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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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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0화. 첫 번째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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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아아아아! 어버이시여, 저의 억울함을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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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비통한 비명이 드높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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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희극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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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작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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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발가르 진짜 쓰레기. 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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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하는 발가르는 억울해 미칠지 몰라도, 보는 내 입장에서는 미친 꿀잼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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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디움과 미카에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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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러지.》

        – 《최소한의 도리라는 것을 모르는 녀석.》

        – 《아니라고! 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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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랄한 비판에 무너진 발가르가 오열한다.

        나는 구태여 말리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봤다. 지켜보는 나는 꿀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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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케넬름이 갑자기 애들을 대뜸 싸우게 할 때는 조금 띠용하기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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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보니 결과도 썩 나쁘지 않고, 보는 재미도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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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첫 번째 시합이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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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 겸 진행자 역할을 맡은 케넬름이 진행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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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상외의 분전…을 보여준 모든 분에게 수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이어서 이 연회의 두 번째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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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

        케넬름과 리아가 또 무엇을 준비했을지, 기대되는 마음에 어니언 팝콘을 리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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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작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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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하라, 대리인이여.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 거지?》

        – “여러분이 여기에서 한바탕하시는 동안, 제가 몰래 여러분의 각 영토에다 깃발을 하나씩 두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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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언제 다녀온 걸까?

        계속 지켜보고 있던 나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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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은 상대방의 영토에 있는 깃발을 빼앗아 오시면 됩니다. 먼저 깃발 세 개를 모으는 분의 승리입니다.”

        – 《…이봐. 미친 빨강 머리 여자. 그런데 지금 이것들이 우리가 서로를 아는 것에 도움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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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시디움과 미카에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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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넬름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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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하신 분 가라사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싸움에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여러분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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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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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 받은 세 거인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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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어버이시다. 실로 옳은 말씀이야.》

        – 《슬픔의 머리, 그만 좀 울고 위대하신 분의 옥조 같은 말씀을 기억해라!》

        – 《끄흡, 크흐흑. 너, 너무 좋은 말이라서 감동의 슬픔이 밀려오는 거다….》

        – 《역시 창조주시다.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말씀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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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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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대로 호들갑을 떠는 녀석들!

        어디선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면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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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저렇게 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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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사한 녀석들.

        하지만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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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이제부터 여러분께서는 각자의 영역의 영토로 돌아가서 싸움의 준비를 해주시면 됩니다. 2시간 뒤, 제가 여러분의 영토로 이어지는 관문을 열어드릴 테니, 그곳만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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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와 이시디움, 미카에르는 서로를 잠시 노려보더니 이내 각자의 영토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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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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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으으. 하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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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는 귀를 꼭 막고 덜덜 떨고 있었다.

        평생을 경건한 사제로 살아온 그녀에게 오늘은 참 박진감 넘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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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하늘을 무너뜨릴 것 같은 거인들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온갖 무시무시한 기병과 망령, 거기에 날개 달린 인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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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 거기서 선배는 왜 갑자기 싸움을 붙이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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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들을 싸움 붙이는 것은 사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내용이었다.

        당황한 리아에게 케넬름이 속삭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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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걱정하지 마요. 분명 위대하신 분께서도 이걸 더 마음에 들어 하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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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리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케넬름의 말이 사실이었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거인들의 전쟁을 매우 흡족하게 바라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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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아르고스ㅡ. 너, 너는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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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신감에 사무친 리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르고스는 리아가 성녀에 임하면서 유일하게 편히 기댈 수 있는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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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의 행정 시스템에 대해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아르고스와 협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르고스의 스스럼 없는 말투와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에 금방 친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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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괴물 같은 존재가 가득한 성지에서 비교적 평범하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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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었는데! 아르고스, 너만큼은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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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오는 거인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불꽃을 쏘는 존재였다니!

        알 수 없는 배신감에 리아는 괜히 아르고스를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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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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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각자의 영토로 돌아간 세 반신은 저마다의 수뇌부와 전략을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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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에르는 가이에드와, 이시디움은 용암 거인과 밤의 기병대장과, 그리고 발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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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리르! 펜리르! 어디에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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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 없는 부하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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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 녀석답지 않게 멀리 나간 모양이군. 됐다. 이 몸 혼자서도 충분히 전략을 짤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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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아쉬울 뿐이다.

        발가르는 작게 중얼거리며 제 손의 깃발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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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붉은 광녀가 말한 깃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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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칙은 간단하다.

        내 깃발을 지키면서, 상대의 깃발을 빼앗으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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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거창하게 준비할 전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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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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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아니 분명히, 틀림없이!

        다른 녀석들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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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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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력전! 오직 그것뿐이다! 모든 것을 건 총력전만이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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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차게 내려찍은 옥좌의 손잡이가 가볍게 부서졌다.

        발가르가 마왕성을 뛰쳐나가며 우렁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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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악마들이여! 총력전을 준비하라! 너희의 모든 것을 걸어라! 거대한 싸움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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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지배 아래에 있는 모든 악마들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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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준비해라! 마왕님께서 총력전을 명하셨다!》

        《끄르릅! 내 촉수 밟지 마라!》

        《내…… 손가락뼈……… 누가 가져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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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온갖 형태의 악마들이 빼곡하게 모이며 총력전을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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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옥과 탄탈로스 또한 마왕성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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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스레 1시간이 지나고.

        케넬름이 예고했던 대로 각자의 영토로 이어지는 거대한 관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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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앵! 카가가각! 펑!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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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여! 아니지, 죽이지는 말고 딱 죽기 직전까지 패라!》

        《불타는 날개 부대, 돌격하라! 땅을 기는 것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끄르헤에엑! 너어, 맛있게 생겼ㅡ쿠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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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탈로스, 마왕성, 연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난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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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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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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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반신이 떠난 성지, 쑥대밭이 된 초원은 천천히 원래대로의 형태를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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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원에서는 한참이나 바람 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제야 드워프들이 빼꼼 술집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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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갔냐?”

        “………간 것 같은데? 음, 갔어. 갔구먼.”

        “…얘들아! 전부 갔다!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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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저기 건물에서 기어 나오는 드워프들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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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위대하신 분 맙소사! 내 한평생 그렇게 어마무시한 광경은 처음이었어.”

        “여기 발바닥 구멍 파인 것 좀 봐! 세상에, 내가 스무 명은 더 들어가겠네. 여기에 맥주를 마시면 얼마나 마실 것 같아?”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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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의 흔적을 살피는 드워프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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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하게 파인 구덩이와 잔디, 거칠게 갈라진 땅의 상처, 이리저리 흩어진 구름의 잔해는 싸움의 격렬함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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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인들 주먹 봤어? 주먹이 무슨 이베르 뱃살만 하던데?”

       “아니야. 내가 봤을 때는 이베르 턱살이랑 비슷했어.”

        삐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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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푸스 팔락 또한 비슷했다.

        한평생 본 적 없는 웅장한 결투, 위대한 전쟁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

        멍하니 하늘을 올려보는 오푸스 팔락의 어깨를 세듀스 팔락이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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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 뭘 그리 보는 거요? 형님?”

        “……이걸.”

        “응? 형님 뭐라고 하셨수?”

        “이걸, 우리가 봤던 것들을 만들어야 해. 그래, 만들어서 기억할 수 있도록 남겨야 해.”

        ​

        오푸스 팔락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무언가에 잔뜩 취한 사람과도 비슷했다.

        ​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이걸, 이걸 만들어야 해.”

        “형님, 형님? 그게 지금 무슨 말이요?”

        ​

        오푸스 팔락이 부리나케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식어버린 화로에 열기를 살리고, 주괴를 뜨겁게 달궜다.

        ​

        “혀, 형님! 지금 뭘 만들려는 거요! 멈추쇼! 당장 멈춰!”

        ​

        급히 달려온 세듀스 팔락과 트리비우스 팔락이 오푸스 팔락의 팔에 매달렸다.

        허나 한번 작업을 시작한 드워프의 팔뚝은 같은 드워프조차 막을 수 없었다.

        ​

        까캉! 카앙! 카강!

        ​

        불똥과 함께 움직이는 그의 망치.

        두 동생들이 처절하게 외쳤다.

        ​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거 형님도 알고 있지 않소! 당장 멈추라니까!”

        ​

        드워프들은 신의 일꾼이자 타고난 대장장이들.

        허나 얄궂게도 그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허락 받지 못했다.

        ​

        머릿속에는 온갖 새로운 무기의 형태와 영감이 가득한데, 그것을 만들려고만 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며 입에서 거품이 나오는 등.

        ​

        갑작스레 없던 발작을 하기 일쑤였다.

        ​

        그러니 그들로서는 ‘아, 신께서 우리에게 뭔가 새로운 것은 허락하시지 않았구나.’ 단념하는 수밖에.

        ​

        허나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의 의지가 아닌, 성지라는 차원의 고유한 법칙이었다.

        ​

        성지는 신이 다스리는 땅, 모든 것이 신에 의해 결정되는 곳.

        ​

        존재 자체로 완벽하기에 모든 것이 그대로 있으려 하는 성지의 법칙이었으며.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하는 절대적인 규율이었다.

        ​

        지금 오푸스 팔락을 억누르는 것은 성지라는 거대한 차원의 의지였다.

        ​

        그리고 지금 오푸스 팔락이 하는 행동은 드워프가 날개 달린 새처럼 날으려 하는, 참으로 무모한 짓이었다.

        ​

        “커흑, 끄흡.”

        ​

        아니나 다를까.

        망치를 두들기던 오푸스 팔락의 망치가 눈에 띄게 떨리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손이 떨리더니 이내 몸을 거세게 떨고, 눈이 하얗게 까뒤집히면서 게거품을 물기 시작하는 것이.

        ​

        이대로 두면 사람, 아니 드워프 하나 죽겠구나 싶었다.

        ​

        “끄르르륵…. 하, 할 수 있어, 할 수 있고말고!”

        ​

        허나 오푸스 팔락은 이마저도 견뎌냈다.

        ​

        그의 본능은 당장 멈추라고, 너는 지금 허락받지 않은 짓을 하고 있노라 비명을 질렀지만 그럼에도 오푸스 팔락은 망치를 휘둘렀다.

        ​

        까캉! 카앙! 카캉!

        ​

        “나는! 커헉, 드워프다!”

        ​

        무엇이 그를 이토록 움직이게 만든 것일까?

        ​

        위대한 거인들의 싸움을 보며 장인으로서 뭔가 깨달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드워프 특유의 반골 정신이 발동하며 되려 오기를 품은 것일 수도 있다.

        ​

        아니면, 신의 첫 번째 일꾼이라는 이름답게.

        더 높은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일지도.

        ​

        까캉! 카앙! 카강!

        ​

        오푸스 팔락의 입에서 피가 왈칵 터져 나왔다. 시야는 흐릿하게 뿌얘진 지 오래였고, 배가 진탕 아파오는 것은 내장이 꼬인 것 같다.

        ​

        “끄헉, 커헉. 누, 누가! 누가, 이 나를 막을쏘냐! 이 나를, 신의 첫 번째 일꾼인 나를 누가 막을 것이야!”

        ​

        완고한 일꾼, 고집스러운 장인.

        오푸스 팔락은 어쩔 수 없는 드워프였다.

        ​

        짧은 팔다리로 광물을 캐고, 단단한 금속을 두들기며, 매캐한 연기를 마시는.

        고된 대장간 일과 뜨거운 화로의 열기, 곳곳에 묻은 검댕을 시원한 맥주 한잔에 털어버릴 수 있는.

        ​

        어쩔 수 없는 대장장이 종족.

        ​

        까캉!

        ​

        그러니 오푸스 팔락은 더 이상 말로 하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두들기고 또 두들겼다.

        ​

        드워프는 망치로 말할 뿐이니까.

        ​

        카앙!

        ​

        마지막 망치질이 끝났다.

        거대한 빛이 터져 나오며 오푸스 팔락을 감쌌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인제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저는 판타지에 나오는 종족들 중에서 드워프를 제일 좋아한답니다…!

    발더게에서도 드워프 바바리안을 했을 정도로!
    언젠가 차기작을 쓴다면 꼭 드워프를 나오게 해주고 싶네요!!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진짜 강한 자는 힘을 숨기는 법…! 치타, 아니 아르고스는 웃고 있다… 심연의 이시디움과 발가르, 연옥의 미카에르는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그래봤자 아르고스 앞에서는 범부일 뿐이다… 무려 20만원을 바쳐 태어난 아르고스는 정말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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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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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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