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첫 번째 일꾼 ( 2 )
《정말이지. 리아 언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아르고스가 토라진 리아를 달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허나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사무친 리아는 쉽사리 아르고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흑, 흐끕. 믿었는데, 나, 나는 너를 믿었는데 아르고스!”
《에엥?》
“너, 너도 나처럼 평범한 줄 알았다고…! 여기 있는 다른 분들은 전부 케넬름 선배님처럼 무시무시하게 강하거나, 신화적인 존재거나, 용이거나……! 그, 그래서 나는 아르고스 네가 그냥 평범하게 말하고 날아다니는 성인 줄 알았는데…!”
리아의 말을 들은 아르고스가 작게 탄식을 토했다.
이는 서로에 대한 지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사소한 오해였다.
《으음. 리아 언니, 나는 그러니까. 음. 언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 평범한 존재는 아니야.》
태어나기를 드워프와 엘프, 밤의 일족이 손수 빚어낸 성이었으며.
위대하신 분께서 손수 별의 불꽃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르고스는 제법 비범한 탄생 일화를 지닌 존재였다.
“세 종족이 함께 성을 만든 것이 너라고…? 그, 그게 왜 비범하고 대단한 거야?”
《언니는 성지라는 곳에 대해 얼마나 알아?》
“엄청 넓은 초원이 있고, 드워프랑 다른 종족분들이 살던 곳?”
《아니야. 성지는 언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무지막지한 차원이라구.》
이르기를, 완벽하게 완성되어 닫혀버린 차원.
성지에 살아가는 존재는 신의 허락 없이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성지는 오롯하게 완벽하니까.
《이건 성지의 법칙이자 율법이야. 살아있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한 거지.》
“……? 잠깐만. 그러면 말이 안 되는데? 방금 세 종족이 힘을 합쳐서 너를 만들었다고 했잖아.”
리아의 지적은 타당했다.
《그러니까 내 탄생이 비범하다고 말하는 거야, 언니.》
아르고스의 중앙에서 타오르는 백색의 불꽃, 가장 순수한 별의 불꽃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언니. 언니라면 사흘, 나흘… 며칠 동안 쉬지도 않고 오직 하나의 생각만 할 수 있겠어? 무언가를 만들면서 단 하나의 일념만을 불어넣는 것을, 할 수 있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맞아. 일반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지. 그런데 나를 만든 세 종족은 그걸 해낸 거야. 삼백에 가까운 인원이 모두 해냈지. 집념에 가까운 의지로, 한 차원의 율법을 거슬러서 기어코 나를 만드는 데 성공했어.》
드워프, 엘프, 밤의 일족.
도합 삼백에 가까운 인원은 식사와 잠을 최소한을 취하며 아르고스의 건축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오직 하나의 일념으로, 삼백에 가까운 인원이 단 하나의 의지를 아르고스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게…… 가능해?”
《보통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그러니까 나의 탄생은 비범한 동시에 기적인 거고.》
뇌라는 것은 의외로 무척 단순한 동시에 멍청하다.
코끼리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코끼리를 자세히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혼자서도 힘든 것을 삼백에 달하는 인원이 동시에, 그것도 며칠이나…?’
정녕 가능한 일인가.
그건 기적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뭐. 사실 그렇게 해도 차원의 법칙이라는 게 마냥 만만한 건 아니라서. 당연히 그에 따른 대가가 따라왔어. 삼백이나 달하는 인원이 조금씩 나눠서 부담해서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이베르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지금이야 새끼 용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 모습은 서리고룡.
이베르는 세 종족에게로 쏟아지는 부담의 대부분을 기꺼이 감내했다.
덕분에 꼬박 일주일을 온천에만 누워서 끙끙 앓아야 했지만.
당시의 세 종족은 절박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신의 관심을 성지로 돌리겠다는 일념으로 아르고스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세 종족의 일념으로 만들어진,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기적으로 만들어진 거야. 성지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였는데, 지금은 성지의 수호를 겸하고 있고. 푸흐흐. 재밌지?》
“…너 생각보다 대단한 아이였구나.”
《그럼! 나는 성지의 수호자, 순수한 별의 불꽃! 아르고스니까!》
으쓱이는 투로 그리 말하는 아르고스 덕분에 리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르고스의 한없이 가벼운 태도에 괜히 토라졌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미안해 아르고스. 그냥, 나 혼자 바보처럼 굴었네.”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정 미안하면 나중에 내 스테인글라스나 한번 좀 닦아줘. 히히.》
“내가 아주 빡빡 닦아줄게. 닉도 내 청소 솜씨는 인정했거든.”
한 드워프가 성지의 율법을 홀로 거스르고 있던 어느 때에 있던 대화였다.
* * * * *
– 투콰아앙! 콰앙!
그야말로 장관의 연속이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투의 향연!
올곧게 힘과 덩치로 밀어붙이는 거대한 용암 거인과 기동성을 살려 전장을 휘젓는 밤의 기병대.
온갖 기상천외한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수를 만들고 있는 악마들과, 하늘을 자유로이 날며 제공권을 장악한 천사들까지.
땅과 하늘에서 불꽃, 얼음이며 바람이 끊이지 않았고, 고함과 기합이 멈추지 않았다.
– 《밤의 기병대! 우측 능선을 돌아서 타격하라! 용암 거인들은 전진!》
– 《너희들의 적을 짓밟아라! 마왕 발가르가 앞장서겠다!》
– 《강하 부대는 좌측부터 강하하라! 이후 궁수들은 일제 사격이다!》
세 거인들은 전장을 휘젓고 지휘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지켜야 할 깃발을 들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다.
‘지켜야 하는 깃발을 들고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지?’
빼앗기면 그대로 끝인 깃발을 들고 봐달라는 듯 휘두르며 소리치다니.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사실 이시디움, 발가르, 미카에르의 속내는 이러했다.
‘‘‘어버이/창조주/위대하신 분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
하늘 높이 떠 있는 일곱 개의 별은 신의 눈동자일지니.
지금도 신께서는 전장을 굽어살피고 계셨음이다.
운동회에 나온 자식이 부모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괜히 더 우렁차게 고함치고, 힘차게 깃발을 흔드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허나 이를 알 리 없는 그들의 신은 그저 희희낙락 전투의 웅장함을 즐기는 중이었으니.
* * * * *
“크으으. 이거 진짜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 뺨치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죽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아마 케넬름이 사전에 단단히 경고해둔 것이 빛을 발한 것일 터.
어느 한 진형의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밀리고 미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어니언 팝콘의 숫자 또한 빠르게 줄어갔다.
띠링ㅡ!
갑작스레 나타난 메시지 창에 눈을 찌푸렸다. 화면이 가려서 안 보인다.
한창 재밌는 타이밍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일꾼 1호’의 승격이 시작되었습니다!》
“…?”
일꾼 1호? 승격? 갑자기?
성지에서 얌전히 일하고 있을 일꾼 1호가 저 혼자 승격을 시작했다는 메시지에 서둘러 화면을 돌렸다.
– 타캉! 카앙! 카캉!
일꾼 1호는 대장간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이 다른 드워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 모습을 덜덜 떨며 바라보는 중이었다.
– 카앙! 카강!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망치.
붉게 달궈진 주괴는 내가 본 적 없는 것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건…… 갑옷이잖아?’
일반적으로 아는 갑옷과 종류가 달랐다.
일꾼 1호는 거대한 주괴를 통째로 녹이고 두들겨서 갑옷을 만들고 있었다.
이게 가능한 짓인가 싶었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이 일어나고 있었다.
“애초부터 나는 갑옷 종류를 해금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내가 만들거나 해금한 것이 아니면 드워프들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일꾼 1호가 만들고 있는 건 도대체 뭘까?
– 카아아앙!
마지막 망치질이 끝났다. 거대한 빛이 터져 나와 일꾼 1호를 감싸 안았다.
《일꾼 1호가 ‘언커먼 드워프’에서 승격합니다.》
《일꾼 1호는 ‘레어… 유니크… 에픽 드워프’가 되었습니다.》
메시지 중간에 생략된 단계가 무려 2개다. 일꾼 1호는 레어와 유니크 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에픽 등급까지 올라간 것이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일이야?”
갑자기 혼자 승격하더니 2단계를 점핑도 한다고?
– “끄흐어……. 흐어어어억.”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팔다리가 통나무처럼 튼튼해진 일꾼 1호가 서 있었다. 울창하게 자란 턱수염과 콧수염을 정갈하게 묶은 채였고, 들고 있는 망치는 더 없이 튼튼해 보였다.
“오, 오오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중압감.
한참이나 서 있던 일꾼 1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크엑.”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피를 한움큼 뱉고는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드워프들이 우르르 달려와 일꾼 1호를 번쩍 들어 올렸다.
짧은 다리로 오도도 달려가서는 냅다 술집에 처넣더니 맥주를 오크통째로 들이붓는 것 아닌가.
“드워프라서 저게 통하네.”
피를 토하고 쓰러질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던 일꾼 1호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드워프들에게 맥주란 도대체 뭘까.
‘저대로 두면 알아서 일어날 것 같네.’
뭔가 엄청난 일이 폭풍처럼 몰아쳐서 살짝 정신이 없다.
그러니까… 일꾼 1호는 내가 해금한 적도 없는 갑옷을 만들다가 승격했고, 승격하는 와중에 두 단계를 건너뛰더니 에픽 드워프까지 올라왔다.
“갑옷!”
일꾼 1호가 피를 토하며 만들던 갑옷은 식어가는 열기를 머금은 채 모루 위에 놓여있었다.
띠링!
《‘이름 없는 갑옷’을 획득했습니다.》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갑옷이다. 놀라울 정도의 손재주와 섬세한 기술로 만들어졌다. 금속을 녹여서 만든 통짜 갑옷. 겉에 새겨진 조각이 예술성을 극대화했다.》
“겉에 새겨진 조각?”
갑옷을 확대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이건…….”
갑옷의 앞뒤로 섬세하게 새겨진 음각이 눈에 들어온다.
거인들이 서로를 향해 싸우고, 기병과 악마, 천사가 사방에서 몰아치는 전장을 묘사한 모습이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새밀한 조각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걸 갑옷에 음각으로 새겼다고?”
그것도 통짜 주괴를 녹여서 만든 갑옷에?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요즘 드워프들의 비중이 다소 붕 뜬 것은… 작가의 모자람이 큽니다… 뱁새 다리가 찢어지는 기분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중이기에… 이 악물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크으윽, 작가쨩 간바리마스…!
– ‘언제든지당당하게’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보내부신 소중한 응원과 마음, 분명히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4시간 중에서 단 5분, 아니 3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작가를 목표로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