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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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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화. 소집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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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성을 떠난 펜리르는 안개와 폭풍에 몸을 맡겼다.

        심연의 광야를 가로지르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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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도 없이 이어지던 심연의 지평선 경계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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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정상적인 차원이라면 세상의 ‘끝’이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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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심연은 그 탄생부터가 사고로 인해 발생한 곳. 심지어 지상의 부정적 감정들이 모이는 하수장이었으니, 심연을 멀쩡한 차원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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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라. 거기 있다는 거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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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경계선, 세상의 끝에 도착한 펜리르가 외쳤다.

        칼로 자른 듯 깔끔하게 잘린 경계 너머에는 온통 까만 허무의 공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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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허무 속에서 무언가가 펜리르의 부름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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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이지? 10년? 100년? 아니면…… 10,000년?》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 내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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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리르가 불쾌하게 대답했다.

        이에 허무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퍽 즐거운 듯 킬킬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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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잘난 부하 놀이는 벌써 때려치운 거냐?》

        《…몰래 엿보는 수준은 여전하군.》

        《우습구나. 네가 섬긴 주인일 터,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뛰쳐나온 거지? 너도 알고 있지 않나? 다른 녀석들이 죽은 건, 네 주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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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리르는 저 존재와 대화를 길게 나눠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지의 존재는 오랜만에 생긴 대화 상대를 쉬이 놓아줄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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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그렇군. 네가 원하는 이상적인 ‘주인’에 미치지 못한 거야. 그렇지?》

        《허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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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리르의 주변에서 폭풍이 일어나 매섭게 우르릉거렸다.

        허무 속에 있는 존재가 낄낄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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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부정하지 않지? 응? 네가 원하는 ‘주인’은 고리타분한 동화에나 나올 수 있는 존재다. 따르는 이를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고, 죽지 않게 한다는 그런 ‘주인’이 가능할 것 같으냐? 진심으로?》

        《닥쳐라! 더 이상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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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수십 개가 일어나 펜리르 주변을 맴돌았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의 늑대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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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리기는. 그래서, 어쩐 일로 나를 찾아온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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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무 너머에 있는 존재가 먼저 굽히고 들어왔다.

        펜리르는 한참이나 으르렁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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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대답을 들은 허무 너머의 것은, 꽤나 즐거운 모양인지 한참이나 광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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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찾아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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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무언가가 진창을 헤엄치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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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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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 죽어라 마귀 대장 녀석아! 크하아아아!》

        《ㅡㅡㅡㅡㅡ!!》

        《이 천박한 녀석들! 품위라고는 없는 덜떨어진 놈들! 천사들의 힘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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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아우르는 거인들의 박투, 칠흑 갑옷을 두른 밤의 기병들과 천사, 무수한 망령들이 흘리는 귀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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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끝장낼 종말의 전장이 열린다면 이런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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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기병이 초원을 짓밟으며 돌진했고, 천사들은 매섭게 강하하며 망령들을 꿰뚫었으며, 망령들은 파도처럼 일어나 전장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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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이 전쟁의 주인공은 세 명의 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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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개시를 알린 것은 이시디움이었다.

        여덟 개의 팔이 그리는 무기의 궤적이 어지럽게 흐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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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회에 누가 우위에 있는지, 크하아아아! 내가 똑똑히 새겨주겠다!》

        《허튼소리! 저번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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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장 발가르의 목을 향해 닥쳐오는 여덟 개의 팔!

        허나 발가르는 이미 몇 번이고 싸웠던 상대인 만큼 유연하게 방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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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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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얼어붙은 탄식에서 한기가 폭발적으로 흘러나온다. 이윽고 발가르를 중심으로 빙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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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천박한 녀석. 전투에는 우아함과 품격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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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가 천칭을 기울이며 검을 휘둘렀다. 

        연옥의 불꽃을 듬뿍 머금은 검이 빙판을 녹였다. 미카에르의 검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며 발가르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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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너부터다! 더럽고, 천박한 마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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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의 거대한 검이 발가르를 향해 휘둘러졌다. 발가르는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허나 그 빈틈을 놓친 이시디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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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떻게 막을 거냐! 크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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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도하는 여덟 개의 무기. 단숨에 합공당한 발가르가 눈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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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몸통과 어깨, 다리, 팔을 난자하며 지나가는 이시디움의 무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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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졸하고 나약한 녀석들! 질 것 같으니 합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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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미카에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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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있는 덩치 큰 녀석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익숙한 기분이란 말이지. 그에 반해서 너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고.》

        《크하하하하하! 들었냐 마귀 대장! 이거, 저기 있는 깃털 녀석이랑은 말이 통하는군!》

        《품위 없는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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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디움과 미카에르는 본질적으로 재판과 판결이라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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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마귀를 다스리는 발가르만 억울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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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아아아악! 이, 이 더러운 녀석들!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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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발가르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수적 열세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지상에서는 밤의 기병들과 천사들이 그들의 대장을 따라 힘을 합쳐 망령들을 몰아내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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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의 흐름을 본다면 발가르의 열세가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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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주의 말씀대로 죽이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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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몸통을 향해 날아드는 미카에르의 검!

        이를 보고 눈을 빛낸 발가르가 단숨에 검을 손으로 잡아챘다. 실로 놀라운 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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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풋내기 녀석. 방심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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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손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오며 미카에르의 검을 얼렸다.

        순식간에 무기를 빼앗은 발가르는 그대로 미카에르를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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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데 미카에르가 날아가는 방향은 리아와 함께 멀리 떨어진 천공섬 아르고스가 있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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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런!》

        《멍청한 마귀 녀석!》

        《크하아아! 여동생이! 위험하다!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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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알아챈 이시디움이 이를 막으려 했지만 너무 멀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미카에르에 부딪힌 아르고스와 리아 모두 크게 다칠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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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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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아악! 소녀한테 이런 폭력적인 대우라니! 너무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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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고스에서 백색의 불꽃이 발사되더니, 날아오던 미카에르를 그래도 격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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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에 맞은 미카에르가 다시 떠밀려서 되돌아올 정도의 위력에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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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허어어억. 아, 아프다…. 등이 너무…… 뜨, 뜨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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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이 까맣게 타버린 미카에르가 신음을 흘렸다.

        그 말을 끝으로 미카에르의 고개가 푹 꺾였다. 기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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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관전하고 있던 케넬름이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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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의 재판장, 미카에르. 탈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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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가 혼수상태에 빠지며 그를 따르는 천사들도 자연스레 전장에서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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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남은 것은 심연에서 지독하게 싸워왔던 이시디움과 발가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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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하아아아아! 이 치졸한 녀석! 어찌 힘없는 여동생까지 이용할 수 있단 말이냐!》

        《너의 속이 옹졸한 것을 알았다만 오늘은 좀 지나쳤구나. 너는 마귀 대장이 아니라 쓰레기 마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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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기병들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발가르를 쳐다봤다.

        기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그들은 명예와 신의를 모르는 짓을 제일 혐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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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건 오해다! 사고야! 아니, 애초부터 저년은 별로 약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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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지에 아르고스를 이용한 것이 된 발가르가 억울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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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에에에…. 역, 시, 우, 우리의 마왕, 님…….”

        “끼기기기긱! 혀, 혈육마저 이, 이용하시다니…!”

        “나, 나, 나도 더, 더더더욱 보, 본받아서 저, 저렇게 사악해져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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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다못해 망령들마저 수군거리며 발가르의 사악함을 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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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억울함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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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아아아악! 공격! 총공격이다! 저 가증스러운 주둥아리를 기필코 썰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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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령들이 땅과 하늘에서 귀곡성을 흘리며 산사태처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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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스러운 밤의 기병들이여! 달려라, 그대들의 영광과 승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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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기병들이 쐐기 형태로 진형을 갖추며 일제히 돌진했다. 망령들을 분쇄기처럼 갈아버렸지만, 망령의 숫자는 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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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투콰광! 카가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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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벼라! 패배자! 쓰레기 마귀 녀석아! 크하아아아!》

        《저번에 운 좋게 이긴 거로 언제까지 꺼드럭거릴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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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거인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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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가 부딪치고, 주먹이 오가며, 고함과 비명에 사방 천지가 쩌렁쩌렁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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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으으으. 하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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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약한 리아는 아르고스의 내부에서 덜덜 떠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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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언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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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고스가 걱정스레 리아를 챙겼다. 전투의 중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싸움의 여파로 공기가 쿵쿵 울리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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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유우우웅!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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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뭔지 모를 것이 날아와 아르고스 주변을 스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르고스가 날아오는 족족 격추해버렸다.

        ​

        가끔은 망령이 날아왔고, 어떨 때는 밤의 기병이 날아오기도 했다.

        ​

        그리고 지금은 좀 유달리 큰 것이 날아왔다.

        아르고스가 온 힘을 다해 불꽃을 발사했다.

        ​

        투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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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허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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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얼음에 발이 묶인 이시디움, 그 틈을 노린 발가르가 있는 힘껏 이시디움을 내던졌다.

        ​

        헌데 우연히도 또다시 아르고스가 있는 방향으로 이시디움을 던지고 만 것이다.

        ​

        하얀 불꽃을 얻어맞고 다시 전장으로 날아온 이시디움이 풀썩 쓰러져서는 바들바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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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 치졸하고, 비, 비겁한 쓰레기…….》

        《제 누, 누이를 향해 더, 던지느냐…….》

        《마, 마귀 언저리도 되지 못한 것…….》

        ​

        발가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끝으로 기절한 이시디움.

        ​

        밤의 기병들은 이제 음식물 쓰레기, 아니 거의 구더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발가르를 노려봤다.

        ​

        《아, 아니…! 오해, 정말로 오해다! 나, 나도 누이를 이용해 먹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란 말이다!! 이건 정말 오해야!》

        ​

        정말로 억울한 발가르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령들은 하염없이 사악하고 치졸한 제 주인을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

        “여, 여, 역시 우, 우리 마왕님……!”

        “저, 정말 치졸하고 사악하고, 오, 옹졸하게 싸우시는군……!”

        “나, 나, 나도 가, 가족을 싸움에 써, 써먹을 생각은 모, 못 했는데……. 마, 많이 배워야겠어……!”

        ​

        본의 아니게 마왕에 어울리는 사악한 심성의 소유자가 되어버린 발가르였다.

        ​

        “탄탈로스의 심판자, 이시디움. 탈락. 고로 승자는 악마의 제왕, 마왕 발가르 칸 가르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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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넬름이 판정 내렸다.

        허나 그녀도 썩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

        “쯧. 누이라는 자를 어찌 그리 싸움에 이용하는 것인지. 하여간, 그러니 마귀의 왕이겠죠.”

        ​

        짝… 짝… 짝…

        ​

        느릿하고 작은 박수 소리가 발가르를 향했다.

        망령들이 치는 박수였다.

        ​

        밤의 기병과 천사들은 발가르를 째려보며 혐오했고, 정신을 차린 이시디움과 미카에르 또한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아니란 말이다! 나, 나는 정말로…! 어버이시여, 미, 믿어주십시오! 정말 오해입니다! 억울합니다!!》

        ​

        상처뿐인 승리를 얻은 발가르가 울부짖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드디어 주말의 시작이군요…!! 끼요오오옷..! 미뤄놨던 집안 대청소와 묵은 먼지를 털 시간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욧!!!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선동과 날조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본 케넬름! 그 결과는 대성공!!! 그리고 우리 첫번째 일꾼, 오푸스 팔락이 발가르, 이시디움과 비비려면… 쓰읍.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때가 되면 “망치로 세상을 단조하겠다!” 하면서 땅을 내려치는, 초 하이파워 드워프가 되는 걸까요? 망치질에 용암이 솟구치고, 산맥이 솟아나고… 오? 씁, 좀 개쩌는 것 같네요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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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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