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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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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2화. 폴과 함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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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로 가이에드는 폴을 이끌고 연옥의 곳곳을 다녔다.

        연옥은 실로 놀라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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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폴의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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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게 가이에드. 이건 도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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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아이들이 망아지 모양의 장난감을 타고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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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건 ‘인생의 수레바퀴’라는 기구랍니다. 위대하신 분께서 직접 고안하신 것으로 삶의 무한한 굴레와 이에서 벗어나 온전한 평화로 향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죠.”

        “이런 단순한 기구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단 말인가? 정말 놀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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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보니 연옥의 하늘에 커다랗게 떠 있는 수레바퀴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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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은 여러 놀라운 기구와 먹거리로 망자들을 즐겁게 했다.

        물론 마냥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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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통행이 금지된 구역에 다다랐을 무렵, 거리의 여기저기에서는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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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사람이 많은 곳이 있어 폴이 고개를 길게 내밀고 바라봤더니, 세상에.

        발가벗은 이들 여럿이 경사를 따라 커다란 돌을 굴리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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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데 언덕의 비좁은 정상에 다다르면 돌이 반대편 내리막으로 굴러가 버리니, 사내는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돌을 굴리며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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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건가? 돌을 언덕 위에 올리려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을 정도로 정상이 좁군.”

        “아까 불꽃에서 죄를 씻는 이들을 보셨지요?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여기서 죄를 씻는 중이랍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돌을 언덕의 정상에 세우면 형벌이 끝나는데, 정상이 너무 좁아서 반대편으로 굴러가기 일쑤죠. 결국 끊임없이 돌을 굴려서 정상이 조금씩 닳도록 해야 한답니다.”

        “끝나지 않는 형벌에 갇히는 건가. 무시무시하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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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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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여 자신도 저런 형벌을 받으면 어찌하나 덜컥 겁이 났지만, 폴은 자신의 일생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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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에게 욕을 들었을지언정, 내가 욕을 하고 산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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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옆에는 사각형으로 이어진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는 이도 있었다.

        헌데 자세히 살펴보니 무한하게 올라가는 계단만이 존재하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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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계단을 계속 올라가라고 한다면 나는 미쳐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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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벌이 가득한 구역을 벗어나자 커다란 길을 따라 온갖 먹거리와 볼 것들이 넘치는데.

        폴은 이곳이 바로 별세계구나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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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처럼 날아가는 구름을 타고 연옥의 하늘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천장과 벽을 걸어서 통과하는 거대한 골렘이 있었고, 온갖 달콤한 것으로 이루어진 과자 저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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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자 저택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군?”

        “아무래도 아이들은 단 걸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이른 나이에 연옥으로 온 아이들은…… 단 것을 구경도 못 해본 아이들이 많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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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에서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생전의 기억이 부드럽게 피어나며 폴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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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즐거운 추억이, 혹은 슬펐던 기억이, 더러는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이 기억나기도 했지만.

        폴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웃으며 되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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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허. 이번에는 아내에게 청혼했을 적이 기억났네. 애초부터 잊은 적도 없지만, 크흠. 내가 저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했었나? 참 젊었군.”

        “좋은 기억이네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그것이 말이지, 어떻게 된 거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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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는 선행, 악행과 관련 없는 기억이라도 부드럽게 웃으며 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좋은 청자(聽者)였으며, 말동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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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몰랐겠지만, 웃으며 생전 기억에 관해 이야기하는 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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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연옥의 첫 번째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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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들에게 생전의 기억을 되짚어주며, 지난 삶을 반추하고 미련을 털어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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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에드를 비롯한 모든 날개 달린 이들의 진짜 목적이었다.

        물론 재판을 위한다는 것도 이유이기는 했지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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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연옥에서 보내는 하루, 이틀, 사흘… 즐거운 만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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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깜짝해보니 어느새 일주일, 폴의 재판 당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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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준비되셨나요?”

        “자, 잠시만. 후우. 후우……. 나는 준비됐네. 이제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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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호흡을 내뱉은 폴이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의 사후에 대해 재판받으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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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련은 없다. 온갖 진미와 즐거운 것들을 경험했고, 생전 기억도 마음껏 떠올리며 울고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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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하나.

        폴의 걸음을 붙잡는 딱 하나의 미련이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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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여 얼굴이라도 볼까 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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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아내를 만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허나 폴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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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인연은 하늘에 달린 것이라지. 부인, 부디 다음 생에 만나 백년해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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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의 연은 그리 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니, 폴은 다음 생에서, 혹은 그다음 생에서라도 부인을 만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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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죠 어르신. 저 앞이 미카에르 님의 재판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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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고 장엄한 재판소에 들어서자 뭔가 투명한 막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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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소는 다른 곳보다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른답니다. 위대하신 분께서 직접 내려주신 축복이라고 하는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때 맞춰서 재판을 할 수 없거든요.”

        “…그 정도면 그냥 사람을 더 구하는 편이 좋겠구먼.”

        “하하하.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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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과 가이에드는 웅장하게 뻗은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 커다란 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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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이제 이 문을 들어가면 재판장입니다.”

        “후우. 기, 긴장되는군. 그, 그런데 재판은 어떻게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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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일주일 동안 연옥 구경에 바빠서 재판에 대해 듣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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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 님의 천칭에 어르신의 영혼을 올릴 거예요. 영혼이 있는 쪽에는 악행, 맞은편에는 선행이 올라가죠. 재판이 끝날 때, 악행보다 선행이 더 무거우면 저희가 이기는 겁니다.”

        “처, 천칭? 영혼? 나, 나는 들어도 잘 모르겠네. 가이에드 자네만 믿겠네!”

        “걱정마세요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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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이 바지에 식은땀을 닦았다.

        쿠구구궁, 커다란 문이 작은 소리와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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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과 가이에드는 연옥을 다스리는 재판장, 미카에르의 앞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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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인은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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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중한 목소리에 폴이 덜덜 떨며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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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인사를 올리세요. 연옥의 지엄한 재판장, 미카에르 님이십니다.”

        “자, 자, 잘 부탁드립니다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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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목소리에 감히 고개를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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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조심스럽게 힐끔거렸더니 폴의 몸통만한 엄지발가락이 보이는 것이, 어마어마한 거인이시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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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벌인들은 입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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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이 말하자, 폴과 가이에드의 맞은편에서 날개 달린 이들 셋이 나타났다.

        차가운 눈으로 폴을 바라보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라 오한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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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는 자리로 올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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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의 말과 함께 반투명한 형체인 폴의 몸이 둥실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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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어어어! 가, 가이에드! 가이에드!”

        “침착하세요 어르신. 재판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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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힘에 이끌린 폴의 영혼은 한참이나 솟구치더니 어느 커다란 원반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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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건…… 원반? 아니, 이건 조금 다른데. 생긴 것은 마치…설마 이게 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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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의 영혼이 안착한 곳은 미카에르의 천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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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 번호 37534번, 피고인 폴의 사후 재판을 시작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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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는 지엄하고 공평한 천칭을, 다른 손에는 단호하고 날카로운 검을 든 미카에르가 본격적인 재판의 시작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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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대로 발언하라.》

        “존경하는 미카에르 재판장님! 피고는 지난 63년의 삶에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욕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선한 인품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피고는 일곱 살에 어머니 몰래 암탉을 훔쳐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그의 조모에게 올려야 할 식사가 줄었으니, 이 얼마나 부도덕한 짓입니까!”

        “반박하겠습니다! 피고는 당시 도덕관념이 형성되지 못한 나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변호 측의 말이 옳다. 악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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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흐름으로 폴의 아주 어릴 적부터 악행과 선행을 따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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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에는 미카에르에 의해 악행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있었으며, 반려된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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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행으로 선언될 때마다 폴이 자리한 천칭에 추가 하나씩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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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이 맞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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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인 것은 가이에드의 분투 덕에 선행으로 인정될 때마다 폴의 맞은편 천칭에도 추가 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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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급되는 악행과 선행의 나이는 빠르게 올라 어느새 60살에 가까워졌다.

        폴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악행과 선행의 나열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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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반대쪽보다 조금 더 위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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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행보다 선행이 근소하게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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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로만 있으면 자신은 무사히 인간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폴은 간절하게 기도했다. 가이에드는 최후의 순간까지 진땀을 흘리며 폴을 위해 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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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피고인의 사망할 때까지의 모든 악행과 선행을 끝냈노라.》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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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은 저도 모르게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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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의 천칭이 아주 조금 더 무거웠다. 그의 승리였다!

        가이에드가 밑에서 박수를 치며 승리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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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데, 형벌 측에 있는 천사 한 명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리 지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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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 재판장 님! 아직 피고에게는 중대한 악행 하나가 남아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더냐? 이미 피고가 사망한 순간까지의 모든 것을 확인했을 터.》

        “그럴 리가!”

        ​

        가이에드가 소리 질렀다.

        ​

        가이에드가 확보한 자료는 연옥의 모든 천사가 공유하는 것. 가이에드가 모르는 악행은 형벌 측 천사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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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인은 연옥의 사적 재산을 훔치는 중대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뭐라? 연옥의 재산을 훔쳤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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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벌 측 천사가 외치자 미카에르가 눈을 부릅떴다.

        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자신이 연옥의 것을 훔쳤다니…?

        무엇 하나 훔친 것이 없으며 모두 정당한 값을 치렀을 터인데…….

        ​

        ‘……아!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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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에 온 첫날, 아내와의 회상에 잠겨 꺾었던 보라색 제비꽃이 그의 주머니 안에 있었다!

        ​

        이를 뒤늦게 알아챈 가이에드가 비명을 지르듯 변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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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측입니다! 피고인은 연옥에서 온 첫날이었습니다! 당시 피고인은 연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꽃밭에서 있었던 일은 당시 아내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연옥의 첫 번째 목적, 망자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꽃밭에서 기억을 살리려면 단순히 향만 맡아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를 가이에드가 몰랐을 리 없습니다! 명백한 관리 소홀이며, 이로 인한 피고의 악행입니다!”

        ​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폴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사태가 두려워 눈을 질끈 감고 덜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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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오오. 여보. 내 당신을 다시 만나면 이 꽃을 주려고 했던 것인데……. 내가 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어 이렇게 됐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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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는 가이에드와 형벌인들의 말을 들으며 심사숙고했다.

        ​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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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을 튀기며 소리치던 양쪽이 입을 꾹 다물었다.

        ​

        《판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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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쾅거리는 심장, 가빠지는 호흡.

        미카에르의 판결에 폴의 사후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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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행으로 선언된다면 천칭의 균형이 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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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가 꽃밭에서 꽃을 꺾은 행위는…….》

        ​

        미카에르가 판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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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군요…!! 이제 두꺼운 패딩을 벗고 조금 더 얇은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씨입니다!! 2월 중순에 이 정도 날씨라니!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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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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