을 하실 것 같은데…

    저것은 악마를 때려답고 난 다음 자애롭게 미소 짓는 케넬름의 모습입니다…!!! 오해 금지!!!! 야한 생각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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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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