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펜리르 ( 3 )
신의 대전사로 나서게 된 케니스.
케니스는 예상하였다는 것처럼 담담했다.
오히려 데모닉이 더욱 호들갑을 떨면서 그녀를 걱정했다.
“케니스. 정말… 정말로 괜찮겠니? 예상하건대 녀석은 최소 고위급 악마, 혹은 대악마일 수도 있다.”
케니스는 이미 만마의 제왕이라는 마왕과도 일기토를 벌인 몸.
인제 와서 대악마가 두렵지는 않았다.
허나 아무리 장성한 자식이라고 해도 아비의 눈에는 한없이 어리고 여리게 보이는 법.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저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데모닉의 손을 꼭 잡아준 케니스가 훌쩍 콜로세움 안으로 뛰어들었다.
와아아아아아ㅡ!
“용사님! 용사님! 케니스! 케니스!”
“녀석의 머리를 단칼에 잘라주세요!”
“신이시여 용사님의 앞길을 보우하소서.”
그녀의 손에 들린 거대한 대검의 이름은 ‘눈을 뜬 용의 대검’.
붉은 화염이 일렁이는 듯한 기세와 뾰족하게 솟아난 네 개의 송곳니는 구불구불 춤추는 듯하였다.
《크르르ㅡ. 발가르와 자웅을 겨루던 인간…. 킁킁. 달콤한 향기도 가득하군. 그렇군, ■의 자식이냐? 아니면, 후손? 뭐 아무래도 좋다. 너의 운명은 이제 죽음뿐이니.》
“뭐?”
펜리르가 몇 번 코를 킁킁거리더니 혼자 납득해버렸다.
이는 케니스의 신체가 별빛으로 완전히 재탄생 되었기에 그런 착각을 한 것이다.
발가르, 이시디움, 미카에르와 같이 순수하게 별빛으로 만들어진 반신들과 육체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가 케니스인 것이다.
“……한스님. 용사님은…… 괜찮으실까요?”
어쩐지 조금 걱정되는 듯 데이지가 중얼거렸다.
“그럼. 케니스가 얼마나 강한데. 아마 상상도 못 할걸?”
“음. 난 오히려 저 악마가 얼마나 버틸지 내기라도 하고 싶군.”
한스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이스칼 또한 마찬가지.
케니스의 초월적인 위용과 무력을 제일 잘 알고 있기에 걱정은 사치였다.
“하지만…… 용사님은 아직, 그…… ‘벽’을.”
“아? 하하하하! 아직 케니스가 벽을 못 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한스가 데이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케니스는 벽을 못 넘은 게 아니라… 안 넘은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넘었다고 봐야 하려나?”
“네?”
데이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제아무리 어린 나이에 ‘벽’을 넘은 불세출의 천재라고 하여도 아직은 어린 나이였으니.
스르르릉.
검을 뽑아 든 케니스가 펜리르를 마주 보며 자세를 잡았다.
“빠르게 끝내주마.”
《크르릉! 기세는 좋구나! 좋다, 와라!》
넘실거리는 화염이 케니스의 검을 타고 흐른다. 한스는 그 불꽃을 바라봤다.
“벽을 넘는다는 건… 인간의 육체가 더 높은 단계의 무언가로 변하는 과정이야. 더 높게 뛰어오르고, 멀리 달리고, 강하게 휘두를 수 있도록 몸이 변하지.”
“아.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던데.”
육체적 변화를 별로 실감하지 못한 데이지가 제 손을 바라봤다.
“넌 아직 한창 성장기라 잘 모를 수도 있어. …사실 너무 네가 너무 어려서 관련된 자료도 별로 없고.”
카가가강! 콰앙!
케니스의 검과 펜리르의 돌풍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토했다. 관중석까지 불어 닥치는 후폭풍에 데이지가 눈을 끔뻑거렸다.
“뭐, 아무튼. ‘벽’을 넘으면 더 뛰어난 육체를 갖게 되는데, 케니스는 그런 벽을 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뛰어난 몸을 갖고 있거든.”
“…아.”
별빛으로 재구성된 그녀의 육체.
‘벽’을 넘지 않음에도 이미 그녀의 몸은 한없이 완벽한 균형과 우월한 무언가로 이루어진 육체였다.
《죽어라!》
펜리르가 일으킨 수백 미터에 달하는 돌풍.
케니스는 대검을 양손으로 잡더니 그대로 휘둘렀다.
땅이 파일 정도로 강하게 돌진하며 돌풍의 허리를 양단!
“하나 된 분을 대신하여 제가 심판하겠습니다!”
《크르르르르!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펜리르의 몸이 안개처럼 사라지더니 단숨에 케니스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케니스는 달려가던 그대로 허리를 꺾어 검을 휘둘렀다.
화륵!
짧은 거리에 불완전한 가속력, 케니스의 대검에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며 힘을 더했다.
“으아아악! 엎드려!”
“엄청난 열기야. 수, 숨이 막힌다….”
아주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음에도 작열하는 열기에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사제들이 급히 나서서 관중 앞으로 두꺼운 방벽을 세워야 했다.
《크르르릉. 발가르와 겨루던 계집답구나.》
“이게 전부가 아니길 바란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버틸 테니까.”
《아우우우우!》
펜리르가 짙은 안개를 일으켰다.
단순히 시야를 가리는 것에 그치는 안개가 아니었다. 방향감각, 청각, 촉각, 더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잃게 만드는 미혹의 안개였다.
평범한 이라면 안개에 닿는 것만으로 자아를 잃거나 미칠 수도 있었다.
“……거기냐!”
케니스는 사방을 경계하다가 검을 휘둘렀다.
《깨캥! 캐애앵! 어, 어떻게! 쿠아아악!》
개 맞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펜리르!
얼마나 강하게 맞았는지 한참이나 날아서 벽에 박혀버렸다.
“감히 삿되게 신을 논한 주둥이가 이 주둥이냐!”
퍽! 뻐억! 퍼어억!
《캥! 깨갱! 자, 잠깐! 크아아악! 캐애앵!》
케니스의 대검이 신명 나게 춤을 추며 펜리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압도적이다 못해 맞고 있는 펜리르가 불쌍해 보일 정도의 격차!
얻어맞던 펜리르가 진공 칼날을 품은 돌풍을 일으켰지만, 대검을 휘두르자 곧바로 돌풍이 반토막 나는 풍경이라니.
《크아아아아! 가증스러운 ■의 후손!》
펜리르가 일으킨 크고 작은 돌풍이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며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하나하나가 진공의 칼날을 품어 스치기만 해도 뼈가 갈리는 위력.
케니스는 긴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나비처럼 돌풍들 사이를 헤집었다. 번개처럼 번뜩이는 감각과 날카로운 판단이 그녀를 이끌었다.
불타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풍은 여러 갈래로 찢기며 흩어졌다.
“와.”
“봤지?”
마왕과도 대등하게 싸웠던 케니스다.
하물며 대악마와 단신으로 싸워서 지기야 하겠는가.
‘…나는 대악마와 싸우면서 죽을 뻔했지. 케니스는 저렇게 앞서나가는 중이고 나는 아직도…….’
겨우 ‘벽’에 막혀서 쩔쩔매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한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한스의 기분 변화에 예민한 데이지가 한스의 손을 꼭 잡았다.
“한스님….”
“하하. 난 괜찮아.”
괜찮고말고.
* * * * *
중급 사제 미야바는 평생을 신실하게 살아왔다 자부할 수 있는 신도였다.
길고 고단했던 조교 생활도 뚝심 같은 신앙심으로 견뎌온, 그야말로 모범적인 중급 사제의 표본.
‘아마 중급 사제들 중에서 나만큼 신실한 사람은 드물 거야.’
새벽 3시에 기상해서 제단의 촛불을 켜고, 기도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이 미야바의 일과 중 하나였다.
정명하게 갈고닦은 신성력 또한 미야바의 은근한 자랑거리.
‘어찌 저에게 이런 미혹을 심어주시나이까?’
악마,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지상 생명체의 적.
맹목적으로 생명을 증오하며 파멸로 이끌어가는 타락한 것들이 바로 악마일 텐데.
‘그런 것들을…… 하나 된 분께서 창조하셨다고?’
거대하고 까만 늑대와 하나 된 분의 대화에서는 본의가 아닌, 실수이자 원죄라는 느낌으로 말씀하기는 하셨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참담한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관중석 앞에 떠 있는 신성 방벽에 의식을 돌리려 부단히 집중했다.
저 멀리에서 대사제분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신성력을 쏟아내는 것이 보인다.
맑고 티 없는 신성력이 콜로세움 안쪽을 넓기 감싸 안으며 싸움의 여파가 닿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대사제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만신전에서 분명 악마의 기원에 대한 주제로 논의가 됐던 적이 있었는데, 왜 그것을 그냥 유야무야 덮기만 한 것일까?
대사제들은 어째서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 했나? 악마들이 과거의 생명체라면 신께서는 왜 인제야 그들을 구원하려 하시나?
“일단 내 할 일에 집중해야겠지.”
미혹, 모두 미혹이다.
미야바는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미혹을 짓누르며 눈앞의 할 일이 집중했다.
콰가가가각! 화르르륵! 캥, 깨애앵!
당장 중요한 것은 용사님과 늑대 악마와의 싸움이니까.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신께서 자연스럽게 알게 하실 것이다.
“내 영혼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일곱 개의 별과 벼락을 다스리는 분이시니. ”
양 떼는 양치기를 믿어야 한다.
양치기는 양 떼를 보살핀다.
미야바가 생각하는 신도와 신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분이 행하신 일에는 모두 큰 뜻이 있음이니, 감히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말지어다.”
미야바의 신앙은 굳건한 바위와도 같아 흔들리지 않았다.
신께서 모든 것을 순리대로 흘러가게 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가장 어두운 때에 한 줄기 빛으로 길 잃은 자를 인도하소서.”
“춥고 굶주린 자의 안식처가 되리니.”
마야바 뿐만 아니라, 다른 사제들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알게 된 진실은 충격적이었으나, 신에 대한 신앙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 * * * *
《흠. 이상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발가르는 텅 빈 옥좌에 앉아 중얼거렸다.
벌써 펜리르가 안 보인 지 며칠이나 지났다. 이쯤 되면 발가르도 이상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녀석이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일단 악마들을 시켜 펜리르를 찾아오도록 시켰다. 그러자 머지않아 금방 펜리르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녀석이 혼자 심연의 끝으로 향하는 걸 봤다고?》
무슨 이유인지 심연의 끝으로 갔다는 것.
다소 의아했지만 일단 펜리르의 뒤를 따라 발가르도 심연의 끝으로 향했다.
《언제 와도 기분 나쁜 곳이군.》
심연의 땅끝, 한 차원의 경계면에 도착한 발가르가 중얼거렸다. 반듯하게 잘린 절벽 아래로는 끝없는 허무만이 가득했다.
《녀석이 설마 여기서 자살이라도 한 것은 아닐 테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펜리르의 흔적을 찾던 발가르가 얼어붙은 탄식을 뽑았다.
쩌저적! 쩌적!
《숨어있지 말고 나와라.》
어디선가 은밀한 시선이 느껴진 까닭이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허무 안쪽에서 무언가 유연하게 헤엄치는 그림자를 비춰 보였다.
《흐으으음. 듣기로는 많이 들었는데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
《대악마냐? 이런 외진 곳에도 대악마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 이거야 원. 심연을 다스리는 우리 제왕님, 발가르 칸 가르데나 폐하께 내가 큰 무례를 저질렀어. 부디 데모라, 라고 불러주시길.》
《……흠?》
은근히 비꼬는 기색이 있는 말투에 발가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귀하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혹시 뭐, 집 나간 강아지를 찾으신다던가?》
《펜리르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거냐?》
《아하, 펜리르. 알고말고. 흐으음… 그런데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하는 이유라도…?》
발가르는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휘둘러 몸소 보여줬다.
쓰걱! 채애애앵!
허무의 경계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짙은 어둠으로 가득하던 허무가 쩍 갈라졌다.
《그 안에 있다고 네가 안전할 거라 생각해서 그리 경솔하게 구는 것이냐?》
《…무시무시한 괴물이셨군.》
데모라는 차원의 틈 안쪽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가벼운 참격으로 차원을 가른다고? 이게 생물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인가?
‘이렇게 끔찍하도록 강한 녀석을 내가 몰랐다고?’
뭔가 석연치 않은 비밀을 가진 녀석이 분명하다.
《…무서워서 원. 그쪽이 찾는 강아지는 내가 몸소 균열을 열어서 보내줬지. 찾는 게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균열을 열었다고? 하, 그건 또 무슨…. 아니 됐다. 나도 펜리르가 있는 곳으로 보내라.》
《내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는.》
써거걱! 쩌엉!
이번에 날아든 참격은 데모라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명백한 경고의 의미에 데모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보였다.’
인식하기도 전에 날아든 일격.
먹어 치울 수 없었다.
《열어라. 당장.》
발가르의 말에 데모라는 군말 없이 균열을 열었다.
《이상한 수작을 부린 건 아니겠지? 그렇게나 어리석은 놈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리가.》
상대는 참격으로 차원을 베는 괴물이다. 만약 엉뚱한 곳으로 균열을 열어도 자력으로 차원을 가르고 돌아오겠지.
《후. 펜리르 녀석은 도대체 어디까지 나간 것인지.》
마왕이라는 자신이 부하를 챙기러 몸소 뛰어 다녀야 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만에 하나 펜리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어버이께서 펜리르의 말뚝을 제거하셔야 한단 말이다.’
발가르는 그전까지 펜리르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스윽.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발가르는 균열 너머로 몸을 던졌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찌를 듯한 함성을 마주했다.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쓰레기 닌자 카카시…!! 또 어찌 보면 비슷? 하려나요?? 그래! 내가 차원을 찢었다! 네가 살던 차원을 찢어버린 내 주먹 맛이 어떠냐!!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으음… 헛구역질이 절로 나오는 쓰래기군요…!!!